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4화: 현명한 아내, 지혜로운 며느리가 되고 싶었다
해주는 아버님과 그 일이 있고 난 후, 남편은 시댁과 연락하지 말라고 했지만 해주는 자신도 모르게 불편함을 느끼고 있었다. 시간이 지날수록 (내가 조금 더 이해할걸 그랬나?)하면서도,
(아니야, 그래도 그건 아니지.)
아무래도 내가 아버님과 사이가 좋다고 한들, 그렇게 직접 보여주는 건 아닌 것 같았다.
더군다나 그땐 첫아이라 모든 게 조심스럽고 예민하던 시기라, 해주 마음속엔 천사와 악마가 나뉘어 싸우곤 했다. 아이는 무럭무럭 자랐고, 시간도 어느덧 흘렀다. 남편은 시댁에 연락도 하지 말고 가지 말자고 했지만, 시댁 어르신들 생신이나 명절이 되면 안 갈 수도 없고, 연락을 안 할 수도 없으니 참 난감했다.
시댁과 그런 트러블이 있을 때마다 해주는 그 누구에게도 이 사실을 말하지 않았다. 물론 다른 사람들과 교류도 하지 않았고, 자랑할 일도 아니었다. 그렇게 명절이 다가오고, 해주는 큰 결심을 하게 된다.
일단 부딪혀 보자
남편도 해주에게 직접적으로 말은 안 했지만, 그 일이 있고 난 후 남편 또한 시댁과 자주 연락하지 못했다. 명절에 내려가자는 말도 못 하고 내 눈치만 보고 있었다. 무엇보다 해주의 마음에 걸렸던 건, 남편이 자신의 눈치를 보며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그 상황이었다. 그게 너무 싫었다. 그래서 마음을 먹었다. 명절도 다가왔겠다, 시댁에 내려가기로 했다. 어차피 시댁과 친정이 같은 군산이라, 친정만 갈 수도 없었다. 남편은 말로는 “친정만 다녀오자”라고 했지만, 군산까지 갔는데 시댁에는 안 간다는 건 스스로 이해할 수 없었고 오히려 남편의 그런 행동들이 해주의 마음을 더 약해지게 만들었다.
그리곤 해주는 생각 했다.
(그래, 좋은 게 좋은 거지..)
(그냥 손주가 밥 먹는 게, 궁금해서 그러셨을 거야.)
(아냐, 그래도 그렇지, 아무리 그래도 며느리의 젖을.)
(더군다나 더 가까이서 보겠다고, 얼굴을 들이미시는 건 아니지.)
(나도 엄마이기전에 여잔데, 창피함을 느끼는 게 내 잘못은 아니잖아?)
(그래도 창피한 건 창피한 거고, 기분 나쁜 건 기분 나쁜 거고.)
(그래도 며느리로서 할 도리는 해야지, 그게 맞지.)
그렇게 홀로 마음을 다잡고 명절에 내려가기로 했다. 남편은 연신 “괜찮겠어? 너무 불편하면 가지 않아도 돼.”라고 말했지만, 해주가 마음을 다잡은 것에 대해 싫은 눈치는 아니었다. 그렇게 함께 시댁으로 향했다.
가는 길에 숨이 막히고, 식은땀이 나고, 호흡이 가빠왔다.
해주는 남편에게 말했다.
“내가 수유할 때는 방에 들어가서 할게. 문 앞에 꼭 있어 줘.”
남편은 “알았어, 걱정하지 마.”라고 했다.
수유를 할 때마다 남편은 문 앞에서 문지킴이를 했다. 어머님도 이번엔 해주가 수유하러 들어가면 일부러 큰소리로 말했다.
“해주야, 방에 들어가서 문 닫고 수유해라!”
아버님이 들으시라고 말해주는 것이었다.
무엇보다 인상 깊었던 건, 시누이의 딸들이었다. 조카들은 해주가 수유할 때마다 창문을 닫아주고, 문을 닫아주고, 방 앞을 지켜주었다. 그 어린아이들이, 숙모가 수유할 때 할아버지가 숙모 몸을 봐서 숙모가 창피해서 울었다는 일을 잊지 않고 있었다. 그래서 숙모가 수유하러 가면 창문을 닫아주고, 문을 지켜주며, 방 앞을 지켜주는 것이었다. 그때의 조카들은 초등학교 3~4학년, 2학년, 1학년. 딸 둘, 아들 하나였다. 해주는 그 작은 아이들의 마음이 너무 고마웠다.
