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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록 자연분만에 실패했지만,

제11부: 나는 강한 엄마로 다시 태어났다.

by 최해주

드디어 출산일이 다가왔다.

병원에서 해주의 골반과 자궁 상태를 보더니, 의사선생님께서 말씀하셨다.

“엄마 신체구조상 자연분만은 어려워요.”

“바로 제왕절개를 해야 할 것 같아요.”

하지만 해주는 이 아이를 꼭 자연분만으로 낳고 싶었다. 원장님이 그런 해주를 설득했지만, 해주는 운동도 열심히 하고 “정말 해볼 수 있는 데까지 해보다가 안 되면 제왕절개를 하겠다”라고 사정하듯 말했다.

해주의 소식을 들은 가족들은 말했다.

“아니, 어차피 자연분만을 할 수 없는 몸인데 왜 사서 고생을 해?”

“자연분만하다 아이도, 너도 위험할 수 있어!”

모두가 걱정하며 혀를 내둘렀지만, 해주의 생각은 달랐다. 첫 출산이었지만 출산 공부를 나름 많이 했던 해주는 자연분만을 하면 아이가 제일 건강하다고 믿었고 운동도 열심히 하면 어쩌면 가능하지 않을까? 생각했다. 무엇보다, 여자로서 이 출산의 고통을 한 번쯤 꼭 겪어보고 싶었다. 해주는 그렇게 주위의 걱정에도 불구하고 버텼다.

그러자 의사 선생님께서 말했다.

“엄마가 이렇게 의지가 강한데,

엄마의 순산을 위해 최선을 다해 볼게요”

“하지만 정 안 되면 바로 수술해야 하니,

그건 꼭 염두에 두세요.”

그렇게 해주는 하루 반나절을 거쳐 진통을 하게 되었다. 무통주사도 아이에게 좋지 않다는 말을 듣고 끝까지 거부했다. 하지만 마지막 진통, 정말 참을 수 없는 고통이 밀려오자 간호사에게 말했다.

“무통, 주세요. 이젠 정말 못 참겠어요.”

진통도 쌩으로 겪을 대로 다 겪고, 양수가 터지고, 무통도 맞고, 힘을 주었는데도 150cm의 작은 몸, 52kg의 만삭 몸무게, 그리고 좁은 골반 탓에 아이는 머리만 살짝 보였다가 다시 들어갔다를 반복했다.

해주는 아무리 힘을 줘도 골반이 열리지 않았다. 아이는 눈썹조차 보이지 않은 채, 머리 윗부분만 왔다 갔다 했다. 시간이 너무 지나, 아이는 태변을 너무 많이 삼켰고 상황은 위험해졌다.

하루 반나절 동안 힘을 너무 쏟은 해주는 기진맥진한 상태로 위급 상황에 처했다. 결국 응급으로 수술실에 들어갔다. 그리고 작은 혜주의 몸에서 3.8kg의 우량아가 제왕절개로 태어났다.

힘을 줬다 뺐다 했던 탓에 아이의 머리는 꼴뚜기처럼 고깔모자를 쓴 듯 뾰족하게 나왔다.

의사 선생님께서 하루 이틀 지나면 붓기도 가라앉으니 걱정 말라하셨다.

출산 후, 마취가 덜 깬 해주는 흐릿한 눈으로 남편에게 말했다.

“오빠.. 밥 먹었어?”

남편은 그 말을 듣고 뒤 돌아 펑펑 울었다고 한다. 마취도 덜 깬 상태에서, 눈에 흰자가 보일 만큼 힘든 얼굴로 “오빠 밥 먹었어?”라고 묻는 해주를 보며 그냥 눈물이 났다고 했다. 그리고 남편은 해주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말했다.

“걱정 마 나는 먹었어.

“밥 한 끼 안 먹는다고 안 죽어.”라고 말했다.

이 이야기는 해주에게만 있었던 일이 아니었다. 남편은 특전사 시절 훈련을 받다 다쳤었는데, 그만 그 후유증으로 허리디스크가 생겨 군 병원에서 재수술을 받게 된다. 그때 당시 해주와 남편은 군인관사로 옮긴 지 얼마 안 되어 달달한 신혼생활을 보냈을 때였다.

