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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주 젖 먹는게 궁금했던 시아버지

제13화: 모유수유의 위기

by 최해주

해주는 조금은 서툴지만 커가는 아들을 보며 하루하루 행복하게 지냈다. 매일같이 아이와 한몸이 되어 모유수유를 하며 아이의 눈을 바라보거나, 아들의 손가락 마디마디를 만질 때마다 그동안 느껴보지 못한 감정들이 밀려왔다. 심지어 해주는 티브이에서 다른 아기들의 울음소리만 들어도 젖이 돌 만큼 모성애가 상상을 초월했다.

그렇게 시간이 흘러 아이는 무럭무럭 자랐고, 어느 날 시댁 어르신과 남편의 누나, 매형, 그리고 어린 조카들까지 모두 집에 놀러 오기로 한 날이었다. 전에 말했다시피 해주의 시아버지는 전형적인 옛날식 아버지로 집안의 모든 중심이었고, 그의 말은 곧 법이었다.

아버님은 술을 좋아하셨고, 술만 드시면 목소리가 커지고 성격이 거칠어졌다. 신혼 초 해주 역시 술을 좋아했기에 아버님과 함께 한잔 기울이며 이야기를 나누는 시간도 종종 있었다. 아버님도 그런 해주를 예뻐하셨고, 함께 웃고 대화하며 시아버지와 며느리의 정을 쌓았다.

하지만 임신 준비를 하면서 술을 멀리하게 되었고, 그 시기를 기점으로 두 사람 사이에는 알 수 없는 거리감이 생기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 거리감은 어느 날 벌어진 한 사건으로 더욱 깊어졌다.

해주가 만삭이었을 때, 어느날 시부모님께서 집에 놀러 오셨다. 네 식구는 모처럼 외식을 하고 집에 돌아오는 길이었다. 운전대는 남편이 잡았고, 해주는 조수석에, 뒷좌석에는 시부모님이 타고 계셨다. 그런데 아버님이 갑자기 담배를 피우기 시작했다. 남편과 시어머니는 극구 말렸지만 아버님 고집을 꺾을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아버님은 “창문 열면 냄새가 안 난다”며 담배에 불을 붙이셨다. 그날 해주는 만삭의 몸으로 담배 냄새를 맡으며 차 안에서의 헛구역질을 하며 구토를 해야만 했다. 그제야 아버님은 담배를 버리셨지만 온통 차 안에는 이미 담배연기로 가득 차 있었다.

그날의 그 일은 해주 마음에 아주 오래 남았었다. 남편의 중간역할은 항상 미흡했고 이번에 아버님이 집에 오신다 하니 해주는 순간 걱정이 앞섰던 것이다. 그렇게 홀로 밤새 걱정을 하며 드디어 가족 모두 모이는 날이 밝았다. 해주와 그의 남편은 시골에서 버스를 타고 오신 아버님과 어머님을 모시러 터미널로 향했다. 그리고 해주는 망설이다 남편에게 조심스레 말했다.

“설마 아버님이 나 수유하는 거 보시겠다고 하시진 않겠지?”

남편은 해주의 얘기를 듣고 황당하다는 듯 웃으며 말했다.

“너는 상상력도 진짜 풍부하다.”

“에이, 우리 아빠가 아무리 그래도 그 정도 막장은 아니다!!”

하지만 해주는 불안해하며 남편에게 다시 말했다.

“그래도 혹시 모르잖아.”

“아버님이 술 드시고 혹시 어찌 될지도 모르잖아.”

“나, 수유할 때 방에 가서 할 테니까,

혹시라도 아버님이 들어오신다면 오빠가 꼭 막아줘야 돼!”

남편은 대수롭지 않게 말했다.

누나도 오고, 매형도 있는데 설마 그러시겠어?”

“쓸데없는 걱정 하지 마!”라고 남편이 말했다.

하지만 해주는 그동안의 아버님 성격을 너무 잘 알고 있었다. 그렇기에 정말 혹시라도 그런 일이 생길지도 모른다는 불안이 떠나지 않았다. 터미널에 도착후 아버님과 시어머님을 반겼다. 시어머니께서는 시골에서 음식을 바리바리 싸 오셨고, 우리는 어머님이 준비하신 요리와 함께 저녁을 먹으며 가족들은 반주를 곁들였다. 오랜만에 모인 가족들과 즐거운 시간을 보내던 중, 마침 아기가 배가고팠는지 칭얼거리기 시작했다.

