갈까 말까 망설이다 가보기로 했다.
서울은 집값도 비싸거니와 복잡한 도심보다는 조금 외곽에 사는 걸 선호하는 까닭에 우리 집은 경기도에 있다. 서울 퇴계로까지 1시간 30분이 걸리노라며 내비게이션이 길 안내를 시작했다. 평소에 운전하기를 좋아하고 서울에서 대구 정도는 쉬지 않고 한달음에 가곤 했으니 1시간 30분이야 가뿐하다. 양재 부근에 다다르자, 여느 때처럼 하염없이 긴 줄이 승천에 실패한 천 년 묵은 거대한 이무기마냥 늘어져 있었다. ‘마의 양재’를 지나 목적지까지 거의 다 왔는데 내비게이션이 자꾸 샛골목만 알려주었다. 심지어 마지막에는 저 골목으로 차가 지나갈 수나 있을까 싶을 만치 좁고 사람과 오토바이가 뒤엉킨 일방통행 골목으로 안내를 하자 나는 당황하기 시작했다. 근 30년을 도로가 빵빵하게 뚫린 곳에 살면서 좁은 도로를 경험해 보지 못한 나는 ‘미국 실리콘밸리발 촌놈’이다.
진땀 나는 샛골목을 지나 목적지인 호텔에 들어섰다. 지하 주차장으로 내려가야 하는데 처음 맞닥뜨린 기계식 주차 장치를 앞에 두고 정신이 아득해졌다. 촌놈에게는 너무 ‘세련된’ 문명의 이기다. 남편이 기계식 주차장에 주차할 때 옆자리에 앉아 있긴 했어도 내가 기계식 주차장에 직접 주차해 본 적은 한 번도 없었다. 난감했다. 게다가 호텔 측에서 주차를 도와줄 만한 직원이 아무도 없으니 어째야 하나 싶어 한참을 주차용 승강기 앞에 서 있었다. 드디어 직원이 나왔다. 그가 한눈에 내가 촌놈임을 알아보고는 주차에 관해 설명해 주었다. 다소 큰 내 차를 보고 그가 말했다.
“카니발도 들어가는 크기니까 겁먹지 마시고 쭉 들어가시면 됩니다.”
겁은 이미 먹었다. 승강기 안에 들어서니 전면은 큰 거울이었다. 차와 승강기 간의 간격을 보기 쉽도록 설치해 둔 것이리. 승강기 안에 차가 다 들어가자 차의 양쪽 귀와 승강기 벽 사이가 한 10센티미터나 떨어졌으려나. 승강기 문이 닫히자 잠깐 폐소공포증 같은 게 밀려왔지만 이내 차를 내려 성공적으로 주차를 마쳤다.
모임은 당황의 연속이었던 주차 사건을 잊어버릴 만큼 재미있었다. 모임이 끝나자, 이번엔 차를 지상으로 데리고 나올 미션이 남아 있었다. 예닐곱 대가 주차할 수 있는 지하 2층에 ‘나 홀로’ 있다는 생각이 스치자, 그곳에 갇힌 것만 같은 답답함에 또 가슴이 두근대기 시작했다. 빨리 그곳을 벗어나는 수밖엔 답이 없었다. 무섭고 당황스러워 누군가 내 곁으로 와서 도와줬으면 싶었다. 아까 모임에서 만난 분이 언뜻 생각나 전화를 걸었더니 그분도 지금 바쁜 듯 보이기에 입도 떼지 못했다. 어떻게든 지하에서 벗어나야만 했다. 순간 오기가 발동했다. 평소엔 그 오기란 게 잘 발동하지 않아서 그렇지 일단 발동하면 뭐든 해내는 성격이다. ‘나 혼자 이곳을 벗어나고야 말리라! 침착하자. 아자자자!’
주차장 벽에 대문짝만한 승강 절차에 대한 안내가 붙어 있었다. 마음을 가다듬고 그대로 따라 했다. 바닥에 설치된 둥그런 회전판 위에 차를 올리고 후진해서 승강기에 올릴 수 있도록 차를 돌려놓았다. 승강기 입구에 후진으로 차를 들이밀면서 뒤를 보니 커다란 차가 내 차 뒤로 후진 중이었다.
‘이게 지금 뭔 상황이야? 지금 저 차도 승강기에 차를 넣겠다는 거야?’
둘이 같이 후진을 하다가는 서로 꽁무니가 부딪힐 것만 같아 브레이크를 밟았다. 그 차 운전자도 내 차를 발견하고 나와 같은 생각이었는지 내 차와 동시에 그 차에도 브레이크 등에 불이 들어오고 차가 멈췄다. 그 차를 먼저 올려보내고 나는 나중에 탈 요량으로 승강기에서 빠져나오면서 보니 그 차도 앞으로 빠지고 있었다.
‘헐… 지금 뭐 하자는 거요? 어쩜 이렇게 사인이 안 맞냐고요.’
그 차가 앞으로 차를 빼자, 내가 다시 차를 뒤로 들이밀었다. 그 차도 내 차를 향해 꽁무니를 들이밀었다.
순간, 번갯불에 맞은 듯 나가 있던 정신이 ‘번쩍’하고 되돌아왔다. 내 차 뒤에서 내가 브레이크를 밟으면 같이 브레이크를 밟고 내가 전진하면 같이 전진하던 그 차는 바로 거울 속의 내 차였다! 아까 승강기를 타고 내려올 때 승강기 전면이 다 거울인 걸 보지 않았던가! 내가 거울에 비친 내 차를 보고 그야말로 생쇼를 다 하고 있었던 게다. 이솝 우화에, 고깃덩어리를 물고 다리를 건너던 개 한 마리가 물속에 비친 제 모습을 보고는, 그 개가 물고 있는 고기를 뺏으려고 멍멍 짖다가 자신이 물고 있는 고기를 풍덩 빠트리고 말았다더니 나는 그 순간 그 개와 IQ가 동급이었다. 겨우 정신 줄을 부여잡고 올라와 마침내 대명천지大明天地를 맞고 보니 안도의 한숨이 절로 나왔다.
몇십 년간의 미국 생활을 접어두고 한국으로 와서 처음 운전을 시작했을 때 지하 주차장으로 차를 몰고 들어갔다 나왔다 하는 일도 생소하였다. 마치 놀이공원에 온 것 같기도 했다. 산 넘어 산이라더니 아직 모르는 게 많다. 두 나라, 참 다르다.
온 지 3년이 지났지만, 촌놈에게 집 밖은 여전히 위험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