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부: 튼튼한 울타리는 잃었지만, 지혜로운 울타리를 얻었다
미용실에서 지내던 1년이 지나, 해주와 엄마는 드디어 ‘집’이라 부를 수 있는 곳으로 옮겨왔다. 미용실에서 스무 분쯤 걸어가면 닿는, 골목 안 초록색 대문이 달린 단층집이었다. 그 골목은 낮이면 아이들의 웃음소리로 가득했지만, 해가 지면 가로등 몇 개로 버티는 어둡고 긴 통로로 변했다. 그 골목 중간쯤, 작은 초록 대문이 두 모녀의 새 보금자리였다. 대문을 열고 들어가면 좁은 통로가 있었고, 다섯 발자국쯤 걸으면 해 주네 집, 열 발자국을 더 가면 주인집이 나왔다. 주인댁에는 40대 중년 부부와 해주 또래의 남자아이, 그의 누나, 그리고 할아버지까지 다섯 식구가 함께 살았다.
이사를 왔던 날, 엄마는 해주의 손을 꼭 잡고 주인댁에 인사를 하러 갔다. 해주를 보자 주인댁 아주머니는 잠시 미소를 지었다. 자신도 초등학생 딸과 해주또래의 아들을 둔 엄마였기에, 해주를 바라보는 아주머니의 그 눈빛 속엔 알 수 없는 연민과 따뜻한 미소가 담겨 있었다.
“아이고, 따님이 참 예쁘네요.”
“몇 살이야?”
“우리 아들하고 같은 또래구나?”
거실에서 만화를 보고 있던 남자아이가 궁금했는지 해주 쪽으로 고개를 빼꼼 들었다. 낯선 상황이 어색했던 해주는 엄마의 등 뒤에 숨어 조심스레 눈치만 살폈다. 두 여자의 짧은 인사 몇 마디였지만, 그 장면이 해주에겐 오래 기억되었다. 아마도 엄마는 주인댁과 함께 대문을 쓰는 그 단칸방이 해주와 단둘이 살기에 가장 안전한 곳이라 판단했을 것이다. 주인댁 아저씨와 할아버지가 늘 상주하고 있었으니, ‘남자 어른이 있다는 것’만으로도 그 집은 두 여자를 어두운 밤으로부터 지켜줄 가장 든든한 보금자리처럼 느꼈을 것이다. 하지만 막상 살아보니, 그 단칸방이 완전히 안전한 곳은 아니었다. 저녁 늦게 퇴근하던 엄마의 뒤를 누군가 몰래 따라온 적이 몇 번 있었다. 젊고 예뻤던 서른 초반의 엄마, 여자 혼자 매일 골목 끝 단칸방으로 들어가는 모습은 굶주린 늑대들에게 눈에 띄길 마련이었다.
그리고 어느 날 밤, 담을 넘어 모녀의 보금자리로 들어오려는 발소리가 들려왔다. 문고리를 잡는 소리와 함께 엄마는 본능적으로 외쳤다.
“누구야!!”
그 외침과 동시에 엄마는 서둘러 방 불을 켰고, 엄마는 정글 속 암사자가 포효하듯 외쳤다.
“어떤 새끼야!!”
엄마가 쌍욕을 하며 소리를 지르자 주인댁에도 불이 켜지고 주인댁 아저씨와 할아버지가 러닝만 입은 채 뛰쳐나왔다. 이런 일은 한두 번이 아니었다. 저녁마다 들려오는 인기척과 담을 넘는 소리에 엄마는 본능적으로 불을 켜고 소리쳤고, 그 소리를 들은 주인댁 아저씨와 할아버지는 언제나 맨발로 뛰쳐나오곤 했다. 그날의 어둠 속엔 언제나 엄마의 외침, 주인댁 아저씨의 발소리, 그리고 해주의 가슴속에 맴도는 두려움이 섞여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대문 안에는 해주네를 지켜주는 ‘남자 어른의 존재’가 있었다. 무섭던 골목길도, 깜깜한 밤도, 아빠가 엄마와 나를 지켜주지 않아도 방문 넘어 주인댁 아저씨와 할아버지의 보살핌 속에 그렇게 잘 지낼 수 있었다. 그런 일들이 있고 경찰차가와 며칠을 순찰을 돌고 나면 한동안은 잠잠했다. 물론 해주와 엄마는 근 몇 개월 동안 긴장 속에서 잠이 들어야만 했지만..
왜 안 좋은 일은 한꺼번에 찾아오는 걸까.
