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프롤로그

-이혼을 권해도 하지 못하는 이유

by 콩새와 밤톨

결혼한 지 벌써 30년이 넘었다.

한 남자와 참 지겹게도 오래 살았다.

이 정도 살면 척하면 척일 줄 알았는데 어찌 된 게 살수록 어렵다.

부부로 만나 같이 걸어가는 이 여정이 참으로 험난하고도 길다.

도대체 이 남자가 내가 알던 그 남자가 맞나 싶을 때가 허다하다.

매일 지지고 볶고 답답한 일상이지만 어찌어찌 긴 세월 잘도 버텨왔다.


알뜰하다는 포장지로 곱게 단장해서 내 속을 뒤집는 일을 수없이 반복한다.

들어는 봤는가.

세상에서 가장 아까운 돈이 마누라한테 밥 사주는 돈,

마누라랑 영화 보는 돈,

마누라랑 카페 가서 커피 마시는 돈이라는 말.

한집 사는 남자의 짠돌이 세트다.

밥은... 가끔 만원 이하는 먹는다.

보리밥이나, 돼지국밥 정도.


아침부터 왼쪽 하복부 통증이 왔다.

출근 후 오전까지는 겨우 참았는데 오후부터 참을 수 없는 통증이 밀려왔다.

허리를 펴지 못하고 겨우 동료의 도움으로 응급실에 도착했다.

그때부터 구토와 열이 나기 시작했다.

진통제를 맞았으나 별 효과가 없었다.

남편을 부르고 큰 병원으로 이송 후 곧바로 응급수술을 받았다.

한밤중에 난소하나가 절단됐다.

일주일 동안 병원신세를 졌다.

요양이 필요하다는 진단으로 결국 직장을 그만두었다.


수술 후 한 달쯤 지나 남편과 산책을 다녀오는 중이었다.

연잎밥집 앞을 지나가다 먹고 가자 하니 웬일로 흔쾌히 그러자 한다.

자리를 잡고 앉으니 주인장이 수저와 물 잔을 갖다 준다.

앉자마자 남편이 나가자고 한다.

왜 그러냐 물으니 밥값이 만원이 넘어서 안 되겠단다.


자연을 품은 연잎밥 13,000원


가격표를 보니 남편 기준 3,000원이 초과다.

그러고는 곧장 일어나 혼자 휑하니 나가버린다.

식탁에는 이미 수저와 물 잔까지 세팅이 되어있는데 민망하기 그지없는 상황이다.

얼굴은 붉으락, 기분은 뿔딱지.

그날 나는 홀로 쌩 가버리는 남편의 뒤통수를 바라보며 이를 갈았다.

-수술한 마누라 밥 사주는 돈이 그리도 아깝냐, 이 웬수야!

한 달 내내 보란 듯이 주말마다 아들과 함께 연잎밥을 먹으러 갔다.


그날부터 그 남자는 내 남편이 아니다.

이 남자, 그 남자, 저 남자, 한집 남자.

그리고 가끔은 웬수.

지금도 그 집은 내가 애정하는 밥집이다.

10년이 넘은 일이지만 그 남자와는 지금까지 단 한 번도 그 집을 가지 않았다.

10년 전이나, 지금이나 만 원 이상의 밥집은 가지 않는 그 남자다.

이 남자는 물가상승률 반영도 할 줄 모른다.


단 둘이 극장에서 영화를 본 적도, 카페에서 커피를 마셔본 적도 없다.

믿을 수 없는 사실이다.

정말이다.

이런 남자와 30년을 살다 보니 일상이 복장 터진다.

가끔은 이 남자가 비정상인지, 내가 정상이 아닌지 헷갈릴 지경이다.


성인이 된 두 아들은 걸핏하면 싸우는 부모를 이해하지 못한다.

이렇게 살 거면 차라리 이혼을 하라고 권한다.

그런 말에 나는 이렇게 대답한다.

-우리가 이혼하면 세상에 이혼 안 할 사람 아무도 없다.

30년을 함께 한 부부가 남이 된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아직 결혼을 하지 않은 자식들이 이해할 수 없는 뭔가가 있다.

그 뭔가 때문에 나는 복장 터지는 일상을 이어가고 있다.

머리부터 발끝까지 사랑스럽다는 가요 속 진부한 사랑타령은 그냥 노래일 뿐이다.

연애할 때도 그놈의 사랑은 유통기한이 생각처럼 그리 길지 않다.

하물며 30년을 살았으면 어떻겠는가.

머리부터 발끝까지 꼴 보기 싫을 때가 하루에도 수십 번이다.

그 뭔가 때문에 살다 보니 지금 여기까지 왔다.

밉지만 밉지 않게 살아보려 무던히 애써 온 일상들이 쌓이고 쌓여 또 다른 무언가가 되었다.

그 소소한 일상의 이야기들이 나처럼 복장 터지는 부부들의 무언가로 위로가 되기를 바라며

앞으로도 쭉 살아보려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