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 11. 02. 경주 여행기

by 민서

11월 2일, 일요일. 바로 어제 경주를 다녀왔다, 작년에는 같은 날짜 토요일에 갔었는데, 우연의 일치. 작년 그날은 처음으로 혼자 기차를 타던 날이었다. 기차에 타면 승무원분이 카트도 끌고 다니고, 승차권 검사도 하는 줄 알았던 나는 네이버 화면에 장장 10분가량을 승차권을 띄워 두고 있었다. 기차가 출발하고 나서도 계속 한산하기만 하자 그제야 어리둥절하게 화면을 껐던 기억이 있다. 오늘은 일찍 가서 발권도 해 보고, 너른 부산역 구경도 했다. 기차에 타는 것은 늘 즐겁고, 타임랩스로 빠르게 지나가는 풍경도 찍었다. 30분 정도 달리고 나자 어느덧 경주역에 도착했다.


익숙한 풍경이지만 이번 APEC 때문인지 왜인지 더 복작복작한 느낌이었다. 가운데 카운터에서 나눠 주는 APEC 기념 카드도 받고, 발권도 하며 이래저래 반가운 기분으로 역을 나오자 여권을 제시하는 외국인들을 대상으로 여러 상품권 및 기념품을 나누어 주는 직원분들이 보였다. 아쉽네, 하며 지나가려던 찰나 한 여직원 분과 눈을 마주치고 손짓을 하며 열심히 부르시기에 갸웃하면서도 저요···? 하며 다가갔더니 아, 한국인이셨어요? 하며 서로 멋쩍게 웃었다. 마침 바로 도착해 있던 버스 덕분에 기분 좋게 시작한 여행이었다.


원래 가장 먼저 가려고 했던 곳은 국립경주박물관이었지만, 풍경에 넋을 놓고 있다 원래 내려야 했던 정거장보다 두 정거장이나 지나쳐 내려 버린 탓에 식사부터 하기로 하고 느릿느릿 황리단길을 걸었다. 스테이크 함동이라는 식당을 미리 알아보고 갔는데, 골목 안쪽에 있어 덜 번잡해서 좋았다. 분명 네이버 리뷰에서는 엄청난 맛집이라며 광고를 했는데, 정작 들어가 보자 한 테이블밖에 차 있지 않아서 조금 걱정했다—물론 네이버 리뷰를 완전히 믿지는 않았다. 키오스크로 만 원짜리 기본 점심 특선을 주문하고 앉아 15분 정도 기다리다 보니 정갈한 한 상차림이 나왔다. 요즘 물가에 만 원치고 이 정도면 꽤 괜찮은데? 라는 생각을 하며 수저를 들었고 역시 맛있었다. 반찬, 국물, 패티 등 자잘한 것까지 직접 만든다는 문구가 있던데 정말인지는 모르겠지만 상당히 만족했다. 다음에 경주, 황리단길을 가게 된다면 이곳을 다시 한번 방문할 것 같다.


식당을 나오자 바로 보이던 뜨개 공방에서 천 원짜리 마늘 모양 머리핀도 하나 샀다. 선물용! 그리고 길을 가던 도중 사자같이 생긴 고양이도 한 마리 만났다. 고양이들의 따까리인 나는 츄르를 늘 상비하고 다니기에 하나를 꺼냈는데, 뜯기도 전에 냉큼 달려오는 것이 그렇게 귀여웠다. 날름거리며 츄르를 할짝이는 모습을 사람들이 옆에서 다 같이 찍고 있자 꽤나 뿌듯했다.


그렇게 만족스러운 식사 후 바로 박물관으로 가려다 마음을 고쳐먹고, 어차피 걸어가는 길인데, 하며 대릉원으로 향했다. 작년 이맘때에 왔을 때는 날씨도 흐리고 추적추적 비가 내렸다 그쳤다 해서 조금 아쉬웠는데, 어제는 상당히 맑고 쨍쨍해서 기뻤다. 마침 천마총도 무료 개방한다기에 기쁘게 걸음했다. 고분 위 잔디는 파릇파릇했고, 공원 속 숲은 군데군데 단풍이 들어서 선명한 하늘과 대비되어 놀랍도록 아름다웠다. 배롱나무 꽃, 국화, 코스모스 등 화초들도 잘 관리되어 곱고 선연했다. 다만 천마총은 무료 개방이어서인지 사람이 몰려 유물들이 잘 보이지 않아 아쉬웠다. 까치 한 마리가 대릉원 위를 총총 뛰어다니던데, 그 깃의 색마저 고운 남색이라 유달리 자연의 색채가 아름다운 날이라고 생각했다.


다음으로는 첨성대로 향했다. 작년에는 사람도 많고 흐려서 사진을 잘 찍지 못했는데, 오늘은 꽤나 만족스러운 정면 사진을 찍었다. 날씨도 맑고 바람이 시원해서인지 연을 날리는 가족이 많았다. 오색 연이 다채롭게 너울거리며 하늘을 유영했고, 나무에 걸린 것도 몇몇 있었다. 첨성대에서 공원을 지나 한동안 걷다 보니 신라 영상관 옆 연못이 있었다. 부서질 듯 강하게 내리쬐는 햇볕이 호수 표면 위로 반사되어 반짝이는데, 그 모습이 너무 찬란해서 한동안 눈을 떼지 못했다. 과장을 덧붙이자면, 감히 눈을 둬도 될까 싶게 찬란했다. 오리 몇 마리가 그 위를 떠돌며 유유히 돌아다니고 있었고, 정확한 명칭은 모르겠지만 늘씬한 다리가 눈에 띄었던 커다란 흰 새 한 마리가 호수 위를 떠다니다 날개를 펼치는 모습도 운이 좋게 볼 수 있었다.


