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시절, 우리가 버텨낸 날들》4편

꿈꾸던 교복, 차가운 현실

by 현서

새로운 집에서

새로운 시작.


나는 중학생이 되었다.


중학생이 되기 위한 첫 관문은 교복.

교복을 사야만 한다는 사실이

어른이 된 듯한 기분을 안겨주었다.


친구가 많지 않아 늘 텔레비전과 함께 지냈던 나는

브라운관 속에서 반짝이는 교복 광고를 수도 없이 보았다.

깨끗하게 다려진 교복을 입고 웃던 연예인들의 얼굴은

마치 드라마 속 주인공처럼 빛났다.


그 화면을 바라볼 때마다

나도 언젠가는 교복을 입고 새로운 세상으로 나아가리라는

작은 꿈을 꾸곤 했다.


그리고 드디어

그 순간이 찾아왔다.


누나와 함께 들어선 아이비클럽 매장은

새 옷 특유의 빳빳한 냄새와 사람들의 웅성거림으로 가득 차 있었다.

내 또래로 보이는 아이들이 부모님 손을 잡고

거울 앞에서 뽐내듯 교복을 맞춰 입고 있었다.


“하루가 다르게 크니까 교복은 크게 사야지.”

어머니들의 다급한 목소리,


“이렇게 입으면 왕따 당한대.”

투덜거리는 아이들의 불평.


그 모든 소리가 뒤섞여

교복점은 작은 장터처럼 부산스러웠다.


나는 그런 소란을 외면한 채

차례차례 옷을 갈아입어 보았다.

거울 속의 나는 낯설게 보였다.

어제까지만 해도 초등학생이었는데,

교복을 입은 모습은 조금은 어른같고 조금은 어색했다.


그러나 가격표를 본 순간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

‘이걸 꼭 사야 하나.. 너무 비싼데.’

속으로만 중얼거렸지만

어쩔 수 없다는 것도 잘 알고 있었다.

학교를 다니려면 이 옷을 입는 것은 선택이 아닌 의무였다.


나는 고모할머니께 전화를 걸었다.

떨리는 목소리로 가격을 말씀드리자

고모할머니는 잠시 말이 없더니 곧바로 돈을 이체해주셨다.


그러나 그 순간,

전화기 너머에서 스치듯 들려온 목소리.


“아이고, 너무 비싸다….”

“애들 없었으면 쌩돈 날릴 일 없었지…”


고모할머니와 같이 계시던

친구분들 목소리였다.


그 말이 귓속에 맴돌며 머릿속을 시끄럽게 울렸다.

마치 내가 불필요한 짐이라도 되는 듯,

가슴이 갑자기 무겁게 가라앉았다.


나는 얼굴이 굳어졌다.

숨조차 조심스러웠다.


“왜 그래?”

누나가 내 눈치를 살피며 물었다.

나는 조용히 방금 들은 말을 전했다.

누나의 입술이 굳게 다물어졌다.

그 순간, 누나의 표정에서도 서늘한 그림자가 드리워졌다.


짧은 인생이었지만 나는 이미 여러 번 세상 앞에서 위축되어 왔다.

그래서 더 쉽게 움츠러들고 사소한 말에도 흔들리는 사람이 되어 있었다.


아이비클럽 로고가 선명히 박힌 쇼핑백을 들고

아무 말 없이 버스에 올랐다.

창밖으로 흘러가는 하늘은 왠지 더 차갑고 멀게만 느껴졌다.


텔레비전 속에서 반짝이던 교복은 꿈과 설렘의 상징이었을지 모른다.

그러나 내게는 차갑게 식어버린 현실의 무게로만 다가왔다.




중학생의 나에게


너는 생각보다 더 단단해질 거야.

지금은 눈치보고 움츠러들지만,

언젠가 그 경험들이 네 글이 되고,

네 이야기가 되고,

누군가의 마음을 위로할 거야.


32살의 내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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