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 짠돌이의 공짜 낭만

by 콩새와 밤톨

절약도 지나치면 궁색이 된다.

무엇이든 아끼고 보는 한집 남자의 지나친 절약은 내 속을 뒤집을 때가 허다하다.

아파트 재활용함에서 물건을 주워오는 것은 다반사고 한여름 쉬어버린 음식도 팔팔 끓여서 먹는 사람이다.

그런 음식을 먹고도 멀쩡한 것을 보면 이 남자의 내장은 강철로 된 게 확실하다.

유별난 주인 덕에 상한 것을 먹어도 끄떡없다.


집 앞 마트를 지나는데 할인행사가 눈에 띈다.

단배추 900원

큰일이다.

이 남자가 무더기로 사 올까 겁부터 난다.

제발 못 보고 그냥 지나치기를 바랄 뿐이다.


아니나 다를까.

퇴근길 이 남자의 양손에 단배추가 한가득 들려있다.

이 남자의 단배추 쇼핑은 1000원에서 갈린다.

한 단에 천 원 이상이면 패스, 이하이면 최소 세 다발이다.

먹을 사람도 없고 맛도 없는데 아랑곳하지 않는다.

이 남자는 단배추를 손수 다듬고 데치고 무쳐서 나도 아껴먹는 고추장을 듬뿍 떠내 참기름까지 콸콸 쏟아 비벼먹는다.

배보다 배꼽이 더 크다.

900원짜리 맛도 없는 단배추를 먹기 위해 비싼 고추장과 참기름을 과하게 소비한다.

사다 나른 참기름이 몇 병째인지 모르겠다.

미운 마음에 고추장을 김치냉장고 서랍 깊숙이, 참기름은 야채박스 안쪽에 숨겨둔다.

개코인가.

숨겨놔도 금방 찾아낸다.

그래서 더 얄밉다.

이놈의 마트가 잠잠하다 싶더니 단배추할인을 또 하고 있다

사흘이 멀다 하고 사 올 거라 생각하니 벌써 부아가 난다.

이 와중에 나도 미쳤다.

귀농한 지인에게 고운 고춧가루를 두 근이나 주문했다.

고추장을 안 담글 수도 없고...

이 노릇을 어쩐담.


오래전 이 남자가 옥장판을 주워 온 적이 있다.

세월의 흔적이 여실한 모양새에 기겁을 했다.

여기저기 뜯겨 있고 달려있는 옥은 튀어나왔다.

당장 도로 갖다 놓으라고 윽박질러도 소용이 없었다.

다음 날 이 남자가 8만 원을 주고 고쳐왔다.

성능이 고약했다.

열선이 가늘어서 별로 뜨시지가 않았다.

이런 얄궂은 것을 8만 원이나 주고 고쳐왔다는 내 핀잔에 이 남자가 며칠 후 옥장판을 또 주워왔다.

갖다 버리라, 아무리 어르고 달래고 꾀어도 소용없었다.

가장 두꺼운 열선을 깔아 16만 원을 주고 고쳐왔다.

보란 듯이 드러누워 좋다고 웃어대는 이 남자의 행태에 혈압이 올랐다.

으이그,

이 돈이면 새것을 사고도 남았지!


이때부터 본격적인 각방이 시작되었다.

10년도 더 지난 지금 이 남자의 침대에 아직도 깔려있다, 그 옥장판.

찢어진 곳에 초록색 테이프가 덕지덕지 붙어있다.

가장 낮은 온도를 설정해도 궁뎅이가 데일 듯한 최고의 성능을 자랑한다.

더 기가 찬 건 겨울에도 본인 방문을 활짝 열어놓고 잔다.

혹시라도 과열로 불이 나 본인이 못 깨어나면 내가 알아서 꺼야 된대나 어쩐대나.


엘리베이터 문이 열린다.

바로 눈앞 계단에 얄구진 화장대가 있다.

며칠 전 아파트 입구에 버려져 있던 낯익은 물건이다.

이미 베란다에는 대형 화분이 두 개나 있다.

이건 지난주에 갖다 놓았다.

한 달에 두 번, 이 남자가 고향에 갈 때 실려갈 물건들이다.

그럴 때까지 차곡차곡 모아 베란다에 쌓아둔다.

빨래를 널 때마다 여간 거슬리는 게 아니다.

이것들에 걸려 넘어지기라도 하는 날에는 꼭지가 돈다.

4년째 이 남자는 이런 기괴한 짓을 하고 있다.

나와 의논도 없이 빚을 내서 고향에 판넬로 지은 어느 홀아비의 집을 샀다.

그 홀아비도 거기다 고물상을 해놨던데 이 남자는 그 남자를 능가하는 재주를 발휘한다.

그동안 실어 나른 물건들이 얼마나 쌓여있을지 안 봐도 훤하다.

고물들로 차고 넘쳐 난리도 아닐 게다.

에휴, 그 꼴을 내가 어찌 보겠누.

속없는 이 남자, 갈 때마다 같이 가자고 나를 꼬드긴다.

암만 꼬셔봐라, 내가 넘어가나.


입구 화단에 국화가 만발했다.

오며 가며 눈을 맞추고 향기도 마셔본다.

가을은 가을이다.

허기가 져 집에 오자마자 밥부터 먹었다.

부른 배 토닥이며 소파에 기대 널브러져 있는데 그제야 꽃이 눈에 들어온다.

분명 어제는 없었는데 대체 이걸 언제 꽂아 놨을꼬?

입구에서 꺾어 온 국화로 집안을 화사하게 밝혀 놨다.

내 돈 주고 못 사면서 공짜는 잘도 들고 오는 이 남자.

화단의 낭만을 공짜로 꺾어왔다.

이 미친 주책.

입가에 미소를 숨길수가 없다.




이전 03화3. 주머니 속에 담긴 세월 - 단칸방의 기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