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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임을 왜 안 했냐고 물으신다면

제19화: 제가 사실 또 기도했어요. 아이 달라고.

by 최해주

사람들은 그런다. 이 많은 아이들을 키우는데 힘들지도 않냐고, 그리고 이 작은 몸으로 어찌 애를 그렇게 많이 낳았냐고 묻는다. 그리곤 해주에게 진짜로 묻기도 한다.

“아니, 또 임신하셨어요?”

“안 힘드세요?”

“아이를 진짜 좋아하시나 봐요?”

“이번엔 성별이 뭐예요?”

“막내는 꼭 딸이었으면 좋겠다.”

해주는 이제 그런 궁금증 많은 사람들에게 일일이 상세하게 대답하지 않는다. 그냥 웃기만 한다. 해주는 다섯째를 가진 지금, 노산이다. 그리고 고위험군에 속한다. 해주는 네 아이를 제왕절개로 낳았다. 전에 말했다시피, 첫아이는 자연분만을 시도하다가 진행 중 장애로 응급수술에 들어갔고, 그 이후로 네 아이 모두 제왕절개로 출산했다. 그리고 다섯째 역시 제왕절개다. 사람들은 너도나도 말한다.

“다섯째는 꼭 딸이었으면 좋겠다.”

하지만 해주의 생각은 달랐다. 해주는 정말, 딸이든 아들이든 상관없었다. 이미 딸도 있고 아들도 있으니까. 해주의 단 하나의 바람이 있다면, 무사히 아이를 출산하는 것뿐이었다. 해주는 둘째, 셋째를 낳을 때도 전신마취를 했다. 수술 후 깨어나지 못할까 봐 하반신마취만 하길 원했지만, 겁이 많던 해주는 마취주사를 놓을 때마다 간호사 세 명이 해주의 몸을 잡아야만 했다. 세상 무서울 것 하나 없는 해주였지만, 막상 수술대 앞에서는 몸이 먼저 반응했다. 셋째와 넷째 때는 정말 과간도 아니었다. 그때 역시 하반신마취를 원했지만, 의사 선생님은 호통을 치며 말했다.

“아니, 엄마 몸을 이렇게 떨어서 주사도 못 놓고 있어 지금.

“나도 주사 잘못 놓을까 봐 겁난다니까!”

“그렇게 무서워? 애를 둘, 셋이나 낳았는데도?”

“전신마취 한다고 해서 못 깨어나는 거 아니야, 걱정 마.”

그리곤 해주를 안심시켰다.

간호사 두 명은 해주의 다리와 골반을, 의사와 또 한 명의 간호사는 해주의 상체를 잡았다. 그렇게 네 명이 붙어서 마취주사를 놓았다. 몸이 얼마나 떨렸는지 옆에 있던 시술 기구까지 덜컥 덜컥 소리가 날 정도였다. 그렇게 무서움을 많이 타던 해주가 아이를 넷이나 낳고, 또 다섯째를 낳는다. 참 신기하다. 그리고 해주는 수술대에 누워서 항상 그렇듯 똑같이 기도한다.

“부처님, 하느님, 천지신명님, 할머니.

저 이번에도 꼭 살려줘야 돼요.”

“꼭 살아서 나갈 수 있게 해 줘야 돼요.”

“나 여기서 살아나가면

진짜 열심히 살고, 아이들 예쁘게 잘 키우며 살게요.

그리고 내가 여유가 되면

“나보다 못한 사람들도 도우며 살게요.”

“제가 마취로 잠들어 있다고 그냥 가면 안 돼요?”

그리곤 수술에 들어간다. 셋째 때는 자궁에 유착이 심해서 정말 위험했다. 원래 셋째 때 자궁수술(더 이상 아기를 낳지 않게 하는 수술)을 하려 했지만, 유착이 심해 수술 도중 출혈이 너무 많아져 의사 선생님이 그대로 닫았다고 했다. 넷째 때 역시 해주에게 물었다. 하지만 해주의 몸으로는 시술까지 할 수 없어 남편이 대신하기로 약속했다. 그런데 시간이 지나도 남편은 수술을 하지 않았다. 귀찮아서였을까, 아니면 두려워서였을까.

