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편소설] 눈꽃 날리던 봄날의 산책

by 배용현


1

나는 이제 많이 지쳤다. 오늘 밤을 넘기기 힘들다는 것을 진작부터 직감하고 있었다. 열흘이 넘게 열이 내리지 않고 하루에도 몇 번씩 피를 토하고 있다.

‘뭐든 먹어야 한다. 배 속에 아기를 무사히 낳으려면 뭐든 먹어야 한다.’

나는 아기를 위해 어쩔 수 없이 금단의 열매에 다시 손을 대고 말았다. 며칠 전까지 만발했던 꽃잎은 어느덧 다 떨어지고 꽃 몽우리 속에 감추어졌던 옆은 연두색의 열매가 속살을 드러내고 있다. 메추리 알 보다 조금 작은 이 열매를 입에 넣고 깨물면 흰색의 진액이 흘러나온다. 쌉싸름하면서도 시큼한 이 진액이 입안을 돌아 목을 타고 내려가면 기침과 고통이 사라지고 더 이상 배가 고프지도 않다. 고통과 배고픔이 사라지면 나도 모르게 깊은 잠에 빠져든다. 이렇게 잠이 들면 늘 같은 꿈을 꾼다. 어릴 적 헤어진 엄마와 동생들의 웃는 모습, 고향 집의 넓은 마당과 짧았지만 즐겁기도 슬프기도 했던 서울살이, 그리고 가족들과 이별하던 장면이 서로 뒤엉키며, 나를 울게도, 웃게도 한다.

늘 이렇게 잠이 들면 다음날 아침이 되어서야 잠에서 깨어나곤 했다. 그래서 우리는 이것을 금단의 열매라고 불렀다. 유독 먹을거리를 구하기가 힘들었던 지난 겨울은 이 금단의 열매에 의지한 채 꿈인지 현실인지 구분할 수 없는 하루하루를 버텨야만 했다.

이곳에 살기 시작한 건 지난해 가을부터다. 인적 없는 깊은 산속에 버려진 폐가가 바로 우리의 보금자리다. 집이라기보다는 버려진 움막으로 담은 반쯤 무너진 채 걸쳐있고 여기저기 구멍 난 슬레이트 지붕은 비와 바람을 간신히 피할 수 있는 정도였지만 그나마 산짐승을 막아주기에는 이만한 곳이 없었다.

나는 이 집에서 K와 S 그리고 P와 함께 살았다. 처음 이 집을 찾아낸 것은 K였으며, 두 살 터울의 남동생인 S, 그리고 나보다 한 살이 많은 언니인 P가 차례로 합류해 올해까지 추운 겨울을 세 번이나 함께 보냈다고 한다.

오갈 데 없이 버려진 나를 이곳으로 데려와 보살펴 준 것도 K였다. 나 보다 두 살이 많은 이 사내는 긴 다리와 목선이 매력적이었다. 한참을 자르지 않은 노란색의 머리카락은 코까지 가릴 정도로 길게 늘어섰다. 조금씩 고개를 움직일 때마다 드러나는 짙은 쌍꺼풀과 그 속에 또렷하게 박힌 진갈색의 눈동자는 항상 밝게 빛나고 있었다.

이곳에 처음 들어온 날, 나는 열흘 밤낮을 앓아누운 후에야 간신히 정신을 차렸다.

“이제 좀 정신이 드나?”

물끄러미 나를 내려다보고 있는 흐릿한 K의 모습과 함께 힘차고 또렷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응.. 그런데 여기가 어디야?

”이곳은 우리의 집이다. 네가 원한다면 우리와 함께 살아도 되고 싫다면 이대로 떠나도 좋다. 다만, 이곳에서 우리와 함께 살려면 우리의 룰을 따라야 한다.

“그 룰이 뭔데?”

“모든 과거를 잊고 우리 공동체를 위해 사는 것이다.”

“그게 어떻게 사는 건데?”

“.....”

K는 아무 말도 없이 등을 돌려 창밖으로 시선을 돌렸다. 어느새 내 옆으로 다가와 앉은 P가 나의 몸을 닦아 주며 속삭이듯 설명해 주었다.

“너도 잘 알겠지만 K는 우리의 보스야. 보스가 시키는 대로만 잘하면 넌 이곳에서 새로운 삶을 살 수 있어.”

그리고 그녀는 S를 돌아보며, 말을 이었다.

“S는 너보다 어리니까. 니가 누나가 되겠다. S는 우리들 중에 제일 날렵해서 거의 우리를 먹여 살리고 있다고 하도 과언이 아니지. 그리고 나는 S라고 해. 남자들 틈바구니 속에서 나 혼자 외롭고 힘들었는데 네가 와줘서 너무 기쁘다. 나도 여기 오기 전에는 제법 잘 나갔는데...”

P는 K의 눈치를 보면 말꼬리를 흐리며 조용히 뒷걸음질로 밖으로 나가버렸다. 방 안에 단둘이 남게 된 K는 다소 못마땅한 표정을 지으며, 퉁명스럽게 말했다.

“과거는 잊어라. 그리고 우리 모두는 서로의 안전과 생존을 위해 똘똘 뭉쳐야 한다. 내일 새벽부터는 먹을 것을 구하러 아랫마을로 내려갈 테니까 오늘은 그만 푹 쉬도록 해. 고단한 하루가 될 거다.”

K가 말을 마치고 나가자 문밖에서 우리의 대화를 지켜보던 S가 살며시 들어와 내 귀에 입을 바짝 붙이고는 낮은 목소리로 속삭였다. K의 나지막하면서도 굵은 목소리와 달리 높고 찢어지는 듯한 음성이었다.

“난 S야. 우리 식구들의 행동대장이라고 할 수 있지. K가 먹잇감을 포착하면 내가 달려가서 무슨 수를 써서라도 그걸 가져오고 만단 말이야. 난 달리기를 아주 잘하거든.. 그리고 이 산과 아랫마을 그리고 저 먼 산 넘어 도시도 나는 쫙 꾀고 있으니까. 혹시 필요한 게 있으면 언제든 말만 해. 내가 다 구해다 줄게.”

S의 속삭임에는 한숨 섞인 미세한 떨림이 있었다. 온몸에 소름을 돋게 하는 차가운 목소리였다.

