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를 갈망하는 모든 청춘의 로망, 오토바이 초보 탈출기
국민학교(나는 초등학교가 아닌 국민학교를 다녔다.)도 입학하기 전의 일이다.
친척 중에서 나를 가장 아끼고 귀여워해 주셨던 분은 큰 외삼촌이었다. 늘 무뚝뚝하기만 했던 아버지와 달리 목마도 태워주고 딱지치기나 술래잡기와 같은 놀이도 잘해주셨기에 나는 큰 외삼촌을 무척이나 좋아하고 따랐다.
큰 외삼촌은 작은 건설 회사를 운영하셨는데 포마드를 잔뜩 발라 넘긴 올백 머리에 라이방(RAYBAN) 선글라스를 즐겨 쓰시곤 했다. 동네 어귀에서 친구들과 놀고 있을 때 삼촌의 검은색 그라나다가 나타나면 나는 온 동네 꼬맹이들의 부러움을 한 몸에 받았으며, 친구들 앞에서 500원짜리 지폐라도 꺼내주시기라도 하면 그날은 내가 골목대장으로 등극하는 순간이 되었다.
큰 외삼촌은 물론 세련된 스타일의 외숙모, 그리고 사촌 형과 누나도 나를 제법 귀여워해 주었으며, 진귀한 음식과 외제 과자들을 맛볼 수 있어서 삼촌 댁에 놀러 가는 것이 늘 즐거웠다. 큰 외삼촌 댁은 넓은 마당이 있는 2층 양옥집으로 1층과 2층을 한 100번은 오르내리며 온 집안을 휘젓고 다니다가 결국에는 엄마에게 제지당하고 밖으로 쫓겨나기 일쑤였다.
그렇게 마당으로 쫓겨나면 영롱하게 빛을 발하는 빨간색 혼다 오토바이(CG125로 추정)가 나의 놀이기구가 되곤 했다. 운이 좋으면 당시 고등학생이었던 형이 오토바이에 나를 태우고 동네를 한 두 바퀴 돌아주었다.
형은 자신이 오토바이를 태워준 것을 절대 비밀로 한다는 약속(그 약속을 지금까지 지켜왔다.)을 나에게 받아낸 후에야 태워주었는데, 그때까지 청룡열차 한 번 타보지 못한했던 나에게 오토바이가 주는 속도감과 시원한 바람의 청량함은 그야말로 오감을 마비시키는 신세계를 맛보게 해 주었다.
내가 국민학교에 입학하던 해, 몹시 춥던 어느 겨울밤, 우리 집에 일가친척들이 모여서 큰 외삼촌을 걱정하는 이야기를 나누는 것을 나는 잠결에 들었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무척이나 야위어지신 삼촌을 2~3번 병문안 한 것을 끝으로 더 이상 만날 수 없었다. 남은 가족은 지방으로 이사를 가버려 형과 누나도 명절에나 가끔씩 만나게 되었으며, 오토바이 또한 다시는 탈 수 없었다.
이 기억이 나를 바이크로 이끌었는지도 모른다. 하지만 성인이 되어서도 어머니의 성화로 바이크는 로망으로만 남아 있을 뿐이었다. 이제 팔순을 훌쩍 넘기신 어머니는 아직도 오토바이를 자살도구쯤으로 여기고 있어서 바이크를 구입한 지 6년이 넘은 지금까지도 걱정 많은 노모에게는 비밀로 하고 있는 실정이다.
가족의 우려와 걱정, 경제적인 문제, 시간 여유 등등의 이유로 버킷 리스트에만 머물러 있던 바이크를 현실로 끄집어낸 것은 내 나이 마흔 중반을 훌쩍 넘긴 때였다.
불혹의 나이에 대학원 공부를 시작한 나는 2년간 새벽부터 늦은 밤까지 직장과 학교를 오가며, 석사 학위기를 하나 받았다. 진작에 박사과정을 포기한 나는 허무함과 공허함 속에 새로운 도전을 갈망하게 되었다. 2종 소형 면허를 따야겠다고 마음먹은 게 이때 즈음이다.
지금도 마찬가지지만 내 주변에는 바이크를 타는 사람이 전혀 없다. 운전은 물론 바이크에 대한 기초 상식을 배울만한 사람이 아무도 없었다. 그래서 차로 30분 이상을 가야 하는 운전면허학원에 주말반을 수강 신청했다. 나의 담당 강사는 무뚝뚝하고 재미없는 분으로 시범 한번 보여주고는 알아서 타라는 식이었다. 2번의 낙방과 우여곡절 끝에 면허를 딴 날은 대학에 합격 통보를 받았을 때보다 더 기뻤다. 나는 지금도 운전면허증에 박힌 ‘2종 소형’이라는 글자가 너무나 자랑스럽다.
