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유의 잔향> Episode 4
부제: 장면전환
그 길은
삶처럼 멀리 이어지는 길이라고 믿었지만,
막이 오른 그 순간을 위해
잠시 깔아놓은 짧은 카펫에 더 가까웠다.
햇살처럼 쏟아지는 조명 아래,
향과 색이 배경을 채우며
마치 영원을 연출하는 듯했지만,
단 몇 걸음을 내딛고 나면
그 끝에 닿아 있었다.
그 끝이 새로운 시작을 의미한다고 믿었는데,
돌아보면 그 시작은
이미 한 장면의 막이 내리는 자리이기도 했다.
그곳은 감정의 지속을 보증하는 장소가 아니라,
감정이 형식으로 변환되어
잠시 머무는 의식의 무대였다.
사랑의 영원을 담아내는 공간이 아니라,
사랑이라는 감정이
의식의 구조 속에서
잠시 모습을 드러냈다 사라지는
짧은 머무름의 장소였다.
버진로드의 끝에서,
사진 속에 영원히 남을 것처럼 보이는
두 사람의 모습이 한 장면을 이루지만,
셔터가 닫히는 찰나,
그 장면은 더 이상 ‘둘’의 순간이 아니라
‘여러 세계가 겹쳐지는 자리’로 변한다.
의식의 무대에서 내려오는 즉시,
두 사람은 사랑의 결속이 아니라
가족이라는 구조 속의 자리로
천천히 스며들었다.
잠시 전까지만 해도 하나의 선으로 걷던 발걸음이
그 순간부터는 여러 방향의 발걸음과 얽히고,
많은 것을 받아들이기 위해
그만큼 많은 것을 내어놓아야 했다.
그때부터 무엇을 얻었는지,
무엇을 잃었는지조차
쉬이 단정할 수 없었다.
삶은 여러 방향으로 부풀어 오르는 듯했지만,
그만큼 조금씩 접히고 줄어들며
비켜 서야 하는 자리도 많아졌다.
하나의 세계가 확장될 때마다
또 다른 세계는 조용히 압축되었고,
확장과 수축은 마치
눈에 보이지 않는 호흡처럼
서로를 밀고 당기며 반복되었다.
펼쳐지기도, 접히기도 하며
삶 전체를 서서히 재배열해 가는,
이전에 없던 경험이었다.
오늘의 잔향 — Nils Frahm, “Ambre”
(이 글을 쓸 때 흐르던 음악)
감정이 걷던 길은 짧았고,
구조가 시작된 길은 길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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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혜미, 『은유의 잔향』 중에서. 인용 시 출처 표기 필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