다음날 나는 요란한 새소리에 잠을 깼다. 따사로운 햇볕이 방안까지 드리우고 있었다. 마당에는 모든 식구들이 이미 준비를 마치고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내가 기지개를 켜며 방문을 나서자 K가 큰소리로 호통을 쳤다.

“내 말을 벌써 잊었나! 너도 우리 가족이 되려면 함께 도와야 한다. 빨리 따라와!”

K의 역정에 나는 어찌할 바를 몰라 고개를 숙인 채 그 자리에 멍하니 서 있었다.

“K가 왜 유독 너한테만 저렇게 화를 내는지 모르겠단 말이지.. 내일부터는 일찍 일어나서 미리 준비하도록 해”

위로인지 야유인지 모를 P의 말을 들으며, 조용히 그들의 뒤를 따라갔다.

우리는 산 아래로 한참을 달려 마을에 언저리에 도착했다. 마을 전체가 내려다보이는 언덕에는 장승 두 개가 우뚝 솟아 있었고, 거대한 돌무지에 둘러싸인 거목이 버티고 있었다. 이루 셀 수 없이 많은 알록달록한 천 조각으로 장식된 이 나무는 바람이 불 때마다 요란한 소리를 내며, 스산한 분위기를 자아냈다. 사방이 산으로 둘러싸인 중앙의 평지에 들어선 마을은 논과 밭이 사이로 커다란 뱀이 지나간 자국처럼 실개천이 흐르고 있었다. 그 옆으로는 좁은 신작로가 놓여 있었는데 그 사이로는 마치 공깃돌을 아무렇게나 던져 놓은 것처럼 중간중간에 예닐곱 채의 크고 작은 집들이 흩어져 있었다.

마을을 굽어보던 K의 눈이 마치 맹수의 그것처럼 마을 초입에 있는 한 집을 응시하며, 명령을 내렸다.

“너무 깊이 들어가면 빠져나올 때 발각될 수도 있다. 여기에서 가장 가까운 저 집으로 향한다. S와 너는 나를 따르고 P는 고개 중턱 바위 뒤에서 망을 본다. 너는 마당에 대기하고 있다가 나랑 S가 넘겨주는 물건을 이곳으로 옮기면 된다. 그럼 지금부터 최대한 조용히 이동한다.”

우리는 숨죽이며, 가능한 빠른 걸음으로 언덕 아래 첫 번째 집으로 향했다. 다행히 대문이 열려있어 쉽게 집 안으로 들어갈 수 있었다. K는 부엌과 거실에서 찾아낸 생선과 고기를 나에게 전달했다. 나는 이것을 언덕 위의 서낭당에 숨겨 두고는 다시 그 집으로 내려가 그들이 또 다른 음식물을 전해 주길 기다리고 있었다.

“응애, 응애”

갑자기 방 안에서 아기 우는 소리가 요란스럽게 울려왔다. 우리는 마치 벼락이라도 맞은 듯이 그대로 멈춰 버렸다. 온몸의 모든 감각이 아기가 우는 곳을 향해 쏠렸고 솜털까지 곤두서는 것 같았다. 방문이 열리고 눈물에 온 얼굴이 흥건하게 젖은 어린아이가 마당에 멍하니 서 있던 나와 눈이 마주쳤다. 순간 아이는 울음을 멈추고 방긋 웃으며, 나를 향해 기어 오기 시작했다. 나는 두려움에 뒷걸음질을 쳤다.

‘나는 아기와 함께 있으면 안 된다. 아기가 위험해진다.’

“야! 뛰어!, 빨리 도망가란 말이야.”

K의 다급한 목소리가 나를 불렀다. K와 S는 이미 대문 밖으로 달아났다. 나는 아기와 눈이 마주친 채로 그대로 멈추었다.

“야! 빨리 도망쳐! 사람들이 돌아오고 있어.”

신작로에서 망을 보던 P의 다급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이 멍청아 빨리 오라고! 집주인이 돌아오고 있단 말이다.!”

대문 밖으로 도망쳤던 K가 다시 들어와 황급하게 나를 끌고 달리기 시작했다. 나는 끌려가는 내내 아기와의 시선을 놓을 수가 없었다.

내가 멀리 달아나자 아기는 다시 울기 시작했고 우리 모두가 무사히 서낭당에 도착할 때쯤 마을 사람들이 난장판이 된 집 마당을 여기저기 둘러보며, 도둑이 들었다고 아우성치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 아기 엄마는 문지방에 매달려 울고 있는 아기를 꼭 끌어안고 그 자리에 주저앉았다.

뒤늦게 합류한 나를 장승 쪽으로 세차게 밀쳐 내며, K가 물었다.

“너 도대체 무슨 생각으로 그런 행동을 한 거야? 내 말 듣지 못했어?

“난... 무서웠어... 갑자기 아영이가 생각나서...”

“과거는 모두 잊으라고 했다. 너 때문에 우리 모두 죽을 뻔했단 말이다. 다시 이러면 넌 우리에게서도 버려지게 될 거다.”

크게 화가 난 K의 목소리는 격양된 나머지 몹시 떨리기까지 했다.

저녁이 다 되어서야 집으로 돌아온 우리는 이날의 전리품을 골고루 나누며, 모두가 배부르게 식사를 했다. 이 정도 양이면 앞으로 사나흘은 도둑질을 하지 않아도 되었다.


2

내가 나고 자란 곳은 전라도의 작은 섬이다. 육지와 연결해 주는 다리를 건너서도 차를 타고 한참을 더 들어가야 하는 섬 속의 섬이었다. 이미 오래전에 다리가 연결되어 이제는 쉽게 드나들 수 있지만 예전에는 하루에 1~2번 다니던 통통배를 타야만 다닐 수 있는 외딴섬이었다고 한다.

어릴 적 나는, 온종일 이 섬을 탐험하고 다녔다. 그리 작은 섬은 아니었지만 조금만 달리면 섬 어디를 가더라도 바다를 볼 수 있어서 마냥 신나기만 했다. 아침밥을 먹고 집을 나가 바다가 토해내는 해를 보고는 다시 집에 들어가 점심을 먹은 후에는 아침과는 반대 방향으로 내달려 석양에 물드는 바다를 보고 돌아오기를 매일 반복하기도 했다. 특히 섬 전체가 얼음 옷을 벗고 초록으로 물드는 3~4월이 되면 마치 넋이라고 나간 듯이 섬 이곳저곳을 방황하고 다녔다.