시댁에 가면 어머님은 말했다.

“네 남편은 허리가 안 좋아서 시술하면 안 된다.

그때 네가 하고 나왔어야지!”

그럴 때마다 남편은 말했다.

“엄마는 무슨 말을 그렇게 해?

해도 내가 해 걱정 마!”

어머니의 말씀에 해주는 늘 서운했지만, 남편의 태도에 서운했던 그 마음도 잠시 내려앉는다.

이거다. 남편의 중간역할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아마 남편이 아무 말도 하지 않은 채 예전처럼 묵묵히 있었다면, 아마 나는 걷잡을 수 없이 화가 났을 것이다. 하지만 남편은 이제 달라졌다. 나를 위해 소리를 내주기 시작했다.

그런데 시간이 흘러도 남편은 시술을 하지 않았다. 그리고 결국 해주는 홀로 팔에 맞는 시술(피임 시술)을 예약했다. 그래도 남편에게 말해야 할 것 같아 병원 앞에서 전화를 걸었다.

나 시술하러 왔어.”

그러자 남편은 노발대발했다.

“너! 그거 하면 진짜 가만 안 있을 거야!”

“내가 너한테 얼마나 미안한데,

“애도 이렇게 낳았는데 또 몸 상하게 하려고 그래?”

“내가 장모님 얼굴을 어떻게 보냐?”

“그거 몸에도 안 좋다잖아.”

“이번 달 안에 내가 시술할게.”

“당장 집으로 와.”

그래서 해주는 시술을 받지 못하고 그대로 돌아왔다.

그렇게 또 시간이 흘렀다. 해주는 사업을 시작했고, 막내가 점점 자라자 스멀스멀 또 아기가 보고 싶어졌다.

그러다 남편에게 말했다.

“나 능력 되면 우리 하나 더 낳자.”

“지금은 나도 아직 경제적 독립이 안 됐으니까,

우리 경제적 독립되면 꼭 낳자.”

“나 늦둥이라도 꼭 낳고 싶다.”

그러자 남편은 말했다.

“나 이번 달 안에 시술하러 갈 거야.”

“병원도 이미 다 알아봤다.”

“너의 꿈은 접어라.”

마음속으로 또 하나의 아이를 원했던 해주는 사실상 남편에게 시술을 단 한 번도 강요하지 않았다. “언제 할 거야?”라는 말도 꺼내지 않았다. 그러다 마지막으로 말했다.

“우리 만약에 이번에 아기 또 생기면 말이야,

하늘이 주신 걸로 알자.”

남편은 해주의 말을 듣고 기겁했다. 이번 달 안에 하러 갈 테니 꿈도 꾸지 말라고 해주에게 언포를 놓는다.

그리고 말했다.

앞으로 그런 무서운 소리 하지 마라 진짜.”

“너의 꿍꿍이를 봐서라도 내가 당장이라도 가야겠다.”

그런 해주는 웃으며 말했다.

“아니, 나 사업도 시작했는데,

혹시 진짜 임신되면 하늘이 주신 걸로 하자. 알았지?”

주위 사람들도 가끔 해주에게 묻곤 했다.

“또 낳을 거예요?”

처음엔 “안 낳아요.”라고 했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해주는 솔직해졌다.

“경제적인 능력만 되면 하나 더 낳고 싶어요.”

“그리고 늦둥이 생각도 있어요.”

진짜 그래서였을까. 해주는 기도가 잘 통한다. 밤마다 해주는 아무도 모르게 기도했다.

“저 하나 더 낳고 싶어요.

“진짜 잘 키울 수 있는데, 능력 되면 꼭 하나 더 주세요?”

그리곤 정말로 해주는 다섯째를 임신했다.

사업을 시작하는 도중이었고, 손에 돈 한 푼도 쥐지 못했는데 그렇게 다섯째가 찾아왔다.

