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전히, 공직약사

최종면접 합격, 그리고 그 이후

by 영샘

면접시험까지 갈 수만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생각했던 풋풋한 시절이 있었다. 서류 전형에서 떨어질 때마다 초라한 내 경력에 오그라들었다. 지금 생각하면 학부와 대학원을 갓 졸업한 스물다섯 살이 내세울 게 없음이 당연한 것을. 이런 20대의 나에게 면접 기회가 주어진 곳은 세 군데였다. 순서대로 나열하자면 외국계 제약회사, 국립과학수사연구원, 그리고 식약처. 제일 첫 면접 본 곳은 분위기 좋았는데 떨어졌고 다음 두 군데는 모두 붙었다. 이런 나에게 어떤 지인은 “넌 진정한 공무원상”이라고 평가했다.


그때의 면접은 사회 초년생 시절 옛이야기일 뿐, 중고 신입의 면접 준비는 달라야 했다. 잘 몰라도 열심히 배우겠다는 순수함과 패기를 내세우는 것은, 마흔 줄에 들어서는 나에겐 다소 양심 없어 보였다. 최종면접에서는 노련하게 답변할 수 있는 실질적인 정보가 필요했다. 이것은 공무원의 신분으로 또 다른 공무원 이직을 준비하는 나의 자존감과도 연결된 일이었으니까.


공무원 조직은 매년 초 ‘업무보고’를 한다. 이 보고서는 국가기관이나 지자체 홈페이지에 ‘주요 업무계획’ 등의 이름으로 공개되어 있다. 대충 둘러봐서는 쉽게 발견할 수 없으므로 이를 찾아내는 것도 공무원 역량 확인의 잣대가 될 수 있다. 몇 번을 헤맨 후에 내가 지원한 약무직과 가장 연관성이 있는 부서의 주요 업무 계획을 찾아냈다. 그 자료에는 현황, 정책 목표, 추진 계획 등등 현직 공무원들의 고뇌가 담겨있어서 면접용 지식을 쌓기에 유용했다. 생소한 용어는 어차피 입에 잘 붙지 않으니 키워드 중심으로 말하기 쉬운 것만 골라서 외웠다.


최종면접 당일, 오랜만에 장만한 정장 차림으로 면접 시험장에 도착했다. 면접에 앞서 직렬별로 동일한 문제지가 배부되었고, 답안을 작성할 시간이 주어졌다. 이후 자신의 순서가 되면 한 사람씩 면접장에 입장했다. 처음에는 내가 작성한 답안에 대하여 발언했고 이후 면접관들의 심층 질의에 대해 답변했다. 답변에 대한 추가 질문도 있었고, 이전 경력 등 나 자신에 대한 질문도 있었다. 시행 중인 정책 관련 질문에는 미리 공부한 자료가 도움이 되었다. 면접자 한 사람당 30분이 소요되는 만큼, 면접을 마치고 나니 영혼까지 탈탈 털린 듯했다.

그렇게 필기시험과 면접을 거쳐 나는 지방약무직 최종 합격 통지를 받았다. 준비했던 일이 좋은 결과를 맺었으니 기쁘기만 할 줄 알았는데, 다시 선택의 기로에 섰다. 식약처 인사과에서는 복직 여부 확인 문자가 왔고, 지자체에서는 임용 전 신규자 교육 안내 문자가 왔다. 식약처에는 복직과 퇴사, 지자체에는 임용과 포기 중에서 어느 쪽이든 선택해야 했다.


‘이게 정말 내가 원한, 더 나은 계획일까?’

국가직 공무원에서 지방직 공무원으로, 연구직에서 약무직으로, 15년 이상의 경력직에서 신규로, 동시에 바뀌는 과정을 견딜 수 있을지 알 수 없었다. 그렇다고 KTX 열차 출퇴근이나 지방청 순환 근무를 퇴직 전까지 반복할 엄두도 나지 않았다. 누군가에게 물어서 될 일이 아닌, 내 안에서 답을 찾아야만 했다. 어찌나 치열하게 고민했는지 결정하기 전 여러 날을 앓았다. 그만큼 처절하게 고뇌하는 것이 필요한 과정이었음을 이제야 깨닫는다. 그렇게 알 수 없는 일과 엄두가 나지 않는 일 중에서 전자를 선택했다. 알 수 없는 일을 일단 해보는 것에 조금 더 끌렸으니.


모든 문제에 대해 완벽한 답을 얻은 것은 아니지만, 나는 여전히 공직약사의 자리에 있다. 사실 ‘더 나은 계획’에 대한 생각은 끝이 있기 어려운, 꾸준히 이어 나갈 과제이며 정답은 여러 가지다. 그렇기에 추억도, 경험도 여러 가지다.



* 브런치북이 30화까지 연재할 수 있다는 것을, 27화를 쓰고 나서야 알아버렸어요. 에필로그를 쓰고 싶었는데 회차가 모자라서 아쉽습니다. 짧게나마 여기 남깁니다. 제 글을 읽어주신 분들 모두 감사합니다.

** 개인적으로 저를 아는 공무원 중 독자임을 알리고 싶은 분은 제게 ‘당근’이라고 살짝 알려주세요. 다음 시리즈에 참고 또는 조심할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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