하지만 엄마가 그 ‘대문 안의 집’을 찾아오기까지, 그전에 어떤 일들이 있었는지 해주는 훗날에야 알게 되었다. 엄마는 원래 해주와 함께 살 작은 아파트를 구하려 했다. 하지만 이혼과 동시에 모든 게 무너졌다. 아빠의 친구 부부가 사업을 한다며 엄마에게 돈을 빌려 달라고 했고, 엄마는 지금껏 모아 온 돈과 여기저기서 빌린 돈까지 합쳐 그들에게 건넸다. 그 금액은 무려 7천만 원, 1994년 기준으로 지금의 5억 원에 가까운 큰돈이었다. 하지만 그 부부는 돈을 받은 뒤 소리소문 없이 사라졌다. 엄마는 남편도, 돈도, 믿음도, 그리고 세상에 대한 마지막 신뢰마저 잃었다. 그때 엄마의 나이는 겨우 서른을 갓 넘긴 젊은 나이였다. 한순간에 세상의 무게가 자신에게 쏟아져 내렸고, 그 어린 해주를 데리고 어디로 가야 할지조차 알 수 없었다. 엄마는 몇 번이고 무너지려 했다. 울다 잠들고, 또 울다 깨어나던 밤들이 이어졌다. 그때마다 해주는 엄마의 무너지는 소리를 들으며 세상이 얼마나 조용하게 무너질 수 있는지를 배워갔다. 그런 두 모녀에게 마치 햇살처럼 따뜻한 존재가 찾아왔다. 자신의 딸을 살리고자, 금쪽같은 외손녀를 지키기 위해 한 시간에 한 대밖에 없는 버스를 타고 매일같이 미용실로 외할머니는 ‘출근하듯’ 오셨다. 할머니는 미용실 바닥을 쓸고, 수건을 널고 개고, 손님들의 말벗이 되어주며, 엄마의 지킴이가 되어 해주가 학교에서 올 때면 손녀딸 손을 꼭 붙잡고 초록 대문 단칸방으로 향했다. 그리고 엄마의 퇴근 시간에 맞춰 그날 가져온 싱싱한 채소들로 나물을 묻히며 뜨끈한 찌개를 끓여 늘 저녁상을 차렸다. 가끔은 어린 해주가 할머니보다 먼저 집에 가서 서프라이즈를 준비하곤 했다. 단칸방 작은 그 밥상으로 근사한 ‘레스토랑’으로 준비해 놓고, 할머니 어깨너머로 배운 솜씨로 김치볶음밥을 만들고 엄마와 할머니가 오기만을 기다렸다.
터벅터벅, 또각또각—
할머니와 엄마의 발소리가 골목 끝에서 들려오면 해주는 얼른 불을 끄고 양초 두 개를 켰다.
“어서 오세요, 해주 레스토랑입니다!”
그날 밤, 세 여자는 촛불 아래서 김치볶음밥을 먹으며 오래 웃었다. 불빛이 해주의 얼굴을 비출 때마다 그 단칸방은 세상에서 가장 따뜻한 식당이 되었다.
할머니는 항상 해주 엄마에게 말했다.
“이거 없었으면 내 새끼가 어떻게 살았을꼬..”
“너는 힘들어도, 네 새끼 보고 살어라.”
“나는 힘들어도, 내 새끼 도와줄텐게.”
“우리 힘들어도 저것 보고 한번 살어보자.”
슬픔, 한숨, 세 모녀의 행복한 웃음소리. 작지만 따뜻한 그 보금자리, 그 단칸방은 세 여자가 서로의 체온으로 버티던 작은 우주였다. 두 모녀의 가장의 빈자리를 대신해, 할머니는 우리의 따뜻한 울타리가 되어 주었다.
매일 밤, 불안에 떠는 어린 손녀의 등을 쓸어 재워주며 밤새 엄마의 정신적 지주가 되어 주었다. 엄마와 나는 세상에서 가장 든든한 울타리를 잃었지만, 대신 지혜로운 울타리를 얻게 되었다. 엄마는 다시 살아갈 힘과 용기를 얻었고, 나는 할머니의 따뜻한 보살핌 속에서 지혜와 사랑을 함께 배워갔다. 비록 늙고 힘없는 노인이었지만, 어린시절 6·25의 거친 세월도 견뎌낸 할머니는 누구보다 강하고 단단한 사람이었다. 그렇게 할머니의 품 안에서, 우리는 다시 살아갈 이유를 배워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