해주는 일부러 남편에게 큰 소리로 말했다.

“나 애기 수유 좀 하고 올게!”

남편은 자리에서 일어나 해주를 가운데 방으로 데려다주며 말했다.

“문 닫을게, 수유하고 나와.”

그리고는 일부러 가족들이 들리게 말했다.

“얘들아, 숙모 가운데 방에서 수유하니까 들어가면 안 돼~”

그 말을 듣고 해주는 잠시 안심했다.

거실에서는 웃음소리가 이어졌고, 해주는 긴장 속에서도 조심스럽게 아기를 품에 안고 수유를 하고 있었다. 그런데 그때, 거실에서 남편의 목소리가 들렸다.

“아버지, 해주 가운데 방에서 수유하고 있어요.”

해주는 속으로 생각했다.

(아버님이 화장실을 가시나?)

(혹시 들어오시진 않겠지?)

(재빨리 가서 문을 잠궈볼까?)

긴장속에서 아이를 바짝 더 끌어 안고 수유를 하는데, 정말로 ‘철컥’ 하는 소리와 함께 문이 열렸다. 해주가 그토록 걱정했던 일이 진짜 현실이 된 것이다.

아버님께서는 해주가 있는 방으로 들어와 손주 앞에 앉으시며 말씀하셨다.

“아이고 내새끼 맛나게도 먹네~”

순간 놀란 해주는 정말 그대로 몸이 굳었고, 정신을 차리자 젖가슴은 훤히 보였고 아이는 힘차게 젖을 빨고 있었다. 아버님은 그런 손주의 얼굴을 더 가까이서 보려고 바짝 다가오셨고 놀란 해주는 황급히 아이의 입을 떼낸 뒤 옷을 내렸다. 그러자 아버님께서 화를 내시며 말씀하셨다.

“애기 배고픈 거 같은데 왜 젖을 줬다 빼냐?

줘라!”

해주는 당황해서 목소리가 떨리기 시작했다.

“아... 그게, 다 먹었어요.

“지금 나가려던 참이에요.”

거실은 여전히 떠들썩했고, 아무도 이 상황을 몰랐고, 그 짧은 순간이 한참처럼 길게 느껴졌다. 결국 해주는 놀란가슴과 울음을 참으며 아기를 안고 방에서 나와 거실에 있는 남편과 눈이 마주쳤고, 사색이 된 해주의 얼굴을 보자마자 남편은 곧장 일어나 방으로 들어갔다. 그리고 남편의 큰소리가 나기 시작했다.

“아버지! 해주 가운데 방에서 수유한다고 말씀드렸잖아요!”

“들어가시면 안 된다고 했잖아요!”

그런 아버님은 오히려 남편에게 소리쳤다.

“내가 내 손자 밥 먹는 것도 못 보냐?

남편은 아버님의 말씀을 듣고 분노를 참지 못했다.

“아버지 때문에 창피해서 진짜, 못 살겠어요!”

아버님은 다시 화를 내며 말씀하셨다.

“해주가 다 먹였다고 해서 들어간 거여!”

그러더니 아버님은 해주를 향해 소리쳤다.

“야! 야! 최해주!! 너 일로와 봐!”

“내가 너한테 젖 다 먹였냐고 물어봤지!

“네가 다 먹였다고 혔어, 안 혔어?”

아버지의 당당한 거짓말에 해주는 바보같이 눈물을 뚝뚝 흘리며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젖을 풍족하게 먹지 못한 아이도 울고, 이 모든게 당황스러운 해주도 울고, 조카들은 이미 술 취한 할아버지를 피해 끝방으로 들어가 있었다.

그런 해주를 보며 시누이가 해주를 데리고 아이들이 있는 방으로 데려다 준뒤, 남편과 아버님의 사이를 중재하러 나갔다.

최해주 에세이

그리곤 방 건너 시누이의 말이 들리기 시작했다.

“아빠, 에이.. 그건 아니죠..

“아까 해주 수유한다고 했잖아요.”

시누이는 아버님의 흥분을 가라앉히려고 아버님을 타이르듯이 말했다. 하지만, 아버님은 이미 흥분상태셨고, 그 누구의 말도 듣지 않은채 집에 가신다며 어머님께“ 짐싸!!”라며 소리치기 시작했다.