그리곤 해주는 생각 했다.
(그래, 좋은 게 좋은 거지.)
(가족 모두가 나를 위해 애써주는데.)
(처음이 어려운 거지, 오길 잘했다..)
(사람은 마음먹기 나름이니까.)
그렇게 무탈하게 시댁에서 명절을 보내고, 친정으로 향했다. 아버님은 그 후로 나름 나를 많이 피하셨다. 하지만 시댁에 가면 아이가 자고 있을 때 억지로 깨워보곤 하셨다. 그럴 때마다 해주는 스트레스를 받았지만 홀로 마음을 또 다스려 본다.
(그래, 얼마나 손주가 보고 싶으시면 저러실까.)
(길어야 이틀이야.)
(아기가 이틀 잠 못 잔다고 잘못되는 것도 아니고.)
하지만 아이는 시댁에 다녀오면 꼭 아팠다. 잠을 제대로 못 자고, 자고 있는 아이를 억지로 깨우는 일이 자주 일어나다 보니 아이의 패턴은 계속 깨지기 시작했다. 그리곤 꼭 집에 돌아와 일주일씩을 앓았다. 그 일이 반복되자 해주는 시댁에 갈 때마다 아기띠로 아이를 안고 다니면서 재우거나, 미리 차 안에서 낮잠을 재워 가는 방식으로 최대한 아버님과 부딪히지 않으려 했다.
물론 해주가 이렇게까지 조심한 데엔 이유가 있었다. 해주는 지금껏 시댁과의 갈등을 누구에게도 말하지 못했다. 가슴앓이를 많이 했고, 이 일 외에도 시댁 아버님과의 트러블이 많았다. 그리곤 시댁에 다녀오고 난 후 매일같이 불안 증세가 반복되어 결국 병원을 찾게 되는데 그때 마침 공황장애 판정을 받게 된다. 모유수유를 하고 있어서 약도 먹지 못 하고 정신과 치료를 몇 번 받았지만, 그 마저도 아이들로 인해 시간이 자유롭지 못했고 비용도 만만치 않아서 포기하고 만다.
그리곤 홀로 최대한 자신이 스트레스를 받지 않도록 아버님과 트러블이 생길 만한 사건들을 미리 방지하는 방법을 세웠다. 해주는 그렇게 홀로 자신을 지키는 방법을 찾으며 그만큼 힘든 시기를 보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해주의 마음속엔 여러 자아들이 생기기 시작했다. 그리고 결정적으로 해주 부부에게 큰 위기사건이 터지는데, 이 일은 해주에게 많은 혼란스러움을 주게 된다.
혼자서만 멈춰버린 시간
해주는 둘째를 낳고 모유 수유를 하던 시기였다. 그날은 어머님 생신이었는지, 아버님 생신이었는지 정확히 기억나지 않지만 모든 가족이 모여 마당에서 바비큐 파티를 하며 반주를 즐기고 있었다. 마당 한가운데선 고기를 굽고 있었고, 작은 움막 같은 테이블 자리에는 남편과 누나가 서 있었다. 어머님은 음식을 가져다주시느라 계속 왔다 갔다 하셨고, 그때 아버님은 해주에게 막걸리를 건네며 받으라고 하셨다. 하지만 해주는 모유 수유 중이라 정중히 거절했다.
그러자 아버님은 말씀하셨다.
“자! 해주도 한잔 마셔라~”
해주는 웃으며 말했다.
“조금 이따 아기 수유해서 마시면 안 돼요.”
아버님은 막걸리병을 들은 채 다시 말했다.
“기분 좋은 게, 오늘 같은 날은 너도 한잔 마셔라.”
해주는 그런 아버님께 웃으며 다시 말했다.
“저도 마시고 싶은데요, 이거 마시면 이따가 수유를 못해요 “
그러자 아버님은 다시 말하셨다.
“옛날에는 젖 잘 돌라고 일부로도 마셨다.”
그러자 옆에 왔다 갔다 하신 어머님이 웃으시며 말씀하신다.
“그려 우리 옛날에는 일부로 막걸리 먹고 젖 주고 그러긴 혔다!”
