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월 5일은 나라에서 법으로 제정한 어린이날이었지만, 아주 우울한 소식이 전해지기도 한 날이다. 그 때문에 남편은 늦은 시간까지 귀가가 늦어졌고, 나는 그런 남편을 골목길에 나가 한없이 기다려야 했다.
"아유, 늦은 시간에 왜 골목까지 나와 있는 것이오."
"걱정이 되어서 나왔지유. 신익희 후 보 얘기는 라디오를 들어서 알고 있었구만유. 이젠 대통령 선거는 어찌 되는 건감유?"
"글쎄요. 제일 야당 후보가 그리되었으니 조봉암 선생이 그 자리를 대신하지 않을까 싶은데, 갑작스러운 비보로 정국이 더 어수선 해졌소. 어여 들어갑시다."
남편의 늦었지만 안전한 귀가로 나의 걱정은 사라졌다. 하지만 정작 중요한 이야기를 하지 못했다. 나는 오늘 밤엔 그냥 자고, 남편이 퇴근이 이른 토요일에 이야기를 해야겠다고 생각했다.
이튿날이 되어 남편은 일찍 출근을 해야 했고 5월 15일 대통령 선거가 있을 때까지 이른 출근에 늦은 귀가가 열흘간 이어졌다. 그런 일상이 반복되면서 나 혼자 저녁을 먹는 시간이 늘어나 대충 먹거나 거르는 일이 많아졌다. 그래서 그랬을까 자꾸 속이 메슥거리고 음식 냄새만 맡아도 토할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그런 날이 많아지는데 의원이라도 찾아가야 하나 생각만 하고 있었다.
그렇게 지내는 동안 대통령 선거는 끝이 났고 또다시 이 대통령이 대한민국의 3대 대통령이 되었다. 그래서 삼춘은 여전히 바빠졌고, 외숙모가 된 영숙 씨는 홀로 보내는 시간이 많아졌다. 그런 외숙모가 외롭지 않게 하려면 나라도 자주 만나야지 싶어 내일은 삼춘의 가회동 신혼집으로 놀러 가기로 했다.
6월이 되니 한낮의 햇살이 제법 뜨거워졌다. 이참에 외출할 때 쓰라고 남편이 사다 준 양산을 쓰고 나섰다. 삼촌 집까지는 걸어서 십여 분 남짓한 거리여서 천천히 걸어가기로 했다. 가는 길에 꽃집에 들러 외숙모가 좋아하는 장미꽃을 몇 송이 사기로 한 나는 꽃집에 들렸다. 꽃집 아주머니는 금세 나를 알아보고 반갑게 인사를 건넸다.
"새댁, 누구 주려고 비싼 장미를 사누?"
"네 외숙모요. 외숙모 댁에 가는 길인데 좋아하실 것 같아서유."
"근데 얼굴이 좀 상했어. 어디 아픈가?"
"그래 보여유? 속이 좀 안 좋긴 한디. 언제부터 그런 건데?"
"지난 달부터니께 좀 되지유."
"달거리는 했구?"
"예?... ."
"임신한 거 아닌가 싶어서 그러지. 길 건너 한의원이 용한데 맥이라도 짚어봐요."
꽃집 아주머니 말씀대로라면 아이가 생겼다는 건데 그러고 보니 두 달째 달거리를 하지 않았다. 이번 토요일엔 꼭 의원에게 가보야겠다 생각을 하며 삼촌 집으로 가고 있는데 삼춘집 가까이에서 외숙모를 만났다.
"숙모, 왜 나와 계셔유?"
"집에 있기 답답해서 조카님 오면 같이 다방에 가서 커피나 마시려고 했지."
"커피유? 오늘은 다른 거 마심은 안 될까유?"
"왜, 커피 좋아하잖아. 어디 아픈 거야?"
"그건 아니구... 그냥 몸에 안 좋을 것 같아서유."
" 혹시 조카님, 아이 생겼어? 진짜로? 장미꽃은 내가 아니라 조카님이 받아야겠는걸."