우리 집은 주인 가족이 사는 본체와 엄마와 나 그리고 얼마 전에 태어난 세 쌍둥이가 사는 작은 단칸방, 그리고 각종 농기구를 보관하는 창고로 이루어져 있었다.

본채는 툇마루 사이에 두고 방이 3개가 딸린 작지 않은 크기로 파란색 기와를 올린 제법 멋들어진 구조였다. 하지만 우리가 사는 단칸방은 10년 전에 주인집 아들을 대학 보내며 팔아 치운 누렁이 황소가 쓰던 외양간을 개조한 것이었다. 그래서인지 10년이 지났음에도 바닥과 벽에서는 누릿한 소똥과 여물 냄새가 나는 것 같았다. 그래 냄새가 싫었던 나는 주로 마당이나 주인집 툇마루에 올라가 놀다가 잠을 잘 때만 방으로 들어가곤 했다.

나는 봄을 무척이나 좋아했다. 툇마루에 앉아 따뜻한 봄볕을 쬐는 것이 좋았으며, 무엇보다도 섬 전체에 만발하는 봄꽃들이 좋았다. 커다란 목련 나무가 꽃망울을 선보이고 나면 뒷산의 언덕 너머에는 철쭉과 진달래, 그리고 개나리가 서로 경쟁을 하듯 꽃망울을 터뜨렸다.

그중에서도 내가 가장 사랑한 것은 벚꽃이었다. 산비탈을 따라 얼기설기 줄지어 심어진 벚나무에 핀 연분홍의 꽃 몽우리들은 마치 옅은 황토에 소금을 뿌려 놓은 듯 숲을 수놓았다. 어쩌다 시원한 해풍이라도 불라치면 춘정을 이기지 못한 꽃잎들이 눈송이처럼 휘날렸다.

그날도 나는 뒷동산에 올라 바닷바람에 흩날리는 벚꽃 잎을 따라 이리저리 뛰어다니다가 해가 뉘엿뉘엿 서쪽 바다 깊은 곳으로 잠기기 시작할 즈음에야 집으로 들어왔다. 얼마 전에 세 쌍둥이를 낳은 엄마는 ‘웬 계집아이가 겁도 없이 하루 종일 싸돌아다니냐’고 나무라는 듯한 표정으로 나를 잠시 바라보고는 동생들을 품에 안고 다시 젖을 먹이기 시작했다.

밥그릇을 거의 비울 때쯤 주인집 할아버지가 요란한 헛기침을 두어 번 하고는 우리 방으로 들어왔다. 할아버지가 들어오자 엄마는 오래전에 이별한 첫사랑이라도 만난 듯이 안절부절못하며, 할아버지를 맞았다. 할아버지는 인자한 미소를 지으며, 엄마와 나, 그리고 세 쌍둥이를 번갈아 바라보고는 이내 무심한 듯 안쓰럽다는 표정을 지으며, 엄마에게 말했다.

“진순아... 느그 큰 딸년 말이다. 이제 그만 보내야 쓰것다. 몇 해 있으믄 저것도 시집보내야 할 테고, 니도 이 갓난것들 끼고 저것까지 어찌 간수허것냐? 서울에 겁나게 큰 부잣집서 보내랑게 이참에 치어쁘자”

할아버지의 말에 엄마는 아무런 대꾸도 않고 끙끙대는 소리만 내뱉을 뿐이었다. 원래 엄마는 힘든 일이 생길 때면 저렇게 아무 말도 하지 못하고 신음소리만 반복하곤 했다. 세 쌍둥이를 낳을 때도, 우리 가족을 두고 아버지가 집을 떠날 때도 엄마는 그랬다.

그 길로 나는 할아버지의 손에 이끌려 트럭에 태워졌고 엄마는 할아버지를 따라가는 나를 물끄러미 바라만 보았다. 엄마는 세 쌍둥이를 품에 안고 머리를 묻었다. 내가 멀어질수록 엄마의 어깨는 규칙적으로 떨리고 있었다.

나는 트럭 조수석에 앉아 한동안 창밖만 바라보았다. 빠르게 지나가는 창밖의 야경은 가로등에 비친 하얀 벚꽃들로 장관을 이루었다. 이 광경에 취한 나는 서서히 잠에 빠져들었다.

서울에 도착한 것은 이른 아침이었다. 커다란 아파트 단지 앞 트럭을 세운 할아버지는 천천히 트럭에서 내려 조수석 문을 열었다. 할아버지가 잠에 든 나를 끌어안아 올리는 사이 뒤에서 낯선 사람들의 목소리가 들렸다.

“당숙 어른 오셨어요? 먼 길 오시느라 힘드셨겠어요? 우선 집으로 올라가시죠”

굵고 느린 중년 남자의 목소리에 이어 비슷한 또래의 쾌활하면서도 기품 있는 여자의 목소리가 이어서 들렸다.

“어르신 안녕하셨어요? 이렇게 먼 길 오시게 해서 죄송해요. 저희가 요즘 너무 바빠서 직접 찾아뵙고 인사드리기가 여간 쉽지가 않네요.”

할아버지 뒤에 숨어 있던 나를 발견한 여자는 다소 과장된 표정과 몸짓으로 탄성을 지르듯 이야기했다.

“어머, 우리 아기 왔구나. 먼 길 오느라 힘들었지?. 우리 빨리 집에 가서 깨끗하게 씻고 맛있는 거 먹자.”

여자는 내 머리를 쓰다듬고 있던 할아버지에게서 나를 빼앗듯이 끌고는 갔다. 뭐가 그리도 즐거운지 여자는 뒤도 돌아보지 않고 성의 없는 인사를 전했다.

“어르신! 정말 감사하고요. 그럼 조심히 내려가세요. 어머나! 우리 아기 눈동자 좀 봐 너무 맑고 착하게 생겼네”

남자는 무안한 듯 작은 목소리로 할아버지에게 말을 이었다.

“나이만 많았지 집사람이 아직 철이 없어서 저럽니다. 어르신이 이해하세요. 밤새 운전하시느라 피곤하실 텐데 올라가셔서 식사라도 하시고 좀 쉬었다가 가시죠.”

