먼지의 노래

재봉틀이 멈추던 날

by 정서하

재봉틀이 멈추던 날

청계천의 새벽은 언제나 희뿌옇다.
공장지대의 공기는 늘 젖어 있었고, 그 속에는 먼지와 연탄가스, 석유 냄새가 섞여 있었다.
도로 옆 좁은 개울에는 종잇조각들이 떠다니고, 그 위로 안개가 얇게 깔렸다.
트럭의 머플러에서 뿜어져 나온 검은 연기가 천천히 위로 올라가다
형광등 불빛에 닿아 뿌옇게 번졌다.

이른 새벽, 봉제공장 하나가 문을 열었다.
금속문이 삐걱거리며 열리고, 어둠 속에서 희미한 불빛이 새어 나왔다.
정연은 낡은 스위치를 올리며 형광등 불을 켰다.
형광등은 몇 번 깜빡이다가 비로소 켜졌다.
그 차가운 불빛 아래에서 공장의 먼지가 일제히 빛났다.
그 빛 속에는 수많은 날들이 갇혀 있었다.


‘따다닥, 따다닥, 따다닥——’

재봉틀이 돌아가기 시작했다.
그 소리는 늘 같은 박자였고,
그 박자는 곧 사람들의 하루였다.

정연은 오늘도 맨 앞자리에서 재단선을 따라 칼을 움직였다.
천의 질감을 손끝으로 느끼며, 선 하나라도 삐뚤어지지 않게 자르는 것이 그의 일상이었다.
그녀는 이곳에서 일한 지 7년째였다.
이젠 눈만 봐도 천의 두께를 알 수 있었고,
손끝에 닿는 감촉만으로도 불량품을 알아챘다.
그녀의 손에는 작고 오래된 상처들이 겹겹이 남아 있었다.


“언니, 오늘도 밤새셨어요?”

뒤쪽에서 순덕이 물었다.

순덕은 열아홉이었다.
시골에서 올라온 지 두 달도 되지 않았다.
손끝엔 아직 물집이 잡혀 있었고, 말투는 서툴렀다.
밤마다 엄마가 싸준 보리차를 조금씩 나눠 마셨다.
그녀는 정연을 처음 봤을 때부터 ‘다른 사람’이라고 느꼈다.
다른 사람들은 사장 눈치를 보며 고개를 숙였지만,
정연은 언제나 고개를 들고 있었다.

“응. 도면 수정하느라 좀 늦었지.”
정연이 대답했다.
순덕은 그 목소리를 좋아했다.
무심한 듯하지만, 듣고 있으면 마음이 편해지는 목소리였다.

‘언니는 왜 이런 일을 계속하는 걸까.’

가끔 그런 생각이 들었지만, 묻지 못했다.

공장 안은 점점 뜨거워졌다.
선풍기에서는 먼지 섞인 바람이 나왔고, 창문은 늘 잠겨 있었다.
누군가는 커피믹스를 마셨고, 누군가는 손목을 두드리며 졸음을 쫓았다.
점심시간까지는 세 시간을 더 버텨야 했다.

그때였다.
재봉틀 소리가 한순간 멈췄다.
순덕은 고개를 들었다.

옆자리에서 일하던 정순 언니가 바늘 위에 손을 올린 채 멍하니 앉아 있었다.
손등에서 피가 흘러 천 위로 번졌다.
누군가 비명을 질렀다.


“정순 언니!”

순덕이 달려갔다.
“언니, 괜찮아요?”
하지만 대답은 없었다.

공장장은 허둥대며 다가왔다.
“무슨 일이야? 또?”
그는 잠시 얼굴을 찌푸리더니, 낮게 말했다.
“일단 작업 끝내고 병원 보내. 납품 마감 오늘이야.”

순덕은 믿을 수 없다는 듯 사장을 바라봤다.

“사람이 다쳤잖아요!”

그의 말에 다른 사람들도 손을 멈췄다.
재봉틀이 하나둘 멎으며 공장 안이 조용해졌다.
정연이 천천히 일어났다.
그녀의 눈빛은 차가웠다.

