아내와의 창경궁 나들이가 있고 보름이 지나 월요일이 되자 신문사에는 이상한 기류가 흘렀다. 신익희 선생의 급작스런 죽음 뒤에 그를 따르던 이들이 그 중심점을 잃고 정치적 폭이 좁아지기 시작했기 때문이었다. 게다가 부통령으로 야당의 장면 후보가 당선되면서 위기를 느낀 자유당 쪽 사람들은 그 행보가 더 격렬하게 권력에 대한 집착을 보였다. 그런 행보들 중 하나가 우리 신문사 같은 야당 세력을 지지하는 세력들에 대한 견제가 심해졌다는 것이다. 급기야 이정재 패거리들 같은 정치 깡패를 끌어들여 본인들에게 유리한 쪽으로 상황을 만들었고, 부정한 방법으로 정치에 영향을 미치기도 했던 것이다. 더욱이 신익희 선생을 지지하는 후원자들의 후원금이 신문사를 운영하는데 큰 몫을 했던 우리 신문사는 재정난에 부딪혀 폐간 위기에 몰리게 되었다.
"시국이 어수선하니 우리 밥줄도 위태하게 되었네."
사수 이철수 선배가 한숨을 쉬며 내게 말을 건넸다.
"나는 미혼이라 그렇다 치고 후배님은 아이도 생겼는데 처자식 먹여 살릴 것이 걱정이겠어."
"아, 아직 아무것도 결정된 것도 없는데 좀 더 신중히 지켜보시죠."
"아니, 동아일보 일만 봐도 뻔하지 뭐요? 사주 김성수 선생이 이대통령과 뜻이 달라 부통령을 사직하고 죽은 뒤에 신문사 돌아가는 사정이 달라지지 않았오. 우리도 낙동강 오리알 신세가 멀지 않았단 말이지."
나는 사수의 그럴듯한 이유를 듣고 나니 마음 한편으로 불안감이 밀려왔다. 아내의 임신 소식에 열심히 돈을 벌겠다 다짐한 것이 불과 며칠 전인데 모든 약속이 공수표가 된 것 같았기 때문이다. 저녁 무렵 퇴근을 하려는데 임 선생이 나와 함께 한잔하자며 교정실로 나를 찾아왔다. 사수 이철수 선배는 일찌감치 가방을 꾸려 나가고 홀로 교정실에서 정리를 하고 있던 차여서 다행이라 생각하며 임 선생님을 따라 우리가 해방 후 다시 만나 갔던 술집 겸 밥집을 하는 가게로 갔다.
"최 군도 듣는 귀가 있었을 테니 신문사 사정을 알겠지요?"
"네, 신익희 선생 일로 후원이 줄고 있다는 이야기는 들었습니다."
"내가 면목이 없네. 자네를 이곳에서 함께 일하자고 했으면 끝까지 책임져야 할 터인데 신문사가 이리 어려우니... 그간 배운 것도 있을 터이니 지인이 운영하는 작은 인쇄소에 자리를 하나 마련해 줄까 하는데 최 군 생각은 어떤지 묻고 싶어 자리를 하자고 한 걸세."
"무슨 말씀을 그리 하십니까. 제가 이런 몸으로 신문사에서 교정직을 할 수 있었던 것도 다 선생님 덕분이었는데요."
"그리 생각한다면 나로선 고마운 일이지. 당장 이번 달 이후 본격적으로 여름이 시작되면 신문사 존폐 위기가 결정될 것 같으니 최 군도 심사숙고해서 결정하는 게 좋겠어."
"네 알겠습니다. 선생님."
