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아들만 둘이다.
아들만 있는 이들과는 묘한 동지애를 느낀다.
그네들과는 동병상련의 짠함이 있다.
딸이 있는 이들은 나를 불쌍한 눈으로 본다.
아직은 딸이 없다고 해서 크게 아쉬운 것은 없다.
그러나 딸을 둔 이들은 아들만 있는 나의 노후를 염려해 준다.
- 아직 젊어서 그래. 나이 들어봐, 딸밖에 없다니까.
그 염려 속에는 자신들의 안도감이 들어있다.
큰아들이 초등학교 저학년 때 일이다.
학교에 다녀오더니 느닷없이 한 마디 했다.
-엄마는 100점이에요.
나는 100점짜리 좋은 엄마라는 의미로 단단히 착각을 했다.
아들이 엄마를 그렇게 생각해 주는 것이 기특하고 뿌듯했다.
그 착각은 얼마 후 산산이 부서졌다.
담임선생님이 아이들을 앉혀 놓고 이런 말을 한 것이다.
아들만 하나 낳은 엄마는 빵점, 딸을 하나 낳은 엄마는 50점.
아들만 둘 낳은 엄마는 100점, 딸만 둘 낳은 엄마는 150점.
아들과 딸을 낳은 엄마는 200점.
선생님은 200점이라며 딸을 낳지 못한 엄마들은 불쌍하다고 했단다.
졸지에 나는 100점짜리 불쌍한 엄마가 되었다.
100점 엄마의 현실은 큰아들이 고등학생이 되면서 실감하게 되었다.
대놓고 나의 기대치를 꺾기 시작했다.
아직 품 안의 자식이었지만 정서적인 독립을 외쳐댔다.
자신은 딸이 아니라서 엄마의 이야기를 들어주는 것에 한계가 있다며 내가 선을 넘는 것을 허용하지 않았다.
엄마와 함께 있는 공간이 불편하다며 툭하면 자기 방 문을 닫았다.
나를 차단하고 거리를 두는 아들이 서운했다.
그렇다고 대단히 반항적으로 거부한 것은 아니다.
은근히, 묘하게 마음을 상하게 했다.
- 저는 딸이 아니에요. 딸 같은 아들을 기대하지 마세요.
내가 조금이라도 선을 넘으면 가차 없이 이 말부터 뱉어냈다.
때로는 그 서운함이 너무 커서 목구멍까지 차오르는 울음을 삼키는 날도 있었다.
아들 앞에서 티 내고 싶지 않은 자존심이 나를 단련시켰다.
그때부터 지금까지 10년이 넘는 세월 동안 아들의 독한 말들은 서운하기도 했지만 쉽게 넘어갈 만큼 무뎌지게 되었다.
아들은 내 서운함이 극에 달할 때쯤 풀어주는 재주도 있다.
함께 시장을 가주기도 하고 산책을 하면서 내 이야기를 들어주기도 한다.
그러면 바보같이 서운함이 사라진다.
아들은 딸이 없는 나를 측은하게 생각하면서도 적당한 거리를 유지한다.
아들만 여섯인 집안에서 자란 남편은 아들들이 초등학생 때부터 밥 하기, 설거지하기, 빨래 널고 걷기, 라면 끓이기 등을 하게 했다.
투덜대는 아들들에게 이다음에 장가가면 마누라한테 사랑받을 거라는 말도 잊지 않았다.
그래서인지 두 아들은 능숙하게 집안일을 해냈다.
작은아들은 세상의 모든 아이들이 자신들처럼 그렇게 집안일을 하는 줄로만 알았다.
중학교를 졸업할 때가 되어서야 비로소 아니라는 사실에 충격을 받았다.
놀러 온 친구들이 너네 엄마 새엄마냐, 엄마가 하는 일을 왜 네가 하느냐고 물었단다.
친구들은 아무도 하지 않더라는 것이다.
그것을 계기로 작은 아들은 적당히 요령을 피웠지만 집안일에서 벗어나지는 못했다.
두 아들에게 하게 한 것은 집안일 이외에도 한 가지가 더 있었다.
어버이날과 생일에는 무조건 편지 쓰기였다.
주기적으로 아들들의 편지를 받는 재미가 쏠쏠했다.
반 강제였어도 그 편지들은 예상치 못한 문장으로 감동을 주기도 했다.
큰아들은 지금도 가끔 편지를 써준다.
