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폭력보다 무서운 건 침묵이다.

제15화: 남편의 침묵은 나를 두 번 죽였다

by 최해주

남편과 방에 들어가서 해주는 남편에게 말했다.

“아버님이 나한테 막걸리병 던졌는데 왜 아무 말 안 해?”

그러자 남편이 정말 아무것도 몰랐다는 듯이 말한다.

“나는 몰랐는데?”

해주가 얼굴이 붉어진 채 말한다.

“어머님도 큰소리로 말했고,

오빠는 그 순간 나랑 눈도 마주쳤는데 모른 체했잖아!”

그러자 남편이 언성이 높아지기 시작했다

“나는 아빠가 막걸리병 던진 줄 몰랐고,

누나랑 말하고 있어서 엄마말 듣지도 못했어”

그러자 해주가 말한다.

“막걸리병을 던진 건 못 봤다고 치고,

오빠 말대로 어머님이 말한 거 못 들었다 치자.”

“그런데 나랑 눈 마주쳤잖아. 내 표정 봤잖아.”

(이 상황을 남편한테 설명해야 한다는 사실이 너무 초라했지만 말을 이어갔다.)

“그럼 이제 알았잖아? 아버님이 나한테 막걸리병 집어던진 거.”

남편이 이 상황을 모른다고 하니, 꿋꿋이 남편에게 말했다.

“나한테 왜 막거리병 집어던졌는지 알아?”

“수유해서 술 못 마신다고 그랬더니, 그게 이유였어.”

그러자 남편 얼굴이 일그러지더니 해주에게 화를 내며 말하기 시작한다.

“나는 막걸리병 집어던진 거 진짜 몰랐다니깐?”

남편은 해주에게 같은 말만 반복하였다.

그리고 해주는 똑같은 말을 재차 남편에게 설명하였고, 말을 하면서도 밖에 있는 가족들이 들을까 봐 창문으로 눈치를 보며 말했다.

그러자 남편이 말했다.

“그럼 지금 이 상황에서 내가 큰소리로 아빠랑 싸우길 바래?”

“전처럼 소리 지르고 내가 막 싸워?”

남편의 열변에 해주는 정말 기가 막혀 남편을 쳐다봤다.

남편은 얼굴이 울그락 불그락된 채 다시 말했다.

“네 말대로라면 내가 이제 네 얘기를 들었으니깐,

아빠랑 싸우라는 거잖아!”

그러자 해주가 말했다.

“내가 언제 아버님 하고 싸우라고 했어?”

“내 말을 못 들었어?”

“아버님이 나한테 막걸리병을 집어던졌다니깐?”

“이유가! 내가 수유를 해서 막걸리를 못 마시겠다는 이유로?”

해주는 같은 말만 반복하는 자기 자신에게도 너무 짜증이 나기 시작했다.

그리곤 생각했다.

(내가 뭘 바라겠다고..)

(내가 뭘 의지하겠다고..)

(그래 너는 이제 나보다 네 가족들이 우선이구나.)

(와이프가 시아버지한테 이런 취급을 받으며 사는데.)

(이 사실을 지금 듣고도, 가만히 있는다고.)

(그래, 말을 말자. 말하면 내 입만 아프지.)

그렇게 몇 초간 혼자 마음을 정리해 버리고 가만히 있었다.

그러자 해주를 향해 작정한 듯 남편은 쏟아붓기 시작했다.

남편은 오히려 밖에 있는 가족들이 들으라는 듯이 더 크게 말했다.

“너는 내가 우리 가족이랑 인연 끊길 바래?”

“네가 원하는 게 그거면 내가 그럼 인연 끊을게.”

“명절에도 안 가고, 생신에도 안 가고, 연락도 안 할게. 그럼 되냐?”

해주는 홀로 마음을 정리한 와중에 남편의 말을 듣자 모든 게 확실히 정리되었다. 그날 해주는 아버님이 자신에게 막걸리병을 집어던진 것보다, 이 사실을 듣고도 저리 발언을 하는 그에게 철저히 부서진 재가 돼 버렸다. 그동안 현명한 아내, 지혜로운 며느리자, 엄마로 살아보고겠다고 노력했던 그날들이 불에 탄 재처럼 하늘에 까맣게 흩어지는 기분이 들었다. 차라리 흩어진 재가 아니라, 그 보다 조금 나은 산산조각이 되어 버렸다면 그 조각들을 몇십 년이 걸려서라도 홀로 맞출 수 있다는 희망이라도 있지만, 이미 흩어져 재가된 마음은 그 어떠한 방법으로도 치료할 수 없게 되었다고 느낀다. 그리고 열변을 토하는 남편을 보고 해주는 생각 한다. 그의 눈빛은 나를 향해 있지만, 그 속엔 이미 오래 전의 그림자가 겹쳐져 있었다.

