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금자리

by 김봄빛

산 아래 언덕배기에 있는 집을 분양받았다 미국에서 새로 . 분양하는 집의 앞마당은 조경을
해 놓고 팔지만 뒷마당은 새 집 주인이 될 사람의 개성대로 꾸밀 수 있도록 빈 공간 그대로
둔다. 늦가을에 집을 분양 받고 그 이듬해 봄부터 여름까지 내내 나는 마당에서 인부들과 함
께 보냈다. 조경을 내가 디자인 했고 인부들에게 여긴 이렇게, 저긴 저렇게 해 달라고 부탁해
야 했다. 경사면을 이용해 폭포가 있는 연못을 만들어 비단잉어 몇 마리도 넣어 두었다. 여러
가지 나무와 꽃을 심고 한쪽에는 큰 항아리에서 작은 항아리로 물이 떨어지는 형상의 작은 폭
포도 만들었다. 하얀 기둥 4개를 올리고 그 위에 지붕을 덮어 바베큐를 할 수 있는 시설과 야
외용 식탁도 놓았다. 다해놓고 보니 근사했다. 우리 집 마당을 구경한 이웃들은 내가 고용한
조경업자를 서로 먼저 고용하기에 바빴다.
산이 지척이기에 봄에는 야생 터키가 내려와 뒷마당에서 돌아다녔고 때론 그 녀석들이 담장
위로 날아올라 그 위에서 공작처럼 날개를 펼친 채 존재감을 뽐내곤 했다. 우리 마당의 원래
주인이었던 도롱뇽이 돌아 다녔고 연못과 폭포가 있으니 온갖 새들이 그 곳에서 물을 먹고 목
욕도 하였다. 때론 연못 근처에서 작은 뱀들도 보였다. 몇 해가 지나 나무들이 커지자 뒷담
앞에 일렬로 심어놓은 사이프러스 나무에선 새들이 새끼를 낳아 연신 먹이를 물어다 나르느라
분주했다.


집 벽에 기대어 화분을 놓고 거기에 쟈스민을 심어 넝쿨을 올려 놓았는데 몇 해가 지나자 그
넝쿨이 너무 무성해졌다. 어느 날, 새 한마리가 그 넝쿨 속으로 날아 들어가는 걸 처음 목격
한 나는 서둘러 남편에게 그 쟈스민 넝쿨을 없애달라고 부탁했다. 너무 우거져 집 벽을 헤칠
수도 있는데다 보기에도 좋지 않아 그 자리에 심을 다른 꽃을 염두에 두고 있던 차였다. 넝쿨
속으로 날아드는 새를 본 이상 더 지체할 수는 없었다. 새가 둥지를 틀고 알을 낳으면 속절
없이 새끼가 날아나가는 날까지 기다릴 수밖에 없기 때문이었다. 내 눈에 가시였던 넝쿨을 새
가 둥지를 틀기 전에 빨리 없애 버리고 싶었다. 남편이 밀짚모자를 쓰고 전기톱을 윙윙 거리
며 넝쿨을 걷어내다가 나를 불렀다. 거의 다 걷어내 놓고 보니 안쪽 깊숙한 곳에 새가 이미
둥지를 틀고 알을 낳아 놓았더란다. 이런 낭패가 있나! 작업을 멈추고 둥지를 살려 놓는다 해
도 뜨거운 볕에 그대로 드러난 알이 괜찮을지…. 어찌할 바를 몰랐다. 일단 작업을 그만 두기
로 하고 어미 새가 날아드는지 살펴보았다. 쟈스민 화분을 둔 자리는 부엌과 식탁이 있는 벽
바깥쪽이라 부엌에 자주 머무는 내가 관찰하기는 어렵지 않았다.
드디어 어미 새가 날아왔다. 넝쿨의 줄기만 앙상하게 남은 그 곳에서 어미 새는 몇 바퀴를
빙빙 돌다가, 근처 담장에 앉았다가, 다시 빙빙 돌다가, 작은 폭포의 항아리 위에 앉았다가를
반복했다. 망연자실 애가 타 보였다. 나도 에미인데 그 마음을 모를까. 한동안 머물던 어미 새
는 둥지와 알을 남겨둔 채 결심을 한 듯 처참히 날아가 버렸다. 알이 든 그 둥지를 다른 나무
에 옮겨놓고 어미 새에게 ‘네 아기들이 여기 있다’고 알려주고 싶었으나 안타깝게도 나는 새
의 말을 할 줄 몰랐다. 저녁나절이 지날 때까지 혹시 어미 새가 또 오려나 싶어 부엌을 떠날
수가 없었다. 어미 새는 다시 오지 않았다. 해가 지자 새 알이 든 둥지를 집안으로 가지고 들
어왔다. 밤에는 기온이 떨어지고 다른 동물의 공격이라도 받을까 걱정이 되었기 때문이었다.
알이 든 둥지를 피아노 위에 올려두었다. 우리 집 피아노는 아무도 치지 않는 장식품이나 매
한가지인데다 피아노가 있는 곳이 우리 집에서 제일 조용한 곳이었고, 게다가 그 위에는 작은
전등까지 있으니 알을 따뜻하게 비춰 주기에도 좋았다.
매일 알의 상태를 살폈지만 오래도록 알은 부화하지 않았다. 부화하길 바랐던 내가 어리석었
다. 내 마음 좀 편해지자고 눈 가리고 아옹했는지도 몰랐다. 중학생이었던 아들이 여섯 살 아
래인 여동생의 손을 잡고 마당으로 나가 구석진 곳에 알을 묻고 아이스크림 막대로 십자가를
만들어 그 위에 꽂아주었다.


내 어쩌자고 새의 보금자리를 베어 내어 새끼 잃은 어미를 만들고 어미 잃은 새끼를 만들어
버렸는가! 새가 날아든 걸 보았으면 한 계절만 기다릴 일이지, 내 보금자리 빨리 다듬자고 남
의 보금자리를 무참히도 망가트려 버렸는가! 내 어쩌자고….

아찌꼭다리.jpg



금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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