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7화: 손주들을 위한 외할머니의 선물
첫째가 태어나고, 친정엄마는 우리에게 큰 선물을 하기로 하셨다. 우린 연애 시절, 엄마가 예전에 몰던 NF 소나타를 남편이 엄마에게 저렴히 사서 몰다가 첫 아이를 가지게 되었고, 엄마는 첫 손주가 태어나자 차를 사주고 싶어 하셨지만 그땐 여건이 되지 않아, 엄마가 새로 뽑았던 그랜저를 우리에게 주게 된다. 그러니까 우리의 NF 소나타와 엄마의 새 차 그랜저를 바꿔주신 것이다. 엄마의 그 새 차를 주시면서 우리에게 말했다.
“아이는 어릴수록 좋은 차를 타야 하는데,
내 마음은 새로 뽑아주고 싶은데 지금은 여건이 되지 않으니
나중에 꼭 차를 바꿔줄게.”
그렇게 우리에겐 셋째 아들이 태어났고, 엄마는 미용사이시기 전에 각종 주식, 코인을 하고 있었기에
그때 엄마가 많은 돈을 벌게 되었다.
엄마는 남편에게 말했다.
“셋째도 태어났고, 지금 타고 다니는 차가 좁으니
김서방이 갖고 싶은차 있으면 말해봐.”
굴러다니는 작은 우리 집
하지만 그때 당시 코로나로 한창 집에만 있었던 시절이라 우린 마침 캠핑을 다니며 캠핑 장비를 막 사던 때였다. 남편은 엄마께 캠핑카 얘기를 했고, 엄마는 이왕 사는 거, 집도 못 사줬는데 내가 너희에게 굴러다니는 작은 집을 사주겠다며 캠핑카를 알아보라고 하셨다. 그렇게 우린 친정엄마가 통 크게, 셋째를 낳은 기념으로 캠핑카를 사주시계 되었다. 우린 이 캠핑카로 전국 각지를 아이들과 함께 돌아다니며 많은 추억을 쌓았다.
오래전 육아 유튜브도 해 왔었고, 새로 운영한 캠핑카 여행 채널도 있었기에 영상 하나하나에 우리 소중한 추억을 담으며 그렇게 행복하게 살아갔다. 코로나로 집 안에만 있었던 그 시절, 우리는 바다며 산이며 공원이며 여기저기 돌아다녔다. 심지어 그 캠핑카가 너무 좋아 우리는 캠핑카에서 자고, 남편은 캠핑카에서 출근하고, 아이들과 나는 공원에서 하루를 보내며 그렇게 지내고 있었다. 엄마는 그렇게 내게 어릴 적 해주지 못했던 날들을 보상하듯 내게 뭐든 걸 다 해주셨다.
해주네가 살고 있는 집은 현재 관사다. 그러니 해주네에겐 자택이 없는 거나 마찬가지였다. 우리는 이 캠핑카를 우리의 ‘굴러가는 집’이라고 이름을 지어놓고 이곳저곳을 돌아다녔다. 그렇게 여행을 많이 하다 보니 많은 노하우도 생기고, 좀 더 간편하고 알뜰하게 여행 가는 것도 가능해졌다. 사람들은 외벌이에, 매일같이 주마다 여행을 다니면 그 경비를 어떻게 충당하냐고 묻곤 했지만, 해주에겐 그건 문제 될 게 하나도 없었다.
어릴 적부터 요리를 해왔던 해주는 50대 시골 아주머니 같은 만능 주부 손이다. 못하는 음식이 없고, 심지어 손도 빨라서 뚝딱뚝딱 여러 음식을 만들곤 했다. 처음엔 캠핑카에서 음식을 하며 고기도 사서 캠핑장에서 구워 먹기도 했지만, 계속 이렇게 지내다 보니 비용도 그렇고 무엇보다 좁은 공간에서 어린아이들을 데리고 요리하기가 쉽지 않았다. 그 후로는 해주는 주마다 여행을 갈 때마다 도시락을 싸기 시작했다. 도시락이라고 해서 뭐 거창할 것도 없다. 그냥 집에서 먹는 아이들 반찬 계란말이, 짜장, 카레, 된장국, 볶음밥 등 집에서 먹는 음식들을 삼시 세 끼로 나눠 도시락을 싸고, 남편과 해주가 먹을 음식도 챙겼다. 여행 중 한 번은 외식하기로 하며, 그렇게 경비도 줄이고 시간도 줄이니 매주 여행 가는 게 부담스럽지 않았다.
남편은 매일 새벽부터 바리바리 싸는 해주를 보며 말했다.
“이럴 때라도 나가서 사 먹자.”
