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NEY의 유통기한

해산물 신혼여행

by 루달


달콤했던 건

맛이 아니라

착각이었다.




결혼식 후 바로 신혼여행을 안 갔다.

다음날 주일 예배를 드리고서야 태국으로 떠났다.

여행 일정은 내 정신보다 빨랐고,

첫날부터 경건한 코스들이 아니었다.


방콕에 도착.

태양이 자몽빛으로 저물어갈 무렵

알카자쇼 공연을 봤다.
키는 전보댓 같고 속눈썹이 과한 여자들이 무대를 돌았다. 하이힐과 야한 옷은 아슬아슬했다.


남편의 눈빛이 들떠 있었다.

온수 부은 컵라면 뚜껑처럼 펄럭펄럭.


쇼가 끝나고 기념사진을 찍었는데 반전이었다.

사진을 찍은 후 여자의 목소리는 굵었다.
“때엥큐우”
성대에서 쇠파이프 울리는 소리였다.

남편은 얼굴이 굳었고, 뒤도 안 보고 빠져나왔다.

가이드는 태국 3대 쇼 중 하나라며
네온사인이 춤추는 건물로 안내했다.
일본, 홍콩 신혼여행 커플들이 꽤 많았다.


무대에는 속옷만 입은 남자들이 줄줄이 나왔다.
흐물거리는 음악에 맞춰 상체를 웨이브 하더니
촛농을 가슴에 떨어뜨렸다.
예술 공연인지 고통 참기 대회인지 구분이 안 됐다.


그러다 한 여자가 요란한 걸음으로 나오더니
여러 겹 입은 팬티를 한 장씩, 한 장씩 벗었다.


마지막 한 장을 관중석에 휙 던졌고
그 순간 신부들은 눈을 가리고 하나둘 밖으로 나갔다.
“어후! 미쳤어!!”
여기저기서 신경질이 튀었다.

일본 측 무리는 조용했고 홍콩, 한국 여자들은

문화적 충격으로 소리쳤다.


더 큰 충격은 따로 있었다.
마지막 팬티를 벗어던진 여자는, 남자였다.


여장남자는 신체의 은밀한 곳에서

꼬부라진 개불 모양을 뽑아내더니

곧 멜로디언을 꺼내 쳤다.
한 손은 호수로 입에 대고 한 손은 두드렸다.


"어후 야!!!"
관객석 신부들은 구역질하듯 입을 막고

화장실로 뛰쳐나갔다. 관중석은 반쯤 비었다.

난 그 아수라장중에도

'이곡은 무슨 곡이지?'

호기심에 끝까지 남아있는 신부였다.


​다시는 방귀인지 방콕인지 오나 봐라 싶으면서도,

마음 한구석엔

'다음엔 혼자 와서 구경해야지'


하늘이 음침할 때 호텔에 들어왔다.
남편은 속도위반해서인지
한 20년 산 부부처럼 휘리릭 옷을 벗었다.

난 변기에 소변 소리도 쑥스러워 물을 틀었는데...


에어컨을 켜도 방콕 날씨는 끈적였다.

더 끈적 거렸던 건 밤 새 붙어있는 남편이었다.

잠을 못 잤다. 안 재웠다.

토끼와 거북이 이야기가 떠올랐다.


토끼는 그날 밤 일곱 번 뛰었다.
시간은 거북이처럼 느리게 갔다.

나중에 날짜를 계산해 보니
허니문 베이비가 이때 생긴 것 같았다.
신혼은 건너뛰고
결과부터 왔다.


이틀째 오전.

파타야 해변에서 바나나 튜브를 타고 놀았다.
남편이 물속에서 나오면
무스 바른 머리가 소풍 나온 우럭이 되었다.

우럭 남편은 자꾸만 나보고
“쫘쫘 자기야 남방 벗어버려”
재촉했다.


하지만 요요현상으로 야금야금 살이 올라왔다.

출렁이는 내 팔뚝은

이미 피자 반죽처럼 말랑하게 늘어져서 가려야 했다.


거기다 우럭은 눈치가 없었다.

수영 못하는 나를 물속으로 빠뜨렸다.


무릎 닿는 깊이인데
나는 무당 굿하듯 손을 공중에서 흔들었다.
"허이 허이 살려줘!”


허우적거리다 남방 단추가 풀렸고 남편은 보자마자
“헉 비키니 입지! 이건 뭐야?”


나는 엄마가 30년 전 입던
야생꽃 모양에 커튼 달린 수영복을 입고 있었다.


남편은 웃음이 사라지고
“남방 다시 걸쳐.”

물에 빠진 게 아니라

체면이 먼저 젖었다.


다음날도 해변을 갔다.
우럭 남편은 선글라스를 두 개 샀다며
하나를 꺼내줬다. 꼈는데 내 거는 작았다.
해변에 날아온 왕파리 눈이었다.

같은 선글라스였는데
초점은 합의되지 않았다.


그리곤 제비집을 먹으러 갔다.
그사이 젖었던 남편 머리는
햇빛에 말린 아롱사태였고,
내 머리는 남해안 양식장 파래김 됐다.


아롱사태와 파래김은 제비집을 먹다가
한 입 먹고 수저를 내려놨다.

건축물 맛이었다.

맛보다 표정이 먼저 왔다.


웨이터가 계산을 하는 우리 앞에서
“쏴장님 쩌넌 천 원”
팁을 달라고 했다.


돈을 주고 우린
이구아나처럼 잽싸게 빠져나왔다.
눈만 움직이고 몸은 조용했다.


이번엔 코끼리를 타러 갔다.
등에 올라타라고 했다.
나는 고소공포증이 있어서
“으윽 나 똥 마려워”
핑계를 대고 화장실로 도망갔다.


남편만 야자수 프린트 남방 입고
현지인 찰떡인 사진만 남았다.
나는 빠졌고 사진은 완성됐다.


같이 있다는 건
같이 사는 게 아니었다.


저녁에는 무에타이 경기를 보러 갔다.
남편은 선수 움직임 따라
어깨와 다리를 같이 움찔거리며 푹 빠져 봤다.

이때 알았어야 했다. 게임 중독인 것을...


경기가 끝나고 또 나를 링 위로 올렸다.
사진 찍으라고.
왜 자꾸 코끼리부터
링까지 나를 저글링 하듯
올리는지 이해가 안 갔다.


옆에 남자는 겨드랑이에 머리카락이

자라는지 수북이 보였다.


링 위에서 남편을 내려다보니
갑오징어 웃고 있었다.


우린 마지막 날 여행 선물을 사러갔고,

만 원짜리 호랑이연고 5개와

비싼 로열허니 두 병을 구입했다.


일정을 마치고 서울로 왔는데...

엄마와 남편은 첫 균열이 시작됐다.


친정집으로 인사하러 가는 줄 알았는데

나와 상의도 없이 핸들을 꺾어 큰고모네로 갔다.


비싼 로열허니를
큰고모와 시댁에 나눠줬고
우리 엄마 손엔
만 원짜리 호랑이 연고가 남았다.


결국 엄마의 서운함은 오래갔다.

“아니! 세상에 양서방은
장모한테 먼저 인사하러 와야지.
큰고모부터 가니! 나를 무시하는 거니? 거기다가
신혼여행 비용까지 줬더니 만 원짜리야?”


달콤했던 건
맛이 아니라
순서였다.


유통기한은
현실을 개봉하며 지났고
소비기한은
갈등으로 끝났다.
개봉된 건
금방 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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