해주는 그런 아버님께 다시 웃으며 말했다.
“아버님 진짜 안 돼요. 애기 진짜 수유해야 돼요..”
그런데 그 순간, 아버님의 표정이 굳더니 갑자기 막걸리병을 들어 해주를 향해 던졌다.
에이씨!
슈웅— 퍽!
막걸리 병은 해주 바로 옆에 떨어졌다. 순간 해주는 얼음처럼 굳었다. 모든 가족이 그 장면을 정확히 본 것은 아니었지만, 순간 경직 되었던 그 순간들을 인지하고 있었다. 그 순간 어머님은 해주의 옆에 떨어진 막걸리병을 얼른 주우시며 큰 목소리로 말씀하셨다.
“에이, 정말 왜 그런댜!”
“애기 수유해서 안 먹는다고 하는디.”
“왜 막걸리병을 집어던지고 그런댜!”
그리고는 막걸리병을 아버님 테이블 위에 ‘턱’ 하고 내려놓았다. 그때 해주는 사선에 위치한 남편을 쳐다봤고 남편은 그런 해주의 눈이 잠시 마주쳤지만, 남편은 곧바로 뒤돌아섰다. 그 짧았던 2초의 순간 해주는 놀란 눈으로 남편과 마주쳤지만, 바로 등을 돌리며 누나와 다시 얘기를 이어가는 그 순간을 해주는 그 당시에도 그리고 시간이 지난 지금도 잊을 수 없다.
그리고 아버님은 의자를 박차고 일어나 담배를 태우시며 마당 밖으로 걸어가셨고, 그 주위에 있던 사람들은, 마치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고기를 굽고, 술잔을 기울였다. 해주는 믿을 수 없었다. 도대체 이 상황을 어떻게 이렇게 지나갈 수 있는지. 순간 (자신이 잘못되었나?) 그 짧은 순간에도 자신을 의심하게 되었다. 그리곤 그 상황 속에서 남편에게 다가가 자존심도 없이 조용히 불렀다. 남편과 함께 방에 들어가는 그 10초 거리동안 그동안 “좋은 게 좋은 거지”라며 억지로 시댁을 향했던 시간들이 스쳐 지나갔다. 공황장애진단을 받았으면서도 남편을 위해 버텼던 시간들, 그 모든 게 한순간에 무너지는 기분이었다. 분명 어머님이 큰소리로 말씀하셨는데 남편이 못 들었다고? 해주는 그런 남편을 의심하며 남편과 방에 들어가 얘기를 나누기 시작한다.
공황장애 진단을 받았으면서도 남편을 위해 버텼던 시간들, 나는 그날 모든 게 한순간에 무너지는 기분이었다. 그리고 사람은 폭력으로만 무너지는 게 아니라, 사랑했던 사람의 침묵 속에서도 더 쉽게 부서질 수 있다는 걸 깨닫게 된다. 그렇게 깨달음 속에 또 깨달음을 깨닫고, 외면이라는 가면아래 나는 그 공간 함께 있던 사람들조차 낯설게 보였다.
(내가 예민한 걸까?)
(지금 느끼고 있는 내 감정이 잘못되었는가?)
(살아온 환경이 다르면 이런 결과들이 당연한 걸까?)
그 순간 내가 느꼈던 감정들을 모두 의심하기도 했었다.
나는 이렇게 힘들어하고 고통스러워하고 있는데, 나의 고통을 다른 사람도 아니고 남편이 외면했다는 걸 나는 그 누구보다 참을 수 없었다. 눈을 가리고 귀를 가린다고 보지 않고 듣지 않게 되는 것인가? 그날 남편이 내 쪽으로 단 한 발자국만 걸어왔더라도, 나는 그 한걸음으로 그렇게 또 몇 년을 버틸 수 있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는 내게 등을 돌렸고, 내 마음의 가시 돋은 말로 심장을 잘라 버렸다. 그리고 나는 처음으로 행복한 결혼생활은 대체 무엇인가?를 의심하게 되었고, 그동안 내가 생각했던 현명함과, 지혜로움으로 기도했던 날들을 원망했다. 그리고 그날 밤, 나는 남편과의 대화 속에서 나의 존재를 지워버리고 마는데, 우리 부부는 어떤 대화들을 주고받았을까? 그리고 어떻게 되었을까?
바로 다음 편에서 이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