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부 1장. 이혼 후 잃어버린 깊은 수면

- 하루를 끝내지 못하는 시간들 -

by 하율

아이를 재우고 나면 집 안은 조용해진다.


불은 꺼져 있고, 해야 할 일도 끝났는데,
몸은 좀처럼 으로 들어가지 못한다.


이혼 이후 만난 30대 어머니의 밤은 늘 그런 식이었다.


낮 동안은

아이를 챙기고,

일을 하고,
해야 할 말을 삼키며 하루를 버텼다.


문제는 이었다.


잠자리에 누우면 그날 하루가 정리되기보다는,
미뤄 두었던 책임선택들이 한꺼번에 떠올랐다.


잠은 쉬는 시간이 아니라,
계산과 걱정이 몰려드는 시간처럼 느껴졌다.


상담 초기에 그녀는 자주 말했다.
“잠이 안 와요.”

그러나 그 말은,
잠이 전혀 오지 않는다는 뜻과는 조금 달랐다.



자세히 들여다보면
그녀는 잠을 전혀 자지 못하는 상태는 아니었다.


눈은 감겼고, 잠은 오긴 했다.
다만 깊어지지 않았고, 자주 끊어졌다.


새벽이면 다시 일어날 시간보다 훨씬 이르게 눈을 떴다.
그때 그녀는 다시 잠들려 애쓰기보다는
조용히 휴대전화를 켜거나,
부엌으로 나와 물을 마셨다.


밤은 그렇게 잘게 끊어져 있었고,
하루는 완전히 끝난 적이 없었다.


상담자가 처음으로 관찰한 것은
밤이 시작되지 않는 느낌이었다.


하루가 끝났다는 감각이
몸까지 도달하지 못한 상태.


아이를 재운 뒤에도
그녀의 어깨는 여전히 낮의 자세를 유지하고 있었다.


보호자의 자세,
책임자의 호흡,
다음 날을 미리 준비하는 긴장.


불을 끄는 행위는
잠을 부르는 신호가 되지 못했고,
오히려 혼자가 되었다는 사실을 더 또렷하게 만들었다.



그녀는 밤에 가장 많이 생각했다.


그러나 그 생각들은 감정의 언어라기보다
목록에 가까웠다.


해야 할 일,
놓치면 안 되는 것,
혼자 결정해야 하는 문제들.


“내가 이걸 제대로 하고 있는 걸까.”
“혹시 놓친 건 없을까.”


밤이 깊어질수록
생각은 마음을 향하기보다
계산을 향했다.


상담 장면에서도 마찬가지였다.


“요즘 힘드세요?”라는 질문에는 잠시 멈췄지만,
“다음 달 계획은요?”라는 말에는 바로 답했다.


밤에도 감정은 분명 존재했다.
다만 말로 정리되지는 않았다.


대신 이 먼저 반응했다.


잠이 얕아지고,
자주 깨고,
아침에는 늘 피로가 남아 있었다.


감정이 흘러가지 못한 자리에서
몸이 대신 신호를 보내고 있었다.



몇 회기 지나면서

또 하나의 반복을 발견했다.


그녀는 잠들기 전,

아이 방을 여러 번 확인했다.


이미 잠든 아이의 숨소리를 확인하고,
이불을 고쳐주고,
다시 자신의 방으로 돌아왔다.


이 행동은 단순한 불안의 표현이라기보다,
하루를 끝내지 못하게 붙잡는 마지막 연결 고리처럼 보였다.


아이를 재워야 하루가 끝난다.
그러나 아이가 완전히 잠든 순간부터
그녀는 혼자가 된다.


그래서 밤은 쉼의 시간이 아니라,
관계가 끊어지는 시간이었다.



상담이 진행되면서
그녀의 밤은 극적으로 변하지 않았다.


어느 날 갑자기 깊은 잠을 자게 되지도 않았고,
불면이 사라졌다고 말하지도 않았다.


대신 아주 미세한 변화가 관찰되었다.


새벽에 깨더라도
바로 휴대전화를 켜지 않고
잠자리에 다시 머무르는 시간이 조금 늘어났다.


잠들기 전
아이 방을 확인하는 횟수가 줄었다.


어떤 날은 상담 중에 이렇게 말하기도 했다.
“어제는… 그래도 조금 쉬었다는 느낌이 있었어요.”


그 말은 수면 시간의 변화가 아니라,
밤을 대하는 태도의 이동을 보여주었다.


처음에는
“못 잤어요”라는 말이 많았다면,

어느 순간부터는
“중간에 깨긴 했는데요”라는 말이 나왔다.


완전한 휴식은 아니었지만,
밤 전체를 실패로 규정하지 않게 된 것이다.



이 사례에서 상담자가 오래 바라본 것은
내려놓지 못한 이유가 아니었다.


내려놓지 못한 상태로
얼마나 오래 버텨왔는지를
함께 보는 일이었다.


깊은 잠을 잃은 밤은
게으름이나 관리 실패의 결과처럼 보이지 않았다.


오히려 너무 오랫동안
혼자서 하루를 책임져 온몸이
아직 쉬는 법을 배우지 못한 상태에 가까웠다.


그녀의 밤은 여전히 깊지 않았다.


그러나 어느 순간부터 밤은
더 이상 계산만의 시간이 아니었다.


가끔은 멍하니 누워 있는 시간이 생겼고,
아무것도 하지 않은 채 시간을 보내는 밤도 있었다.


그 시간들은 생산적이지 않았지만,
하루가 조금씩 끝나고 있다는 신호처럼 보였다.


이 사례에서 불면
해결되어야 할 문제라기보다,

삶의 구조가 바뀐 뒤
몸이 새 리듬을 찾는 과정에 가까웠다.


밤은 가장 늦게 따라오지만,
가장 솔직하게 현재를 드러낸다.


그녀의 밤은 아직 완성되지 않았다.


다만 더 이상
홀로 견디는 밤만은 아니었다.



2.5.성인.JPG

밤은 조용히 제 자리를 찾는다. 사진-돌그릇 안의 수련




오늘의 명상


오늘 하루를 다 살아낸 나에게,
이 밤은 계산이 아니라
내려놓음으로 남아도 괜찮다.




《감정도 잠이 필요하다》 1장. 이혼 후 잃어버린 깊은 수면

화요일 연재
이전 15화3부로 들어가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