나는 확실하지 않아서 대답을 하지 않았지만 눈치 빠른 외숙모는 짐짓 짐작하는 것 같았다.
"우리 큰 길에 있는 한의원 가볼까? 아니다. 이런 건 신랑이랑 가서 확인해야 하는 거니까 우리 오늘은 우리 집에서 맛있는 거 먹으면서 쉬자."
숙모는 나를 벌써부터 임산부 대접을 하며 내 손을 잡고 골목길을 걸었다. 나의 임신이 사실이 되면 자기는 할머니가 되는 거라며 아직 젊은데 할머니가 되는 건 좀 싫다고 했다. 그렇게 외숙모의 집에서 가정부 아주머니가 해주시는 맛있는 밥을 먹고 해 질 무렵 집으로 갔다. 남편은 내가 집에 도착하자마자 퇴근했는데 나는 낮에 있던 일을 이야기했고, 다음날 아침 함께 동네 의원을 찾았다.
의원은 하얀 수염이 한 뼘 넘게 자란 얼굴에 할아버지가 쓰시던 망건을 쓰고 옥색 마고자에 하얀 한복 바지를 입고 계셨다. 그러면서 내 손목을 잡고 검지와 중지를 지긋이 내 손목에 얹었다. 잠시 정적이 흐르고 의원이 말을 했다.
"태기가 느껴지는데 월경을 안 한 지 얼마나 되셨소?"
"한 두어 달 된 것 같아유."
"음, 축하합니다. 임신하셨어요. 신랑분 새댁 많이 은혜 해야 합니다."
나의 임신 사실을 들은 남편은 화색을 감추지 못하며 의원에게 연신 허리 숙여 인사를 했다. 그리고 내 손을 부여잡으며 한의원을 나왔다.
"그간 내가 회사를 핑계로 당신을 살피지 못했소. 미안하오. 그리고 고맙소."
"무슨 말씀을 그리 하신데유. 부부는 일심동체라 했는디요. 지는 그 맘 다 아니께 격정은 붙들어 메구 신문사 일에나 신경 쓰셔유. 당장 아이가 태어나면 돈 쓸 데도 많아질 건디 열심히 버셔야 헐거구만유."
"여부가 있겠소. 내 개미같이 부지런히 열심히 벌테니 당신은 몸 건강하고 태교에만 잘 신경 쓰면 되겠구려."
때마침 내일은 일요일이니 남편은 창경원 나들이를 가자고 했다. 코끼리도 보고 호랑이도 보고 연못과 대온실 구경도 하자고 한다. 아이가 생겼다는 소식에 나도 기쁘고 남편도 그리고 고향 집 할머니와 아버지도 기뻐하실 생각을 하니 행복하기만 했다. 내일 나들이를 위해 오늘 밤은 일찍 잠자리에 들어야 했다.
일요일 아침, 일찍 아침을 차려 먹고 남편과 함께 창경원 가는 전차를 탔다. 아침부터 일찍 서두른 덕에 창경원 가는 전차 안은 생각보다 붐비지 않았다. 빈자리가 있어서 서 너 정거장이지만 앉아서 갈 수 있었고 차장 밖으로 보이는 연둣빛 잎들이 싱그러웠다. 전차가 창경궁 정거장에 섰고, 전차에서 내린 남편과 나는 매표소에서 표를 끊은 후 손을 꼭 잡고 홍화문으로 들어갔다. 우리는 창경궁의 슬픈 운명은 뒤로한 채 창경원이 된 동물원에서 아시아 코끼리를 보고, 대온실에서 신기한 바나나 나무를 보았다. 연못에서 노니는 학과 고니를 보며 저 아이들도 고향이 있겠지, 엄마도 아버지도 ... 하고 생각하니 조금은 슬퍼졌다. 남편은 고단해 보이는 나에게 창경원 나온 후 가기로 한 다방은 다음에 가자며 집으로 가자고 했다. 나 역시 다리가 붓고 고단함이 밀려와 남편과 함께 집으로 가는 전차에 몸을 실었다. 즐겁고 행복한 하루였지만 몸은 좀 무거워지는 하루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