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지막 결혼식

by 루달


2002년 가을은

낙엽 말고 다른 게 떨어졌다.




엄마는 갑작스러운 딸 결혼에 놀랐고,
나는 더 놀랐다.
내가 결혼이라니. 게임은 끝났다.

이왕 할 거면 혼수는 좋은 걸로 하기로 했다.


"루달아 시아버지 될 분 사업하시다가 망했다더라.

그러니까 양서방 돈 없다고 기죽이지 말고!

사람 성실하고 자상하잖니. 어서 한복 사러 가자"


한복은 두루마기 풀 세트로 맞췄다.

거울을 보니 선덕여왕 왕림한 듯 궁궐스러웠다.


엄마는 양서방 한복도 지불했고,

시동생 순금 목걸이까지 시원하게 해 줬다.

본인은 평생 금을 차 본 적이 없었으면서.


혼수품은 양서방이랑 보러 갔다.

최신형 가전과 침대는 수입제품으로 골랐다.

내 화장대만 제일 싼 걸로 했다.
'나 화장대 좋아하는데...'

양서방은 다른 건 몰라도
TV는 크고 DVD와 오디오는 좋은 걸로 하자고 했다.

그는 다람쥐처럼 대형 TV 앞으로 쪼르르.

웅장한 스피커 세트도 만지작 거리며 눈이 반짝였다.


속으론 떨었지만,

시동생 셋이 더 있으니까 큰 사이즈로 사버렸다.

계산은 큰 고모가 주신 돈으로.


곧 예식 대행업체 샵으로 갔다.

앉자마자 비싼 피부 마사지 패키지를 권했다.

요즘은 다이아몬드 레이저로 관리해야

예식 날 신랑신부 피부가 빛난다면서.


난 현란한 혓바닥에 꼴딱 넘어갔다. 귀도 얇았다.

엄마는 둘 다 관리받으라며 결제해 주셨다.


며칠 뒤, 양수리로 야외촬영을 끝냈고 밥 먹으러 갔다.
양서방은 파스타를, 나는 김치찌개를 찾았다.

결국 파스타집을 갔다. 난 느끼한 거 싫은데...

그는 눈치도 없이 포크로 면을 도리돌돌 말았다.


"루달씨 으~음 맛있어요! 우리 다음에 또 와요"


그때부터, 하나씩 눈에 밟혔다.

난 표정이 굳어갔다. 숨길 수 없이.


드디어 결혼식 당일.


큰고모는 한복을 곱게 입고 신부 측 혼주석에 서 있었다.
신부실에 들어와서도 계속 수건으로 눈물을 닦았다.
돌아가신 아빠 생각이 난다고 했다. 나도였다.


판사가 되라던 아빠의 바람 대신,

나는 교회 집사가 되어 시집을 간다.

집사인데 집도 못사고.

'아빠 나 벌써 이렇게 커서 시집가...'

신부 입장할 때는 아빠 대신 작은아버지 손을 잡았다.


뒤에 두 명의 화동이 아장아장 따라왔다.
하객 공기는 노른자 빛으로 물들어갔다.


목사님은 축가순서를 소개했다.


“이번 축가는… 소바소닉…”

하객들 사이에선, 소바? 메밀?

“아 죄송합니다. 노바소닉 OOO 가수입니다.”

후배는 화려한 복장으로 마이크 앞에 섰다.

여기까지는 괜찮았다.
선곡에서 끝났다.

임재범, '비상'
결혼식장에서 애절한 가사흘렀다.


상처받는 것보단 혼자를 택한 거지.
고독이 꼭 나쁜 것은 아니야.
외로움은 나에게 누구도 말하지 않은
소중한 걸 깨닫게 했으니까.
이젠 세상에 나갈 수 있어.


이젠 세상에 나갈 수 있어” 노래가 퍼졌다.

답답하면 뛰쳐나가라는 가사였다.
이제 막 시작인데

이미 출구를 알려주고 있었다.

비상이라더니, 상황은 비상 상태였다.

이어서 신랑이 하객에게 인사하는 순서였다.
양서방은 갑자기 단추를 풀더니 가슴을 쭉 폈다.
얇은 철사줄이 끊어지는 소리로 외쳐 됐다.

“만세! 만세!! 만세!!!”


3.1 운동인가?


삼창이 끝나자마자

무릎을 꿇고 하객을 향해 넙죽 절했다.

무릎 꿇는 게 이제 특허가 됐다.
사람들은 이벤트에 웃었고.

나는 부끄러워 몸으로 웃었다.


하객은 점점 큰 예배당을 꽉 채웠다.
출석 교인들은 거의 왔고, 친구들 20명.


큰고모는 뉴욕에 있는 사촌언니, 형부부터
며느리, 손자까지 다 동원해 줬다.

그리고

나의 큰 나무.. 큰 고모는 3개월 뒤 대장암으로 떠났다.

딸 시집보내는 것처럼 결혼식 비용까지 지불해 주셨는데.


1년 뒤, 막내아들은 유언대로
내가 결혼한 그 교회에서 결혼했다.
나를 시집보낸 게 마지막으로.


예식은 끝나고 폐백 때였다.
밤이랑 대추를 던지면서 인자한 시어머니가 말했다.

“아가 애 많이 낳아라. 불쑥불쑥 ”

"네네 어머님 저는 열 명도 낳고 싶어요"

"하하하 아이고 이쁘다 울 며느리"


그러나

태국으로 신혼여행을 다녀온 후...

엄마와 양서방과 사이에 금이 가버린 사건이 생겼다.

나는 그 사이에 있었다.


내 결혼식은
인생의 시작이 아니라
한 세계가 닫히고
다른 세계가 열려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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