이렇게 2종 소형 면허를 취득하고부터는 용돈을 쪼개가며, 5년이 넘는 시간 동안 차곡차곡 바이크 구입 자금을 모았다. 집사람과 가족에게 바이크를 사겠다고 선언했고, 와이프는 “능력 있으면 사. 사고 싶으면 사야지”라며 시니컬한 반응을 보일 뿐 크게 반대하지는 않았다. 아마도 나 같은 구두쇠가 제법 비싼 바이크를 살 거라고는 생각하지 못했을 것이다.
실제로 집사람의 예상처럼 바이크를 선택하고 실제 계약으로 이어지기까지는 망설임이 많았다. 사실 나는 면허만 있을 뿐, 대학시절 스쿠터를 탄 것 외에는 매뉴얼 바이크의 경험이 전혀 없었다. 그나마 면허도 간신히 땄는데 무턱대고 구입했다가는 먼지만 자욱이 쌓인 채 주차장에 방치될 것이 자명했다. 그래서 1년 넘도록 결정을 미룬 채 아쉬운 대로 각종 정보를 수집하고 유명 유튜버들의 영상을 보며, 만족하며 지냈다.
2020년 5월 드디어 바이크 구입 계약서에 도장을 찍었다. 혼다 레이블을 예약했으나 출고까지 최소 6개월을 기다려야 한다는 답변을 듣고 바로 포기(판매자들의 불친절이 빠른 포기의 결정적 계기)하고 BMW F800GT를 구입했다.
바이크 구입이 급진전된 것은 둘째 아이 때문이었다. 이즈음은 둘째 아이가 중학교를 다니던 시기였다. 평소 온순하고 얌전했던 아이가 중학교에 들어가면서 그야말로 엉덩이에 뿔난 망아지처럼 돌변해 모두를 힘들게 했다. 매일 엄마와 싸우는가 하면 하루 종일 자기 방에 틀어박혀 꼼짝 않고 누워 핸드폰만 들어야 보는 나날의 반복이었다. 그동안 바쁘다는 핑계로 한동안 신경을 쓰지 못했던 철없는 아들에 대한 미안함과 연민에 보다 많은 시간을 함께 보내면서 바람이라도 쐬어주어야겠다는 생각에 과감하게 바이크 구입을 결정한 것이다.
아이와 함께 즐기는 라이딩은 그냥 좋다. 세나를 달아 통신이 가능하지만 아들놈은 출발해서 목적지에 도착할 때까지 음악만 듣는다. 심지어 말을 걸면 “음악 듣는데 왜 끊느냐”고 짜증을 낸다. 그래도 나는 즐겁기만 하다.
하지만 바이크 구입 6년 차의 경력에도 불구하고 아이를 태우는 것은 여간 겁이 나고 부담되는 일이 아니다. 내 바이크의 공식 공차 중량이 213kg이다. 내 몸무게를 빼더라도 여기에 3박스를 모두 달고 기름을 가득 넣은 후 아이까지 태우면 300kg에 육박하는 무게를 감당하기 쉽지 않다. 그래서인지 아이와 함께 라이딩을 한 날은 혼자 탈 때보다도 더 녹초가 되곤 한다. 텐덤을 하는 아이도 힘들기는 마찬가지인지 1시간 이상 거리는 타지 않겠다고 선언하기도 했다.
이 녀석이 지금은 어느덧 대학생이 되어 함께 할 시간이 거의 없어지고 말았다. 더 많은 시간을 함께하지 못한 것이 또 아쉽고 미안하다.
하지만 나에게는 이제 초등학교 2학년인 늦둥이 셋째 아이가 있다. 이 녀석은 한 겨울에도 오토바이를 타는 것이 전혀 춥지 않고 재미있다고 한다. 심지어 10시간도 탈 수 있다고 호언장담을 한다.
이제 우리 막둥이가 조금 더 자라면 전국 일주를 함께할 계획이다. 그리고 더 욕심을 부린다면 아들 셋과 함께 오토바이로 세계 일주에 나서고 싶다.
나는 이 목표를 이루기 위해 위해 더 공부하고 연습을 게을리하지 않을 것이며, 건강과 체력 관리에도 더욱 신경 쓰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