세월이 흐른 만큼 두툼하게 쌓여가는 편지를 한 번씩 꺼내 읽으며 아이들의 성장과정을 되뇌어 보는 것은 큰 즐거움이다.
큰아들이 고등학교에 입학한 첫 해, 내 생일날 아침이었다.
마침 휴일이라 늘어지게 늦잠을 잤다.
밖에서 두런두런 누군가와 통화하는 아들의 목소리가 들렸다.
가만히 귀 기울이고 들어보니 미역국 끓이는 방법을 선생님께 묻고 있었다.
일부러 자는 척하다 한참 후 나가보니 그럴듯한 생일상을 차려놨다.
계란말이도 하고 먹음직한 미역국을 끓여놨다.
한다고 했는데 미역국 맛이 이상하다고 했다.
한 입 먹으니 이건 미역국이 아니다.
시큼 달큼한 것이 이제껏 먹어본 적 없는 희한한 맛이었다.
간장으로 간을 해야 되는데 매실청을 넣은 것이다.
흑설탕으로 담근 매실청이 까만색이라 간장인 줄 알았던 모양이다.
첫 미역국은 실패했지만 엄마와 사는 동안, 생일마다 미역국을 끓여 주겠다는 아들의 감동적인 말 덕분에 겨우 먹을 수 있었다.
아들은 이듬해 생일부터 제대로 된 미역국을 끓여주었고 군대 가기 전까지 그 약속을 지켰다.
기괴한 매실청 미역국의 맛을 잊지 못하는 것인지, 아들이 처음으로 끓여준 미역국이라 잊지 못하는 것인지 미역국을 먹을 때마다 그때의 기억에 웃음이 난다.
두 아들이 독립한 지 10년이 다돼간다.
내가 엄마가 되었던 나이를 훌쩍 지나 서른이 넘었다.
큰아들은 가끔씩 송정바닷가나 해운대를 데리고 가 콧바람을 쐐준다.
아들의 팔짱을 끼고 해변을 걷노라면 남편과 연애할 때보다 더 설렌다.
아들은 내 기분을 금방 알아채고 자신은 '봉사활동'을 하는 거라며 딸이 아님을 상기시켜 준다.
아들이 나에게 하는 대부분의 행위를 '봉사활동'이라 칭한다.
남에게도 하는 봉사, 어머니에게 기부하듯 해주는 의미를 담고 있다.
여전히 나와의 거리를 적당히 유지하며 내가 조금이라도 넘보면 금방 선을 긋는다.
작은 녀석은 내가 전화를 하면 늘 바쁘다 한다.
잊을 만하면 전화해서 '별일 없지?' 한 마디로 퉁친다.
무심하다 투덜대면 자신이 다가갈 때까지 엄마는 그냥 그 자리에 가만히 있기만 하면 된단다.
아들들은 엄마가 다가오면 뒤로 물러나는 속성이 있다나.
필요하면 엄마에게 먼저 전화하게 되는 이기적인 놈들이 아들이라며 딸과의 다름을 얘기한다.
행여라도 내가 자기 집에 간다고 하면 손사래부터 친다.
영역을 침범당하는 수컷들의 속성을 여과 없이 보여준다.
- 아, 왜 오는데, 오지 마요, 오지 마! 내가 갈게!
좋은 엄마는 어떤 엄마일까.
아들들이 성인이 된 지금까지도 내게는 숙제 같은 질문이다.
딸을 낳지 못하고 아들만 둘 낳은 것을 점수로 따진다면 나는 100점짜리 엄마다.
20년이나 지난 선생님의 이야기니 지금은 더 낮을지도 모르겠다.
결혼한 아들을 둔 지인이 가끔 며느리 흉을 본다.
며느리보다 아들이 더 밉다는 말을 덧붙일 때면 서운함이 내게도 전염된다.
들은 얘기를 아들에게 하면
- 당연한 것 아니에요? 나도 결혼하면 어머니보다 내 와이프가 먼저예요.
정색하며 못을 박는다.
맞는 말이고 그래야 당연하지만 대놓고 그런 말을 들으면 마음이 살짝 상한다.
두 아들이 결혼하면 마음 상할 일이 더 많을지도 모르겠다.
혹시라도, 혹시라도 딸이 없는 시어머니를 불쌍히 여기는 맘씨 고운 며느리를 볼 수도 있지 않을까.
실낱같은 희망이라도 가져본다.
아들이 들으면 꿈도꾸지 마라고 할 것 같다.
어쩌겠는가.
나는 아들 둘을 둔 100점짜리 엄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