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굴>

여기에 한국 영화와 드라마의 답이 있다.

by PARK

불과 2억원이라는 저예산으로 이렇게 완성도높은 영화를 만들 수 있다는 것은 많은 영화관계자들은 물론이고 드라마쪽 관계자들에게도 시사하는 바가 크다. 솔직히 2억원이라는 제작비는 미니시리즈 드라마 한 회의 주인공 출연료도 안될 정도인 만큼 그동안 한국 콘텐츠 마켓은 글로벌하게 성장해 왔다. 오죽하면 이웃나라 일본의 연기자들이 한국 배우들만큼이라도 출연료를 맞춰 주면 좋겠다고 공공연하게 언론에 이야기를 할 정도가 되었겠는가? 하지만 그렇게 우리 K 콘텐츠는 몸집을 키운 반면에 치밀함과 절박함은 무뎌지고 말았다. 웬만한 대작 영화의 제작비가 200~300억원은 손쉽게 넘어가고 미니시리즈 한 편의 제작비가 150억원에서 400,500억까지 호가하는 상황속에서, 좀 더 정확하게 이야기하자면 돈에 대한 감각이 무뎌졌다고 표현하는 것이 맞을 것이다. 그러나 연상호감독은 바로 이 중차대한 시점에 자신만의 확신을 가지고 수많은 콘텐츠제작자들에게 작품을 통해 사자후를 토해 냈다. “1억 우습게 보지 마라. 제작현장에 가보면 일당 1억원인 스타부터 10만원을 갓넘기는 스탭까지 그야말로 자본주의의 첨예한 계급사회가 펼쳐진다. 합리적일지는 몰라도 과연 그것이 인간적이기는 한 것인가? 우리는 과연 그 가치에 맞는 작업을 하고 있기는 한 것인가?”

<얼굴>은 이미 촬영이 시작되기 전에 제작이 끝났다고 보는 것이 맞을 것이다. 아무리 연기파배우들이 총출동하고 관록의 감독이 현장을 지휘한다고 해도 분단위,초단위까지 계산하는 확실한 제작스케쥴이 짜여져 있지 않으면 감당할 수 없는 제작비이기 때문이다.(주 52시간이라는 제도적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서도 스케쥴은 오히려 더욱 타이트하게 짜여졌을 것이다.) 그렇다면 연감독은 이것을 어떻게 해결했을까? 아마도 철저한 콘티작업과 현장로케이션이 우선이었을 것이고 그 다음으로는 연기자들과의 사전 리딩을 숱하게 하면서 현장에서의 시행착오를 최소화하기 위해 전력을 다했을 것이다. 연기자들은 각자의 공간에서 다시 한번 자신들의 캐릭터를 연구하고 다듬고 몰입하면서 현장에서 슬레이트소리가 나는 순간 언제라도 단 한번의 테이크만으로 오케이사인이 나올만큼 무서운 몰입도와 집중력을 발휘하였을 것이다. 그렇다. 그래서 <얼굴>은 이미 촬영이 시작되기도 전에 제작은 끝났을 지도 모른다는 짐작을 할 수 있는 것이다.

아직도 현장에서 온갖 렌즈필터를 다 껴보면서 가장 아름다운 미장센을 잡아내기 위해 몇 시간씩을 소비하는 예술적 낭만이 있을 수 있고 또 연기자의 포텐을 극한까지 꺼집어내기 위해 수십번의 테이크를 가는 집요함도 있을 수 있다. 하지만 K콘텐츠가 웬만한 타업종의 수출액을 뛰어넘으며 한국을 대표하는 당당한 산업화에 이른 상황에서는 그런 여유들조차 이제는 철저하게 제작비계산에 들어가고 인풋 아웃풋을 따져볼 수 밖에 없는 상황이 되었다. 그리고 스타연기자들에게는 관대하고 스탭들에게는 인색한 제작관행도 이대로 계속될 수는 없다. 그런 면에서 볼 때 이번 <얼굴>프로젝트를 통해 연감독이 보인 일종의 ‘시범’은 콘텐츠의 본질이 무엇이고 그것의 완성도를 효율적으로 높이기 위해서 어떤 핵심에 집중하는 것이 중요한지를 웅변한 대단한 것이었다고 할 수 있다. 아마도 당분간 제작사관계자들은 영화나 드라마관련해서 넷플릭스를 필두로 하는 OTT관계자들과 협상할 때 <얼굴>얘기를 많이 들을 것 같다. “아니 연감독은 지금 제시하신 제작비 10분의 1로 만들었는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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