불효자로 낙인찍힌 남편의 시간

그날, 모유수유 사건 이후 남편은 처음으로 나를 위해 아버지께 소리를 질렀다. 아버지는 그렇게 바로 집을 나가셨고, 어머니는 우시며 짐을 싸야만 했다. 누나와 매형은 다음날 급히 내려가야 했고, 그는 그날 이후로 나를 감싸기 위해 자신이 불효자가 된 것이라 생각했고, 그 일로 인해 가족을 무너뜨렸다는 죄책감에서 벗어나지 못했던 것 같다. 그는 가족과의 다시 재회로 인해 다시는 이런 실수를 저지르지 말아야겠다고 다짐한 듯했고 이제는 나를 우선순위로 두는 것보다 나이 들고, 세상에 의지할 곳 하나 없는 가엾은 어머니를 아버지로부터 지키기로 한 것 같았다.

그래서일까. 남편은 이제 내가 겪는 수많은 불편한 상황에서도 언제나 어머니의 얼굴을 먼저 떠올리는 것 같았다. 남편에게 단 한 번도 내가 느끼는 감정을 말하진 않았지만, 해주는 느낄 수 있었다. 시댁에 가면 해주가 시댁의 불편한 말을 꺼내려하면, 남편은 이미 자리를 피하거나 어머님 곁에 꼭 붙어서 대화를 섞곤 했다. 비록 남편은 아니라 할지언정 남편은 시댁에 가면 항상 내 시야 속에서 멀어져 있었다. 정말 내가 아무 말도 할 수 없도록. 이런 일들이 갈 때마다 있었기에 해주는 확실히 느꼈지만, 좋은 게 좋은 거지라며 그렇게 또 생각했다.

브런치작가 최해주

그렇게 시간이 지나다 보니 이제는 남편이 밉다는 감정도 생기지 않았고 그냥 아무 감정이 없었다. 그 일이 있고 난 후 우린 아무 말 없이 집으로 그렇게 올라왔고 해주는 남편이 퇴근하고 오면 평소와 같이 남편의 저녁상을 차렸다.

감정 없는 로봇처럼.

그건 남편이 좋아서도 아니라, 이젠 안쓰러워서도 아니다. 해주의 마음은 단 한 가지였다.

“먹는 걸로 치사하게 굴고 싶지 않아서.” 자신의 감정이 밥 한 그릇보다 천박해지고 싶지 않아서였다.


미움의 잣대

내가 용서할 수 있는 일.

이해할 수 있는 농도와 깊이.

미움의 잣대로 내가 얼마나 괴로운지.


해주는 홀로 이런 생각들을 나열하며 천천히 마음을 정리하기 시작한다. 그리고 마음속에서 단호히 결론을 내린다. 그 결심을 한 순간부터, 해주는 그 사람과 함께 있어도 더 이상 작은 감정조차 일어나지 않는다. 억지로 같은 공간에 머물면, 신기하게도 몸이 먼저 반응을 했다. 헛구역질, 구토증상, 온몸이 가렵기 시작하면서 심하면 붉은 반점들이 올라온다. 해주의 이 증상들은 아무도 모른다. 하지만 해주는 알고 있었다. 사람이 정말 싫으면, 마음보다 몸이 먼저 거부한다는 걸. 실제로 그런 일이 몇 번 있었다. 지금의 이야기와 직접적인 관련은 없지만, 그때 느꼈던 감정이 지금과 너무 닮아 있어 그 일을 잠시 꺼내보려 한다.


결혼 초, 남편과 원룸에서 함께 살던 시절이었다. 어느 날 50대쯤 되어 보이는 남자와 여자가 찾아왔다. 근처에 산다며 물어볼 게 있다며 들어왔고, 나이가 지긋해 보이는 부부라 경계심이 덜해 차 한 잔을 내어주었다. 대화를 나누는 중, 그들은 도(道)를 믿느냐고 물었다. 이상한 기운이 느껴져 내보내려 했지만 그들은 쉽게 나가지 않았다. 그 순간부터 해주의 몸이 반응하기 시작했다. 속이 울렁거리고, 헛구역질이 났으며, 온몸에 울긋불긋한 반점이 번졌다. 마치 몸이 그 사람들을 밀어내려는 듯했다. 해주의 이런 반응을 보고 그중 남자는 가방에서 성수라는 것을 꺼내 해주의 몸에 뿌리기 시작했다. 해주는 그 사람들의 행동에 분노했고 순간 본인 의지와 다르게 그 사람들에게 말했다.

