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 몰타로 떠나기로 했다

(1부) 평범한 삶이 멈추다.

by 고호


휴직이 결정된 뒤부터 생활이 조금씩 달라지기 시작했다. 몰타 어학연수를 준비하기 시작했다.


몰타에서 세 달, 영국 맨체스터에서 한 달.


어학원 계약을 하고 항공권을 발권했다. 몰타는 쉬면서 공부할 수 있는 곳 같았고, 맨체스터는 축구를 좋아해서 한 번쯤 가보고 싶던 도시였다.언어가 얼마나 늘지는 크게 중요하지 않았다. 대신 그동안의 나의 시간을 조금 보상해 주고 싶었다. 넓은 세상에 나가 모든 걸 잠시 잊고, 다른 곳에서 살아보고 싶었다.


회사 생활을 하다 보면 하루가 정신없이 지나간다. 해야 할 일들이 계속 생기고, 그 사이에서 시간을 보낸다. 그런데 휴직을 결정하고 나니 하루의 시간이 조금 다르게 느껴졌다. 연수 준비와 함께 여행 계획도 세우기 시작했다. 지도를 펼쳐 놓고 유럽 도시 이름을 하나씩 적어 내려갔다.


그리스, 이탈리아, 스웨덴, 덴마크, 노르웨이, 아일랜드, 스코틀랜드, 포르투갈….


이름만 봐도 설레는 곳들이었다.

대략적인 여행 흐름을 잡고 이동 방법을 찾아보고,

가보고 싶은 장소들을 하나씩 정리했다. 하루가 금방 지나갔다.


영어 학원에도 등록했다.

오랜만에 영어 공부를 다시 시작했다.

교재를 펴고 문장을 읽고, 단어를 외우는 일들이 묘하게 재미있었다.


도서관에도 자주 갔다.

노트북을 펴 놓고 몰타 생활 정보를 찾아보기도 하고 여행 계획을 다시 고치기도 했다.


필요한 물품들도 하나씩 준비했다.

여행용 가방을 꺼내고 필요한 옷들을 정리하고, 작은 물건들을 하나씩 구입했다. 아, 해변이니 수영복도 준비했다.


누가 시키지 않았는데도 하루가 바쁘게 흘러갔다.

마치 다시 살아보는 기분이었다.


대기업에서 15년을 일했다. 그동안 큰 부자가 된 것도 아니고 자가가 있는 것도 아니다. 그저 매일 출근하고 저축하며 쳇바퀴 속에서 성실하게 살아온거 같다. 회사에 묶여 있다 보니 크게 돈을 쓸 일도 없었던 것 같다. 그래서 40대가 된 나는 나를 위해 쓸 수 있는 정도는 돈을 모아 두고 있었다.


그런데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내 좋은 시절의 시간을 왜 전부 회사에 가둬두고 살았을까. 물론 회사 생활 덕분에 안정적인 삶을 유지할 수 있었다. 하지만 그 시간 속에서 내가 정말 하고 싶은 일을 해본 적이 있었나 생각해 보니 쉽게 떠오르지 않았다. 이제 처음으로 나 스스로를 위한 시간을 가져본다는 설렘이 올라왔다.


떠날 날이 가까워질수록 나는 일정표를 여행 계획으로 채워 갔다. 도시 이름을 하나씩 적어 내려가며 여행 루트를 만들었다. 그 과정은 단순한 여행 준비가 아니라 ‘내가 다른 삶을 살 수 있다’는 가능성을 스스로에게 확인하는 시간이기도 했다. 앞으로 어떤 일이 생길지 알 수 없었지만 적어도 이번만큼은 내가 선택한 방향으로 살아보고 싶었다.


모든 가능성을 열어두고 그저 떠날 날을 기다렸다.


떠나기 전 체력도 조금 만들어 두고 싶었다. 어학연수도 여행도 제대로 즐기려면 체력이 필요할 것 같았다.

그래서 운동도 꾸준히 하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몸이 조금 힘들었지만 점점 적응이 되는 것 같았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몸 상태가 기대만큼 좋아지지는 않았다. 잘 자도 몸이 개운하지 않았다. 운동을 해도 몸이 가볍다는 느낌이 들지 않았다. 가끔은 몸이 조금 무겁게 느껴지기도 했다. 그래도 크게 신경 쓰지는 않았다.


‘내가 너무 오랜만에 운동을 해서 그런가.’
‘휴직 준비하면서 스트레스를 받아서 그런가.’

그렇게 생각하며 그냥 넘겼다.


떠날 날은 점점 가까워지고 있었다. 나는 더 열심히 움직였다. 운동도 하고, 공부도 하고, 여행 준비도 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몸은 내 기대만큼 따라와 주지 않았다. 지금 생각해 보면 그때 이미 몸은 작은 신호를 보내고 있었던 것 같다. 하지만 그때의 나는 그 신호를 알아차리지 못했다.


아니, 어쩌면 나에게 다가 온 행복 앞에서

일부러 모른 척했는지도 모르겠다.


그때는 아직 몰랐다.


이 준비가 몰타가 아니라 전혀 다른 곳으로 나를 데려가게 될 줄은.

화, 목, 토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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