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시절, 우리가 버텨낸 날들》2편

돌아갈 수 없는 문을 닫던 밤

by 현서

부모님은 오래전부터 사이가 좋지 않았다.

결국 두 사람은 갈라섰고 누나는 엄마와 나는 아빠와 살게 되었다.

일 년에 한 번쯤은 얼굴을 보며 함께 시간을 보냈다.

그다지 친한 사이도 아니었지만 이상하게도 헤어질 때만 되면 서로를 꼭 붙잡고 눈물을 터뜨렸다.


그 일이 있은 후 우리는 다시 한집에 모였다.

그때 나는 초등학교 3학년, 누나는 6학년이었다.


겨울이 물러가고 봄이 찾아왔다.

방학 내내 누나와 나는 엄마가 남겨두고 간 돈으로 집 앞 마트에 들러 아이스크림을 골라 담았다.

먹고 싶은 만큼 마음껏.

차갑게 혀끝을 파고드는 달콤함에 우리는 까르르 웃음을 터뜨렸다.

부모님이 곁에 없다는 사실이 가끔 가슴을 시리게 했지만,

그 순간만큼은 모든 슬픔을 녹여주는 마법 같았다.


그러던 어느 늦은 밤 문을 두드리는 소리가 집 안 공기를 흔들었다.

나는 알 수 없는 얼굴이었지만 누나의 눈빛은 이미 알고 있다는 듯 얼어붙어 있었다.

불편함이 스며든 눈, 잔뜩 웅크린 어깨, 숨조차 막혀오는 기류.


“앞으로 어떻게 지낼 거니? 학교는 계속 다닐 거니…”


짧게 흩어진 문장이 공기 속에 가라앉았다.

잠시 후, 문이 쾅 닫히며 문이 떨렸다.

계단 아래로 사라지는 발소리에 집 안은 텅 빈 동굴처럼 울렸다.


그 순간 누나는 더는 버티지 못한 듯 울음을 터뜨렸다.


“그 아저씨… 엄마랑 같이 사는 사람이야.”


목소리는 금방이라도 부서질 듯 떨렸다.


“근데…그동안 나를 괴롭혔어, 성추행도 하고… 이제는 집을 나가라고까지 했어.”


나는 숨이 막혀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어린 우리에겐 너무 무겁고 차가운 진실이었다.


새벽넠, 우리는 쇼핑백 몇 개에 짐을 꾸려 들고 나왔다.

겨울의 냉기가 사라지고 봄바람이 살결을 스치며 지나갔다.

그 바람마저 없었다면 우리는 금세 얼어붙어 버렸을지도 모른다.


놀이터의 쇠사슬 그네에 앉아 밤하늘을 올려다보았다.

달빛은 물 위에 번진 기름막처럼 번들거렸고,

별빛은 폭포수처럼 쏟아져 내릴 듯 흘러내렸다.

세상은 그렇게 눈부신데 우리의 마음은 어둡고 서늘했다.


아침이면 목욕탕 김 속에서 피로를 씻어냈다.

낮이면 동네의 골목을 떠돌며 발걸음을 옮겼다.

밤이 오면 아파트 옥상, 건물 지하 같은 낯선 공간이 우리의 침대가 되었다.

시멘트 바닥의 냉기가 등이 닿을 때마다 우리는 서로의 체온을 의지하며 잠들었다.


이주가 흘렀을 무렵 고모할머니와 연락이 닿았다.

그날 이후 우리는 차갑던 길 위의 시간을 끝내고,

비로소 따뜻한 품으로 돌아갈 수 있었다.


달콤했던 아이스크림의 차가움,

어두운 집 안을 울리던 울음소리,

차갑던 시멘트 바닥의 감촉,

그리고 폭포처럼 쏟아지던 별빛.


그 모든 것이 아직도 내 마음 깊은 곳에서 뒤엉켜 빛나고 있다.





10살의 나에게,


문을 두드리던 그 불청객의 그림자와,

누나의 떨리는 고백,

별빛조차 위로가 되지 못하던 그 어둡고 서늘한 밤들을

나는 다 기억하고 있어.


하지만 기억해

그 추운 밤 너는 울면서 달빛을 올려다보았지.

너는 세상의 빛을 놓치지 않았어

그건 네가 얼마나 단단하고, 얼마나 살아내고자 했는지를 말해주는 증거야.


너의 눈물은 결코 헛되지 않았어

그 울음이 있었기에 지금의 내가 존재해.


오늘 밤 네가 그네에 앉아 하늘을 올려다본다면,

기억해 줘

멀리서라도 32살의 내가 너를 안아주고 있다는 걸

너는 혼자가 아니야

한 번도, 단 한순간도.


32살의 내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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