"제가 영적인 존재를 느끼고 보기도 하는데요."

"지금 제 집에서 나가지 않으면,

저희 할머니가 가만히 안 있으신데요."

해주도 왜 이런 말을 했는지 모르겠지만, 그땐 정말 연기한 것도 아니고 갑자기 그 말이 자신도 모르게 쑥 튀어나왔다. 그들은 해주의 섬뜩한 말과 살벌한 눈빛을 봤는지, 서로 해주의 눈치를 보다 서둘러 자리를 떠났다. 그리고 그들이 나가고 난 뒤, 창문을 활짝 열고 한참 동안 숨을 몰아쉬었다. 찬 공기가 들어오자 가슴이 조금씩 가라앉고, 몸의 열도 빠지기 시작했다. 잠시 후, 피부의 반점도 흔적 없이 사라졌다. 그날 해주는 확실히 깨달았다. 사람이 싫으면 마음보다 몸이 먼저 알아차린다는 걸. 그건 단순한 기분이나 예민함이 아니라, 몸이 스스로를 보호하려는 본능이었다.


다시 본론으로 돌아가자. 해주는 남편과의 관계에서도 이번에 이런 반응을 겪게 된다. 그렇다 해주는 아무렇지 않게 행동하였지만, 이제는 단순히 마음이 식은 게 아니라, 해주의 몸이 그 사람을 밀어내기 시작한 것이다 해주의 어릴 적 꿈은 현모양처였고, 성인이 되어선 미용 교수가 되고 싶었다. 그리고 해주는 어릴 적 가정이 온전치 못해 오랫동안 평범하면서도 행복한 가정을 꿈꾸곤 했었다. 그렇게 자신의 어린 시절 이혼 가정을 다시는 대물림하고 싶지 않았다. 그래서 지금의 상황은 참는 게 아니라 앞으로 이 상황을 어떻게 해야 할지 곰곰이 그리고 혼자 철저히 생각하며 계획을 짜기 시작했다. 그리고 지금, 당장 해주가 할 수 있는 건 아무것도 없었다. 이 상황을 그냥 ‘무시하고 넘어가는 선택’이었다. 어린아이들에 겐 여전히 아빠가 필요했고, 자신의 고통으로 인해 아이들의 행복을 저버릴 수 없었다. 하지만 한편으론 또 생각한다.

(내가 아닌 아이들을 위한 삶이 어떤 것인지.)

(지금 당장 나는 경제적 독립이 가능한지.)

(아이들을 위해 어떤 선택이 옳은 건지.)

홀로 마음에 병을 앓으며, 겉으로는 아무렇지 않은 척 살아갔다. 그렇게 시간이 한 달 두 달 한 해가 흐르면서 해주의 감정도 서서히 무뎌졌다. 오랜 시간이 지난 후, 해주는 이 모든 일을 엄마에게 털어놓았다. 엄마는 한동안 아무 말이 없었고 그저 깊은 한숨만 내쉬었다. 그리고 해주는 엄마마저 무(無) 반응에 해주는 그동안의 설움과 울분을 참지 못한다. 하나밖에 없는 엄마만이라도 내 편이 되어, 한마디라도 해주길 바랬지만 엄마는 끝내 아무 대답도 하지 않았다. 물론 엄마의 마음을 이해를 못 한건 아니었다. 지금의 엄마에게 김서방에게 쓴소리도 딸의 방패막이도 엄마의 어떠한 선택도 엄마는 지금의 딸의 이혼을 부추긴다는 마음뿐었을 것이다. 엄마는 나를 위해 지금 당장 그 어떠한 것도 섣뿔리 할 수 없다는 걸 알고 있으면서도 해주는 그저 엄마가 야속했을 뿐이었다. 그리곤 엄마에게 맘에도 없는 말을 토하기 시작한다.

“이럼에도 내가 이해해야 하는 거지?”

엄마는 아무 말이 없었다.

“왜 이렇게 나를 착하게 살라고만 강요했어 엄마는?”

“나는 아무렇게나 휘둘려도 되는 사람이야?”

“내가 아빠가 있었다면, 모두가 내게 이런 행동을 했을까?”

“내가 아빠가 있었으면!,

그 당시 나를 모른 체한 김서방을 가만히 놔뒀을까?”

“왜 엄마는 오빠한테조차 아무 말조차 안 해?”

“엄마도 오빠도 내 편이 안 돼주는데, 난 뭘 보고 살아야 돼?”

엄마는 조용히 말했다.