최해주 작가

예민했던 해주는 임신 테스트기를 꺼냈다.

첫 번째, 두 줄.

두 번째, 두 줄.

세 번째, 두 줄.

확실히 두 줄이었다.

행복함과 당혹함이 동시에 밀려왔다.

해주는 남편에게 테스트기 사진을 보냈다.

“이거 뭐야?”

“보면 몰라?”

“이거 뭐냐고.”

“임신했잖아, 봐봐.”

“아니라고 말해.”

“그거 진짜야?

“그럼 가짜겠어? 왜? 내가 어떻게 하길 바라는데?”

남편이 넌저시 말했다.

“낳아야지, 뭐.”

해주는 안도 하며 말했다.

“그래, 그럴 줄 알았어. 낳아야지, 당연히.”

그런데 해주의 반응에 남편이 다시 물었다.

“진짜 낳으려고?”

“하... 진짜 낳을 거야?”

해주는 화가 난 채 말했다.

“그래서 지금 지우라고?”

죄 지은 듯 남편이 말한다.

“아니, 괜찮겠어? 뭐... 내가 할 말이 있겠어.

당신 뜻대로 해.”

해주는 단호했다.

나는 임신을 안 했으면 몰라도,

아기가 생겼는데 내 손으로는 절대 못 지워.

왜 나한테 평생 죄를 짓게 만들어?”

“우리가 지금 실수할 나이야?”

“실수 아니잖아. 책임지면 돼.”

“앞으로 한 번만 그런 얘기 꺼내면 알아서 해.”

남편은 말했다.

“그래, 축하해. 나 이제 다섯 아빠야?”

해주는 웃으며 대답했다.

“그래, 나는 오남매 엄마야.”

그들은 그렇게 단 한 시간도 안 된 채 받아들였다.

맞다.

솔직히 계획하고 가진 아기가 아니다. 그렇다고 해서 실수로 가진 아이도 아니고, 무책임하게 생긴 아이도 아니다. 남편의 시술 날짜는 다가왔고, 그게 잠시 길어져 그 사이에 생긴 거다.

해주는 생각 했다.

(‘원래 내가 원했던 아이라면, 그게 다 이유가 되는 거야.’)

최해주 작가

그리고 나는 하늘을 향해 기도했었다. 어쩌면 내 기도를 하늘이 들어준 것이다. 그리곤 지금이 더 잘된 일일지도 모른다며 내 자신에게 말했다. 나는 누구보다 아이를 원했고, 능력이 되어 아이를 갖게 된다면 그때의 몸은 이미 허락하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물론 지금도, 내년에 아이를 낳을 때면 나는 마흔이다. 맞다 노산이다.

하지만 한 살이라도 젊을 때, 내 몸이 허락할 때 건강하게 아이를 키울 수 있다는 게 얼마나 감사한 일인가. 뭐 사람들이 보기엔 이리 생각할 수도 있다.

겉으로 화려하게, 말솜씨로 포장했네.

“능력도 없는데 아이만 줄줄이 낳네.”

그렇게 비웃을 수도 있다.

하지만 나는 자신 있다.

누구보다 사랑으로 키울 자신이 있고, 다섯 아이 모두 건강하게 자랄 수 있다고 믿는다. 돈이야 있다가도 없는 거고, 없으면 벌면 되는 거고, 사지 멀쩡하고, 남편이 안정적인 직업도 가지고 있겠다. 뭐가 걱정이겠는가. 그래서 나는 지금 무척 행복하다. 그리고 얼마나 설레는지 모른다. 다시또 내 몸으로 아이를 품을수 있는것에 대해 이제 정말 내게 마지막이될 아이가 나는 너무 궁금하다.

(지구야 엄마 몸에서 건강히 잘 있다가 우리 만나자.)

(너를 기다리는 사람들이 정말 많아.)

(엄마와 아빠 오빠 언니가 널 많이 사랑해줄꺼야.)

(그때까지 우리 잘 지내보자.)

(사랑한다. 내 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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