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수 돌아오다

by 자강




기창이는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줄곧 기만이의 반대에도 무릅쓰고 배우의 꿈을 접지 않은 채 시험 준비를 했다는 사실을 알게 된 것은 최근의 일이었다. 법 공부를 해서 법관이 되길 바라던 기만이의 바람과는 다르게 배우가 되고픈 기창이는 줄곧 아버지를 대신한 기만이와의 갈등이 깊어져만 갔다. 그렇게 두 동생이 서로의 뜻을 굽히지 않고 있을 무렵 기창이를 찾아온 이가 있었다. 은수. 전쟁 통에 부모를 잃고 작은 아버지에게 버려져 우리 집에서 지내다 삼춘이 혈육을 찾아줬고, 그 유일한 혈육을 따라 대만으로 떠났었고 그랬던 아이가 한국에 돌아온 것이다. 은수가 삼 년 만에 한국에 돌아온 이유는 중국의 대만해협에 대한 공격이 잦아진 데에 있었다. 은수의 작은엄마는 중국 본토 출신의 화교였던 친정아버지가 6.25 때 국군으로 참전을 했고, 죽기 직전 고향 땅을 밟고 싶다는 말에 온 가족이 공산화가 된 본토가 아닌 국민당 정부의 통치하에 있는 대만으로 가게 된 거였다. 결국 은수 작은아버지의 사업을 핑계로 대만을 간다고 말했지만, 그 말은 거짓이었다. 그 거짓말에 속아 은수는 사막 같은 불모지이자 낯선 땅 대만에서 청소년 시기를 보내고 온 것이다. 기창이를 좋아해 기창이와 한 집에서 살고 싶어 작은아버지를 찾았을 때도 서울에 다시 올라가는 걸 거부했던 그 은수가 한국에 돌아와 맨 처음 찾은 이는 바로 막내 기창이었던 것이다. 은수가 우리를 용케도 찾아왔다 싶은 것이 우리가 서울살이를 시작하려고 이 동네에 왔던 때에는 이미 은수는 한국을 떠나 있었다. 우리의 서울살이 소식을 듣지 못한 상태에서 이곳 재동 집까지 찾아온 정성을 보면 삼 년의 대만 생활이 은수를 얼마나 힘들게 했을지 짐작이 갔다. 그러기에 더욱 안쓰럽고 반가운 얼굴이었음에도 그 놀라움에 말을 잇지 못하는 내게 은수가 먼저 말을 걸었다.

"언니, 저 은수이에요. 알아보시겠어요?"

"이잉, 은수야. 어떻게 온 거여? 이젠 한국에 아예 들어온 거여? 작은아버지는 같이 오구?"

"언니 천천히 하나씩 물어봐요. 시간도 많은데."

"그래, 우리 사는 집은 어찌 찾은 겨? 서울 온 지 삼 년쯤 돼얐는디 어뜨케 알고 찾고?"

"작은아버지께 부탁하면 다 되니까요. 그나저나 언니 배가... 아이가 생겼어요? 신랑은 누구여요?"

"이러지 말고 집으로 들어가자. 기창이 사는 집은 알고 있는 겨?"

"네, 근데 기만이, 기창이 오빠 둘 다 집에 없던데요."

"시방 시간이 몇 신지 알고 그려? 이 시간엔 출근했으니 집에 없지."

"기창이 오빠도 취직했어요?"

"이잉, 아직은 아니구, 시방은 배우 헌다고 준비하고 있어."

"배우요? 어디서요?"

"새로 생긴 방송국에서 배우를 뽑는다고 해서 그걸 준비하구 있구먼."

"아저씨가 반대 안 하셔요? 잘생긴 기창이 오빤 시험 보나 마나 합격일 텐데 그냥 시험 보지 말라 하면 안 돼요?"

"그리도 허구 싶어 하는디 그 고집을 누가 꺾겄어."

원래 키가 작던 은수는 방년의 나이에도 더 자라지는 못했고 모로만 퍼진 체형에 더욱 까매진 피부에 커다란 눈망울만 빛이 났다. 그 눈망울에 눈물이 맺혀 뚝뚝 떨어지던 때가 엊그제 같은데 내후년엔 스물이 된다고 한다. 나는 은수를 데리고 동네 시장에 가 저녁 찬거리를 사 왔고, 저녁 무렵이 되자 남편과 기만이가 퇴근해 먼저 집에 왔고, 뭣을 하다 왔는지 알 수 없는 기창이도 오늘은 우리 집으로 왔다. 오늘이 막내 기창이의 생일날이어서 다 함께 저녁을 먹기로 했기 때문이다. 집으로 귀가한 세 남자는 은수의 출현에 모두 놀랐고, 놀람 뒤엔 반가움이, 반가움 뒤엔 궁금함이 마구마구 쏟아졌다. 그 궁금증에 답하느라 정신없는 은수와 그 답을 듣고 있는 기창이와 기만이를 뒤로하고, 다정한 남편이 사쓰도 벗지 않은 채로 소매를 걷어 올리며 저녁밥 준비를 도왔다. 임신한 지 6개월이 다 되어 가니 허리를 굽혀 아궁이에서 음식을 하기가 여간 힘든 일이 아니었다. 그 사정을 아는 남편은 퇴근 후 종종 저녁밥을 해준다 사실 요리는 나보다 남편 실력이 더 좋다 나는 손이 커서 많이 하는 편인데 남편은 음식 남기는 것과 버리는 걸 무척 싫어해서 먹을 만큼만 하자는 주의다. 그렇게 차려진 저녁상엔 남편이 신문사 근처에서 사 온 케이크와 미역국에 조기구이, 서울식 소불고기가 올랐다. 소고깃값이 좀 비싸서 망설여졌지만 생일날 먹는 미역국에 넣을 재료로 기창이가 좋아하는 소고기를 먹이고 싶었기 때문이다.

"우와, 얼마 만에 먹어 보는 미역국이에요. 미역국 전쟁 전에 먹어보고 처음 먹어요. 대만 사람들은 생일날에 미역국 안 먹거든요."

기창이의 생일날이 은수의 환영식이 되어버린 이날은 밤늦게까지 이야기가 길어졌고, 은수는 결국 귀가하지 않고 우리 집에서 잠을 자고 갔다.

은수가 다녀가고 열흘 후 기창이는 배우 시험에 최종 합격을 했다. 배우에 합격한 것은 축하할 일이나 그 비용과 아버지의 허락을 받기 위해 설득할 방법만 숙제로 남았다. 배우에 합격하면 다 되는 줄 알았는데, 기창이 말로는 소 한 마리 값의 돈이 필요하다고 했다. 그 돈이 어디에 쓰이고 어떻게 장만해야 할지 고민이 되는 와중에 기창이는 아버지를 설득하러 토요일에 고향 집에 갈 거라고 한다. 내심 기창이는 말 잘하는 매형과 함께 가고 싶어 하는 눈치다. 이런 어려운 일이 있을 때마다 남편을 떠올리는 것을 생각하니 남편도 참 피곤하겠다 싶었다. 워낙 정이 많고 따뜻하니 거절도 못할 테고 다정도 병이라는 말은 이를 두고 하는 말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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