하지만 해주는 남편에게 말한다
“도시락 싸 가면 일단 오빠랑 내가 편한 거야.”
“집에서 조금 고생해서, 밖에서 편하게 여행하는 게 낫지.”
“여행을 즐겁게 해야지 고통스럽게 해야 되겠어?”
남편의 말이 해주를 위한 말인걸 알면서도 그런 해주는 남편과 아이들이 가장 편안한 여행을 할 수 있도록 매번 분주하게 움직였다.
사람들은 해주네를 보고 말한다.
“외벌이에 군인 월급으로 많은 아이를 어떻게 키워요?”
“아니, 보니깐 여행도 자주 가던데 그게 가능해요?”
하지만 해주는 솔직히 경제적으로 어렵다고 생각해 본 적이 단 한 번도 없었다. 너무 감사하게도 해주는 주위에서 아이들 옷을 물려주시곤 했고, 심지어 해주를 모르는 사람들도 해주를 보고 조심스레 말하곤 했다.
“저희 아이가 하나인데, 옷이 진짜 깨끗한데 물려드려도 될까요?”
해주는 이런 일들이 정말 많았다. 네 아이의 옷을 새것으로 사준 적은 거의 없으며 항상 여기저기서 물려받았다. 해주는 그 도움의 손길이 마냥 감사하게만 느껴졌다. 어찌 보면 나쁘게 볼 수도 있고, 좋게 볼 수도 있겠지만 지금 당장 내게 꼭 필요한 물건이고 내게 도움이 되니 그 비용을 아껴해 주네 가족은 잘 생활할 수 있었다.
그리고 큰아이가 자라며 자기 자아가 생기기 시작했다.
큰아이는 어느 날부터 해주에게 말했다.
“이제 옷 물려받기 싫어. 새로 사줘.”
그래서 큰아이는 현재 새 옷을 사주고 있다.
아이들 신발은 전부 새것을 사 주지만, 어린 동생들은 아직도 옷을 물려받는다. 해주는 옷을 소모품이라 생각한다. 해주 또한 동네 친한 분들에게 옷을 물려받으며 감사하게 입는다. 명품에 대한 욕심도 없고, 어릴 적 그렇게 멋쟁이였던 해주는 이제는 그 멋도 자신에게 맞지 않다는 걸 알고, 무엇보다 아이들을 키우며 불편하다고 느끼기 때문이다. 그래서 해주는 운동화와 편한 청바지, 레깅스만 있어도 아이들과 어디든 갈 수 있다고 생각한다. 우린 그렇게 우리만의 생활로 행복하게 지내고 있었다.
그리곤 해주를 모르는 사람들은 말하곤 한다.
“나라에서 돈을 주나?”
“집안이 잘 사나 봐요?”
“남편이 돈을 많이 버나요?”
하지만 아니다. 다 틀렸다.
해주는 그럴 때마다 그냥 웃고 말지만, 속으로는 생각한다.
“사람은 자기에 맞게, 그 조건이 주어지면
어쩔 수 없이 그에 맞춰 살게 되어 있다고.”
아마 내가 시중에 돈이 많아도 나는 그 돈에 맞춰 살 것이고, 지금부터 남편의 월급이 50만 원이 깎여도 타격은 크겠지만, 그거에 맞춰 나는 다섯 아이를 키울 수 있다. 남들 할 것 다 하면서 여행도 가고 먹고 싶은 것도 다 먹고 물론 그 방법이 내 수준에 맞춰서 방식은 조금 다르겠지만은.
사람은 그 상황이 닥치면, 그 상황에 맞게 살아가는 법이다. 그건 해주뿐만 아니라, 모든 엄마들도 대부분 그럴 거라 생각한다.
비록 나는 경제적으로 지금 당장 가진 게 없지만 정말 행복하다. 내겐 편히 쉴 수 있는 관사가 있으며, 아이들과 언제 어디든 떠날 캠핑카가 있고, 무엇보다 나를 지켜줄 든든한 남편이 있지 않은가. 살면서 우여곡절 많았던 시간들도 내겐 많았지만, 그 또한 무탈히 지나 보니, 지금의 행복이 있는 게 아닐까 싶다. 없으면 없는 대로, 있으면 있는 대로, 돈이야 벌면 되는 거고. 내가 이리 젊고 사지가 건강한데 지금 말고도 나중에라도 아이들을 위해 뭔 일이든 못 하겠는가? 내겐 남들과 비교할 수 없는 집요함이 있고, 부지런함이 있고, 무엇보다 가족을 사랑하는 마음이 있으니 이런 내가 뭐든 못 하겠는가? 오늘도 난 다섯 아이들과 행복한 가정을 꾸리기 위해 나를 재정비하고 또 재정비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