남편은 그렇게 군 병원에 입원을 하게 된다. 해주는 군 병원에 있는 숙소를 신청해 숙소에서 잠을 청하며 아침이 되면 남편 간호를 하러 갔다. 수술날이 돼서 남편은 8시간에 달하는 대수술을 받았는데, 그 당시 보호자는 한 명밖에 들어갈 수 없어서 해주는 혼자 수술실 앞을 지켰다. 수술에 들어가기 전 의사 선생님께서는 분명 3시간이면 수술이 끝난다고 하셨는데, 남편 수술은 8시간이 지나도 끝나지 않았다. 남편보다 늦게 들어간 환자들은 저마다 하나둘 나오기 시작했지만 아침 일찍 들어간 해주의 남편 소식은 감각무소식이었다.

시간이 지날수록 초조해진 해주는 하나둘 간호사를 붙잡고 물어봐도 기다리라는 답변만 듣고 다른 환자들로 인해 바삐 뛰어다디는 의료진 속에서 숨죽여 다려야만 했다. 그렇게 저녁이 다 되어도 남편의 소식이 없자, 그때서 해주는 남편이 잘못된 줄 알고 군 병원 옥상에 올라가 목숨을 끊으려 했다. 그렇게 아침에 들어갔던 남편은 저녁이 다 되어서 나왔고, 하루 온종일 맞은 수액으로 퉁퉁 부은 채 나왔다. 남편의 얼굴을 보며 하염없이 눈물만 흐르는 해주는 환자 이송용 침대에 굴러가는 남편의 손을 꼭 붙 잡는다. 그러자 남편은 눈을 떠서 비몽사몽 해주를 바라본다.

마취에서 덜 깬 남편은 해주를 보며 처음으로 말했다.

“여보.. 밥 먹었어..”

그 말을 듣고 해주는 오열 했다. 그리고 몇 년 뒤, 해주는 출산 후 남편에게 똑같이 말했던 것이다.

다시 본론으로 돌아가자.

의사선생은 해주에게 말했다.

“아이는 이제 회복 중이에요. 엄마만 잘 회복하면 돼요.”

“밥 잘 먹고, 내일부터는 조금씩 운동도 하세요.”

그리고 덧붙였다.

“원래의 절개보다 아이를 꺼내다 절개부위가 더 찢어졌어요.”

“엄마 몸에 비해서 아기가 많이 컸어요.”

“회복이 조금 느릴 수도 있지만, 시간이 지나면 다 아물 거예요.”

그 말을 들은 해주는 수술한 지 하루만에 이를 악물고, 서서히 몸을 움직이기 시작했다.

자연분만은 회복이 빠르지만, 제왕절개는 회복이 느리다 했다. 자연분만한 엄마들은 하루 만에 신생아실로 아이를 보러 가지만, 제왕절개 산모들은 산모 컨디션에 따라 며칠이 지나야 만 아기를 볼 수 있다. 모든 엄마가 그렇듯, 해주 또한 자신의 아이를 빨리 보고 싶었다. 그날저녁 해주는 침대 안에서 몸을 비틀며 조금씩 운동을 했다. 드디어 아침이 밝았다. 의사 선생님께서는 몸이 힘들면 운동을 더 하고 다음날 아이를 보라고 하셨다. 하지만 밤새 운동을 열심히 했던 해주는 그날 아침 바로 남편의 부축을 받아 신생아실로 향했다.

유리창 너머로 손주를 보러 온 가족들이 가득했다.

“내가 할아버지야!”

“우리 아가, 눈 떴네!”

“우리 아기가 코도 제일 오뚝하고 예쁘네”

아기의 눈 하나 깜빡임에도 탄성이 터져 나왔다. 북적거리는 신생아실 앞을 보고, 해주는 남편과 엄마에게 말했다.

“사람들 좀 빠지면 나중에 볼게.”