그러자 시누이가 다시 말하기 시작한다.

“아빠! 나도 나 수유할 때 우리 시아버님도 안 보셨어..”

그리고 나도 집에서는 문 닫고 수유했어.”

하지만 아버님은 막무가내였다. 남편은 바닥에 주저앉아 펑펑 울었고, 아버님은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며 문을 박차고 나가셨다. 그리곤 어머니는 우시며 결국 짐을 싸며 말했다.

“앞으로 너네 집 안 온다.

그 말과 함께 그날 밤, 아버님과 어머님은 진짜로 터미널로 가셨다. 집안은 말 그대로 초토화였다. 남편도 울고, 해주도 울고, 해주품에 있는 아기도 울고, 시누이는 그런 해주를 안아주며 말했다.

“울지 마, 해주야. 울면 머리 아파.

진짜 우리 아빠지만 못 말리겠다 .”

해주는 울면서 시누이에게 물었다.

“언니, 제가 잘못한 걸까요?”

“그냥 가만히 있었어야 했을까요?”

그냥 저 수유하는 거 아버님께 보여드리는 게 맞았을까요?

그러자 시누이는 단호히 말했다.

“그건 아니지.

어떻게 수유하는 걸 시아버지께 보여줘.”

나도 애들 수유할 땐 우리 아빠한테 안 보여줬어.”

“그러니깐 해주 잘못한 거 하나도 없어.”

시누이의 위로에 해주는 계속 눈물이 났고, 그런 시누이는 해주를 달래며 말했다.

“해주가 우니까 애기도 울잖아.

“애기 얼른 달래. 배고플 거야.”

그날 밤, 조카들이 시누이에게 물었다고 했다.

“할아버지가 왜 또 화내?”

“숙모는 왜 울어?” 시누이는 아이들의 눈높이에 맞게 말했다.

“숙모도 여자잖아.

“여자 몸은 누가 보면 부끄럽잖아, 그래서 그런 거야.”

가족들이 모인지 하루도 안된채 그렇게 엉망이 되어 버렸다. 남편은 해주의 얼굴조차 보지 못한 채 집안에 있는 술들을 모조리 마시며 펑펑 울었고, 그런 해주는 밤새 생각이 많았다. 그리곤 남편이 잘못한 건 아니지만, 미리 이런 사태를 걱정했던 해주였기에, 해주는 남편이 그 순간, 조금 신경 썼더라면 일이 이지경까지 되지 않았을 텐데 생각하며 그런 남편에게도 화가 났다.

며칠 동안 해주와 남편은 서로 말조차 하지 않았다. 그 후로 해주는 시댁에 가는 일이 너무 불편해졌다. 혹시 가게 되더라도, 그날 이후 아버님 얼굴을 어떻게 봐야 할지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해주는 남편에게 미묘한 서운함을 감출 수 없었다. 서로의 말다툼은 며칠동안 이어졌고 해주는 말했다.

“아버님 좀 그때 잘 감시해 주지 그랬어.”

해주에게 그 말이 나오는 순간, 남편의 얼굴은 굳기 시작했다. 그리고 남편은 그런 해주에게 감정이 폭발한듯 말했다.

“나도 그때 화냈잖아!”

“내가 아버지한테 그렇게까지 했는데,

“더 이상 어떻게 해야 했어?”

남편의 말을 들은 해주는 더 감정이 격해졌다.

해주는 남편이(미안해 내가 좀 더 신경 쓸걸 그랬어.) 이런 위로를 받길 원했지만, 남편은 마치 해주의 마음보다 그날 아버지에게 소리를 질러 울면서 내려가신 어머님.

그리고 다음날 급하게 간 누나와 매형.

남편은 그의 가족에게만 미안한 감정들가진듯이 말 하는것 같아 그런 남편의 행동에 더욱 서운하고 화가나 그 뒤로 입을 꾹 다물었다.

그렇게 우리 부부는 며칠 동안 서로 말도 하지 않고 집안엔 싸늘한 냉기만 흘렀다.

그 사이 점점 해주의 신체에 변화가 생기기 시작했다. 해주는 신기하게도 그동안 많았던 모유가 점점 말라가기 시작했다. 아이는 계속 젖을 빨면서도 모유가 나오지 않자 더욱 보챘고, 해주는 아이가 젖을 물어도 젖 도는 느낌이 들지 않자 젖을 손으로도 짜보고 유축기로도 짜 봤는데도 모유는 나오지 않았다. 그러자 결국 해주는 아이를 데리고 병원으로 향했다.

