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집 남자 방이 난장판이다.
아직 한 겨울도 아닌데 솜이불이 깔려 있다.
어디서 주워왔는지 복실거리는 털 조끼도 굴러 다닌다.
- 으이그, 고물상도 아니고 아주 볼만하구만.
내가 이 남자의 방을 기웃거리는 이유는 딱 한 가지다.
주머니를 뒤져 만 원짜리 한 장을 슬쩍하기 위함이다.
오늘 만 원을 꺼냈으면 하루는 쉬어 주든지 다음날은 오천 원 짜리나 천 원짜리 두어 장만 꺼내야 한다.
연달아서 꺼내면 들킬 수도 있기게 하루쯤은 쉬어주는 여유를 줘야 한다.
고도의 전략이 필요하다.
목적을 이룬 후에는 다시 들어갈 이유가 없다.
청소는 각자 알아서 한다.
한동안 치워줬으나 그럴 필요가 없다.
삼일을 넘기지 못하고 다시 고물상이 된다.
그래도 가끔 선심 쓰듯 치워는 준다.
지금 집으로 이사 온 지 10년이 되었다.
결혼생활 30년, 아홉번 째 집이다.
이 집에서 가장 긴 시간을 살고 있다.
남들은 집으로 재테크도 잘하던데 나는 집을 보는 눈도 없고 돈 버는 재주도 없다.
살기에 편하다면 그것으로 족하다.
이 남자도 돈 버는 재주가 없다.
이 집으로 오기 전 그나마 내 눈이 이 남자보다 나아 눈 독 들인 집을 이 남자의 반대로 포기했다.
지금 그 집은 우리 집의 두 배가 되었다.
우리 집만 10년 전과 그대로다.
아니, 더 내렸다.
그러니 내가 이 남자의 주머니를 안 뒤지고 배기겠나.
이 남자와 단칸방에서 신혼을 시작했다.
화장실이 1층에 있는 다세대주택 2층집이었다.
여름엔 덥고 겨울엔 추웠다.
여름에 선풍기가 없어 자다가 더워 울었던 기억이 난다.
임신까지 해서 얼마나 더웠는지 엉엉 울었다.
겨울에는 손이 시렸다.
보일러의 기름값을 감당하기 어려워 최소한으로 돌렸다.
건조한 방 공기를 축이려고 그릇에 물을 담아두면 밤새 얼어버렸다.
그나마 신혼이라 꼭 껴안고 잤으니 다행이라면 다행이다.
그 집서 첫 아이를 낳았다.
그렇게 우리는 20대에 부모가 되었다.
둘째를 낳은 집은 1층짜리 단칸방이었다.
주인집 작은 방에 다락이 딸린 집이었다.
이 집도 화장실이 밖에 있었다.
그래도 이 집은 따뜻했다.
이 집으로 이사 와서 선풍기도 샀다.
햇빛이 잘 들지 않아 아이들 기저귀를 빨아 말리는 것이 하루 종일 내 일거리였다.
연년생 두 아이 기저귀를 삶아 빠느라 손목이 나가 행주도 짜지 못하게 되었다.
이 남자가 출근 전에 기저귀를 빨아주고 퇴근해서도 기저귀를 빨았다.
아이들도 씻겨주고, 청소도 하고 내가 힘들지 않도록 무엇이든 다 해줬다.
지쳐 쓰러져 자고 있는 이 남자를 볼 때면 어린 나이에 가장이 되어 고단하게 사는 것 같아 그렇게 안쓰럽고 짠했더랬다.
단칸방에 살아도 그때는 애틋했다.
이 때의 기억으로 지금의 나는 살고 있다.
아이들이 초등학교 입학 전에 두 칸짜리 집으로 이사를 했다.
처음으로 그 남자 명의로 된 집이었다.
겨우 열 평짜리 집이었으나 대궐보다 넓었다.
아이들이 안방 끝에서 주방 끝까지
- 와, 운동장이다~~!
하면서 뛰어다닐 정도였다.
단칸방에서만 살다 두 칸 방에 주방까지 있는 집으로 왔으니 얼마나 넓었겠는가.
이사한 첫날밤 이 남자가 내 손을 꼭 잡으며 말했다.
정주영이 부럽잖고 이건희가 부럽잖다고.
지금도 그렇지만 현대가의 정주영 씨와 삼성가의 이건희 씨는 대한민국 최고의 재벌이었다.
나도 그 남자 품에서 부자가 된 듯 마음이 들떴다.
겨우 열 평짜리 집에서 최고의 재벌도 부럽지 않다는 그 남자의 말이 뭉클했다.
가난한 집안 무일푼에서 시작한 우리의 첫 집이었다.
아이들이 신나게 뛰어 다니던 모습, 이 남자가 내 손을 잡고 울먹이던 모습은 30년을 살게 한 힘이 되었다.
베란다에 온갖 잡동사니가 한가득이다.
빨래를 널다 돌덩이에 발이 걸렸다.
짜증이 확 올라온다.
새끼발가락에서 피가 난다.
참았던 화가 목구멍을 뚫고 나온다.
- 아, 도대체 이게 다 뭔데!
- 하다 하다 돌뎅이까지 주워와서 쌓아두냐?
- 내가 못살아, 집구석이 이래서 내가 누굴 집에 데리고 올 수가 없다고!
아무리 고함을 쳐도 듣는 둥 마는 둥이다.
이 남자가 산에 갈 때마다 돌을 주워온다.
고향집에 갖다 놓을 요량이다.
쌓아 둔 돌덩이 옆에는 산에서 캐 온 이름 모를 나무들이 시커먼 흙에 심겨 있다.
흙까지 떠 매고 와서 줄줄이 화분을 몇 개나 만들어놨다.
이것도 고향에 들고 가서 심겠단다.
대충 봐도 스무 개가 넘는 막걸리병은 물을 가득 채워서 줄을 세워놨다.
하다못해 물까지 고향에 들고 가려고 산에 가서 거하게 막걸리 한 병을 마신 후 약수를 담아 온다.
집도 헐값인 데다 누수도 안 잡혀 열 통 터지는데 이 남자까지 천불 나게 한다.
나의 일상은 날마다 이렇게 지지고 볶고의 연속이다.
눈물나게 애틋했던 과거도 세월의 무게 앞에 흐릿해지고 사소한 일상의 갈등은 그 기억마저 잊게한다.
둘 사는 집이 너무 너르다.
너른 만큼 더 쌓인다.
단칸방에 살 때는 물욕이 없더니 이 남자의 물욕은 점점 과해진다.
지나가다 쓸만한 것은 다 들고 온다.
공짜라면 양잿물도 마실 위인이다.
이 남자가 내 잔소리에 본인 방 베란다로 물건을 옮겼다.
방 한 칸에 자기 세상을 만들었다.
이 남자는 아직도 단칸방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그러거나 말거나.
나는 이 남자의 방에 들어가 주머니만 뒤지면 된다.
돈봉투가 제법 두툼해졌다.
돌아오는 내 생일엔 반드시 소고기를 먹으리라.
마누라 사주는 밥값도 아까운 이 남자, 자기 주머니가 빈 줄은 꿈에도 모를 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