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부: 엄마와 가장 가까운 곳에서 함께 울던 여덟 살
8살의 아이는 밤마다 안방 문 앞에 귀를 기울였다. 자주 큰소리가 오가던 그 방이 고요해질 때까지 숨죽여 기다려야 했다. 안방이 조용해지고 나면 그제야 자기 방으로 들어가지만 이미 문 앞에서부터 긴장을 한 탓인지 방에 들어가도 모든 게 무섭게 느껴졌다. 잘 시간이 훌쩍 지난 해주는 내일 또 늦잠을 잘 까봐 잠을 청해 본다.
하지만 눈꺼풀이 좀처럼 말을 듣지 않는다.
“해주야 일어나자! 학교 가야지?”
엄마가 깨우는 목소리가 들린다.
분명 잠을 안 잔 것 같은데 눈을 감았다 뜬걸 보니 잠이 들었나 보다. 아침은 고새 밝았고 집안엔 늘 그랬듯 생선구이냄새로 이미 가득 차 있었다. 해주는 엄마의 상태를 확인하기 위해 서둘러 침대에서 일어난다. 잔뜩 긴장한 채 거실로 나와 삐죽삐죽 분위기를 살핀다. 엄마는 그런 해주에게 환한 웃음을 지으며 찌개와 반찬들을 식탁 제자리에 놓았다. 오늘 밥상도 아빠와 해주가 좋아하는 반찬으로만 가득 차려졌다. 모든 음식들은 김이 모락모락 났지만, 식탁의 온도는 싸늘하기 그지없었다.
해주가 연신 아빠와 엄마 눈치를 살핀다. 그런 딸과 눈이 마주친 엄마는 얼른 고등어 살점을 떼어 해주 입속에 넣어준다. 엄마는 평소와 똑같이 행동했지만, 눈치빠른 해주는 단번에 알아차렸다. 해주는 사실 그날밤 모든 걸 알고 있었다. 엄마가 밤새 거실에서 울었다는 것을, 해주는 자신의 방문을 열고 달려가 엄마를 안아주고 싶었지만, 방에서 나가지 않았다. 자신이 다가가면 엄마가 더 슬퍼할 것을 알았기에 밤새 문고리만 잡았다 놓았다를 반복했다. 그리곤 엄마와 가장 가까이 방문 앞에 쪼그려 앉았다.
방문 하나를 사이에 두고, 함께 울었던 딸.
엄마는 숨도 쉬지 않고 계속 울기만 했다. 그런 해주도 엄마를 따라 눈물이 멈추지 않았다.
얼마나 흘렀을까? 엄마가 다 울었는지 한숨을 크게 내쉰다. 그리곤 해주 방으로 들어오는 소리가 들려온다. 방문이 열리고, 해주는 재빨리 침대 속으로 몸을 숨기고 자는 척을 했다.
엄마가 속삭였다.
“해주야, 자?”
해주가 아무 대답이 없자, 엄마는 작은 해주 등에 온몸을 의지한 채 다시 흐느껴 울기 시작한다.
엄마를 세상 누구보다 사랑했던 해주.
늘 엄마가 먼저였던 착한 여덟 살 딸.
그런 해주가 다음날 진심을 담아 말한다.
“나는 엄마 똥도 먹을 수 있을 만큼 사랑해.”
“엄마도 내 똥 먹을 수 있어?”
이 어이없는 말을 너무 진지하게 했던 탓일까?
엄마가 해주를 쳐다보며 깔깔 웃으며 말했다.
“내가 너를 사랑하지만, 네 똥은 못 먹겠는데?"
해주는 진심으로 실망했다. 엄마도 분명 자신을 사랑하니 똥도 먹을 수 있을 거라 생각했던 것이다. 그리곤 어떻게든 엄마의 사랑을 확인하기 위해 말도 안 되는 질문을 하기 시작한다.
"그럼 내가 죽을병에 걸려서 내 똥을 먹어야만 살릴 수 있다면?"
"만약 내 똥을 먹어야만 도둑이 나를 풀어준다 하면?"
해주는 이런 말도 안 되는 말들로 엄마도 자신의 똥을 먹어야만 우주만큼 사랑하는 거라 생각했다.
