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부) 평범한 삶이 멈추다.
직장 생활을 할 때 가끔 이런 생각을 했다. 몸이 아프면 회사 안 가도 되는 거 아닐까. 병가라도 쓰고 싶다. 잠깐이라도 멈추고 싶다. 그때는 그게 단순한 생각이라고 여겼다. 하지만 지금 돌아보면, 그건 전혀 다른 의미였다. 나는 아프고 싶었던 것이 아니었다. 이 버티던 삶에서 잠깐이라도 벗어나고 싶었던 거였다.
어느 날 문득 회사 생활이 떠올랐다. 회사에 다니던 날들은 솔직히 버거웠다. 보고서 압박, 상사의 압박, 타이트하게 쪼개진 일정. 하루는 늘 부족했고 숨 돌릴 틈이 없었다. 회의실에서는 고성이 오가기도 했고, 프로젝트 일정이 밀리면 분위기는 순식간에 무거워졌다. 퇴근 전에는 피가 거꾸로 쏠리는 느낌이었고, 옆 부서에서 업무로 쓰러졌다는 이야기도 들려오곤 했다.
나는 그 안에서 계속 버티고 있었다.
처음 입사했을 때는 좋았다. 대기업에 들어갔다는 사실이 자랑스러웠고, 앞으로의 삶이 자연스럽게 열릴 것이라고 믿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조금씩 다른 느낌이 들기 시작했다. 나는 계속 움직이고 있었지만 어디로 가고 있는지는 보이지 않았다. 출근하고, 일하고, 퇴근하고, 잠들고, 다시 아침이 오면 같은 하루가 반복됐다. 그 시간들이 계속 쌓이고 있었다.
그래서 한 번은 이런 생각을 한 적이 있었다.
‘차라리 아팠으면 좋겠다.’
잠깐이라도 멈출 수 있는 이유가 생기면 좋겠다고. 지금 돌아보면 조금 무서운 생각이다. 하지만 그때는 그 말이 이상하게 느껴지지 않았다. 그만큼 지쳐 있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몸이 대신 멈춰 주면 좋겠다고 생각했던 것 같다.
그런데 지금 나는 정말로 큰 병 앞에 서 있다. 암이라는 이름으로. 아이러니하게도 지금의 마음은 그때와 전혀 다르다. 지금은 아프고 싶지 않다. 정말로.
나는 멈추고 싶었던 것이 아니었다.
나는 살고 싶었던 거였다.
처음으로, 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그동안 버티며 살아왔지만, 그 시간들은 그냥 흘러간 것이 아니었다. 분명히 내가 살아낸 시간들이었다. 그리고 아직 끝난 것은 아니었다. 나는 아직 살아 있었다. 앞으로의 시간도 남아 있었다. 그래서였다.
나는, 그냥 살고 싶었다.
검사 결과를 확인하기까지는 아직 며칠이 더 남아 있었다. 특별히 할 수 있는 일은 많지 않았다. 그래서인지 휴대폰을 보는 시간이 자연스럽게 늘어났다. 어느 날 아무 생각 없이 유튜브를 켰다. 평소처럼 추천 영상들이 화면에 나타났다.
그런데 그날은 조금 달랐다. 암 환자 이야기, 항암 치료 브이로그, 병과 싸우는 사람들. 그런 영상들이 화면을 채우고 있었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내 유튜브 화면에는 몰타 여행 영상, 유럽 도시 풍경, 어학연수 준비 영상이 가득했었다. 그런데 지금은 전혀 다른 영상들이 자리를 대신하고 있었고, 그 사이에 몰타가 가끔씩 섞여 있었다.
몰타와 암.
서로 전혀 다른 두 방향이 유튜브 한 화면 안에 떠 있었다. 암이라는 화면은 점점 커지고 있었고, 몰타는 점점 멀어지고 있었다. 마치 아직 희망을 놓지 못하는 내 마음 같았다.
나는 스스로를 설득하고 있었다.
'아직 결과도 안 나왔잖아. 괜히 미리 걱정할 필요 없어.'
하지만 그렇게 생각한다고 해서 마음이 완전히 편해지지는 않았다. 며칠 뒤면 결과를 확인하는 날이었다. 나는 조용히 숨을 한 번 고르고 생각했다. 지금은 그저 기다리는 수밖에 없었다.
창밖을 잠깐 바라봤다.
세상은 평소와 다르지 않게 흘러가고 있었다.
하지만 내 시간은,
그 결과 하나를 기다리며 잠시 멈춰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