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 암센터, 첫 진료

(1) 평범한 삶이 멈추다.

by 고호


드디어 대학병원 암센터 첫 진료일이었다.


내 의심 병명은 혈관육종. 처음 듣는 이름이었다. 검색을 해 보니 육종 중에서도 드문 종류였고, 전이가 빠를 수 있으며 5년 생존율이 매우 낮다는 설명이 눈에 들어왔다. 악성도가 낮더라도 재발과 예후를 장담할 수 없다는 문장도 있었다.


하필이면, 왜 이런 희귀한 암일까.

요즘은 치료가 잘 되는 암도 많다던데.


그 생각이 스치자, 마음이 무겁게 가라앉았다. 그래도 아직 확정된 것은 아니었다. 그래서 최대한 담담하게 생각하려고 했다.




병원으로 가는 전철 안에서 휴대폰을 꺼냈다. 병원 앱을 열어 예약 현황을 확인했다. 처음 예약은 전임의 진료였다. 그것만으로도 다행이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상담사가 상황이 급하다고 판단했는지, 바로 다음 주 전임의 진료를 먼저 잡아 준 상태였다. 전철 안에서 멍하니 예약 화면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때였다.

예약 목록을 다시 확인하는데, 이 분야에서 유명하다는 교수님의 빈자리가 눈에 들어왔다. 처음 예약을 잡을 때는 몇 달 뒤까지 진료가 꽉 차 있어서 예약 자체가 불가능했던 분이었다.


그런데 그날 화면에 딱 한 자리가 비어 있었다. 내일이었다. 몇 달을 기다려야 한다던 진료였다. 갑자기 내일 자리가 생겨 있었다. 고민할 이유는 없었다. 나는 바로 예약 변경 버튼을 눌렀다. 예약이 완료되었다는 메시지가 화면에 나타났다.


지금까지의 흐름을 잠깐 돌아봤다. 처음에는 단순히 지방종이라고 생각했던 멍울이었다. 그런데 세 번째 병원에서 조직검사를 하게 되었고, 예상보다 빠르게 결과를 확인하게 되었다. 그리고 대학병원 진료도 생각보다 빨리 진행되고 있었다. 이번에는 몇 달을 기다려야 한다던 교수님의 진료 자리가 갑자기 생겼다.


상황은 점점 나쁜 쪽으로 흘러가고 있었지만, 이상하게도 중요한 순간마다 작은 틈이 열리고 있었다. 그 틈 사이로, 작은 운 같은 것들이 계속 이어지고 있었다.


그게, 그때의 나에게는 유일한 위로였다.





다음 날, 나의 첫 진료를 위해 대학병원 암센터를 찾았다. 예상보다 많이 일찍 도착했다. 접수를 하고 진료실 앞 의자에 앉아 오랜 시간을 기다렸다. 병원은 생각보다 훨씬 많은 사람들로 붐비고 있었다. 암센터 대기실에서 다양한 모습들이 눈에 들어왔다.


'세상에 아픈 사람이 이렇게 많구나.'


겉으로는 크게 아파 보이지 않았지만, 긴장된 표정에서 환자들이라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젊은 사람도 있었고 나이가 많은 사람도 있었다. 정장을 입은 사람도 있었고 운동복 차림의 사람도 있었다. 명품 가방을 든 사람도 있었고 평범한 쇼핑백을 든 사람도 있었다.


힘든 항암으로 지친 기색이 역력한 모자를 쓴 사람들,

육종 치료로 팔을 절단한 듯 보이는 사람들,

온 가족이 옹기종기 모여 앉아 있는 사람들,

그리고 나처럼 혼자 멍하니 앉아 있는 사람들.


서로 전혀 다른 삶을 살고 있을 것 같은 사람들이었다.

그런데, 모두 이곳에 모여 있었다.

아무 예고 없이 닥친 일처럼.


하지만 표정은 비슷했다. 조금 굳어 있는 얼굴, 조용히 생각에 잠긴 표정, 걱정과 긴장이 섞인 눈빛. 우리는 서로 다른 삶을 살아왔지만, 이곳에서는 같은 이유로 앉아 있었다.


그 순간, 처음으로 실감이 났다.
'나도 이제 이곳에 앉아 있는 사람이구나.'


가만히 둘러보다가 문득 예전에 봤던 넷플릭스 시리즈, ‘지옥’이 떠올랐다. 예고도 없이 선고를 받고 끌려가듯, 이곳에 있는 사람들도 어느 날 갑자기 평범한 일상에서 이곳으로 오게 되었을 것이다. 나도 그중 한 사람이었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나는 평범하게 출퇴근을 하던 직장인이었다. 번아웃 속에서 버티다가, 새로운 삶을 살아보겠다고 몰타 어학연수를 준비하고 있었다. 그런데 지금은 암센터 대기실 의자에 앉아 있었다.


인생이 이렇게 갑자기 방향을 바꿀 수도 있구나 싶었다.

이제는, 다른 어떤 것도 중요하지 않았다.


그저 한 가지 질문만 남았다.

'나는 괜찮을까.'


잠시 후 내 이름이 불렸다. 나는 천천히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리고 진료실 문 앞에 섰다.

이 문을 열면, 지금과는 다른 시간이 시작될 것 같았다.


나는 잠깐 숨을 고르고,

문을 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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