이제야 비로소 원래 목적지였던 박물관으로 향했다. 동궁과 월지, 그리고 박물관 사이 도로가 완전히 꽉 막혀 있었다. 당연히 원인은 박물관. 주차장이 미어터지는 인파를 감당하지 못했는지 자동차들이 오도 가도 못하고 완전히 꽉 막혀 있었다. 당당히 걸어 안으로 들어가자 괜스레 불안하게 사람이 굉장히 많았다. 어쩌면 당연한 결과였는지 모르지만, 당초 목적이었던 금관 전시는 이미 선착순 마감. 선착순인지도 모르고 늦장을 부렸던 내가 후회되었다. 하루 2천 명, 내가 갔던 한 시, 두 시 즈음에는 900번째 사람을 호명하고 있었다.


불퉁한 마음으로 다음 목적지를 고민하다 원래 가려고 했던 동궁원으로 향했다. 아니, 향하려고 했다. 멍하니 버스에 몸을 맡기고 있다 또 정거장을 지나치는 바람에 그냥 보문호로 가기로 했다. 천문 매립장 삼거리였던가, 그 역에 도착하기도 전 햇살을 게걸스럽게 찢어 삼키는 듯한 호수가 보였다. 영롱했다. 잔뜩 부푼 기대감을 안고 호수로 내려갔다. 그런데 정작 산책로는 관리가 잘되지 않았는지 나무들이 늘어져 호수를 가려 못내 아쉬웠다. 그래도 멍하니 걷다 보니 오리 무리가 헤엄치는 것도 보이고, 나름의 정취가 있었다. 4시 즈음, 기차 시간이 2시간 정도밖에 남지 않았을 때 슬슬 돌아가려고 버스를 찾았다. 그런데 경로가 단 2개, 그것도 하나는 이미 마감된 것밖에 나오지 않는 것이다. 어쩔 수 없으니 노선을 확인했는데, 도착 예정 시간이 나와 있지 않았다. 알고 보니 배차 간격이 1시간인, 양남부터 경주를 도는 아주 긴 노선 하나밖에 없던 것이다. 할 수 없이 챙겨 온 노인과 바다 미니북을 읽으며 30분가량을 그 정거장에서 보냈다. 의자도 없이!


마지막으로 다시 대릉원으로 돌아왔다. 오는 길에 황리단길에서 귀여운 강아지 하나와 말 한 마리도 보았고, 부모님 드릴 십원빵, 찰보리빵도 각각 샀다. 사실 찰보리빵이야 거기서 거기라지만, 십원빵은 정말이지 불만족스러웠다. 엄마가 하나 정도는 사 와, 하기에 기다려서 샀는데···. 하필 내가 간 가게는 아르바이트를 고용해서 하는 가게였나 보다. 탈색을 한 지 꽤 된 듯한 여자 하나—뿌리부터 꽤 긴 부분이 검었다, 중단발 정도의 머리칼을 건성으로 묶은 여자 하나 이렇게 둘이 일을 하고 있었다. 심지어 탈색 여자는 일을 배운 지 얼마 되지도 않았는지 손도 느리고 실력도 형편없었다. 포장으로 주문했는데, 실수로 막대를 꽂았다면 손님에게 먼저 괜찮냐고 물어보아야 하지 않나. 자기들끼리 언니, 어떡해? 괜찮아, 그냥 해. 이런 대화를 주고받는 것을 듣고 있자니 기가 찼다. 심지어 내 뒤 할아버지는 주문하는 동안 같은 말을 세 번이나 하셨다. 집에 와서 에어프라이기로 데워 먹어 보자, 역시나 달달한 치즈 반죽 맛. 재구매 의사는 없다.


5시 반이 넘어가고, 어느덧 하늘이 어두워졌을 즈음 다시 버스를 타고 경주역으로 향했다. 기차를 한가롭게 기다리고 곧이어 탑승하는데, 20대 여자들로 보이는 한 무리가 자기들끼리 자리를 정한다며 시끄럽게 복도 한가운데를 차지하고 비켜주지 않아서 조금 불편했다. 그렇게 경주 여행을 마치고, 1호선을 타 시청역에서 내려, 마을버스를 타고 올라가려던 참이었다. 한 외국인 여성분이 조심스럽게 Excuse, help···? 하며 다가오시기에 냅다 고개를 주억였다. 황령산으로 가신 다기에 마침 같은 장소라며 반갑게 웃었다. 그러자 여성분도 기뻐하시며 동행으로 보이는 남성분을 불렀다. 조금 얘기를 나눠 보니 멕시코 출신이라고 하셨다. 사실 여성분은 금발, 흰 피부, 푸른 눈 때문에 러시아 계열로 예상했는데 멕시코라고 하셔서 꽤 놀랐다. 남성분은 고동색 머리칼, 갈색 눈이셨는데···. 잘생기셨다. 서양 하이틴 킹카, 음, 킹카보다는 여주인공의 미식축구부 소꿉친구 정도 역할로 나올 것같이 수려하셨다. 주섬주섬 찰보리빵도 두 봉지 꺼내드리니 커피랑 드시겠다며 좋아하셨다. 나는 먼저 내리고 황령산은 종착역이라고 알려 드리니 Nice to meet you, 하며 두 분 모두 즐겁게 인사해 주셔서 너무 감사했다. 버스가 올라가 때까지 계속 꾸벅꾸벅. 집에 오니 거의 8시였고, 하루 종일 걸어 다닌 발은 욱신거렸지만 정말 기억에 남을 여행이 될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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