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 돌대가리도 당신보다 낫겠다

-초보운전자의 대환장 운전연수

by 콩새와 밤톨

신혼여행 이후 30년 만에 제주도를 갔다.

어떤 이들은 주말마다 바람 쐬러 간다는 제주도를 다시 가기까지 나는 그렇게 오랜 시간이 걸렸다.

한집 남자와 간 건 아니다.

한집 남자와는 웬만하면 어디든 같이 가면 안 된다.

기분 좋게 갔다가 싸우고 올 확률 99%다.

친구와 둘이 차를 렌터 해서 제주도를 누볐다.

비로소 내가 운전을 하고 있다는 것이 실감 났다.



한집 남자는 내가 운전하는 것을 극구 반대했다.

본인이 운전으로 밥벌이를 하는지라 교통사고 목격을 많이 한 탓에 반대가 더 심했다.

자기가 죽고 없거든 하든지, 이혼을 한 후에 하든지, 이 남자의 강경한 겁박에 부딪혀 시도조차 하지 못했다.

그러던 차에 10여 년 전, 두 아들이 군에서 제대를 하고 운전면허를 땄다.

무슨 용기가 났는지 나도 하겠다고 고집을 부렸다.

학원에 등록을 해버리니 이 남자도 어쩌지 못했다.

우황청심환을 먹고 삼수 끝에 겨우 합격을 했다.

운전은 엄두도 내지 못하고 면허증은 장롱 속에 처박혔다.


올봄 운전대를 잡았다.

한집 남자가 끌고다닌 60만을 넘게 찍은 차를 아들이 받아 탔었다.

새차를 뽑은 지인이 타던 차를 아들에게 주었다.

졸지에 아들이 타던 똥차가 내 차지가 되었다.

뭐든 아끼고 보는 이 남자의 본성이 폐차직전인데도 버리지 못하고 내게로 왔다.

앞으로 10년은 끄떡없다는 큰소리와 함께 이 남자와의 운전연수가 시작되었다.

친절하게 해달라는 부탁으로 거금 50만 원을 연수비로 이 남자 손에 쥐어줬다.

돈의 효력은 사흘을 넘기지 못했다.

밤마다 오르막과 골목길을 오갔다.

일부러 초보가 다니기 힘든 곳으로만 데려가는 게 아닌가 의심이 들 정도였다.

매일 밤 두 시간을 이 남자의 구박과 고함소리를 들어야 했다.

벼른 듯이 시작되는 이 남자의 잔소리는 토가 나올 지경이었다.

멈추지도 않고 지껄이는 입을 주먹으로 갈겨주고 싶은 충동에 내 인내심은 점점 바닥을 드러내고 있었다.

그 입 안 닥치나, 목구멍까지 차오르는 이 말을 수백 번 꿀꺽 삼키며 아쉬운 사람이 참아야 한다는 아들의 말을 되뇌었다.


한집 남자의 밤 운전연수는 넉 달 동안 계속됐다.

여전히 오르막길은 겁이 났고, 좌우 백미러는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차선을 변경할 때는 심장이 오그라들었다.

무엇보다 주차는 아무리 해도 되지 않았다.

핸들을 수십 번 돌려도 어김없이 주차선을 벗어났다.

한밤중 공원주차장에서 주차교육을 일주일이 넘도록 해도 진전이 없던 어느 날,

-햐, 이게 그렇게 안 되냐? 뭐가 어려워, 뭐가~

-돌대가리냐? 돌대가리도 당신보다 낫겠다! 돌대가리도 눈감고 하겠다!

이 남자가 발까지 동동거리며 고함을 질러댔다.

돌대가리냐는 말에 참았던 화가 폭발했다.

지나가는 사람들이 다 쳐다봐도 부끄러운 줄 모르고 대판 싸웠다.

마음처럼 안 되는 것도 속상한데 마누라한테 돌대가리라니, 집에 와서도 분이 풀리지 않았다.

부부끼리 운전연수 하다가 이혼도 한다는 우스갯소리가 결코 우스갯소리가 아니다.

그날 밤 딱 그 심정이었다.

언제까지 이 남자의 잔소리를 들어야 되나.

한숨이 나고 부아가 치밀어 잠도 오지 않았다.


다음 날 홀로 운전석에 앉았다.

독립을 해야 했다.

시동을 켰다.

심장을 뚫고 나오는 쿵쾅거리는 소리가 사정없이 고막을 때렸다.

넉 달 동안 밤마다 돌았던 길을 한 바퀴 돌았다.

어라, 할만하네.

두 바퀴, 세 바퀴를 돌았다.

교차로 중간에 신호가 바뀌어 오도 가도 못하고 섰다.

뒤에서 빵빵거리고 난리도 아니다.

못 들은 척 어기적어기적 겨우 빠져나와 집으로 왔다.

문제는 주차다.

30분이 넘도록 쩔쩔매고 있는데 옆 집 아저씨가 지나가다, 남편이 태워주는 거나 편하게 타고 다닐 일이지 뭣하러 나이 들어 운전을 배우느냐고 핀잔을 준다.

-나 아직 젊거든요!

고함을 꽥 질러줬다.


주변 사람들은 말한다.

넉 달이나 마누라 운전연수를 시켜준 대단한 남편이라고.

그 넉 달 동안 이 남자의 폭언과 잔소리와 고함소리를 견뎌낸 나를 대단하다 치켜세워준 이는 두 아들밖에 없다.

아들들 역시 이 남자의 쉴 새 없이 떠들어 대는 잔소리에 이를 갈다 못해 눈물까지 흘렸다니 내 고충을 이해하고도 남을 것이다.

담벼락에 긁히고, 후진하다 남의 차 들이받고, 주차장 기둥에 걸려 옆 문이 박살이 나도 운전대를 놓을 수 없는 이유는 지난 넉 달 동안 참아낸 나의 수고가 아까워서다.

그만큼 했으면 돌대가리도 눈감고 하겠다는 한밤중 공원주차장에서 내게 퍼붓던 그 남자에 대한 오기가 나를 버티게 했다.

오르막길을 하도 오르내려서 이제 웬만한 길은 우습다.

가끔 이 남자가 한 마디 한다.

-당신은 백미러만 볼 줄 알면 대한민국 어디든지 갈 수 있어.



제주도의 시원한 바닷바람이 운전하는 내내 기분 좋게 얼굴을 간지럽힌다.

평생 운전은 할 줄도, 할 일도 없을 줄 알았는데 내 손으로 운전을 해서 제주도를 누비다니 꿈만 같은 기분에 취해 웃음소리가 점점 커진다.

내가 제주도까지 와서 운전을 하고 있다는 게 아무리 생각해도 웃음이 난다.

떨어져 있으면 애틋해지는가.

겨우 3박 4일인데 그 남자가 새삼 고맙다.

밉네 곱네 해도 이 남자 덕에 내가 운전을 한다는 생각에 미치니 갑자기 목소리가 듣고 싶다.

부부랍시고 텔레파시가 통했나.

그 남자 전화가 온다.

평소의 나답지 않게 나긋한 목소리가 나온다.

-당신 덕에 내가 제주도까지 와서 내 손으로 운전을 다 하네, 고마워요~


내년 봄에는 이 남자와 제주도를 가볼까.

운전석에 당당하게 앉아 이 남자의 코를 납작하게 밟아줄까.

아니, 아니, 아서라.

기분 좋게 나섰다가 싸우고 올 확률 100%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