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혼 후 새벽예배를 다니며 성경을 통독했다.
그날도 집에 와서 잠시 눈을 붙였는데,
꿈속에서 사자들이 선명하게 나타났다.
백수의 왕이라는 사자들이 무릎을 꿇고는,
나를 건드리지도 못한 채 덜덜 떨고 있었다.
이건 동네 개꿈이 아니었다. 무언가 거대한 기운이
내 몸으로 훅 끼쳐 온, 범상치 않은 태몽이었다.
눈을 뜨자마자 직감했다.
'얼씨구, 레이더망에 딱 걸렸네. 아들이구나!'
아니다 다를까 임신테스트기를 했더니 빨간 두 줄!
시어머님께 전화를 돌렸는데 잔치 분위기였다.
애는 아직 점만 한데,
시댁은 이미 궁중 취타대라도 부른 듯 들썩였다.
남편은 더 유난이었다.
손으로 입을 감싸며,
"우웩 자기야 나도 울렁거려.
고추장에 뜨신 밥 비벼 먹고 싶어"
임신 3개월째 새해 첫날부터 또 꿈을 꿨다.
아무 맥락도 없이 어금니만 쑥 빠지는 장면.
불길했는데 역시나 예지몽이 됐다.
한 시간 뒤 막내고모는 수화기 너머 떨리는 목소리로,
큰 고모가 소화가 안 돼 병원에 갔는데 대장암 4기라고.
절실한 불교신자인 시댁에서는
임신 중에 문상은 가지 말라고 했다.
나한테 큰고모는 아빠 같은 존재다. 몰래 갔다.
중환자실은 이미 시간이 방향을 잃은 곳이었다.
공기 중에는
누군가 미처 다 부르지 못한 이름들이
그대로 걸려 있었다.
큰 고모는 모르핀 주사로 사경을 헤매고 계셨지만
날 보더니 눈 초점이 또렷해졌다.
"루달아 루달아 왜 우냐. 내가 널 미워한 적 있냐"
그 말 하나 남긴 채, 더는 못 버티셨다. 돌아가셨다.
'한 생명이 태어나니 또 하나는 가는구나'
세상과의 연결고리가 겨우 와이파이 한 칸뿐인 것처럼,
끊길 듯 말 듯 인생의 허무함을 버티고 살았다.
애도의 기간조차 신혼 6개월 만에
남편의 부도 소식과 함께 산산조각 났다.
아빠 사망 보상금으로 바꿨던 피아노를 팔았다.
나를 팔고 꿈을 팔았다. 트럭에 실려 사라졌다.
울 사치조차 없이, 나는 그저 너덜너덜해진 채로
남겨진 뱃속의 아이만 어루만졌다.
피아노 자리엔 곧장 기저귀 단스로 채웠다.
아가씨가 준 보증금. 천에 40으로 이사를 갔다.
하루는 난방비조차 못 내서 독촉 딱지가 붙었다.
도시가스 직원은 실수로 우리 집이 아니라,
옆집 아이 둘 있는 집에 공급을 끊어버렸다.
엉뚱한 집 아이들을 춥게 만든 미안함에 고개를 숙여야 했다. 가난은 사과할 일조차 늘려놓았다.
그러다 스트레스 과중으로 쓰러질 듯해 동네 산부인과에 갔다. 아이 심장이 불규칙하다고 했다.
곧장 삼성병원 응급실로 갔다. 의사는 아이보다 산모가 위험하다고 당장 입원을 시켰다.
임신중독증. 중증고혈압.
혈압은 언제 터질지 모를 시한폭탄처럼 치솟았고
몸은 풍선처럼 불었다.
몇 달 만에 나는 나조차 알아보기 힘든 낯선 이가 되었다.
체중은 89. 아이는 8삭둥이. 3.8킬로.
제왕절개로 아들을 낳았다.
출산하는 동안 마취 선생은 끝까지 손을 잡아줬다.
배를 가르는 감각이 전해졌다.
부들부들 떨며 찬송가를 불렀다.
주 하나님 지으신 모든 세계. 수백 번을 읊조렸다.
메스의 공포를 헷갈리게 하기 위해서였다.
"정오 12시 1분, 아들입니다!"
아이를 보여줬는데 털이 시커멓고 손톱도 다 자라 있었다. 총각 같았다. 무서웠다. 킹콩 새끼인 줄 알고.
