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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랑이 시아버지를 사랑하게 된 며느리

제16화: 두려움이 사랑이 되기까지

by 최해주

그래, 이번 편은 좀 미담을 써 볼까 한다. 그래서 그 일이 있고 나서 해주는 어떻게 지내냐고? 정말 평범하게 아이들과 하루하루를 지내고 있다. 해주에겐 어느덧 셋째 아들도 태어난다. 글쎄, 이 셋째 아들은 소름 돋게도 시아버님을 꼭 닮았다. 주위에서 시아버님의 얼굴을 아는 분들은 해주의 아들을 보고 하나같이 시아버님을 닮았다고 너무 신기하다고 한다. 옛말에 정말 그런 말이 있지 않은가? 해주는 실제로 아버님을 죽도록 미워한 적은 없지만 마음 한편으론 아버님을 미워했었다. 옛말에 누군가를 미워하며 아이가 태어나면 그 아이가 꼭 그 미워했던 사람을 닮아 태어난다고 하지 않은가? 정말 미신처럼 그런 것일까? 해주는 셋째 아이를 수유할 때마다 아기를 안고 수유를 한다는 느낌이 아니라, 수유할 때도 아이 얼굴을 바라보면 굉장히 기분이 묘했다. 심지어 자신이 느끼는 감정을 남편과 가장 친한 친구에게도 말을 하곤 했었다.

“아.. 진짜 내 새끼인데.. 수유하는데 너무 불편해..”

“아니, 아버님을 안고 수유하는 느낌이야.”

“어떻게 닮아도 이리 똑 닮을 수 있지?”

“분명 작은 아기인데 아기가 귀엽지가 않아..”

“뭐랄까, 되게 작은 늙은 아기라고 해야 하나?”

그렇다. 아이는 커 갈수록 아버님과 똑같아졌고, 아이가 세 살이 되던 해 시댁 벽에 걸려 있는 어머님과 어린 남편이 유치원 때 찍은 사진을 발견한다. 평상시에는 그 사진을 보고 그냥 지나쳤지만, 어느 날 그 사진을 본 순간, 해주는 소름이 끼치기 시작했다. 어머님이 안고 있던 그 작은 유치원생 남자아이는 지금의 남편인데, 글쎄, 해주의 셋째 아들과 얼굴이 똑같은 게 아닌가. 심지어 셋째 아들을 안고 그 사진을 봤는데, 셋째 아들이 말했다.

“엄마, 이거 나야. 이거 나지?”

어눌한 말투로 사진 속에 있는 남편을 보고 아이가 자기라고 말한다. 이리 봐도 저리 봐도 얼굴형부터 웃는 표정까지, 심지어 얼굴색 톤까지 어느 하나 다른 게 없었다. 평상시는 몰랐지만, 그렇다. 남편은 아버님을 쏙 빼닮았다. 지금은 살이 많이 쪄서 얼굴형도 바뀌고 체형도 변해, 어릴 적 사진을 보면 남편이라고 믿지 않을 만큼 정말 아버님과 똑같이 생겼던 것이다. 그래서 그런지 아버님도 남편과 어머님께 “셋째가 우리 시댁 핏줄을 가장 많이 닮은 것 같다.”라고 말씀하셨다고 한다.

어찌 됐든 세월은 그렇게 흘러 해주는 아버님과도 어머님과도 무탈히 잘 지냈다. 해주의 성격은 원래 붙임성이 많기도 하고 애교도 많다. 어릴 적 할머니와 함께 자랐기 때문에 어른들을 유독 잘 따르고 좋아한다. 아버님과 그동안 트러블이 있었어도 시간이 지나면서 조금씩 아물어져 갔고, 남편으로 인해 흩어졌던 재들도 치유가 되었다기보단 아이를 낳고 육아를 함께 하다 보니 그렇게 흘러 지나간 것 같다. 남편은 원래 해주에게 잘하기도 했지만 아이들에게 정말 잘한다. 물론 한 번씩 아이들을 훈육할 때 자신의 감정을 주체 못 하고 혼내기도 하지만, 사람이 어찌 완벽할 수는 없지 않은가. 해주 역시 화가 나면 아이들을 아주 엄하게 혼내곤 한다. 그렇게 해주는 전처럼 아버님과 어머님과 잘 지내고 있다. 하지만 군산에 갈 때는 마음 한켠에 항상 긴장을 하곤 한다. 그래도 막상 시댁에 도착하면 세상 밝은 듯 어머님과 아버님께 인사하고, 아버님의 더러워진 발도 서슴없이 주무르곤 한다.