그렇게 벽에 기대 서 있던 해주는 링거대를 앞쪽으로 살짝 당겼다. 그때였다. 긴 링거줄에 어린아이가 발을 걸었다. 그 사실을 모른 채 아이는 앞으로 가기 시작했다. 링거줄이 끌려가기 시작하자 해주는 깜짝 놀라 배를 붙잡았다.

“안돼.. 애기야 가지 마..”

“오빠...”

“엄마....”

소리치려 했지만, 배에 힘을 줄 수 없어 소리가 잘 나오지 않았다. 해주의 작은 외침은 신생아실의 웃음소리와 대화에 묻혀 아무도 듣지 못했다. 해주는 한 손으로 링거대를 붙잡고, 다른 한 손으로 배를 감싸며 그대로 복도 중간까지 끌려갔다. 탄력을 받은 듯 아이는 결국 질주하기 시작했고, 해주는 아이를 쫓아가다 링거대와 함께 넘어졌다.

쾅!!!!

최해주 작

순간, 모두의 시선이 해주에게 쏠렸다. 남편과 해주의 엄마는 비명을 지르며 달려왔다. 아이의 가족으로 보이는 사람들은 어른이 일곱, 여덟은 되어 보였다. 모두 신생아에게 정신이 팔려, 자신의 아이가 어디로 가는지도 몰랐다. 남편은 넘어진 해주를 보자 얼굴이 분노로 물들었다.

“아!!! 지금 뭐 하는 거예요!”

엄마는 해주를 걱정하며 안절부절못했다. 간호사들이 달려와 해주를 부축하고 침대로 옮기려 했다.

남편은 그의 가족들과 사람들에 둘러싸인 채 고함을 지르고 있었다.

그런 해주는 무슨 사단이라도 날까 봐 방에 들어가지 못하고 안절부절못한다.

“엄마, 빨리 가봐.. 저러다 뭔 일 나겠어..”

엄마는 해주를 걱정하느라 정신이 없었다. 그리고 남편과 그 가족들의 언쟁이 이어졌다.

“어른이 이렇게 많은데, 애 하나를 못 보면 어떡합니까?”

“우리 와이프 어제 수술했어요!”

“잘못돼서 다시 수술 들어가면 어쩔 거예요?”

그러자 아이의 엄마로 보이는 여자가 소리쳤다.

“못 봤어요! 손잡고 있었는데 저도 몰랐어요!”

“애가 일부러 밀은 것도 아닌데 진짜 너무 하시네!”

어른들의 큰소리에 남자아이는 울음을 터뜨렸고 아들의 아빠로 보이는 남자가 화를 내기 시작했다.

“아니! 애 놀라게 지금 뭐 하는 거예요??”

그 말을 들은 남편은 정말 성난 황소로 변했다

“뭐? 지금 뭐라고 했어?”

“당신 와이프여도 지금 이딴 소리 지껄일 거야?”


그러자 해주 엄마가 달려와서 말했다.

“뭐요? 애가 놀래요? 쟤! 내 딸이에요!!”

“진짜 해도 해도 너무하시네. 산모가 다쳤어요!”

“죄송하단 말부터 해야지, 지금 잘했다고 하는 겁니까?”

“아기 보고 싶은 거 이해는 한다만, 이건 경우가 아니죠?”

그제야 몇몇 어른이 고개를 숙였다.

“정말 죄송합니다. 저희가 죄송해요.”

그러자 그 아이의 부모는 더 소리쳤다.

“뭐가 죄송해! 애가 일부러 그런 것도 아닌데! 애가 뛸 수도 있지!”

그렇게 신생아실은 아수라장이 되었고, 간호사들은 나와서 말리기 시작했다. 그리고 주위에 있는 사람들이 수군거리기 시작했다.

그제야 몇몇 어른이 고개를 숙였다.

“아니 죄송하다고 해야지...”

“애를 잘 봐야지...”

“저 산모 어떡해.. 괜찮은가?.”