“자네 샥시는 그럴 맴이 없는 갑네. 나는 되았고, 저 아그나 잘 키우랑깨. 오랜만에 서울 왔은께 아들놈 잘 사는가 한 번 들여다봐야 쓰지 않것는가”

할아버지가 헛기침을 하며 대답했다. 시선은 점점 멀어져 가는 나를 향하고 있다. 왠지 흐리멍텅하고 노랗게 뜬 눈이 촉촉이 젖은 듯 보였다. 남자는 미안한 듯 몇 차례 더 쉬었다가 가기를 권했지만 할아버지는 못 들은 척 트럭에 올라타며 말했다.

“시골서 막 자란 거 같아도 저것이 씨도 좋고 밭도 좋으니까 인물이 제법이여. 쑥맥 같이 생겨 묵었어도 제법 똑똑허고 말기 잘 알아들은 게 키우는 맛이 제법일 것이여. 요즘 세상에 내 씨만 자슥이당가 이놈 데불고 가서 내 새끼다 생각하고 잘 키워보라고. 그럼 난 가네”

이것이 내 고향과 우리 가족, 그리고 고향 사람과의 마지막 기억이다.

서울은 모든 것이 낯설어 제대로 먹지도 자지도 못했다. 집 밖에서 들려오는 요란한 차 소리와 사람들의 말소리 때문에 정신을 차릴 수가 없었다. 고향 섬에서 매일 듣던 새소리와 파도 소리가 그리웠다.

나를 사이에 두고 두 사람이 마주 앉았다. 들뜬 목소리로 여자가 먼저 말문을 열었다.

“진호 씨 우리 이 아이 이름을 뭐라고 지을까?

“서현 씨가 알아서 지어”

“응.... 송이.”

“뜬금없이 웬 송이야.”

“꽃송이처럼 예쁘니까.. 송이... 당신 성을 따서 천송이. 어때?”

“그러든가”

“아가. 이제 내가 네 엄마야. 앞으로 우리 잘 지내보자. 이쪽은 네 아빠고”

나는 지금까지 이들을 엄마, 아빠라고 부른 적도, 생각한 적도 없다. 나에게는 엄마와 동생들이 있기 때문이다. 언젠가는 꼭 고향으로 도망치리라 생각했다.

이곳에 온 이후로는 집 안에만 갇혀 살았다. 창밖을 통해 거리를 내다보거나 하루 종일 잠만 잤다. 이 집에 온 후 처음 한 달은 나와 비슷한 처지의 아이들이 다니는 학교를 다녔지만 난 잘 적응하지 못하고 다시 집으로 돌아왔다. 서울 사람들의 예의범절이란 애당초에 나랑 맞지 않았다. 내가 학교를 그만두고 돌아온 이후부터는 나에게 실망을 했는지 서현 씨의 태도가 예전과는 사뭇 달랐다. 과장된 억양이 사라졌고, 병원이나 카페, 미용실을 갈 때나 함께 산책하는 동안에도 화를 내는 일이 잦아졌다. 그나마도 본격적으로 추워지기 시작하자 더 이상 나와는 외출을 하지 않았다. 그 자리를 대신한 것은 진호 씨였다. 진호 씨는 내가 화를 내면 부드러운 손길로 내 머리부터 목덜미까지를 쓸어주었고 늘 그윽한 눈빛으로 날 바라보기만 했다.

우리는 거의 매일 밤 소파에 나란히 앉아 TV를 봤다. TV에 고정된 무표정한 시선과는 달리 그의 손은 항상 나를 만지고 있었다.

새봄이 왔다. 내가 좋아하는 벚꽃이 필 때쯤 서현 씨는 한 달 넘게 집을 비웠다. 그 사이 진호 씨가 나를 챙겨주었지만 자주 들어오지는 않았다. 이런 날이 반복될수록 외로움은 점차 두려움으로 바뀌어 갔다. 난 그때까지 그렇게 길게 혼자 있어 본 적이 없었다. 누군가에게 미움을 받는 것보다 더 무서운 건 버려지는 것이다.

‘내가 보기 싫어서 돌아오지 않는 걸까? 밥은 이틀째 굶었고 오늘 아침부터는 물도 떨어졌다. 이렇게 버려지는 건 정말 싫은데... 그래도 나에게 잘해주려고 노력했던 사람들이다...’

창밖의 벚꽃이 화려한 꽃비를 다 뿌릴 때쯤 서현 씨가 집으로 돌아왔다. 나도 모르게 반가움에 그녀에게 달려들어 안겼다. 하지만 그녀는 소스라치게 놀라며 나를 밀어냈다.

“저리 가! 진호 씨! 송이 좀 어떻게 해봐요. 우리 아기 다칠 뻔했잖아요.” 진호 씨를 향해 소리치는 그녀의 품 안에는 갓난아기가 안겨져 있었다.

이후로 나는 아기와 그녀 곁으로 절대 가까이 갈 수 없었다. 이날부터 나는 투명인간 같은 존재가 되어 버린 것이다. 그럴수록 나는 더욱 예민해졌다. 초인종 소리에 놀라 문밖을 향해 소리를 질러댔고 창문 밖에 대고 고함을 쳤다. 그래야만 나의 존재를 상기한 듯 진호 씨가 말을 걸어주었기 때문이다.

“송이야! 조용히 해!”

“제 미친 거 아니야? 예전에는 안 그랬잖아? 나 집에 돌아오고부터 저러는데 우리 아기한테 해코지 하면 어떡해?” 서현 씨가 신경질적으로 진호 씨를 다그쳤다.

“송이가 얼마나 착한데 그러겠어. 새 식구가 생겼으니 적응하는 시간이 필요하겠지”

“난 몰라. 자기가 데리고 나가서 단둘이 사시던가?”

이런 대화가 오고 간 날은 진호 씨가 안방에서 나와 함께 잤다. 좁은 소파에서 둘이 자는 것이 여간 불편하지 않았지만 그래도 행복했다.

“자기야~ 나 화장실 좀 다녀올 테니까? 애기 좀 봐줘. 방금 잠들었으니까 금방 깨지는 않을 거야.”

“알았어.”

거실 소파에 누워 신문을 보고 있던 진호 씨가 꾸벅꾸벅 졸더니 깊은 잠에 빠져들었다.

안방에서 아기의 뒤척이는 소리가 났다. 작은 소리로 옹알거리더니 곧 울음을 터트리기라도 할 듯이 칭얼거리기 시작했다. 순간 나는 고민이 되었다.