이빨 빠진 호랑이 시아버지를 사랑하게 되다.

물론 한결같은 해주의 마음을 알아서일까. 무뚝뚝했던 아버님은 해주에게 표현은 안 하지만 조용히 챙기곤 한다. 아버님은 젊을 적 레미콘 일을 하셨는데, 큰 사고로 인해 다리를 절기 시작했다. 그 일 이후 장시간 운전도 할 수 없었고, 쉬시면서 마음의 병도 오고, 당뇨·고혈압 등 각종 질병을 앓으며 살아오셨다. 그래서 자연스레 집안의 가장은 어머님이 맡게 되었고, 아버님은 그 후로 집에서 소일거리를 하며 지내고 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 시골 마을에는 돌아가며 ‘지킴이’를 하는 일이 있는데 그건 매해 한 번씩 마을 사람들이 당번을 맡아 시골을 순찰하는 것이다. 그렇게 하면 소소하게 용돈을 벌 수 있었고, 아버님도 매해 자신의 차례가 돌아오면 일을 나가셨다.

브런치작가 최해주

그럴 때마다 해주는 아버님께 전화를 걸었다.

“아버님, 오늘도 일 나가시죠?”

“오늘 밖에 날씨 진짜 춥대요!”

“옷 따뜻하게 입고 가세요.”

그 몇 마디만 해도 아버님은 평소보다 목소리가 한결 밝으셨고, 해주가 느끼기에도 아버님 어깨가 으쓱해 보였다. 그리고 해주는 애교스럽게 덧붙이곤 했다.

“아버님, 돈 많이 벌면 저 맛난 거 사주세요.”

그러면 아버님은 장난스럽게 대답하셨다.

“네가 먹고 싶은 건 네 신랑한테 사주라 혀라!”

그리고 그렇게 시간이 지나면 아버님은 꼭 해주에게 20만 원이든 30만 원이든, 많게는 100만 원까지 보내주시곤 했다. 해주의 생일을 단 한 번도 지나친 적이 없었고, 생일날이 되면 어머님 10만 원, 아버님 10만 원씩 각자 따로 모으셔서 아주버님이나 시누이를 통해 돈을 붙여주곤 했다. 해주는 시골에서 변변한 돈벌이가 없는 그 시댁어르신들의 돈이 얼마나 귀한지 알기에 항상 뜻깊게 생각하며 감사한 마음을 가지고 있었다.

아버님의 쌈짓돈

한 번씩 아버님이 마을 지킴이를 할 때면 통도 크게 해주에게 50만 원, 100만 원씩을 보내주시기도 했다. 해주는 그 돈을 받지 않으려 했지만 계속 거부하는 것도 도리가 아닌 것 같아 정말 감사한 마음으로 받았다. 아버님이 한 번씩 100만 원을 주셨을 땐 해주에게 “옷도 사 입고, 맛있는 것도 사 먹어라.” 하시며 붙여준 돈이었다. 하지만 해주는 단 한 번도 그 돈을 그렇게 쓴 적이 없었다. 철없는 남편은 그때마다 “그걸로 카드값 내자.”라고 했지만, 해주는 아버님이 힘들고 귀하게 벌어서 주신 그 돈을 무의미하게 쓰고 싶지 않았다. 한 번은 아버님이 주신 100만 원으로 안방에 벽걸이 에어컨을 달았다. 거실엔 스탠드형만 있었는데, 방에는 에어컨이 없었다. 부족한 돈을 조금 보태 안방에 벽걸이형을 설치했다. 그 덕에 둘째, 셋째가 태어났을 때 더운 여름을 시원하게 보내며 아이들과 쾌적하게 수유할 수 있었다.

