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왜 식약처를 떠났을까

의원면직의 사유

by 영샘

‘식약처 인사담당 OOO입니다. 정기 전보 실시 전, 휴직자 대상으로 복직 여부를 확인하고자 합니다. 아래 양식대로 문자 회신 바랍니다.’

그간의 과정을 돌이켜 본 다음, 나는 담담하게 회신했다.

보건연구사 OOO / 의원면직 예정 : 자세한 내용은 메일로 보내드립니다.’


원래는 복직 예정 시기 및 희망 부서를 회신하도록 안내받았으나 나는 복직이 아닌 면직을 선택했다. 결심하기까지 여러 날을 앓았으며 여러 밤을 설쳤다. 「나로 살 결심」의 저자(문유석)는 첫 직장인 법원을 떠날 때 첫사랑을 잃은 느낌이었다고 했다. 최근 그 책을 읽으면서 그와 비슷하지 않은, 일개 주무관인 내가 사직원을 쓰면서 느낀 감정이 바로 그것임을 깨달았다. 나도 이렇게 첫사랑 같은 첫 직장을 잃어버렸다.


인사담당자가 보내준 사직원 양식은 어찌나 단호박인지 모두 궁서체로 이루어져 있었다. 가장 눈에 띄는 것은, 퇴직 사유를 구체적으로 쓰라는 것이었다. 얼마나 자세히 써야 할까, 내 마음속 맺힌 이야기를 다 써야 할까. 결국 양식과 동일한 궁서체로 가장 그럴싸하면서 어느 정도 지분이 있는 사유를 적었다.


28화 사직원양식.png 궁서체의 사직원 양식


- 육아 등의 사유로, 자택에서 근거리 위치한 기관으로 이직하고자 함


모르는 사람들은 저 사유에 동의할 수 있겠지만 식약처 직원이 본다면 이것은 핑계다. 식약처 본청은 충북 청주시에 있지만 하위 조직 중에 지방식약청(지방청)이 있기 때문이다. 조직은 늘 인력난에 시달렸고 저출산 시대의 애국자들을 외면할 수 없다. 의무적인 순환 전보가 있지만, 집에서 14km와 22km 떨어진 곳에 두 지방청이 있어서 그사이를 몇 년 사이클로 돌면 될 터였다. 실제로도 그렇게 순환하는 동료들도 꽤 있다. 문제는, 나에게 정년 퇴임까지 20년가량의 긴 시간이 남아있다는 점이었다. 이미 육아로 여러 해 지방청에서 근무한 나에게는, 승진에서 배제되는 지방청 순환 근무를 뛰어넘을, 더 나은 계획이 필요했다.


100km가 넘는 극악한 출퇴근 거리임에도 불구하고 식약처 본청 근무를 자원한 것은, 내 마지막 보루 비슷한 것이었다. 여기서 경력을 쌓아 굳건한 내 자리를 만든다면 뭐든 되지 않을까, 막연한 희망이 있었다. 기차 30분만 타면 된다고 생각했는데, 집도 직장도 기차역 코 앞이 아니었다. 지하철과 달리 기차는 놓치면 끝장이니 늘 여유롭게 나서야만 했다. 출퇴근 시간대 역과 직장 간 셔틀이 있었으나 거의 모든 날이, 정시 퇴근은 힘들었다.

28화 ktx.jpg KTX는 고향 갈 때 타야만 설렌다. (2025년 12월)


기차가 만드는 마찰음, 바퀴와 선로 간 쇳소리는 도무지 적응되지 않았다. 왕복 4시간 출퇴근으로 닳은 체력 속에 부정적인 생각은 눈덩이처럼 불어났다. 낯선 업무에 허덕이는 날 탐탁지 않게 보는 싸늘한 눈빛, 주중에 제대로 못 본 아이들을 챙기고 싶은데 주말조차 빼앗는 업무량, 코로나 시국 중 각종 정보 파악을 위해 늘 유지되어야 하는 상시 대기 (온콜, On-call) 상태. 이 모든 과정을 견디는 것이 과연 더 나은 삶을 가져다줄까, 엉긴 덩어리에 짓눌렸다.


마침내 깨져버린 균형으로 탈이 났다. 고열과 탈수로 수액을 맞다가 실신했고 5일간 병원 신세를 졌다. 병가를 마치고 일주일 만에 출근한 나에게 던져진 말의 핵심은 ‘부담스럽다.’였다. 부품으로써의 효율성을 따지며 계산기를 두드리는 모습 앞에서, 나도 한계에 도달했음을 인정하면서 휴직 의사를 밝혔다. 이후 피폐해진 나는 뒷전이고, 바꿀 부품을 찾는 절차에 집중하는 조직을 보면서 이 거대한 기계장치에 나를 갈아 넣을 필요가 없음을 자각했다.


그렇게 나는 휴직 중에 집에서 멀지 않은 지방자치단체 공무원 임용시험을 봤고, 다음 행보를 결정했다. 그랬기에 면직일과 임용일을 맞춘 사직원을 의연하게 제출할 수 있었다. 시간이 지난 후, 내가 했던 업무를 이제는 두 사람이 나눠서 하고 있다는 소식을 전해 들었다. 조직 내외부에서 많은 이들이 노력한 덕분에 전반적으로 인력이 보강되었으며, 예산도 많이 확보했다는 소식도 있었다. 최근 식약처에서 발표한 대규모 채용 계획도 각별한 관심으로 지켜보았다. 코로나 시국을 버텨내면서 조직 분위기도 많이 개선되었다고도 들었다. 가끔은 당시 코로나 시국의 한가운데였기에 다들 힘에 부쳐서 여유가 없던 게 아니었을까 돌아본다.


한 선배님이 내게, 고생만 하고 떠나서 이제 식약처는 궁금하지 않겠다고 했다. 즉각 나는 너무 궁금하다고, 자주 떠올린다고 답했다. 식약처에 대한 비난이 들릴 때, 내 일처럼 걱정하는 걸 보면 여전히 나는 그곳을 아끼나 보다. 하지만 내가 앞장서서 신랄하게 비판한 적도 있음을 고백한다. 그럼에도 누군가 내게 첫 직장으로 식약처를 선택한 것을 후회하냐고 묻는다면 그건 아니라고 말할 수 있다. 식약처가 아니고서야 하지 못했을 경험, 그곳에서 만난 잊지 못할 사람들, 그로 인한 내 성장이 너무 소중하니까. 게다가, 식약처는 가장 풍성하고 사실적인 글감을 선사한, 나의 거대한 뮤즈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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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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