‘지금 아기가 울면 진호 씨가 잠에서 깰 텐데. 진호 씨는 어젯밤에도 아기 때문에 거의 잠을 자지 못했다. 진호 씨가 깨기 전에 내가 아기를 달래줘야겠어. 하지만 난 안방에 들어가면 안 되는데... 어쩌지.’

큰 울음을 터트리려던 아기가 갑자기 “컥”하는 소리와 함께 호흡을 멈추는 듯한 소리를 냈다. 나는 깜짝 놀라 안방으로 달려 들어갔다. 아기가 엎드린 채 고개를 이불에 묻고 가쁜 숨을 몰아쉬고 있었다. 나는 얼른 침대로 올라가 아기가 숨을 쉴 수 있도록 고개를 옆으로 돌려주었다. 그때서야 “앙. 앙”하고 아기가 우렁차게 울기 시작했다. 숨이 트인 모양이었다.

“악! 여보!, 진호 씨.. 우리 아기, 송이가... 우리 아기를.....”

아기 울음소리를 듣고 급하게 화장실을 뛰쳐나온 서현 씨가 아기 옆에 있는 나를 보고는 마치 실성한 사람마냥 아기를 끌어안으며, 나를 발로 걷어차고 소리를 질러댔다.

“왜... 그래.. 무슨 일이야.”

“당신은 도대체 뭐야! 아기 좀 보라고 했잖아. 송이가 우리 아기를 해치려고 했단 말이야. 나 도저히 더는 못 참겠어. 당장 다시 시골로 돌려보내.”

“당숙 어르신도 돌아가시고 시골집에는 아무도 없는데 누구한테 보내.”

“당장 내 눈에서 치우지 않으면 내가 나갈 테니까 알아서 해!” 그러고는 짐을 잔뜩 싸서 아기와 함께 집을 나가버렸다.

진호 씨는 원망스러운 듯 가끔씩 나를 내려다볼 뿐 다른 말이 없었다. 내가 눈치를 보며, 그에게 한 발짝 다가가자 그는 외면하듯 뒤돌아섰다.

늦은 밤, 진호 씨가 텅 빈 집으로 들어왔다. 우울한 표정으로 함께 밥을 먹고 그는 나를 데리고 밖으로 나갔다. 오랜만에 야간 드라이브다. 차창으로 비추는 화려한 네온사인과 각양각색의 간판의 불빛은 마치 가을 하늘을 수놓는 폭죽의 불꽃처럼 빛났다. 나는 차를 타고 가는 내내 아무 말 없이 창밖만 바라보았다. 시간이 갈수록 건물보다는 나무와 숲이 더 많아졌고 화려한 불빛은 이내 줄어들어 밤하늘의 별들이 휘황찬란한 도시의 야경을 대신하고 있었다.

‘어디로 가는 걸까?’

한적한 산속으로 이어진 숲길로 접어들었다. 숲길을 한참이나 달린 후에야 우리는 차를 멈추고 내렸다. 사방은 높은 산으로 둘러싸여 있고 인적이라고는 전혀 보이지 않는 곳이었다. 우리 차의 전조등이 무색할 정도로 유난히 밝은 보름달만이 우리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한참 보름달을 바라보며, 연거푸 줄담배를 피우던 진호 씨가 차에 오르며 말했다.

“송이야. 미안해.”

그리고 그는 떠났다. 그의 차가 멀어져 갈수록 혼란스러웠다.

‘다시 돌아 올가야. 그런데 여긴 너무 깜깜하고 좀 무서운데...’

기다려야 할지 아니면 차를 따라가야 할지 판단이 서지 않았다. 점차 두려움은 눈덩이처럼 불어났고 나는 더 이상 참기 어려워 차를 쫓아 달리게 했다. 굽이굽이 숲길을 열심히 달렸지만 차는 어디에도 보이지 않았다. 갈림길에 선 나는 꼼짝할 수 없었다.

‘어디로 가야 하지?’

어둠이 더욱 짙어진다. 어둠이 짙어질수록 청각과 후각은 더욱 예민해진다. 나무를 기어오르는 다람쥐의 숨소리까지 들리는 듯했다, 바람에 스치는 나뭇잎의 마찰음과 부엉이 우는 소리가 더욱 스산하게 들려온다. 잠깐 머뭇거리는 사이 등 뒤에서 기척이 느껴졌다. 이 묵직한 움직임에 소스라치게 놀란 나는 이내 달리기 시작했다. 하지만 열 걸음도 옮기기 전에 그놈에게 잡히고 말았다. 아직 덜 자란 멧돼지 수놈이었다. 멧돼지는 내 옆구리를 그 크고 단단한 머리로 들이받았다. 나는 있는 힘껏 멧돼지를 걷어찼다. 바닥에 내동댕이 쳐진 멧돼지는 나의 예기치 못한 공격에 이내 놀랐는지 당황한 기색으로 엉거주춤하며, 뒷걸음질 치기 시작했다. 어디서 그런 용기가 나왔는지 지금도 이해할 수가 없다.

나는 멧돼지의 눈을 노려보면서 천천히 뒤를 돌아 다시 달렸다. 숨이 턱 끝까지 차오르고, 멧돼지의 공격을 받은 허리가 너무 아팠다. 개울가에 멈추어 서서 조금 쉬기로 마음먹었다.

발바닥은 모두 터져 피가 흐르고 갈비뼈가 부러졌는지 똑바로 걸을 수도 숨을 쉬는 것조차도 힘겨웠다. 다행히 그놈은 더 이상 나를 쫓지 않았다. 안도의 한숨과 함께 정신이 아득해졌다. 개울 옆 덩굴 속에 몸을 숨기고 주변에 나뭇잎과 가지를 모아 이불처럼 덮었다. 그러고 나니 개울 물 흐르는 물소리가 자장가처럼 들려왔다. 이 개울이 없었으면 진작에 죽었을지도 모른다. 작은 미동에도 엄청난 고통이 따랐다. 진호 씨와 엄마, 그리고 동생들이 보고 싶었지만 이제 내 주위에는 아무도 없다. 나는 개울 물을 마시며, 간신히 버티고 있었지만 송장이나 다름없었다. 그렇게 며칠이 지났을까. 어떡하든 움직여보려고 신음하는 나를 K가 발견한 것이다.