그리고 아이들에게 말했다.

“이거 할아버지가 사주신 거야.”

“할아버지가 우리 시원하게 보내시라고 사주셨어.”

“정말 좋지? 우리 할아버지한테 전화하자.”

“예쁘게 사진도 찍어서 보내드리자.”

아이들과 사진을 찍어 어머님과 아버님께 보내드리고, 영상통화로 에어컨 자랑을 하며 말했다.

“아버님 덕분에 올여름 정말 시원하게 보냈어요.”

그러자 아버님은 말했다.

“내가 너 쓰라고 준 거지, 누가 그런 거 사래?”

“맛난 거 사 먹으라 혔지!”

호통치는 말투였지만, 영상 속 아버님의 얼굴엔 미소가 번져 있었다. 그리고 2025년, 아버님은 또다시 마을 지킴이 일을 시작하셨다. 그때 해주는 다섯째를 임신 중이었다. 병원에 다녀올 때마다 어머님, 아버님께 안부 전화를 드렸다.

“아버님, 병원 갔는데 아기 건강하대요.”

“너무 걱정하지 마세요.”

“어머니, 오늘 버스 잘못 타서 또 택시 탔어요.”

“밖에서 혼자 맛있는 백반도 사 먹었어요.”

누가 시키지 않아도 해주는 병원에 다녀올 때마다 꼭 상황을 말씀드렸다. 그러던 어느 날, 군산에서 아이 성별을 말씀드리던 날 기분이 좋으셨던 아버님이 말씀하셨다.

“기분이다! 해주, 내가 100만 원 준다!”

“집에 갈 때 계좌번호 적어놓고 가라!”

그때 옆에 있던 아주버님과 남편이 말했다.

“줄 거면 지금 주세요!

또 나한테 은행 가서 붙이라고 하려고 그러죠?”

아버님이 웃으며 말씀하셨다.

“아녀! 걱정들 말어, 인자 나도 돈 붙일 줄 안다!”

“해주는 갈 때 아빠 카톡으로 은행하고 계좌번호 적어놓고 가라!”

그렇게 우리는 집에 올라왔다.

남편이 물었다.

“아빠가 돈 붙였어? 그걸로 카드값 내면 되겠다.”

해주는 말했다.

“아버님이 주실지 안 주실지 모르는데 무슨 소리야.”

“그리고 주셔도 나 쓰라고 주신 건데 무슨 카드값이야 또!”

“아버님이 주시면 나는 그거 카드값으로 절대 안 낼 거야.”

“표시 나게 뭘 샀으면 샀지,

절대 카드값으로 안 낼 거니깐 그런 줄 알어!”

며칠 후, 정말로 아버님은 해주에게 100만 원을 보내셨고, 해주는 그 돈을 감사히 받았다. 그리곤 행복한 고민에 빠졌다.

(어떻게 하면 이 돈을 의미 있게 쓸까.)

(아버님이 힘들게 벌어 주신 귀한 돈인데.)

그렇게 며칠을 고민하고 맨 처음 아이들과 함께 탈 전기자전거를 살까 했지만, 그 마저도 아이가 태어나면 얼마 못 탈것 같아 다시 고민에 빠지기 시작한다. 그리고 마침 집에 가장 필요하고 가족모두가 사용할 수 있는 물건을 드디어 찾게된다.

