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시절, 우리가 버텨낸 날들》3편

세상에서 가장 조용한 졸업식

by 현서

고모할머니가 지내시던 동네에서 새로운 생활이 시작되었다.


우리 집은 마을 입구의 작은 상가건물에 자리 잡고 있었다.

파란색 셀로판지가 붙어 있는 커다란 미닫이문은 낮이면 햇빛을 받아 푸른 물결처럼 반짝였고

밤이면 희미한 가로등 불빛을 머금어 어두운 골목을 파랗게 물들였다.


방학 동안 우리는 동네를 구경하며 시간을 보냈다.


좁은 골목길 건너편에는 허리가 굽은 할머니가 운영하는 작은 구멍가게가 있었고

그 옆엔 흰 철문이 눈에 띄는 2층 주택이 서 있었다.

어쩐지 잘 사는 집 같아 보였다.


길을 따라 조금 더 내려가면 항상 아몬드빵의 고소한 냄새가 퍼지는 빵집이 있었는데

그곳엔 언제나 묵묵히 반죽을 치대는 아저씨가 있었다.


작은 개울을 가로지르는 다리를 건너면 낮은 건물로 된 동사무소가 나왔다.

그 옆 좌우로 높은 돌담이 있는 골목길을 따라 올라가면 중학교가 보였다.

나는 언젠가 저 학교에 들어가면 좋겠다고 마음속으로 빌었다.


새로운 동네에서의 삶은 생각보다 따뜻했다.

우리의 사정을 아시는지 구멍가게 할머니도 빵집 아저씨도

종종 우리집을 찾아와 과자며 크림빵, 시원한 음료수를 건네주셨다.


그렇게 시간이 흘러 나는 6학년이 되었다

누나는 중학교3학년이 되어 친구들과 어울리는 시간이 더 많아졌다.

수업이 끝나면 곧장 아르바이트를 하며 생활비를 보탰다.


나는 그 누구에게도 말하지 못한 비밀이 있다.

우리반에는 보육원에서 온 아이들이 몇 명 있었는데

그 중 덩치 큰 아이 하나가 매일같이 나를 불러세웠다.


“돈 좀 줘”


500원, 1000원.

나에게는 하늘만큼 소중한 돈이었다.


나는 가방을 자리에도 놓기 전에 불려가야 했고

그의 앞에만 서면 다리가 후들거려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반 친구들은 모두 알고 있었지만 누구도 나서서 말리지 않았다.

나는 그저 맞는 게 두려워 주머니 속 동전을 꺼내 내밀 뿐이었다.


하루하루가 지옥같았다.


그리고, 시간이 흘러 졸업식 날이 찾아왔다.

운동장엔 부모님 손을 꼭 잡은 친구들이 꽃다발을 들고 있었다.

손엔 선물, 꽃 그리고 웃음소리가 끊이지 않았다.


나는 누구도 없는 자리에서 교문을 나섰다.

버스비조차 없어 발자국을 질질 끌며 집으로 걸었다.

눈물이 자꾸만 흘렀다.


‘왜 나는 이렇게 불행할까?’


그 한마디가 마음속에서 메아리쳤다.


집에 도착했을 때 집은 고요하기만 했다.

나는 TV를 켜놓고 무심히 화면만 바라보았다.


해가 저물 무렵

누나가 꽃과 작은 케이크를 들고 들어왔다.

누나도 졸업식을 했으니 친구들에게 받은 것 같았다.


그날 우리는 케이크를 나눠 먹으며 작은 목소리로 “졸업 축하해” 라고 속삭였다.

비록 부모님은 오지 않았지만,

그 순간만큼은 세상에 단 둘뿐인 가족이 있음을 확인할 수 있었다.


그렇게 나의 졸업식은 끝이 났다.

눈물로 시작했지만 끝은 조금 따뜻했다.





어린시절의 나에게


졸업식 날을 나는 기억해

혼자 고개를 떨구며 교문을 나서던 너의 뒷모습도

눈물 젖은 발걸음을 끌던 그 길 위에 얼마나 큰 외로움이 앉아 있었는지

나는 다 알고 있어.


네가 버텨주었기에 내가 이렇게 살아있으니까

이제 내가 어루만져줄게.


고마워 살아줘서.


32살의 내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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