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은 왜 광속 질주에 열광하는가?
41억 년 전에서 38억 년 전, 지구에 최초의 생명체가 출연했다. 단세포인 이 유기체는 오랜 시간 동안 진화하며, 4억 200만 년 전에는 척추동물로 진화했다.
이들 척추동물은 다시 5,500만 년 전을 전후한 시기에 최초의 영장류가 되었고 4,000만 년 전에는 아프리카 대륙에 원숭이가 등장했다. 이들의 뒤를 이어 2,000만 년 전에는 유인원의 조상이 등장했으며, 400만 년 전에서 200만 년 전 사이에 비로소 진정한 우리의 조상이라 할 수 있는 오스트랄로피테쿠스, 호모 에렉투스, 호모 사피엔스가 차례로 등장하면서 인류의 계보를 이었다.
인류의 진화 과정은 직립보행이라는 독특하면서도 혁신적인 변화를 통해 시작되었다.
직립보행으로 자유로워진 손은 도구 사용에 적합한 형태로 진화했으며, 본격적인 도구의 사용은 계획적인 육식의 시대, 즉 나무에서 내려와 무기를 만들어 사냥하는 수렵혁명의 시대로 접어들게 된 것이다.
죽은 동물의 사체를 뜯어먹는 것에 만족해야만 했던 나약한 인류는 도구의 사용이라는 혁신을 통해 먹잇감을 더 효율적으로 사냥할 수 있게 되었을 뿐만 아니라 본격적으로 불을 활용한 조리를 통해 각종 바이러스와 기생충으로 인한 질병과 죽음까지 상당 부분 방지할 수 있게 되었다.
인류는 신선한 단백질 공급원의 확보와 안전하고 위생적인 영양원의 공급으로 강한 체력과 우람한 체격, 그리고 더 커진 용량의 뇌를 갖게 되었으며, 또한 생존을 위한 필수 조건인 먹이 활동의 불확실성이 어느 정도 제거됨에 따라 비로소 인류는 계획적이고 예측 가능한 삶을 영위할 수 있게 되었다.
이로써 인류는 여느 동물과는 다른 진화와 발전의 길을 걷게 되었으며, 노동력 향상은 효율적인 경제 활동과 경제적 잉여 가치의 창출로 이어져, 집단정주(集團定住)와 농경목축(農耕牧畜) 사회로의 이행을 이루었다. 지구상의 새로운 최상위 포식자가 탄생하는 서막이 열린 것이다.
그러나 이처럼 장엄하고도 위대한 인류 진화의 대서사시가 바이블이 될 수 없듯이 인간 또한 신(神)이 아닌, 종·속·과·목·강·문·계의 생물 분류 체계에 속하는 동물에 지나지 않는다.
또한, 인류는 육식을 선호하는 잡식성 동물임에도 불구하고 다른 맹수가 가지고 있는 강한 턱이나 날카로운 이빨과 발톱이 없다. 뿐만 아니라 포식자의 공격으로부터 피해를 최소화할 수 있는 두꺼운 가죽이나 뿔과 같은 최소한의 보호장치도 없고, 하다못해 토끼나 다람쥐만큼 민첩하지도 못한 나약한 존재에 지나지 않는다,
모든 생명체의 진화 과정이 결국, 주변 환경에 적응하며, 생존과 번식에 필요한 최적의 신체 구조로 변모해 가는 과정임을 감안할 때, 높은 지능과 도구를 사용할 줄 아는 능력이 인류 스스로를 허약하고 열등한 신체로 퇴화시켰는지도 모른다.
그러나, 인류는 이러한 핸디캡을 극복하기 위해 더 강력하고 빠른 속도를 내는 무기와 각종 도구를 만들어 스스로 보호하고 더 생산성을 높여왔다.
여하튼 인류는 동물을 사냥하기 위한 강력한 이빨과 발톱 대신 창과 화살을 발명했으며, 재빠른 사슴이나 토끼를 따라잡기 위해 강한 허벅지 근육과 심장을 키우는 대신 개나 말을 길들여 이용했다. 그리고 물고기를 잡기 위해 오랜 시간 수영할 수 있는 아가미나 물갈퀴를 갖는 대신 뗏목과 작살을 발명해 냈고, 맹수의 공격으로부터 연약한 피부를 보호하기 위한 두꺼운 털가죽 대신, 갑옷을 만들어 입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육체적으로 나약하고 불완전한 인류에게는 여전히 200만 년 전 오스트랄로피테쿠스의 잠재의식이 남아있는 듯하다. 올림픽만 봐도 뛰고, 오르고, 던지는 행동을 기본으로 하는 종목들이 주를 이룬다. 물론 전쟁을 위한 무력시위의 한 단면이 고대 올림픽 종목들의 전형이라지만 이 또한 원시시대의 사냥과 생존본능의 연장선일 것이다. 이제 막 나무 위의 안전한 생활을 정리하고 땅으로 내려온 우리 조상들에게 세상은 더 큰 진화를 위한 도전이면서도 공포 그 자체였을 것이다. 이럴 때 공포를 이길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무작정 달리는 것이었을 것이다.
맨몸으로 맹수의 추격과 공격에 맞서야 한다는 것은 죽음의 문턱을 넘나드는 것으로 인간이 경험할 수 있는 가장 큰 공포와 스트레스일 것이다. 이것을 극복한 후의 안도감은 그 어떤 쾌감과도 비교할 수 없음을 쉽게 짐작할 수 있다.
게다가 맹수보다도 더 빠르고 강력한 도구를 이용함으로써 공포 자체를 제거해 버린 단계에 이르면서 인류는 빠른 속도가 주는 쾌감과 함께 자신감과 우월감까지 더해지면서 더 강력한 속도를 갈구하게 되었을 것이다.
이처럼 인류는 무한한 자연과 약육강식의 생태계에서의 생존, 그리고 공포의 극복과 탈피를 위한 거의 유일한 방어기제였던 무작정 달리기의 기억이 현생 인류의 무의식과 DNA에 남아 그토록 광속 질주에 열광하는 것으로 생각된다. 내연기관의 엔진이 내뿜는 심장박동과도 같은 진동과 굉음에 흥분하게 되는 것도 이러한 이유 때문일 것이다.
자동차나 바이크 시트에 앉기만 하면 마치 본능처럼 엑셀레이터를 밟거나 스로틀을 과도하게 당기는가 하면, 평소 얌전하던 사람이 핸들만 잡으면 포악해져 옆 차의 추월이나 끼어들기에 과민 반응을 보이고, 욕설을 내뱉는 사람이 있다. 이러한 양태는 맹수에 쫓기던 우리 원시 조상의 공포와 생존본능이 잠재의식을 뚫고 표출된 것으로 아직 오스트랄로피테쿠스의 본성에서 벗어나지 못했다는 반증일 것이다.
공교롭게도 현대 사회는 동물적 본능을 자제하고 공동의 이익과 안전을 보장하는 방향으로 규범과 제도를 발전시켜 왔다. 이를 어기고 본능에 따른다면 공포에 질린 미개인이라는 비판과 낙인은 물론, 사법적 제재까지도 받게 된다.
만인을 위한 도로는 맹수에게 쫓기는 정글도, 생존을 위한 사냥터도 아니다. 이제 도로에서는 원시 조상들의 공포가 만들어 낸 동물적인 본능을 버리고, 이성적으로 자신의 실력에 맞게 안전 속도를 지키는 현명한 라이더가 되어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