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혼집 문을 처음 열던 날,
꿈결을 밟는 듯했다.
늘 혼자 살았던 나에게 여럿이 부대끼는 소리가
외로움의 반대말처럼 들렸다.
그게 착각이었다는 걸
화장실 앞에 줄을 서면서 밀려났다.
화장실은 하나.
사람은 다섯.
그리고 남편은, 한 번 들어가면 한 시간이었다.
단순한 볼일이 아니었다. 매일 치르는 의식이었다.
드라이어로 엄지발가락 위
몇 가닥 털까지 꼼꼼히 말리고,
겨드랑이엔 데오드란트를 성수 뿌리듯 정성껏 뿌렸다.
문을 열고 나올 때면
그는 늘 해탈장군이었다.
나는 조금씩 뒷전이 되었다.
줄을 서다 타이밍을 놓치고, 또 서다 또 놓치고.
살아생전 쾌변이었던 내 몸이 조용히 항의를 시작했다.
변비였다.
몸도 순서를 기다리다 포기를 배운 것이다.
그러던 어느 아침.
출근 시간에 딱 맞춰 변기가 막혔다.
물을 내릴수록 수면이 아슬아슬 올라왔다.
심장도 따라 출렁였다.
넘치면 안 된다.
넘치면 안 된다.
나는 변기 앞에서
기도하는 사람이 되었다.
똑똑똑 똑똑.
노크 소리는 딱따구리보다 빨랐다.
심판의 등장이다.
"형수님, 출근해야 하는데 멀었어요?"
나는 행여 들이닥칠까 문고리를 생명줄처럼 쥐었다.
"저… 그러니까…"
"왜 그러세요? 무슨 일이에요?"
"저… 변기가 막혀서요."
잠깐 조용해지더니.
"나오세요. 제가 해결해 드릴게요."
난 뒷일은 책임못진다는 각오로 두 눈을 꼭 감고 나왔다. 사회적 자아 사망이다.
도련님은 쇠 옷걸이를 검처럼 치켜들고 들어갔다.
창피해서 우주 밖으로 날아가고 싶었다.
한참 뒤 문이 천천히 열리고 도련님이 나왔다.
나의 신비주의는 변기물과 함께 가라앉았다.
엄지와 집게손가락에 잔뜩 힘을 주고
쇠 옷걸이 끝부분을 들고 있었다.
마치 절대 닿아서는 안 될 무언가를 집어 올린 듯,
그 두 손가락만.
나는 애써 옷걸이를 외면했다.
품위까지 집어 올린 것 같아서.
나랑 상관없다는 식으로 입꼬리를 올렸다.
"도련님 밥 차렸어요. 얼른 식사하시고 출근하셔야죠."
지옥 같은 공기를 전환하고 싶었다.
"형수님… 저 새벽에 라면 먹었더니 안 고파요."
거짓말이다. 백 퍼센트.
어제 새벽.
넘친 건 변기만이 아니었다.
남편의 체력도 유난히 넘쳤었다.
주방 옆 화장실을 까치발로 몇 번이나 오갔는데
라면 수프 냄새도 없었기에.
그렇게 나는 이 집에 속해갔다.
화장실 앞에서, 쇠 옷걸이 앞에서,
수치심을 한 꺼풀씩 벗으며.
주말이면 집은 다시 북적해졌다.
아가씨와 서방님.
뱃속의 하나를 더 데리고 왔다.
그날은 여덟이었다.
아가씨는 주방에 들어와 내 등을 살짝 치면서
"새언니, 잡채가 먹고 싶어요."
난 잡채 정도야 어렵지 않다고 생각했다.
조선간장을 냅다 붓고 물엿을 짜 넣었다.
참깨를 휘몰아쳤다.
베테랑 편집국장님처럼.
당면이 그릇에 조금 말라붙을 때쯤
아가씨는 젓가락을 들고선
"엄훠, 새언니 결혼 처음 맞아요?
왜 이렇게 음식을 잘해요?"
아가씨는 칭찬을 투척했는데
엄마 마음엔 수류탄이 박혀 버렸다.
저녁에 엄마한테 전화가 왔고 별생각 없이
그냥 오늘 있었던 일처럼.
"엄마, 아가씨한테 잡채 해줬더니
시집 처음 맞냐고 하더라."
전화기 너머 잠깐 침묵이 흘렀다.
"뭐?"
엄마 목소리가 한 톤 올라갔다.
"어디서 귀한 딸을, 한 번 갔다 온 것처럼 말해!"
아가씨는 맛있다고 한 말이었는데
엄마 귀엔 전혀 다른 말로 들린 것을.
말은 입을 떠나는 순간
말한 사람의 것이 아니다.
그리고 그 말들은 엄마의 서운함 창고에
조용히,
쌓이고 있었다. 아니 벼루고 있었다.
'나도 화를 내야 하나?"
내가 기분 나쁜 쪽이었나.
엄마의 분노가
조금씩 내 쪽으로 옮겨지고 있었다.
엄마의 분노 창고엔
자물쇠가 없었다.
1년 뒤 어느 날,
엄마한테서 전화가 왔다.
"짐 싸."
두 글자였다.
잡채보다 짧고,
소라똥보다 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