3

우리의 은신처인 폐가는 겨울 못지않게 장마철에도 취약했다. 태풍이라도 불면 집 전체가 날아가 버리는 것이 아닐까 걱정이 들 정도였다. 게다가 비가 오면 농부들은 집 안을 지키기 마련이고 심마니나 등산객도 없어서 식량을 구하기가 더욱 힘들었다.

“K. 식량을 구하러 가야 하지 않을까? 이제 이게 마지막이야.”

식량 창고에 마지막으로 남은 소시지 덩이를 들고 온 S가 불만 섞인 목소리로 투덜댔다.

“곧 비가 그칠 거다. 조금만 참아.”

나는 마지막 식량을 우리에게 나눠주고 조용히 밖으로 나가는 K를 따라나섰다.

“K. 이거 함께 먹지 그래”

“난 배고프지 않아. 너나 먹고 기운 내도록 해.”

“그러지 말고 한 입만 먹어”

내 몫으로 받은 소시지를 떼어 K의 입속에 넣어주려 하자 그는 슬그머니 고개를 돌리고 말았다.

“난 정말 괜찮으니까 너나 먹도록 해” 말끝에 연한 미소가 번졌다.

우리는 집 근처의 아름드리 버드나무 아래에서 비를 피하며, 앉아 있었다. 저의 머리카락이 흠뻑 젖어 그의 맑은 눈과 얼굴이 그대로 드러났다.

“K... 고마워”

“뭐가?”

“날 구해주고, 식구로 받아줘서”

“예전 같았으면 그냥 지나쳤을 거야... 하지만 그날은 다쳐서 쓰러져 있는 널 그냥 두고 갈 수가 없었어.”

“알아. P 언니도 네가 이상해졌다고 그랬어.”

“내가 이곳에 처음 왔을 때가 생각났는지도 모르지. 나는 나 스스로 가족을 버리고 집을 나왔어. 아니, 어쩌면 그들이 날 버린 걸 수도 있지... ”

“그게 무슨 뜻이야?”

“아니야. 그냥 네가 가여웠을 뿐이야. 넌 그날 나에게 와서 가시처럼 박혔다.”

“무슨 말인지 모르겠어... 그런데 난 아직도 모르겠어. 진호 씨가 날 버린 건지 아니면 그 자리에서 기다리고 있으라고 했는데 내가 미처 그 말을 못 듣고 바보같이 엉뚱한 곳을 헤매다가 길을 잃은 건 아닌가 싶기도 해”

“바보 같은 소리 하지 말고 과거는 잊어. 비가 곧 그칠 모양이니 이제 식량을 구하러 가야겠어.”

한껏 강한 어조로 말했지만 허공을 향한 그의 커다란 두 눈은 촉촉이 젖어 있었다. 빗발이 점차 잦아들기는 했지만 한낮임에도 불구하고 하늘은 먹물을 뿌려 놓은 듯 어두웠다. 담장 너머로 P의 옅은 목소리가 들려왔다. S의 낮은 목소리도 들렸는데 대화를 나누는 소리라기보다는 신음소리인지 웃음소리인지 분간할 수 없는 괴성을 참아내는 듯한 소리였다.

우리가 집으로 들어서자 안방 구석에 서로 뒤엉켜 있던 S와 P는 화들짝 놀라며, 떨어졌다. 방바닥에는 금단의 열매가 끈적끈적하고 하얀 육즙을 토해내며 여기저기에 널브러져 있었다.

“언니 어디 아파?”

“아니야. 아프기는.. 둘이 어디 다녀와?”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S가 기지개를 길게 켜며, 자리를 털고 일어나 K를 향해 말했다.

“K. 둘이서 재미라도 보고 오셨나? 이제 식량도 다 떨어졌는데 너무 한가한 거 아니야? 리더가 모범을 보여야지”

“함부로 얘기하지 마라. 그리고 한 번만 더 그런 식으로 말하면 너의 목을 따주고 말겠다. 그리고 내가 분명히 금단의 열매를 먹지 말라고 했을 텐데”

K가 S를 벽으로 강하게 밀어붙이며 화를 냈다.

“아니 다들 왜 그래? 오늘은 비가 그칠 것 같지 않으니까 오늘 하루는 푹 쉬고 내일 다 함께 멋지게 한탕하자고.. 자.. 자... S 이리 따라와. 우린 그만 나가자”

P가 둘을 떼어 놓고는 S를 데리고 집을 빠져나갔다. S는 분노를 삭이는 듯 날카로운 이빨을 드러내고는 묘한 웃음을 지었다.

둘이 향한 담장 너머로 금단의 열매에 취한 P의 몽롱한 신음이 한동안 계속됐다. 이들의 괴성은 어느새 굵어진 빗소리에 가려졌으며, 나는 처마에 떨어지는 빗소리에 취해 잠에 들었다.

잠결에 K의 고함과 비명이 들려왔다. 한 치 앞도 보이지 않는 어둠 속에서 광기에 찬 4개의 눈알이 섬광처럼 빛나는 것을 보았다. 잠시 동안 서로를 응시하던 섬광은 이내 뒤엉키고 날뛰었다. 공중으로 솟구치는가 싶더니 둔탁한 소리와 함께 내동댕이 쳐지기를 수차례 반복했다. 갑자기 정적이 흘렸다. 소리가 소거되자 후각이 작동하기 시작했다. 비릿한 피 냄새가 방안 전체로 퍼지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그리고 K가 신음 소리와 함께 밖으로 뛰쳐나갔다. 포효하는 듯한 K의 괴성이 천둥소리와 뒤섞이며, 점차 멀어졌다.

나는 겁이 났다. 방 안에 남은 2개의 섬광이 나에게 다가오는 것을 멍하니 바라보고 앉았다.

“넌 아무 걱정할 거 없어. 이제부터 내가 널 책임진다.”

“S.... 왜 그랬어?”

S는 대답 없이 나에게 금단의 열매를 억지로 먹였다. 나는 다시 깊은 잠에 빠져들었고 깨어날 때쯤이면 다시 먹이기를 반복했다. 방에 홀로 남겨진 나는 한동안 하루 종일 잠에 취해 있었다. 간혹 S와 P 사이의 대화가 마치 꿈결처럼 들려왔다.

“K는 부상이 너무 심해서 당분간 제대로 움직이지도 못할 거야. 설마 이대로 죽지는 않겠지?.”

