꿈꾸던 교복, 차가운 현실
새로운 집에서
새로운 시작.
나는 중학생이 되었다.
중학생이 되기 위한 첫 관문은 교복.
교복을 사야만 한다는 사실이
어른이 된 듯한 기분을 안겨주었다.
친구가 많지 않아 늘 텔레비전과 함께 지냈던 나는
브라운관 속에서 반짝이는 교복 광고를 수도 없이 보았다.
깨끗하게 다려진 교복을 입고 웃던 연예인들의 얼굴은
마치 드라마 속 주인공처럼 빛났다.
그 화면을 바라볼 때마다
나도 언젠가는 교복을 입고 새로운 세상으로 나아가리라는
작은 꿈을 꾸곤 했다.
그리고 드디어
그 순간이 찾아왔다.
누나와 함께 들어선 아이비클럽 매장은
새 옷 특유의 빳빳한 냄새와 사람들의 웅성거림으로 가득 차 있었다.
내 또래로 보이는 아이들이 부모님 손을 잡고
거울 앞에서 뽐내듯 교복을 맞춰 입고 있었다.
“하루가 다르게 크니까 교복은 크게 사야지.”
어머니들의 다급한 목소리,
“이렇게 입으면 왕따 당한대.”
투덜거리는 아이들의 불평.
그 모든 소리가 뒤섞여
교복점은 작은 장터처럼 부산스러웠다.
나는 그런 소란을 외면한 채
차례차례 옷을 갈아입어 보았다.
거울 속의 나는 낯설게 보였다.
어제까지만 해도 초등학생이었는데,
교복을 입은 모습은 조금은 어른같고 조금은 어색했다.
그러나 가격표를 본 순간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
‘이걸 꼭 사야 하나.. 너무 비싼데.’
속으로만 중얼거렸지만
어쩔 수 없다는 것도 잘 알고 있었다.
학교를 다니려면 이 옷을 입는 것은 선택이 아닌 의무였다.
나는 고모할머니께 전화를 걸었다.
떨리는 목소리로 가격을 말씀드리자
고모할머니는 잠시 말이 없더니 곧바로 돈을 이체해주셨다.
그러나 그 순간,
전화기 너머에서 스치듯 들려온 목소리.
“아이고, 너무 비싸다….”
“애들 없었으면 쌩돈 날릴 일 없었지…”
고모할머니와 같이 계시던
친구분들 목소리였다.
그 말이 귓속에 맴돌며 머릿속을 시끄럽게 울렸다.
마치 내가 불필요한 짐이라도 되는 듯,
가슴이 갑자기 무겁게 가라앉았다.
나는 얼굴이 굳어졌다.
숨조차 조심스러웠다.
“왜 그래?”
누나가 내 눈치를 살피며 물었다.
나는 조용히 방금 들은 말을 전했다.
누나의 입술이 굳게 다물어졌다.
그 순간, 누나의 표정에서도 서늘한 그림자가 드리워졌다.
짧은 인생이었지만 나는 이미 여러 번 세상 앞에서 위축되어 왔다.
그래서 더 쉽게 움츠러들고 사소한 말에도 흔들리는 사람이 되어 있었다.
아이비클럽 로고가 선명히 박힌 쇼핑백을 들고
아무 말 없이 버스에 올랐다.
창밖으로 흘러가는 하늘은 왠지 더 차갑고 멀게만 느껴졌다.
텔레비전 속에서 반짝이던 교복은 꿈과 설렘의 상징이었을지 모른다.
그러나 내게는 차갑게 식어버린 현실의 무게로만 다가왔다.
중학생의 나에게
너는 생각보다 더 단단해질 거야.
지금은 눈치보고 움츠러들지만,
언젠가 그 경험들이 네 글이 되고,
네 이야기가 되고,
누군가의 마음을 위로할 거야.
32살의 내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