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부) 평범한 삶이 멈추다.
첫 진료는 생각보다 짧았다.
교수님은 의뢰서와 병명을 잠시 보고 멍울의 위치와 크기를 보더니 짧게 말했다.
“MRI부터 찍고, 조직검사는 다시 봅시다.”
"절대 만지거나 자극하지 마세요."
그리고 끝이었다. 정말 2분도 안 걸린 것 같았다. 허무했지만 이해했다. 결정적인 게 없으니 말을 아끼는 게 맞을 테니까. 진료실 밖에는 이미 많은 사람들이 기다리고 있었다. 이곳에서는 꼭 필요한 말만 하는 게 당연한 일이었다. 문제는 다음 과정으로 넘어가기 위한 MRI 예약이었다.
간호사와 다음 일정을 확인했다.
“검사 일정이 밀려 있어서, 가장 빠른 게 다음 주예요.”
하루가 아쉬웠다. 조급함이 목까지 차올랐다.
나도 모르게 말이 나왔다.
“저… 오늘도 가능할까요.”
흘려도 되는 말이었다. 그런데 간호사는 잠시 나를 바라보더니 말했다.
“잠시만요.”
어딘가로 전화를 돌렸다. 한 군데, 또 다른 한 군데. 통화가 조금 길어졌다. 나는 아무 말도 하지 못한 채 그 모습을 바라보고 있었다.
“오늘 늦은 저녁에 취소 자리 하나가 났어요. 가능하세요?”
대답이 필요할까. 또, 시간이 앞당겨졌다.
돌아보면, 이상하게 중요한 순간마다 일이 조금씩 앞당겨지고 있었다.
그날 나는 병원 의자에 혼자 앉아 저녁이 올 때까지 긴 시간을 조용히 기다렸다. 저녁을 대충 해결하고, 병원 내부를 하염없이 돌아 다니기도 했다. 처음 온 대학병원에서 하루를 온전히 보내고 있다는 사실이 낯설었다.
그리고 마침내, 내 차례가 다가왔다.
MRI 촬영실로 들어갔다.
어깨 촬영이라 머리와 목, 어깨가 고정됐다.
얼굴 위로 틀이 덮이자 숨이 조금 답답해졌다.
MRI실 천장에는 파란 하늘과 푸른 나무의 사진이 붙어 있었다. 그걸 보며 잠깐 마음이 가라앉는가 싶었지만 이내 몸은 기계 안으로 천천히 밀려 들어갔다.
그리고 촬영이 시작됐다.
“쾅, 쾅, 쾅.”
굉음이 반복해서 울렸다.
움직이면 안 된다. 그 생각만 붙잡고 있었다.
그러다 문득 이런 느낌이 올라왔다.
‘관 속 같다.’
사방이 막힌 공간.
나는 누워 있었고, 움직일 수 없었다. 소리만 계속 울리고 있었다.
그 순간, 나는 마치 내 안으로 깊이 빨려 들어가는 기분이었다.
지나온 시간들이 하나씩 떠올랐다. 행복했던 날들도 있었고, 힘들었던 날들도 있었다. 아무 생각 없이 웃었던 순간들, 이유도 모른 채 버티기만 했던 날들도 조용히 스쳐 지나갔다.
나는 그 낯선 기계 안의 차가운 바닥에 누워서,
처음으로 나 자신에게 묻고 있었다.
나는 누구였나.
나는 무엇을 위해 이렇게 살아왔을까.
가족의 얼굴이 떠올랐다. 친구들이 떠올랐다. 사랑했던 사람들도 떠올랐다. 함께 웃었던 시간들, 아무 의미 없이 지나간 줄 알았던 순간들까지 이상하리만큼 또렷했다. 내 삶이라고 믿어 왔던 것들은 그런 장면들이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그렇게 오래 붙들고 살았던 일의 시간들은 좀처럼 떠오르지 않았다. 늦게까지 불이 켜진 사무실, 주말에도 익숙하게 향하던 회사, 늘 급하다고 믿었던 보고서와 일정들. 분명 내 삶의 대부분을 차지했던 시간들이었는데, 그 순간, 하나도 남아 있지 않았다.
그제야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어쩌면 나는 너무 오래, 나를 돌보지 않은 채 살아온 건 아닐까.
아니, 어쩌면 내가 선택한 삶이 아니라 흘러가는 대로 따라가며 살아온 건 아닐까.
그리고 그 시간들이, 결국 나를 여기까지 데려온 건 아닐까.
그때였다. 누군가 들어와 내 손에 조영제를 연결했다.
차가운 감각이 스쳤다. 곧, 온몸으로 퍼져 나갔다.
그 감각을 느낀 후 나는 다시 현실로 돌아왔다.
MRI 기계의 소리가 다시 크게 들려왔다.
“쾅, 쾅, 쾅.”
촬영은 계속되고 있었다. 나는 끝까지 몸을 움직이지 않았다.
그리고 또 한 번, 생각했다.
'이 검사가 끝나면, 나는 어디로 흘러가게 될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