아버님을 오랫동안 기억하고 싶었다.
최해주 작가

해주네 집은 혼수로 들여온 소파와 침대, 가구들을 이미 버린 지 오래였다. 아이들이 많아지며 망가지기도 했고, 배변 연습을 하던 시절엔 너나 할 것 없이 소파와 침대 위에 실수를 해 더 이상 쓸 수 없었다. 그 결과, 해주네 집은 그야말로 ‘아이 키우기 좋은 구조’만 남았다. 소파 없이 몇 년을 살았다. 아이들이 어릴 땐 몰랐지만, 출산과 수유 때마다 소파의 필요성을 절감했다. 당근마켓에서 1인용 소파를 사서 쓰다 버리길 반복했다. 이제 네 아이도 어느 정도 커서 바닥에만 앉거나 불편한 식탁 의자엔 잘 앉지 않았다. 남편 역시 편히 쉴 곳이 없어 매번 바닥에 눕거나 구부정하게 앉아 있었다. 그래서 해주는 생각 했다."가족 모두 사용할 수 있는 소파를 사자!" 며칠 동안 해주는 100만 원 안에서 살 수 있는 소파들을 찾아봤다.

그렇게 매일을 검색한 끝에 40% 세일 중인 가죽 느낌의 레저 소파를 발견했다. 배송비까지 합쳐 67만 원에 4인용 소파를 구매하고, 올겨울 따뜻하게 보낼 카펫 두 개도 세일 상품으로 샀다. 그리고 남은 20만 원으로 둘째 아들의 학원비를 한 달치 냈다. 그렇게 100만 원을 알뜰히 쓴 해주는 너무 뿌듯했다.

소파가 도착하자 아이들에게 말했다.

“할아버지가 우리 소파 없다고 사주셨어.”

“너무 좋지? 여기서 책도 읽고 편히 쉬자.”

아이들은 신나서 너도나도 외쳤다.

“예!! 우리 집에도 드디어 소파가 생겼다!!”

“할아버지 최고!! 우리 집도 이제 부자다!!”

정말 아이들의 순수한 말에 해주도 흐뭇해졌다.

예쁘게 사진을 찍어 어머님과 아버님께 보내드리고 영상통화를 걸었다.

“아버님, 이거 전에 주신 돈으로 소파 산 거예요.”

“너무 예쁘죠? 애들도 오빠도 너무 좋아해요.”

“애들이 다 여기서 자겠다고 난리예요.”

아버님은 영상 속에서 말씀하셨다.

“야! 내가 너 쓰라고 줬지! 쓸데없이 그걸 샀냐?”

“내가 너 버스타지 말라고 준 거지!”

“맛난 거 사 먹으라 혔지, 무슨 또 소파를 사!”

호통치듯 말했지만,

그 입가엔 미소가 또 한 번 번져 있었다.

해주는 대답 했다.

“아버님, 저 이거 꼭 필요해요.”

“다섯째 태어나면 수유해야 돼서 소파 꼭 있어야 돼요.”

“오빠도 허리 아프니까 편히 쉴 수 있고,

아이들도 너무 좋아해요.”

그러자 아버님은 무릎을 탁 치며 말했다.

“그려? 그럼 잘혔다!!”

해주는 신이 나서 덧 붙였다.

“아버님, 이뿐만 아니에요.”

남은 돈으로 카펫도 두 개나 샀고,

“둘째 학원비도 냈어요.”

정말 알뜰하게 잘 썼어요. 너무 감사해요.”

옆에서 어머님이 말씀하셨다.

“너는 재주도 좋다. 100만 원을 어떻게 그렇게 썼냐?”

그러고는 아버님과 함께 호탕하게 웃으셨다.


이거다.

이거였다.

해주가 바라던 이상적인 생활이.


남들은 그런다. “해주 보고 착한 며느리인 척 좀 그만하라고.” 하지만 해주는 생각 한다. 아니, 자신 있게 말한다. “착한 척 며느리 코스프레가 아니라, 나는 원래 심성이 착한 거야.” 사실 그건 허세가 아니다. 행복도 불행도 찾는 건 각자의 몫이니까.


