각 방 쓴 지 10년 째다.
옆구리를 파고드는 한집 남자의 코 고는 소리에 잠귀 밝은 나를 보호한 조치다.
오십이 넘으면 옆에서 누가 조금만 뒤척여도 깊은 잠을 못 잔다.
갱년기 불면증이 수시로 잠을 깨워 힘든 판에 곱지 않은 한집 남자의 코 고는 소리는 천둥벼락소리보다 거슬린다.
적당한 시기에 두 아들이 마침 군에 입대했고 제대 후에는 알아서 독립을 했다.
가장 큰 효도를 한 셈이다.
어쩌다 누군가가 자고 가는 날은 할 수 없는 합방이다.
정말 번잡하고, 거추장스럽다.
자꾸 내 옆구리에 달라붙어 다가오는 통에 침대에서 떨어질 뻔한 적이 몇 번이나 있었다.
그럴 때마다 온몸으로 거부하며 발로 밀어낸다.
그게 자존심이 상했는지 어느 날은 한 마디 한다.
- 으이그, 곰처럼 굴지 말고 여우가 좀 돼봐라~
- 아니, 타고나길 곰인데 여우가 되라고 하면 어쩌자는 겨.
너른 침대에 대자로 뻗어 세상에 없을 평화를 누린다.
이 남자의 예쁘다는 한 마디에 마음을 빼앗겼다.
살면서 단 한 번도, 그 누구에게도, 심지어 나를 낳고 길러준 부모에게도 예쁘다는 말 한마디 들어보지 못했다.
한 명만 더 있으면 못난이 계를 만들 텐데 한 명이 모자라서 못한다는 농담으로 동네 아줌니들의 놀림감이 되었다.
나만큼의 못난이가 동네에는 드물었다.
등굣길 막내오빠는 앞으로 후딱 가든지, 뒤에 뚝 떨어져서 오든지 하라며 먼저 후다닥 가버리곤 했다.
하필 담 하나 사이를 두고 사는 이종사촌은 동네에서 빼어나기로 소문난 이쁜이였다.
매사에 그녀와 비교를 당했다.
그녀가 예쁜 것이 당연한 것처럼 내가 못난이인 것도 당연했다.
외모로 인한 내 자존감은 늘 바닥이었다.
그런 내게 이 남자가 이쁘다고 한다.
손을 꼭 잡아주고, 머리를 쓰다듬어 주고, 볼을 꼬집으며 이쁘다고 한다.
내 나이 스물셋,
이쁘다는 그 말에 혹 해서 이 남자 고향에 인사를 갔다.
터미널로 마중 나온 나보다 아홉 살이 많은 이 남자의 누님은 내 또래라 해도 믿을 만큼 젊고 예뻤다.
잘록한 허리까지 오는 긴 생머리에 날렵한 턱선, 오밀조밀한 이목구비가 그야말로 미인상이다.
넙데데한 얼굴에 키마저 몽땅한 나와 달리 팔다리도 길쭉길쭉 늘씬한 몸매까지 갖추고 있었다.
집에 도착하니 어머니라는 분은 30년 후 누님의 모습을 하고서 만두를 빚고 있다.
수줍게 인사하고 불편하게 앉았는데 눈치 없는 이 남자 자꾸만 묻는다.
- 엄마, 이쁘지, 진짜 이쁘지?
- 누나, 내 여자친구 이쁘지? 봐봐, 진짜 이쁘잖아~
몇 번이고 되묻는 이 남자의 푼수짓에 참다못한 누님이 한 마디 한다.
- 미친놈, 팔불출이여? 그만 좀 햐~아!
나는 그날 팍 꼬꾸라져 어머니 손에 놓인 만두피 속으로 숨고 싶었다.
술은 못 마신다.
담배는 안 피운다.
내 배우자의 가장 중요한 조건에 이 남자는 통과되었다.
결정적인 한 방은 엄마와 누나 앞에서 자꾸 나를 이쁘다고 했던 그날이었다.
나를 이쁘다고 하는 이 남자의 콩깍지는 제법 오랫동안 벗겨지지 않았다.
연년생으로 두 아들을 낳고 한 십 년은 알콩달콩 그럭저럭 잉꼬부부 흉내를 냈다.
모임에 나갔다가 특별한 것이 있으면 먹지 않고 주머니에 챙겨 와 나에게 주곤 했다.
어릴 적 엄마가 남의 집 모내기 갔다가 간식으로 나온 눈깔사탕을 품에서 꺼내줬던 것처럼 이 남자의 소소한 애정표현은 내 콩깍지도 오래 가게 했다
지금도 가끔 이 남자의 주머니를 뒤지는 내 버릇은 단지 만 원짜리 한 장을 몰래 꺼내기 위함이 아니다.
이 남자의 애정을 확인하려는 순수한 절도행각이다.
친정엄마 눈에도 사위의 콩깍지가 보였는지
- 아야, 오서방 눈에는 아직도 니가 이쁜갑다, 짚신도 짝이 있다더만 지 눈엔 니가 이쁜갑다야.
고슴도치 엄마 눈에도 못난이 딸을 이쁘다 하는 사위가 신기한 모양이다.
그 콩깍지는 장모에게도 확장되었다.
수시로 전화를 하고, 오랜만에 만나도 둘이서 날밤을 샌다.
장모를 본인 엄마 대하듯 스스럼이 없다.
마누라가 예쁘면 처갓집 말뚝에도 절한다더니 이 남자도 그런 줄 알았다.
언제부터인지 이 남자가 본색을 드러내며 점점 별나졌다.
못 먹는다던 술병을 들고 집에 오지를 않나,
안 핀다던 담배냄새를 풍기고 오지를 않나,
버려진 잡동사니를 주워오지를 않나.
나의 잔소리가 본격적으로 시작됐다.
그때는 왜 그렇게 나한테 잘했냐고 묻는 말에 이 남자가 답한다.
- 당신이 어린 두 아들 놔두고 도망갈까 봐 무서워서 그랬지.
이제 가려면 가, 하나도 겁 안 나~
애들도 다 컸겠다, 뭐가 무서워, 가려면 가, 하나도 겁 안 나!
아니, 우리가 무슨 선녀와 나무꾼도 아니고, 30년 산 마누라한테 이게 할 말이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