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부) 평범한 삶이 멈추다.
몰타 어학연수를 취소하고 나서 가장 어려운 일이 하나 남아 있었다. 가족들에게 나의 상황을 이야기를 해야 했다. 갑자기 떠나지 못하게 된 이유를 설명해야 했다.
며칠 동안 그 생각이 계속 머릿속을 맴돌았다. 아예 말하지 않을까 고민하기도 했다. 아직 정확히 확정된 것도 아니었고 괜히 걱정만 끼치는 건 아닐까 싶었다. 하지만 현실적으로 숨길 수 있는 일은 아니었다. 몰타가 아닌 한국에서 병원 진료도 시작해야 했고 앞으로 검사도 계속 이어질 것이다.
결국 부모님에게 이야기하기로 했다. 전화기를 들었다가 다시 내려놓았다. 몇 번이나 그렇게 했다. 막상 말을 하려고 하니 쉽게 입이 떨어지지 않았다. 잠깐 숨을 고르고 다시 전화를 걸었다.
부모님 목소리를 듣는 순간 마음이 조금 흔들렸다. 나는 최대한 담담하게 이야기하려고 했다.
“요즘 병원 검사를 좀 받고 있어.”
“그래? 어디 아픈 데 있어?”
나는 잠깐 말을 멈췄다. 그리고 조금 더 솔직하게 말했다.
“어깨 쪽에 멍울이 있어서 검사했는데… 암일 수도 있다고 해서 대학병원에 가보려고 해.”
“그래서, 몰타는 취소했어요.”
잠깐 침묵이 흘렀다. 그 짧은 침묵이 이상하게 길게 느껴졌다.
부모님은 많이 놀라신 눈치였다. 잠시 후 차분하게 말씀하셨다.
“그래도 아직 확정된 건 아니잖아.”
“검사해 보면 괜찮을 수도 있어.”
목소리는 평소와 크게 다르지 않았다. 오히려 너무 차분해서 조금 이상하게 느껴질 정도였다. 나는 그 말이 고마웠다. 부모님도 많이 놀랐을 텐데 최대한 평정심을 유지하려는 것이 느껴졌다.
나도 담담한 척 이야기했다.
“응. 아직 확정된 건 아니야.”
“그래서 대학병원 가서 검사부터 하려고.”
짧은 통화였다. 전화를 끊고 나서 한참 동안 휴대폰을 바라보고 있었다. 부모님은 분명 많이 놀랐을 것이다. 하지만 나에게는 내색하지 않았다. 그게 더 마음에 남았다.
가족들에게도 이야기를 전했다. 형제들도 처음에는 잠깐 말을 잇지 못했다. 하지만 모두 같은 말을 했다.
“괜찮을 거야.”
“아직 확정된 것도 아니잖아.”
그 말들이 고마웠다. 하지만 동시에 마음 한쪽에서는 이상한 감정이 올라왔다. 나는 최대한 담담하게 이야기하고 있었지만 사실 내 감정은 전혀 정리되지 않은 상태였다.
길을 걷다가 갑자기 눈물이 나기도 했다. 집에서 멍하게 앉아 있다가도, TV를 보다가도, 밥을 먹다가도, 운전을 하다가도 아무렇지 않은 순간에 감정이 갑자기 터졌다.
그래도 가족들 앞에서는 최대한 평소처럼 행동하려고 했다. 괜히 더 걱정시키고 싶지 않았다. 그래서 괜찮은 척했다. 담담한 척 이야기했다. 그게 그때 내가 할 수 있는 유일한 방식이었다.
하지만 그 시간 동안 나는 조금씩 깨닫고 있었다.
주변에 많은 사람들이 나를 걱정하고 응원해주고 있었지만 이 시간을 대신 지나가 줄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는 것을
결국 이 시간은, 누구도 대신해 줄 수 없는 시간이었다.
나는 이 시간을, 내 힘으로 버텨야 했다.
그리고, 다음 날 나는 처음으로 암센터로 향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