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따뜻한 밤

by 김봄빛



“언니, 엄마가 지금 시골에서 떡을 해서 올라가는 중이래요. 언니에게도 좀 가져다준다는데 언니네 동 호수 좀 가르쳐 줘요. 형부도 집에 계시죠?”

저녁녘에 미국에서 미라 씨가 카카오톡으로 한국에 있는 내게 전화를 걸어왔다. 미라 씨는 미국 우리 집이 있는 동네에 사는 이웃이다. 그녀는 나보다 6살 아래인데 성격이 ‘갑 중의 갑’이다. 마음 씀씀이가 고울뿐더러 사랑을 많이 받고 자라서인지 매사에 스스럼이 없고 어딜 가든 누구하고도 잘 어울린다. 미라 씨 아버지는 서울의 모 대학 교수로 일하다가 퇴직한 후 내가 지금 한국에서 살고 있는 동네로 이사 오셨으며 까마득하긴 해도 우리 부부의 대학 동문 선배다. 미라 씨 부모님의 고향은 내가 자란 대구 근교 시골이다. 그래서 그곳에 아직 옛집이 있다. 농사짓고 수확하는 시골 일을 좋아하는 미라 씨의 어머니는 시골에 자주 내려가신다고 했다.

조금 있으니 현관 초인종이 울렸다.

“미라 엄맘니다. 고향에서 떡을 막 해서 가지고 오다가 떡이 아직 따실 때 좀 드릴라 카는데 내가 들고 올라오기가 무거버가…. 애기 아빠 있으면 내캉 지하 주차장에 내 차를 세워 둔 데로 같이 쫌 가입시더”

남편이 미라 씨 어머니를 따라나섰다. 좀 있자니 남편과 미라 씨 어머니는 양손에 잔뜩 물건을 들고 올라오셨다.

“아이고, 어머니. 뭘 이렇게 많이 들고 오셨어요. 감사히 잘 먹겠습니다.”

“우리가 농사 지가 우리 밭에서 난 거까 만든 것들이라예. 잡사보이소. 우리 미라캉도 잘 지내시고예.”

어머님은 딸 당부까지 잊지 않으셨다.

미라씨 어머니를 보내드리고 보따리를 열어보니 아직도 온기가 가시지 않은 콩을 넣어 만든 백설기와 쑥떡, 참기름, 손수 담그신 마늘장아찌와 가죽 나물, 오이지 등의 반찬이 들어 있었고 따로 들고 오신 용기엔 김치가 한가득 담겨 있었다. 복도 많은 나는 미국에 사는 딸과 한국에 살고 계시는 그녀의 어머니가 국제적(?)으로 공조해 날라주신 고마운 음식을 눈앞에 두고 먹지 않아도 배가 불렀다. 얼마 전 미라 씨가 한국에 다니러 나왔다.

“언니, 나 지금 시골집에 있는데 놀러 와요.”

마침 엄마를 뵈러 그 주말에 대구로 가는 길에 미라 씨의 시골집에 들르기로 했다. 4월 초파일이어서일까, 도로에 쏟아져 나온 차들로 길은 명절 때를 방불케 했다. 평소 3시간 거리를 2배가 넘게 걸려 도착하니 미라 씨 어머님과 이모님께서 한 상을 그득히 차려놓고 우리를 기다리고 계셨다. 애초에 점심을 같이 먹을 계획이었으나 우리가 늦어지는 통에 저녁이 가까운 시간까지 우리를 기다리고 계셨던 거였다. 불고기며 부침개, 시골 나물과 마당에서 막 딴 상치, 고추, 깻잎 등으로 차려진 음식은 식당을 하셨다는 이모님의 음식 솜씨와 잘 어우러졌다. 시골에 아무 연고도 없는 내게는 시골 마당에서 받은 밥상이 별미 중 별미요, 꿀맛 중 꿀맛이었다.

식사를 마치고 둘러본 어머님의 집은 새파란 지붕에, 앞마당엔 꽃들이 소담스레 심겨 있고 상치와 깻잎이 아직 어린 고추와 함께 햇빛을 받아 탐스러워 보였다. 옆 마당엔 포도나무를 비롯한 여러 과일나무가 줄지어 서 있고, 앞마당 너머로는 널따란 논이 보이고 그 뒤로 그리 높지 않은 산자락이 드리워져 있었다. 그 산엔 가을이 되면 밤이 지천이란다.


태어날 때부터 ‘따도녀’(따뜻한 도시 여자?)였던 나는 시골에 대한 로망이 있다. 마당에서 풋고추와 호박을 막 따와 보글보글 끓여내는 된장찌개며 상치 따고 깻잎 따서 마당에 펼쳐 둔 평상에 둘러앉아 쌈 싸 먹는 맛은 마트에서 사다 먹는 그 맛에는 비할 바가 아닐 게다. 어릴 때 시골에서 자란 사람들의 얘기는 언제 들어도 부럽다.

가을이 되도록 한국에 머물고 있는 미라 씨를 며칠 전에 다시 만났다. 그녀는 어머니의 시골집에서 농사지은 고구마, 땅콩, 밤, 포도와 감을 들고 나타났다. 챙겨주는 그 마음이 정말 고마웠다. 미라 씨와 그녀의 어머님이 아니었으면 무슨 수로 내가 이런 호사를 누리리요! 미라 씨가 가져다준 밤을 따뜻하게 구워 먹으며 미라 씨와 어머님의 따뜻한 챙김에 그날 밤이 무지 따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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