세상살이란 늘 뜻대로 되지 않는다. 힘든 일도 있고, 고통스러운 일도 있고, 기쁜 일도 함께 있다. 나는 지금의 생활이 좋다. 예전엔 누군가를 미워하기도 하고, 원망하기도 했고, 감정 없이도 살아봤지만 결국 그건 나만 고통스럽다는 걸 알았다.

그렇다고 해서 모든 사람이 나처럼 살길 바라는 건 아니다. 다만 나는 그렇게 느낀다. 시간이 지나면 감정도 무뎌지는 법이다. 그 힘든 시간을 어떻게 견디고 버티라는 게 아니라, 힘들면 조금 쉬고, 잠시 자신이 회복될 때까지 멀어져도 된다. 이 말을 하고 싶었다. 나는 뭐 나이를 많이 먹은 것도 아니고, 심리를 전공한 사람도 아니고 아무것도 아니지만은 그냥 내가 겪어온 날들을 되돌아보니, 그런 생각이 들었다. 그냥 힘든 순간에 모든 걸 손에서 놓지 말라는 게 아니라, 잠시 쉬며 회복하는 기간을 찾으라는 거다. 선택은 물론 자신의 몫이겠지만.

그 무섭던 호랑이 시아버지도 이제는 이빨 빠진 호랑이가 되었다. 매일같이 티격태격하던 며느리인 나는 그분이 이젠 가장 안쓰럽다. 예전에는 같은 여자로서 어머니가 안쓰러웠지만, 지금은 이빨도 다 빠져 죽만 드시는 아버님이 더 가엾다. 이건 내 착각일지도 모르지만, 난 아버님을 이제 진심으로 사랑하는 거 같다. 아버님이 내게 용돈을 줘서가 아니라, 자신의 가장 귀한 것을 내게 내주셨을 때 나는 아버님의 그 마음을 알아본 것이다. 분명 아버님도 나를 특별하게 생각해 주시고 많이 사랑하시는 것 같다. 내 생각이 맞을지 아닐지 모르겠지만은. 그래서 아버님이 오래오래 건강히 사셨으면 좋겠다. 아버님께 단 바람이 있다면. 남은 여생 어머님을 조금만 더 아껴주고 사랑해 주셨으면 좋겠다. 내가 내 남편한테 사랑받았던 것처럼 어머님도 아버님께 그런 사랑을 받으시면서 함께 따뜻한 여생을 보내셨으면 좋겠다.


어떻한가? 내 얘기가.

어쩌면 답답하기도 하고 어찌 보면 착한 것 같기도 하고, 이 작가가 우리를 착한 코스프레로 지금 살라며 세뇌시키고 있는 게 아닌가?라고 생각이 들 수도 있지만, 다 틀렸다. 나는 요즘 글을 쓰며 참 많은 걸 느낀다. 글을 쓸 때엔 그때의 내가 다시 감정이 이입이 되어 너무 힘들고 고통스럽다. 하지만 왜 글을 쓰냐고? 세상에 사연 없는 사람이 어디 있겠는가? 내 사연이 난 특별하다 생각하지도 않고, 그렇다 해서 전문적으로 내용을 쓸 만큼 글이 유창하지도 못한다. 하지만 내가 독자들에게 전하고 싶었던 내 마음은 지금 당장 힘든 일을 겪고 있다면, 그건 본인만 절대 힘든 길을 걷도 있다는 게 아니란 걸 말해주고 싶었다. 너도나도 다 웃고 모두가 평범하게 행복하게 사는 것처럼 보이지만 세상 사는 거 별거 없다. 사람 사는 거 다 똑같다.

똑같이 밥 먹고, 싸고, 자고.

하루를 보내는 건 다 똑같다 이 말을 전하고 싶었다.

그럼 내 글을 또 읽을 준비가 되었는가?

어찌 기다려지기도 하는가?

단 한 사람이라도 내 글을 기다리는 사람이 있다면, 난 그 사람을 위해 글을 쓰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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