학교를 마치고 놀이터에서 놀다 보니 어느새 저녁이 되어 있었다. 아빠가 놀이터로 찾아왔다. 그네를 타던 해주가 아빠의 부름에 멈춰 서고, 둘은 어색하게 손을 맞잡은 채 집 앞 문구점으로 향했다. 문구점 안에는 없는 것이 없었다. 장난감도 있고 스티커도 있고, 심지어 금붕어와 거북이까지 있었다. 아이는 눈을 반짝이며 이리저리 둘러보았다. 그때 아빠가 크레파스를 고르라며 권했다. 진열대에는 12색, 24색, 36색이 줄지어 있었다. 아이는 잠깐 망설이다가 가장 작은 12색을 골라 아빠에게 내밀었다. 그러자 아빠는 그것을 받아 들고 한숨을 쉬며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더니 아이를 향해 말했다.
“너는 왜 사준다는데도 이런 걸 고르냐.”
그러고는 가장 큰 36색 크레파스를 꺼내 펼쳐 보이며 손가락으로 하나하나 짚었다.
“여기 봐! 금색도 있고 은색도 있고, 연보라도 있고 별의별 색이 다 있잖아.”
그 순간 해주는 아빠가 자신의 생각을 읽은 것 같아 깜짝 놀랐다. 사실 해주도 은색과 금색이 들어간 크레파스를 갖고 싶었다. 그러나 제일 작은 것이 더 쌀 거라 생각했고, 혹여 아빠에게 부담을 줄까 마음이 쓰여서, 작은 크레파스를 고른 그런 착한 여덟 살 딸이었다. 아빠가 내민 크레파스에는 반짝이는 색들로 가득했지만, 해주는 마냥 좋아할 수가 없었다. 좋았지만, 자신의 기쁨을 드러내는 순간 엄마를 배신하는 거라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날 저녁 36색의 크레파스가 아빠가 하나밖에 없는 딸에게 준 마지막 선물이었다. 그 후로 아빠는 며칠 동안 집에 돌아오지 않았다. 아빠 없이 엄마와 단둘이 보내는 이 시간들이 너무 행복했다. 매일밤 안방문에 귀 기울여 숨죽여 듣지 안 않아도 되고 밤새 불안에 떨지 않아도 되니, 아빠가 매일 안 들어왔으면 좋겠다 생각했다. 그렇게 며칠이 지났을까? 학교에 돌아와 보니 초록색 보자기에 한가득 짐들이 싸여있다. 보자기 안에 뭐가 들어있는지 볼 수는 없었지만, 이불과 옷가지가 있었을 거라 생각했다.
아이에게 엄마가 말한다.
"해주는 오늘부터 엄마랑 둘이 미용실에서 살 거야"
엄마의 딱 한마디였지만 아이는 알았다. 이제 우리 가족은 함께할 수 없다는 것을. 엄마와 함께 간단한 짐만 챙겨 신발을 신으려던 순간, 아빠와 고모가 집 안으로 들어왔다. 오랜만에 보는 얼굴이라 순간 놀랐지만, 그래도 반가운 마음이 들었다. 그러나 그 마음은 금세 얼어붙었다. 아빠와 고모는 나를 보며 웃지도, 인사도 하지 않았다. 대신 고모는 차갑게 입을 열었다.
“해주 엄마, 짐은 다 쌌어요?”
그날의 고모는 꼭 못된 마녀처럼 보였다. 엄마는 아무 대꾸도 하지 않은 채, 양손 가득 짐을 들고는 그 사이로 내 손을 찾아 꼭 잡았다. 우리는 꾸역꾸역 짐 사이를 뚫고 현관을 나섰다. 그렇게 엄마와 함께 집을 나온 그 순간이, 해주가 집을 본 마지막이었다. 아이는 항상 학교를 마치곤 엄마 미용실에 갔다. 미용실 한편 뒤엔 커튼으로 쳐진 공간이 있었다. 안에는 싱크대와 가스레인지도 있고 티브이도 있고 나무로 짠 평상도 있었다. 엄마가 머리를 자를 때면 해주는 항상 커튼뒤 나무평상에서 엄마가 챙겨준 간식을 먹으며 티브이를 보다 잠이 들곤 했었다. 밤이 되면 엄마는 셔터를 내리고 미용실 문을 꾹 잠갔다. 해주는 엄마와 함께 있음에 언제나 행복했지만, 매일 밤만 되면 온갖 상상을 나래를 펼쳐야만 했다.