“지금 납품보다 중요한 게 사람 아닙니까.”
그 한마디가 공기 속으로 날카롭게 흩어졌다.
사장은 말을 잇지 못했다.
누군가는 고개를 숙였고, 누군가는 정연을 바라봤다.

정연은 재단대 밑에서 깨끗한 천 조각을 꺼냈다.
손에 붕대를 감는 대신, 천으로 정순의 손을 단단히 감싸며 중얼거렸다.

“사람이 먼저예요.”

그녀의 손끝이 미세하게 떨렸다.
그 순간, 순덕은 그 말이 무엇을 뜻하는지 완전히 이해하지는 못했지만,
그 말이 이곳의 공기를 바꾸는 걸 느꼈다.
그건 두려움과 존경이 동시에 스며든 공기였다.

사장은 무겁게 숨을 내쉬며 말했다.
“오늘 일은 없던 걸로 해. 다들 일해.”
정연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녀는 잠시 천을 바라보다가, 조용히 바늘을 집어 들었다.
다시 기계가 돌아가기 시작했지만,
그날의 공장 안에는 이전과 다른 무언가가 떠돌았다.
긴장인지 분노인지 알 수 없는 기류였다.

그날 저녁,
정연은 공장 문을 닫으며 천천히 골목으로 걸어 나왔다.
해가 저물고, 하늘은 잿빛이었다.
청계천의 물 위로 희미한 불빛이 번지고,

다리 밑에서는 누군가 라디오를 켜놓은 채 담배를 피우고 있었다.

“이문세의 그대 그리고 나, 들려드릴게요.”
라디오 DJ의 목소리가 골목에 울려 퍼졌다.

정연은 잠시 걸음을 멈췄다.
노래가 익숙하게 흘러나왔다.
“그대 그리고 나~”
그 가사 속에서 오늘 하루의 소음들이 천천히 사라져 갔다.

그녀는 가방 속에서 낡은 종이를 꺼냈다.

거기엔 쓰러진 정순의 근무기록이 적혀 있었다.
“퇴근 전 손목 부상.”
짧은 메모 한 줄이지만, 정연에겐 증거였다.
그녀는 그것을 꼭 쥐었다.

그 순간, 뒤에서 누군가의 발자국 소리가 들렸다.
정연은 고개를 돌렸지만, 아무도 없었다.

바람이 불었고, 공장 굴뚝의 연기가 뒤틀렸다.
그녀는 천천히 다리 위로 올라갔다.

순덕이 그 뒤를 따라왔다.
“언니.”
정연이 놀라며 돌아봤다.
“넌 왜 아직 안 갔어?”
“그냥… 같이 가고 싶었어요.”


순덕의 손에는 종이컵 라면이 들려 있었다.
그녀는 라면을 건네며 어색하게 웃었다.
“이거라도 먹어요. 언니 오늘 많이 지쳐 보였어요.”
정연은 잠시 그녀를 바라보다가 웃었다.
“고맙다.”

둘은 다리 위에 나란히 앉았다.

물아래로는 불빛이 흔들렸고,
멀리 선 경찰차 사이렌이 작게 울렸다.

순덕은 조심스럽게 물었다.
“언니, 사람이 먼저라는 말… 진짜 그렇게 생각해요?”
정연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게 어려운 일일수록, 더 그렇게 생각해야 돼.”

순덕은 그 말을 곱씹으며 라면 국물을 마셨다.
달고 짰다.
그녀는 문득, 자신이 어른이 되는 순간이 이런 건가 싶었다.
누군가의 말 한마디가 마음 깊은 곳을 흔드는 그 느낌.

정연은 다리 난간에 팔꿈치를 괴고 청계천 물을 내려다봤다.
“언젠가 말이야,
이런 얘길 세상에 알려야 하지 않을까.”
“누가요?”
“누군가는 써야지. 아니면 아무 일도 없던 게 돼버리니까.”

순덕은 그 말의 무게를 다 알지 못했지만,
그녀의 눈빛 속엔 어딘가 슬프고 단단한 것이 있었다.

그날 밤, 청계천의 물은 조용히 흘렀다.
그 물소리 안에는
아직 이름조차 붙지 않은 변화의 조짐이 숨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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