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명의 코드: 한민족, 그 위대한 생존과 진화의 설계

제2부. 균열 : 압축 성장의 몸살, 대한민국이라는 유기체의 비명

by 현욱

제5장. 고립된 세포들

뇌의 신경회로가 만성 스트레스로 망가져가는 동안, 우리 몸에서는 또 다른 형태의 균열이 발생하고 있었다. 과열된 뇌는 생존을 위해 휴식을 갈망하고, 그 휴식을 위해 가장 손쉬운 방법으로 타인과의 연결을 끊어내기 시작한다. 퇴근 후의 약속을 거절하고, 주말 내내 홀로 방안에 머무르며, 점심시간에는 이어폰을 낀 채 혼자 밥을 먹는다. 소진된 에너지를 보충하기 위한 이 고립의 선택은, 단기적으로는 달콤한 휴식처럼 느껴질지 모른다. 그러나 이 고립이 일상이 될 때, 우리의 몸은 번아웃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훨씬 더 원초적이고 치명적인 위험 신호를 감지하기 시작한다. 바로 ‘외로움’이다.


우리는 외로움을 그저 쓸쓸한 감정의 문제로 치부하지만, 우리 유전자는 외로움을 ‘죽음의 가능성’과 동일한 비상사태로 인식한다. 지난 수백만 년의 인류 진화사에서 무리로부터의 고립은 곧 생존의 끝을 의미했다. 홀로 남겨진 개체는 맹수의 첫 번째 공격 목표가 되었고, 식량을 구하지 못해 굶주렸으며, 병들거나 다쳤을 때 돌봐줄 동료 없이 죽음을 맞았다. 오직 끈끈한 사회적 연결망 안에서 서로를 지켜주고 협력했던 개체만이 살아남아 우리의 조상이 되었다. 이 때문에 우리의 뇌와 면역계는 ‘사회적 고립’이라는 신호에 극도로 민감하게 반응하도록 설계되어 있다.


혼자 있는 시간이 길어지면, 우리 뇌는 마치 적진에 홀로 떨어진 병사처럼 극도의 경계 태세에 돌입한다. 세상의 모든 자극이 잠재적 위협으로 느껴지고, 이는 다시 한번 스트레스 대응 시스템인 HPA 축을 가동시킨다. 만성적인 외로움은 만성적인 스트레스와 정확히 동일한 방식으로 우리 몸에 코르티솔을 분비시켜, 혈압을 높이고 심장을 지치게 만든다. 그러나 외로움이 가하는 공격의 진정한 무서움은 면역 시스템을 교란시키는 방식에 있다.


시카고 대학의 저명한 심리학자 존 카시오포 교수의 연구에 따르면, 만성적인 외로움은 우리 면역계의 활동 패턴을 송두리째 바꿔버린다. 고립된 위험 상황을 감지한 우리 몸의 면역계는 다음과 같은 ‘비상 대책’을 수립한다. “곧 외부의 물리적 공격(맹수의 습격이나 적의 공격)이 있을 확률이 높다. 따라서 바이러스 감염을 막는 대비 태세는 잠시 낮추고, 대신 상처를 통해 침투할 세균 감염에 대비해 ‘염증 반응’ 태세를 최고 수준으로 격상하라!”


이것은 인류의 오랜 과거에는 매우 합리적인 생존 전략이었다. 하지만 현대 사회에서 이 전략은 끔찍한 오작동을 일으킨다. 사회적으로 고립된 현대인이 맹수의 공격을 받아 과다출혈을 일으킬 확률은 거의 없다. 대신 감기나 독감 같은 바이러스에 감염될 확률은 훨씬 높다. 하지만 우리의 면역계는 여전히 과거의 기억에 따라 바이러스 방어 시스템(항바이러스 반응)의 스위치를 내리고, 대신 온몸에 불필요한 염증을 일으키는 스위치를 올린다. 외로운 사람이 감기에 더 잘 걸리고 한번 걸리면 잘 낫지 않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동시에, 이 만성적인 염증은 혈관을 타고 온몸을 돌아다니며, 심장병, 당뇨, 알츠하이머, 그리고 암과 같은 모든 현대적 질병의 발생 위험을 극적으로 높인다. 외로움은 단순히 마음을 아프게 하는 것이 아니라, 면역 체계를 교란시켜 말 그대로 우리 몸을 병들게 하는 ‘사회적 질병’인 것이다.


대한민국은 지금 이 ‘사회적 질병’이 무서운 속도로 퍼져나가는 ‘고립의 팬데믹’을 겪고 있다. 전체 가구의 3분의 1 이상이 1인 가구이며, 그 증가 속도는 세계 최고 수준이다. 과거 우리 사회의 끈끈한 안전망이었던 대가족과 마을 공동체는 아파트라는 차가운 콘크리트 벽에 갇혀 해체되었다. 우리는 역사상 가장 많은 사람과 연결될 수 있는 소셜 미디어의 시대에 살고 있지만, 동시에 가장 깊은 고립감을 느끼는 역설 속에 빠져 있다.


아파트 현관문을 열고 나와 누구와도 눈을 마주치지 않은 채 엘리베이터를 타고, 주차장에서 차를 몰고 나와 홀로 사무실 칸막이에 앉아 일하며, 저녁은 배달 앱으로 시킨 음식을 유튜브를 보며 혼자 먹는다. 수백만 명이 모여 사는 거대한 도시 속에서, 우리는 각자 외로운 섬이 되어가고 있다. 이 사회적 고립은 우리 몸의 세포들까지 고립시킨다. 면역 세포들은 서로 신호를 제대로 주고받지 못해 우왕좌왕하고, 뇌세포는 사회적 자극이 부족해 서서히 활력을 잃어간다. 고립된 국가는 쇠퇴하듯, 고립된 개인과 고립된 세포 역시 병들고 스러져갈 수밖에 없다. 이것이 압축 성장의 그늘 속에서, 우리가 잃어버린 ‘연결의 가치’에 대해 우리 몸이 보내는 처절한 경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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