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명의 코드: 한민족, 그 위대한 생존과 진화의 설계

제1부. 코드(The Code) : 한민족의 몸에 새겨진 생명의 각인

by 현욱

제3장. 밥상의 연금술

이처럼 척박한 땅과 끊임없는 위협 속에서, 한민족은 그저 운명에 순응하며 당하고만 있었을까? 유전자에 새겨진 고통의 기억에 굴복하여 스러져 갔을까? 천만의 말씀이다. 생명은 억압하는 힘에 맞서 더욱 치열하게 살아남는 법을 찾아내는 존재다. 우리 조상들은 자신들이 처한 가혹한 운명을 극복할 위대한 해법을 발명해 냈다. 놀랍게도 그 해법은 거창한 기술이나 제도가 아닌, 가장 일상적이고 평범한 공간, 바로 부엌과 밥상 위에 있었다. 우리의 밥상은 단순히 배를 채우기 위한 공간이 아니었다. 그것은 결핍을 풍요로, 부패를 발효로, 고통을 쾌감으로 바꾸는 경이로운 ‘생존의 연금술’이 펼쳐지는 위대한 실험실이었다.


이 실험실의 핵심 기술은 단연 ‘발효(Fermentation)’였다. 특히 수확이 불가능한 길고 긴 겨울을 나기 위해, 늦가을에 수확한 채소를 겨우내 보존하는 것은 생존과 직결된 문제였다. 소금에 절이는 염장법만으로는 부족했다. 채소의 영양 손실을 최소화하면서, 맛과 저장성을 극대화할 새로운 기술이 필요했다. 그 해답이 바로 김치와 각종 장(醬) 문화였고, 그 기술의 중심에는 ‘옹기(Onggi)’라는 위대한 생명공학 도구가 있었다.


옹기는 단순한 저장 용기가 아니다. 그 표면에는 눈에 보이지 않는 미세한 숨구멍들이 있어, 외부의 공기는 통하면서도 물은 새지 않는 절묘한 균형을 유지한다. 이 숨구멍은 김치와 장이 ‘죽지 않고 살아 숨 쉬게’ 만드는 핵심이다. 외부의 산소는 유입되어 유익균의 활동을 돕고, 내부에서 발효 과정 중에 생긴 가스는 밖으로 배출된다. 옹기는 말 그대로 우리 조상들이 흙으로 빚어낸 ‘최첨단 미생물 배양기’였던 셈이다. 이 안에서 인류의 눈에 보이지 않는 위대한 동맹군, 즉 미생물 군단이 우리를 위해 대신 싸워주었다.


김칫독 안에서는 매일 밤 격렬한 전쟁이 벌어진다. 소금에 절여진 배추에 각종 양념이 더해지면, 처음에는 공기 중에 있던 여러 종류의 잡균들이 먼저 번식을 시도한다. 하지만 곧이어 소금과 산소가 부족한 환경에 강한 ‘유산균(Lactic Acid Bacteria)’ 군단이 깨어나 반격을 시작한다. 그들은 배추의 당분을 먹고 젖산(Lactic Acid)이라는 강력한 무기를 뿜어낸다. 독 안의 산성도가 급격히 높아지면, 부패를 일으키는 유해균들은 더 이상 버티지 못하고 전멸한다. 마침내 전쟁에서 승리한 유산균 군단은 배추의 거친 섬유질을 부드럽게 분해하고, 인간의 몸에 유익한 각종 비타민과 유기산을 합성해 내는 연금술을 펼친다. 우리는 그저 배추를 옹기에 담았을 뿐이지만, 그 안에서 미생물들은 부패를 막고(저장성), 영양 흡수율을 높이며(소화성), 새로운 영양 물질까지 만들어내는(기능성) 기적을 행했던 것이다.


이러한 발효의 지혜는 우리 몸속으로까지 이어졌다. 우리의 조상들은 경험적으로 알고 있었다. 땅에서 좋은 작물을 키우려면 밭의 흙(토양)을 비옥하게 만들어야 하듯, 우리 몸이 건강하려면 장(腸) 속 환경을 건강하게 만들어야 한다는 사실을 말이다. 김치와 된장 같은 발효 식품은 장내 유익균에게는 최고의 보급품이었고, 나물과 뿌리채소에 풍부한 식이섬유는 그들의 훌륭한 먹이가 되었다. 이 식단은 우리 장 속에 강력하고 다양한 미생물 생태계, 즉 ‘장내 마이크로바이옴(Microbiome)’을 구축했다.


우리의 장은 땅에 뿌리를 내린 식물처럼, 음식물로부터 영양분을 흡수하는 ‘제2의 뿌리’였다. 이 뿌리가 튼튼해야만 척박한 땅과 부족한 음식으로부터 최대한의 영양분을 짜내어 생존할 수 있었다. 강력한 장내 미생물 군단은 소화를 돕는 것을 넘어, 면역 체계의 70%를 관장하며 외부의 적과 싸웠고, 뇌와 신호를 주고받으며 우리의 감정까지 조절했다. 밥상을 통해 장내 환경을 다스리는 지혜는, 척박한 땅을 이겨내는 또 다른 차원의 농사 기술이었던 셈이다.


밥상의 연금술은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한민족의 정서를 이야기할 때 빼놓을 수 없는 ‘한(恨)’. 억압과 슬픔, 고통이 응축된 이 감정은 우리 민족의 신경계를 끊임없이 짓눌렀다. 이 심리적 고통을 이겨내기 위해, 우리 조상들은 역설적으로 ‘육체적 고통’을 활용하는 놀라운 지혜를 발휘했다. 바로 ‘매운맛’이다.


고추의 캡사이신이 혀의 통증 수용체를 자극하면, 우리의 뇌는 실제 몸이 다친 것으로 착각하고 고통을 줄이기 위해 엔도르핀과 같은 천연 진통제를 분비한다. 엔도르핀은 강력한 쾌감과 안정감을 주는 신경전달물질이다. 즉, 매운 음식을 먹고 땀을 흘리며 느끼는 ‘시원함’의 정체는, 뇌가 스스로 만들어낸 마약과도 같은 보상 물질 덕분이다. 고된 노동의 피로와 삶의 시름을 잊기 위해, 우리 조상들은 밥상 위에서 스스로에게 안전한 형태의 ‘생화학적 처방’을 내렸던 것이다. 이열치열(以熱治熱)의 지혜처럼, 육체의 열기로 마음의 한을 다스리는 것. 이것이야말로 우리 밥상에 숨겨진 가장 뜨겁고 위대한 연금술이라 할 수 있다.


이렇게 한민족은 척박한 땅과 가혹한 운명에 맞서, 자신들의 밥상을 생존과 치유의 도구로 삼는 위대한 지혜를 발휘했다. 발효를 통해 미생물과 동맹을 맺고, 밥상을 통해 제2의 뿌리인 장을 가꾸었으며, 매운맛을 통해 스스로의 마음을 위로했다. 이로써 우리는 생존을 위한 세 가지 원초적 코드, ‘절약’, ‘반응성’, 그리고 ‘연금술’을 모두 몸에 새기게 되었다. 그러나 이 위대한 생존의 코드들은, 이제 우리가 마주한 새로운 시대의 거대한 균열 앞에서 또 다른 운명을 맞이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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