의사 선생님께서는 진찰 후 조용히 말했다.

“산모님, 스트레스 때문이에요.

요즘 스트레스받으신 거 있으세요?”

이건 약으로 치료할 수가 없어요.

“심신이 안정돼야만 젖이 다시 돌아올 거예요.”

너무 오래가면 젖이 마를 수도 있어서 하루빨리 마음의 안정을 찾고 최대한 수분섭취를 많이 하세요.

그 말을 듣는 순간, 해주의 가슴은 먹먹해졌다. 더군다나 약으로 치료도 못 하고 젖이 마를 수도 있다니. 그동안 얼마나 모유수유에 성공하기 위해 그렇게 노력을 하였는데, 그 순간 해주의 하늘은 무너지는것만 같았다. 더군다나 분유도 제대로 먹지 못하고 밤새 젖만 찾을 아이를 생각하니 더욱 가슴에서 밀려 들어오는 울화통과 분노를 참을 수 없을 정도로 화가났다. 해주는 이 사태를 어떻게 해야 할지 몰랐고, 흥분된 상태를 가라앉히고 남편에게 말했다.

“스트레스 때문에 젖이 안 나오는 거래”

“약 처방도 못 한데

“이대로라면 모유수유 중단할 수도 있데.

남편은 해주의 말에 미안했는지 그제야 해주에게 진심 어린 사과를 하기 시작했다.

“미안해. 내가 미안해.”

그냥 나도 그 상항들이 모두 너무 화가났어.”

남편은 자신이 나를 지켜주지 못했다는 사실을 뒤늦게 깨달은 듯했다.

“앞으로는 시댁에 가지도 말고,

자기도 당분간 전화도 하지 말고 전화와도 받지 마.”

“그리고 젖은 안 나오면 아기 분유로 먹이고,

너무 스트레스받지 말아..”

그날 이후 남편은 해주를 안심시키기 위해 바람을 쐬자며 밖으로 데리고 나갔고, 매일같이 모유가 잘 나오는 음식들을 만들어 주며 더 자주 웃고 아이도 많이 안아주고 해 주도 많이 토닥여줬다. 그의 그런 노력 끝에 며칠 후 정말 신기하게도 해주는 서서히 젖이 돌기 시작했고 젖이 돌면 아기에게 바로 먹였다.

모유는 전처럼 양은 풍족하지 못했지만, 아이에게 자주 물릴수록 모유량은 점차 늘기 시작했고, 드디어 해주의 모유도 정상적으로 돌아오기 시작한다. 지금 돌이켜 생각해도 참 신기한 일이다. 육아 공부를 하던 시절, “산모가 스트레스를 받으면 모유의 질도 나빠지고 양도 줄어든다”는 말을 들은 적이 있었는데, 그때의 해주가 딱 그랬던 것이다.

의학적으로 설명할 수 없을 만큼 놀라운 일이 아닐까. 몸이 회복된 것보다 더 큰 기적은 서로를 이해하려는 마음이 다시 흐르기 시작했다는 점이었다. 그날 이후, 해주는 다시 웃을 수 있었다. 그리고 마음 깊은 곳에서 알 수 있었다.


그렇게 첫아이의 모유수유를 하며 나는 정말 많은 걸 배웠다. 나의 모유수유의 길은 험난하고도 험난했다. 하지만 그 과정을 지나며 둘째, 셋째, 넷째 아이까지 모유수유의 달인이 되어 있었다. 그리고 지금, 태어날 다섯째 아이에게도 내 모유를 줄 것이다. 아이를 품고, 그 따뜻한 눈동자를 바라보며 작은 입술이 내 생명수를 머금던 그 순간은 아직도 생생하게 기억난다. 그래서 요즘 나는 다시 그날들을 떠올리며 설렌다. 다시 한번 내 몸으로 아이를 키울 수 있다는 생각에 감사하고 행복하다.

그렇다면 아버님과의 나의 관계는 어떻게 되었을까?사람은 결국 마음먹기 나름이다. 행복도, 불행도. 그 선택은 본인의 몫이라는 걸.

그 이야기는 다음 편에서 이어가 보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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