“엄마가 미안해..”

분명 엄마도 흐느끼고 있었음을 알고 있었는데도 해주는 엄마에게 모진 소리를 더 했다.

“어른이라는 이유만으로, 나는 잘못도 없는데 항상 고개 숙여야만 했어.

“엄마는 내게 항상 ‘좋은 게 좋은 거다’ 그 말만 하니까, 내가 이렇게 당하고만 사는 거야! 바보같이.”

“나는 내 새끼들한테 착하게 살라고 하지 말 거야.”

“나는 이런 내 성격이 죽기보다 싫어.”

그러자 엄마는 해주에게 한숨을 푹 쉬며 말했다.

“너는 네 새끼 나처럼 키우지 말어..”

“ "좋은 게 좋은 거다"라고 키우지 말고.”

그리곤 해주와 전화를 끊었다.

그날 전화를 끊고 해주는 다짐 했다.

(나는 죽어도 내 새끼들한테 착하게 살라고 안 할 거야.)

(요즘 같은 세상에 착하게 살면 손해야.)

그리곤 실제로 해주는 아이들을 가르칠 때 이렇게 말했다.

“너희 그릇은 너희가 챙겨야 해.”

“잘못한 것도 없는데,

어른이라는 이유 하나로 참고 이해하지 마.”

“아무리 어른이 강압적으로 얘기해도,

“그 상황이 무섭다고 아무 말 안 하면 안 되는 거야.”

“무서워도 너의 생각을 꼭 말할 줄 아는 사람이 되어야 돼!”

“어른한테 꼬박꼬박 말한다고 그건 말대답이 아니야!”

“어른들이 혹여 말대답이라 느껴도, 넌 네 마음을 표현할 줄 알아야 되는 거야!”

“양보도 네가 하고 싶을 때 하는 거고, 네 마음이 안 낵히면 하지 마!”

“동생이니까, 어른이니깐 그런 이유라면 억지로 하지 마.”

해주는 이제 더 이상 ‘좋은 게 좋은 거다’라는 말로 자신을 위로하지도 않는다. 더군다나 아이들에겐 절대로 그렇게 가르치지 않는다. 자신이 그렇게 자라와서 매번 피해를 봐 왔기에 착하고, 예절 바르고, 둥글게 둥글게 산다는 게 좋은 게 아니란 걸 알았다. 그렇기에 정작 자신은 그렇게 하지도 못 하면서 네 아이들만큼은 자신처럼 살지 않고, 자기주장을 내세울 줄 아는 사람으로 자라나길 바래본다.


나는 오늘도 매일 웃는 얼굴로 나의 슬픔을 숨긴 채 자신을 갉아먹고 있다. "나는 진짜 착한 사람이다" 이 말을 강조하는 것도 아니다. 살다 보니 참 착한것만이 미덕이 아니란 걸 말해주고 싶었다. 나 역시 다시는 그렇게 살지 않아야지! 하면서도 아이들을 키우다 보니 오히려 아이들을 생각하면 더 착하게 살아야겠다.라는 생각이 든다. 그리고 남편은 우리에게 아들 셋이 있었을 때와 넷째 딸이 태어나고 마음자세가 조금은 달라진 것 같다.

최해주 에세이

남편에겐 이젠 눈에 넣어도 안 아플 두 딸이 생겨 버렸다. 나는 그런 남편에게 넌저시 말하곤 한다.

"오빠도 이제 딸 가진 아빠잖아?"

"어때? 얘네가 시집가서 생활하는 거 생각하면?"

사실 나의 이 말속엔 정말 많은 의미가 담겨 있다.

남편도 이제는 나의 말 뜻을 조금은 아는듯 하다.

그리고 남편은 멋쩍은 듯 웃으며 내게 말한다.

"나는 시집 안 보낼 건데?"

"내가 평생 끼고 살 건데??"

그렇다 남편은 분명 이제 아는 것 같다.

그리고 딸 가진 아빠로서 많이 생각이 달라진 듯하다. 그렇다면 아버님과의 관계는 어떻게 되었을까? 사실 이번 편에서 꼭 이야기하려 했지만, 쓰다 보니 마음속 이야기가 너무 길어져 버렸다. 내 글을 재미있게 읽을 독자들을 생각하며 거침없이 글을 써 내려갔지만, 나의 답답함을 보고 혹시 스트레스를 준 게 아닐까 내심 걱정이 든다. 그래도 나의 얘기는 계속된다. 재미있는 글도 있으면, 슬프고 답답한 글도 있지 않겠는가? 이제 내 글을 읽는 당신은 나의 묘한 매력에 빠져들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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