(만약 도둑이 들어오면 어떡하지?)
(평상 옆 화장실문으로 도망가야 하나?)
(나만 도망가고 엄마는 잡히면 어떡하지?)
(나는 엄마를 어떻게 지킬 수 있지?)
한참을 고민하다 미용실에서 무기로 사용할 수 있는 것들의 위치들을 생각해 낸다. 가위, 칼, 드라이버, 망치 등등 그러고는 굳게 다짐한다.
(우리 엄마는 내가 꼭 지켜줘야지!) 하며, 엄마를 꼭 끌어안고 잠을 청한다.
긴장 속에 잠이 미세히 들려는 순간, 다다다 다다! 다다다 다다! 벽에서 소리가 난다. 소리가 너무 크고 귀 가까이 들려서 해주는 비명을 빽 지르고 말았다. 엄마가 빛의 속도로 몸을 일으켜 퍽! 치는 소리가 들린다. 그러곤 곧장 불을 켠다. 살면서 매미만 한 바퀴벌레를 본 적이 있는가? 그 큰 바퀴벌레가 벽을 타고 오를 때, 마치 긴 손톱으로 피아노 건반을 두드리는 그런 소리가 났다. 매일밤 엄마는 바퀴벌레를 잡기에 정신이 없었고, 그런 바퀴벌레는 엄마를 요리조리 피해 도망 다니며 밤새 여러 다리로 벽에 피아노 연주를 하기에 정신없었다. 바퀴벌레가 얼마나 똑똑한지 알고 있는가? 불을 끄고 한참이 지나야만 움직이기 시작하고, 구석구석 맛있는 약을 놓아도 절대 먹지 않았다. 도대체 엄마 미용실에 사는 바퀴들은 뭘 먹고 매미 같은 몸통으로 커졌는지 알 수가 없었다. 그렇게 미용실에서 산 시간이 일 년쯤 되었을까? 저 멀리 옆 동네까지 소문이 퍼진 것 같다. 엄마와 딸이 가게에서 둘이 생활한다는 것을. 그때 엄마는 서른을 갓 넘긴 30대 초반의 젊은 나이였다. 해주 엄마는 정말 예뻤다. 사람들은 종종 말했었다. 원장님은 동네에서 이런 미용사를 할게 아니라, 탤런트를 했어야 한다며 아깝다고 말하곤 했다. 그렇게 예쁘고 젊었던 여자 혼자와 어린 딸이 단둘이 미용실에 있다는 자체가 얼마나 위험했겠는가? 실제로 종종 술 취한 사람들이 셔터 앞을 서성이다 안으로 들어오려 한 적도 있었고, 밖에서 여러 남자들의 웅성웅성 소리도 자주 들렸다. 셔터는 굳게 내려져 있었지만, 그게 뭐 안전하겠는가? 무엇보다 평상 옆으로 난 쪽문이 문제였었다. 그 쪽문은 바로 밖으로 나갈 수 있는데, 유리로 된 창과 철로 된 약한 문이었고, 중문도 없어 언제든 열리기 쉬운 구조였다. 낮에는 그나마 안전하더라도, 저녁엔 더없이 위험한 공간이었다. 어느덧 30년이라는 시간이 흘렀다. 해주도 엄마가 되어 돌아보니 그 젊고 예쁜 엄마가 얼마나 밤새 두려움을 떨어야 했을지 짐작이 간다. 무엇보다, 하나밖에 없는 이 소중한 딸을 수많은 어둠으로부터 홀로 지켜내야 한다는 사실이 가장 두려웠을 것이다.
어릴 적, 엄마를 지켜주겠다고 다짐하던 여덟 살의 소녀는 이제 다섯 아이의 엄마가 되었다. 그때의 엄마는 서른을 갓 넘긴 젊고 빛나던 사람이었다. 단단한 보호와 조용한 강인함으로 어린 나를 품어주던 그 시간은 내게 살아가는 힘이자 버팀목이 되었다. 이제는 그 힘을 내 안에 간직한 채, 나는 다섯 아이의 삶을 끝까지 지켜내겠다고 다짐한다. 엄마로부터 이어받은 강인함을, 다시 내 아이들에게 전하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