막 태어난 게 아니라,
이미 세상 한 번 살아보고 온 얼굴이었다.
3대 독자 집안에 아들이라 아버님은 꽃다발을 보내오셨고 남편은 지갑에 삼만 원을 들고 왔다.
지폐에는 땀 냄새가 났다.
애쓰고 있는 걸 알지만, 현실은 가혹했다.
아이를 수유하고 있는데
병원 관계자가 와서 카메라를 들이댔다.
마침 모자병동 홍보라며 나를 찍는다고 했다.
병원비 걱정에 속은 문드러지고, 아이는 눈물겹게 사랑스러워 마음이 갈피를 잡지 못했다.
그 난장판 같은 감정 위로
“스마일~!”을 주문했다.
웃음은 요기요~배달했다.
며칠 뒤 병원 입구 게시판에 내 사진이 걸렸다.
둘째 날 제왕절개로 마취가 풀리면서 몸이 아팠다. 그날따라 천둥번개가 쳤다. 내 옆엔 아무도 없었다. 간병인도 없었다.
남편은 사업 실패로 대리기사를 뛰었고
친정엄마는 오빠와 동생을 돌보느라 올 수 없었다.
링거를 꽂은 채 화장실에 가려다 침대에서 떨어졌다. 엎어졌다.
애 낳고 바닥이랑 먼저 친해졌다.
입원실 침대에 쉬고 있는데 시끄러웠다.
우측으로 고개를 돌렸다.
헬기를 타고 온 러시아 산모였고 가족들과 떠들고 있었다.
“즈드라스트부이쩨 기시끼…”
좌측을 돌렸다.
산모와 지인들은 수화로 대화를 하고 있었다.
".....”
병실은 채널 두 개가 동시에 틀어져 있었다.
아니, 세계가 셋이었다.
병원복 입은 코끼리. 나까지.
우리는 서로 다른 언어로
각자의 생명을 지켜내고 있었다.
나는 병원밥이 맛있을 뿐이었다.
한참 뒤 간호사가 몰래 왔다.
“절대 안정이 필요하신데…
저, 마침 일인실이 비워졌어요.
비밀로 하시고 옮겨드릴게요.”
망한 인생에 잠깐 VIP 대우였다.
나는 호텔에 온 것 같았다.
셋째 날, 산모들이 모여 교육을 받는데 의사가 내 이름을 크게 불렀다.
"루달 산모님! 아이가 태어나면 체중이 줄어야 하는데 산모님 아이는 어떻게 늘어요?"
우량아였다. 수유랑 남양 분유를 번갈아 먹였을 뿐인데. 어쩐지 쪽쪽 빨아재끼더니.
애는 잘 먹고 인생은 안 풀렸다.
아이의 숨결을 느끼며 이제 나는 강해져야 했다.
보조 휠체어를 끌고 병원 복도를 휘저으며 다짐했다.
이제 내 품엔 피아노보다 묵직한 숨소리가 남았다고.
그 빈자리를 아이의 옹알이로 꽉 채워보겠노라고.
저녁 회진 때 의사는 건조하게 입을 열었다.
"이제 퇴원하세요 "
'나 3일밖에 안 됐는데. 여기가 딱 편한데'
마침내 한 달 입원비와 수술 비용을 지불할 때가 오고 있었다. 심장이 두근거렸다. 그때 사촌오빠!
큰고모 막내아들이 문을 열고 들어왔다.
"원무과에 병원비 내고 올라왔어.
우리 루달이 엄마 된 거 축하한다."
그 말 한마디가 돌아가신 아빠와 큰 고모 음성 같았다.
새벽에 남편이 일을 마치고 왔다. 1인실로 옮긴 것과 병원비가 해결됐다는 얘기를 전했더니
"그것 봐 넌 은근히 복이 있다니까"
남편은 철없이 팔뚝 춤을 췄다.
그에게 이 고난은 잠깐 지나가는 소나기였겠지만,
나에게는 집을 집어삼키는 해일이었다.
그의 해맑음이 나의 지옥이었다.
지옥보다 더 잔인한 희망을 품고 버텨야 하는 연옥.
출산 3일 만에 에어컨 빵빵한 병원을 빠져나왔다.
피아노 빈자리가 있는 집으로 돌아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