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홍색 장갑

첫 만남

by 이상한별

23살.

나는 첫사랑과 막 헤어진 참이었다.

처음 겪는 이별에 방황하던 그 겨울,

친구가 주선한 소개팅 자리.

기대감 없이 사람을 잊고 싶어 나간 자리였다.


‘어? 귀엽잖아!‘

동글한 안경, 동글동글한 눈, 동그스름한 얼굴.

첫인상은 그랬다.

한참 좋아하던 영화 해리포터의 주인공 같은 느낌.

공부 잘하게 생겼다는 딱 그 느낌.

휜 셔츠 위에 남색 스웨터, 블루진을 입은 너는

내게 청바지광고의 모델처럼 보였다.

“혹시 오여름?“

약속시간 보다 조금 늦은 내가 다가가

먼저 말을 건넸다.

“어.. 맞아. 한겨울?”

“응! 안녕?”


내가 맞은편 자리에 앉자마자

너는 미리 준비한 작은 선물을 건넨다.

소녀감성 가득한 분홍색 털장갑.

너의 이상형은 그 사랑스러운 장갑이

잘 어울릴 것 같은 사람이었을까?

날 보지도 않고 준비한 너의 선물은

그 겨울 내내 내게 잘 어울렸고 잘 맞았다.


동갑내기 너와 나.

무겁지 않고 담백했던 대화가 즐겁고 편안했다.

대학 졸업 후 직업군인이 된 너는

갇혀 지내야 하는 신세라 했다.

높은 담벼락 안에서 늘 선임 눈치를 봐야 하는

내가 알 수 없는 세계에 살고 있는 너.

너는 내 이상형의 외모를 가진

미지의 인물이었다.


“나는 자유롭지 못해.

그래서 나를 만나면 네가 힘들 수도 있어. “

다짜고짜 넌 내게 양해를 구한다.

“그런거라면 상관없어.

난 사람 오히려 자주 안 만나는 게 좋아”

이상하게 들렸을 수도 있겠지만,

습관적으로 매일 보며 지긋지긋하게 싸우던

지난 연애에

오히려 가끔 볼 수밖에 없는 상황이라는 너는

이보다 더 좋을 수 없는 완벽한 사람이었다.


콩깍지가 씌어도 단단히 씌어버린

한눈에 알아본 인연의 시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