너도나도 사람들이 수군거리며 그 가족들에게 질타가 쏟아지자 그제야 하나둘 사과를 하기 시작했다. 해주 남편은 겉모습만 딱 봐도 정말 험악하게 생겼다. 키는 크지 않지만 등치 좋은 정말 딱 마동석 같은 몸매와 그와 비슷한 인상을 가지고 있다. 뭐 처음 본 사람들은 말을 잘 걸지도 않지만, 성격은 그냥 해주와 해주엄마에게만 상냥하고 친절하다. 그런 황소같은 남편이 그들의 말을 듣자 정말 성난 황소같이 들이 받을것만 같았다. 해주는 남편의 성격을 알기에 무슨 사단이라도 날까 봐 겁이 났다. 남편은 그들을 신고하겠다고 했고, 그 아이의 부모는 “신고해요, 벌금 내면 되지!”라며 비아냥댔다. 그날은 세상 좋은 날이었는데, 순식간에 아수라장이 되었다. 엄마가 겨우 남편을 안으로 끌어들였다.

해주는 남편에게 말했다.

“제발 그러지 마. 애가 일부러 그런 것도 아닌데..”

“애기가 겁 먹어서 울잖아, 소리를 질러도 애가 없는데서 해야지..”

“오늘 좋은날이니깐 제발 좀 참고 좋은게 좋은거잖아..”

하지만 남편은 울분에 차 있었고 혼자 씩씩거리며 문을 박차고 나갔다. 잠시 후, 아이의 할머니와 할아버지가 찾아와 고개를 숙이며 사과했다. 그렇게 사건은 마무리되었다. 복도는 다시 조용해졌지만, 해주의 가슴은 한동안 진정되지 않았다. 그리고 혼자 생각에 빠진다.

(아이가 크면, 진짜 한눈팔면 안 되는구나.)

남편에게 좋은 게 좋은 거라고 말했지만, 그날 밤 해주는 오래도록 잠들지 못했다. 눈앞에서 달리던 아이의 발과, 자신을 끌던 링거줄의 차가운 감촉이 계속 떠올랐다. 그렇게 소란스러웠던 그날이 지나고, 해주는 마침내 산후조리원으로 옮겼다. 첫 아이와 반가움과 설레움도 잠시 첫 아이의 엄마가 된 해주에겐 본격적인 전쟁이 시작되는데..

그건 바로, 모유수유와의 전쟁.


돌이켜보면 임신을 하는 과정부터 출산하기까지 정말 어느 하나 에피소드 아닌 게 하나 없었다.

나의 아이 갖기 프로젝트부터, 극구 자연분만으로 사서고생까지. 남편은 그런 나를 보며 늘 말했다.

“죽어서 일 못 한 귀신 붙었어?”

“왜 이렇게 사람이 사서 고생을 해?”

나는 아직도 생각한다. 물론 자연분만에는 성공하지 못했지만, 결국 네 아이를 모두 제왕절개로 낳았다. 첫 아이 때처럼 자연분만 중 응급으로 수술에 들어갔던 탓에, 그 후로는 자연분만을 할 수 없게 되었다. 그래서 그다음 아이들도 모두 제왕절개였고, 이번 다섯째 역시 그렇게 태어나게 될 것이다. 그런데 나는, 지금도 이렇게 생각한다.

(여자로 살아가며, 이 위대한 고통을 내가 언제 또 느껴 볼 수 있을까?)

그 고통, 누군가는 느껴보고 싶어도 평생 느끼지 못한 채 살 수도 있는 거 아닌가? 물론 고통을 즐긴다 해서 내가 변태 성향이 있는 건 아니다.

이 또한, 내가 엄마가 되는 과정이라면 그 산통 나도 꼭 겪어 보고 싶었다. 그리고 산후조리원에 가서 나는 모유수유와의 전쟁을 치르게 된다. 산후조리원은 ‘산후를 조리하는 곳’이 아니라, 엄마와 아기가 집에 가기 전, 예행연습을 하는 곳이라는 걸 그때 뼈저리게 느꼈다. 병원에 입원했을 때보다 잠을 더 못 잤고, 밤마다 차오르는 젖 통증에 눈물을 흘리며 매일같이 아이와 함께 ‘집에 가기 전 연습’을 하고 있었다. 그렇게 나의 첫 모유수유는 시작되었고 나의 육아전쟁도 집에 가면서부터 본격적으로 돌입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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