“안 됐군. 그놈의 멍청하게 커다란 눈을 다시 보지 못하게 됐으니.”

“모든 걸 얻으니 좋니?”

“순리를 따를 뿐이다. K는 너무 약해지고 병들었어. 이런 험난한 세상에서 살아남으려면 새로운 지도자가 필요한 건 당연하잖아.”

“K가 복수하지는 않을까?”

“이제 이곳의 주인은 나야. 걱정하지 말고 그놈의 상처나 잘 돌봐줘라. 죽지 않을 정도로만 말이야.”

“난 네가 K를 굴복시키고 저 아이까지 차지하면 K가 나에게 돌아올 줄 알았어. 하지만 K는 나에게 눈길조차 주지 않아.”

“그건 안된 일이지만 난 너와의 약속을 모두 지켰어. 그러니 너도 내와의 약속을 잘 지켜줘야 해. 만약 날 배신한다면 K와 함께 저 세상으로 보내버릴 테니까.”

“그것도 나쁘지 않군... 이렇게 사느니 차라리 K와 함께 죽는 게 더 행복할 수도 있겠어.”

순간 표정이 일그러진 S는 P의 목을 누르며 속삭였다.

“내가 K와 싸워 이긴 날 네가 그 녀석에게 준 음식에 뭐가 들어있었는지? 우리가 어떤 약속을 했는지 K에게 모두 이야기해 줄까?. 아마 그랬다간 K가 널 갈기갈기 찢어 놓을걸.”

P의 귀에 바짝 붙어있던 S의 입술과 혀가 그녀의 목과 가슴을 타고 아래로 내려와 온몸을 휘감았고 나는 다시 깊은 잠에 빠졌다.


4

얼마나 오래 잤는지 허리와 다리에 힘을 줄 수 없을 정도였다. 둔기에라도 맞은 것처럼 머리가 깨질 듯이 아팠고 눈이 침침했다. 방 안에서는 구역질이 날 정도로 고약한 냄새가 진동을 했다. 내 몸에는 구더기와 파리가 달라붙어 엉켜 있었고 방바닥에는 누가 흘렸는지 모를 피가 말라붙어 있었다. 나는 집 밖으로 나갔다. 마당에서 아침볕을 쬐던 까치들이 내 기척에 놀라 하늘로 날아오르며, 요란하게 울어댔다.

원래부터 폐허였던 우리의 집은 본래의 모습을 알아보지 못할 만큼 더 무너져 있었다. 반쯤 기울어있던 담장은 완전히 내려앉았고 지붕은 반도 남아 있지 않았다. 집 밖은 진달래와 철쭉으로 가득한데 이 집만큼은 계절이 멈춘 듯 음산한 공기로 가득했다. 무성한 잡초로 가득했던 마당은 이제 막 쑥과 달래가 푸른 싹을 틔우기 시작했을 뿐 바싹 마른 나뭇가지들과 무너진 건물의 잔해만이 나뒹굴고 있었다. 그 잔해들 사이로 진한 핏자국이 창고 쪽을 향해 뿌려져 있었다. 피의 흔적은 창고 쪽으로 갈수록 더욱 짙어졌고 양도 많아졌다. 나는 무서웠다.

‘도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거야?’

나의 시선이 창고 입구에 닿았을 때 나는 ‘억’하는 외마다 비명과 함께 그 자리에 주저앉고 말았다. 그곳에는 반 백골이 되어 가죽과 뼈만 남은 K와 S, 그리고 P의 시체가 뒤엉켜 있었다. 이들 시체 주변은 마치 빨간색 페인트를 풀어놓은 듯 핏물이 웅덩이를 이룬 채 젤리처럼 굳어 있었다.

한참을 멍하게 앉아 있던 나는 해가 중천에 올라와서야 정신을 차릴 수 있었다. 그때야 뱃속에서 뭔가가 꿈틀대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가슴은 커져 있었고 젖이 조금씩 흘러내렸다. 배가 너무 고팠다.

‘배를 채워야 한다. 뭐든 먹고 기운을 차려야 해’

마치 누군가가 옆에서 속삭이기라도 하는 듯 뭐든 먹어야 한다는 소리가 귓가를 맴돌았다.

나는 무작정 숲길을 따라 마을로 내려갔다. 오래 누워만 있어서 그런지 다리와 허리에 도무지 힘이 들어가지 않아 작은 돌부리에도 걸려 넘어지기를 반복했다.

서낭당 앞에 도착해서야 ‘이제 살았다.’ 싶은 생각이 들었다. 이곳은 내가 처음으로 음식을 훔쳤던 곳이다. 나는 신작로를 피해, 덤불숲과 밭고랑을 따라 몸을 최대한 숨기며, 천천히 마을로 내려갔다. 마을은 마치 유령도시처럼 적막했다. 밭고랑을 따라 계속 내려가면 개울가와 연결되는데 개울 옆에는 넓은 갈대밭이 펼쳐지고 그 중간에 제법 큰 마을 사당이 있다. 이 사당 주변에는 항상 먹을 것이 있었다. 갈대밭은 항상 조심해야 한다. 내가 사람들에게 보이지 않는 만큼 나도 그 안에 어떤 위험이 있는지 분간할 수가 없다.

‘바스락, 바스락’ 한 발 한 발 옮길 때마다 온몸을 감싸고 스치는 마른 갈대의 소리가 요란하게 들린다. 이제 조금만 더 가면 사당이다. 저긴 떡과 고기가 있을 것이다.

‘두두득, 두두득’

내 앞에서 무언가 둔탁한 발걸음 소리가 들린다. 덩치가 제법 큰 짐승임에 틀림없다. 분명 사람은 아닐 것이다. 사람이면 갈대 위로 모습이 보였을 것이다. 발자국 소리는 갈대숲 아래서 들렸다. 심장이 터질 듯이 뛰기 시작했다. 심장 뛰는 소리가 상대에게 들리지는 않을까 겁이 났다. 발이 떨려서 걸음을 멈출 수밖에 없었다. 갑자기 발걸음 소리가 멈추었다. 입이 바짝 마르고 온몸의 털이 곤두서는 느낌이다. 순간 바람이 정적을 휩쓸고 지나간다. 갈대들의 요란한 나부낌 끝에 황토의 구수한 향과 금속 향의 피비린내가 코끝으로 전해왔다. 악취인지 향기인지 구분할 수 없는 이 죽음의 냄새에 나도 모르게 뒷걸음질을 쳤다. 한 발 뒤로 내딛는 사이에 그 거대한 그림자가 갈대 위로 솟구쳐 오르더니 내 몸을 덮쳤다. 갑작스러운 공격에 꼼짝하지 못한 채 등과 머리를 맞았다. 나는 본능적으로 그놈의 겨드랑이 사이로 빠져나와 마을 어귀의 서낭당을 향해 뛰었다. 달리는 내내 뒤를 돌아볼 수도 없었다. 등 뒤에서는 가쁜 숨을 씩씩 내쉬며, 달려드는 놈의 입김이 내 목덜미에 닿는 듯했다.