아주 힘들었던 이야기를 꺼내 놓고 힘이 들었던지 임 선생님은 옛 추억에 젖어 술잔을 연거푸 채웠다. 그렇게 임 선생님과의 술자리를 마치고 집으로 돌아오니 아내는 고단했는지 잠이 들어 있었다. 내일은 윤의 아내와의 만남 약속이 있다 하였으니 일찍 잠이 든 모양이다. 나는 아내가 깨어날 것이 염려되어 조용히 안방을 조용히 나와 툇마루에 앉아 담장 끝에 걸린 달을 바라봤다. 보름이 갓 지난 달은 조금 이지러졌지만, 그윽하게 촉촉한 노란빛을 내고 있었다. 저 달밤 아래 '사게와 나 미다까~'를 부르던 황수건이 불현듯 떠오르는 것은 나의 처지가 그와 같아서인가 달빛도 유감이어서 그런가 알 수 없는 상황이 심히 유감스러운 달밤이었다.
다음날 나는 아내가 영숙 씨를 만나고 오고 나서야 윤의 소식을 들을 수 있었다. 그간 서로 다른 곳에서 일을 하면서 그 만남이 예전 같이 자주 만나지도 못했거니와 일하는 직장이 정치적 색깔이 다르니 그 만남도 조심스러웠기 때문이다. 아내의 말을 빌리자면 윤은 이정재 무리들과 갈등이 생겨나면서, 주요 업무에서 좀 멀어진 보직을 맡게 되었고, 그로 인해 윤의 고민이 커진 듯했다. 그 속을 알 수 없는 상황에서 영숙 씨는 내심 서운해 했고 그 마음을 달래주기 위해 아내는 영숙 씨와의 외출을 하고 온 터였다.
"야휴, 말도 말아요. 삼춘이 말수가 적어져서 외숙모도 힘들고, 그런 외숙모의 걱정을 들어주는 지도 힘들었구먼유. 당신이 한 번 외삼춘 좀 만나 보면 좋겄는디 시간 되지유?"
"그래야겠오. 나 역시 신문사가 재정난으로 어수 선한데 함께 술잔이나 기울이며 고민을 털어나 봐야겠네요. "
"왜유? 회사가 그리 힘든 감유?"
"그리되고 있소. 신익희 선생을 지지하는 이들의 후원금으로 돌아 간 신문사였는데 , 신익희 선생이 죽고 나니 그 세력이 와해되면서 후원금도 거의 끊긴 상태라 들었다오. 당신에게 언제 말해야 하나 고민이 컸는데 오늘 윤의 일을 계기로 말을 하게 되어 나도 속이 후려하구려."
"지송혀유. 저는 그런 속 사정도 모르고 아이도 태어나면 돈이 많이 들거라는둥 돈 많이 벌어 오라고 채근만 했구먼유."
"아니 그게 무슨 말이오? 아비로서 당연히 해야 할 일을 말한 거뿐인데 내가 오히려 미안하오. 가장으로서 면목이 없구려. 임 선생님께서 신문사가 폐간 위기에 닥치면 대비해서 새로운 일자리를 소개해 줬는데 그렇잖아도 당신과 그 일을 의논하고 싶었다오."
"그런 감유. 당신은 어떠신디유?"
"임 선생님 지인이 운영하는 작은 인쇄소에서 교정일을 보는 일이라 했으니 지금의 신문사보다는 대우나 벌이는 좀 못 할 것 같은데 당장 내가 이 몸으로 신문사에서 일하던 만큼은 벌 수는 없지 않나 싶어 가볼까 생각도 했다오."
"당신 생각이 그러시면 그리 하셔유. 지는 당신이 결정하시면 따를 게유. 그리고 정 서울살이가 힘들면 고향으로 내려가도 되구유. 설마 산 입에 거미줄 치겄어유. 고향엔 형님들도 계시구, 친정도 있어서 더 의지하고 살 수 있어서 지는 괜찮구먼유."
"그리 말해주니 내 마음의 무게가 좀 덜어지는 것 같오. 고맙소."
나는 아내의 조금씩 불러오는 배를 어루만지며 달빛 창가 아래 지긋이 두 눈을 잠시 감았다. 눈앞의 걱정은 잠시 접어 두고 달빛 아래 그윽한 향기에 취해 보는 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