서낭당에 거의 도착해서야 간신히 뒤를 돌아볼 수 있었다. 다행히 놈은 나를 계속 쫓지는 않았다. 정확히 무엇인지는 알 수 없었지만 여전히 갈대밭에서는 누군가 바닥에 바짝 움츠린 채 이리저리 움직이고 있는 것이 보였다. 하는 수 없이 나는 다시 집으로 돌아가기로 했다.

저녁이 되면서 기온이 떨어지기 시작했다. 너무 춥고 잠이 온다. 아무 곳에서 몸을 눕히고 잠깐이라도 눈을 붙이고 싶다. 하지만 이런 산속에서 잠이 들면 그대로 얼어 죽고 말 것이다. 얼어 죽지 않더라도 산짐승의 먹이가 되고 만다. 어둠이 드리워진 숲은 암흑처럼 고요하다. 나뭇가지가 얼굴을 때리고 돌부리와 나무뿌리가 발을 걸어도 어쩔 도리가 없다.

퇴화한 시각은 환각을 불러낸다. 동굴 속을 빠져나온 것처럼 갑자기 눈앞이 밝아온다. 나는 진호 씨와 숲 속을 걷고 있다. 만개한 벚꽃이 바람을 따라 눈송이처럼 날린다. 나는 진호 씨에게 다가가려 애써 보지만 몸은 계속 앞으로만 향한다. 그의 모습이 점차 희미해지고 주인집 할아버지와 엄마, 그리고 세 쌍둥이가 어릴 적 그 모습 그대로 나타나 나와 함께 나란히 걷기 시작한다. 이번에도 나는 그들에게 다가가지 못하고 앞으로만 향하고 있다.

나도 모르게 눈물이 흐른다. 저 앞으로 K가 앞장서서 우리를 안내하고 있다. 그는 길고 가는 머릿결을 날리며, 빠른 걸음으로 걷고 있다. 내 걸음이 늦어지면 잠시 뒤돌아보고는 그 자리에 앉아서 내가 가까이 다가오기만을 기다릴 뿐이다. K는 걸음을 되돌려 나에게로 다가오지도, 말을 걸지도 않는다. 나와 눈이 마주치면 살짝 입가에 미소를 지어 보일 뿐이었다.

숲 터널을 빠져나오자 이들은 모두 사라지고 저 멀리 무덤 같은 집이 음흉한 아가리를 벌리고 나를 반기는 것 같다.

산비둘기와 종달새 소리가 요란하게 들린다. 곧 새벽이 올 것이다. 방 안에 몸을 누이고 나니 참을 수 없는 고통이 느껴졌다. 온몸이 불같이 뜨거운데 너무나 춥다. 그리고 기침을 멈출 수가 없다. 뱃속 깊은 곳에서부터 목을 타고 피 냄새가 진동을 한다.

금단의 열매가 눈에 들어왔다. 몇 개를 집어 먹고 나서야 간신히 안정을 되찾았다. 고통이 점차 사라지고 기분이 좋아진다. 시간을 되돌려 놓기라도 한 듯 고향 섬에서의 어린 시절이 떠오른다. 벚꽃이 눈처럼 날리던 고향 섬이 그립다. 엄마와 동생들은 잘 지내고 있는지 궁금하고 너무나 보고 싶다.

아마 이번이 마지막 잠일 것이다. 나는 다시 깨어나지 못할 걸 안다. 이대로 죽어도 상관은 없다. 하지만 아무 죄 없는 우리 아가들이 불쌍하다. 얼굴 한 번 보지 못하고 이대로 내 뱃속에서 죽어가야 하는 게 가엾다.

진호 씨와 K, 그리고 엄마와 세 쌍둥이까지 내가 사랑하는 모두가 누워있는 나를 내려다보고 있다. 무슨 말이든 하고 싶지만 입이 움직이지를 않는다. 그 어느 때보다도 즐겁고 편안해 보이는 엄마가 자기를 따라오라고 손짓하며, 방을 나선다. 엄마의 꽁무니를 세 쌍둥이가 쫄랑쫄랑 따른다. 그 뒤를 K와 진호 씨도 따라 나간다. 나도 저들을 따라나서야 한다.


5

“거봐라 자식아. 아까 칠부 능선 샛길에서 오른쪽으로 가야 한다고 했지 않냐. 네놈 말만 듣고 왔다가 몇 시간째 이게 뭐야.”

“낸들 이럴 줄 알았냐... 잔소리 좀 그만해라..”

“이게 웬 폐가냐? 귀신 나올 거 같다. 빨리 가자”

“잠깐 있어봐라 무슨 소리가 들린다.”

“소리는 무슨 소리?”

“깽깽거리는 소리가 안 들리냐? 저기 봐라 강아지다... 이런 다섯 마리 중에 이놈 하나만 살았구나. 안 됐다.”

“아이쿠. 진돗개 잡종이구나. 애미가 새끼 낳다 죽은 모양이다. 너 진돗개 키우고 싶다고 입버릇처럼 말했지 않냐. 이놈 가져다 키워라.”

“고놈 참 이쁘게 생겼다. 이리 줘봐라. 이놈 암놈이네. 한참 굶은 거 같은데 물이라도 좀 먹이자.”

“잘 키워서 우리 보신이나 하자”

“에라이 미친놈아. 하하하”

“그런데 이거 양귀비 아니냐. 나 어릴 적에 어른들이 약으로 쓴다고 키우는 거 봤는데 꼭 이렇게 생겼다.”

“헛소리 그만하고 빨리 내려가자. 이놈 우유라도 사 먹여야지 그러지 않으면 이놈도 형제들 따라 황천 가겠다.”

“깽깽”


- 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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