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첫 심부름

두려움 이겨내기

by 튜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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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첫 심부름>은 1991년부터 방영된 일본의 장수 리얼리티 예능입니다.
이 프로그램은 어린아이가 부모의 부탁을 받아 스스로 심부름을 완수하는 과정을 그립니다.
과일을 사거나, 잊은 물건을 찾아오는 일처럼 소박한 과업이지만
아이에게는 부모님의 손을 떠나는 것 부터 결코 간단하지 않은 모험입니다.

카메라와 스태프가 곳곳에 숨어 아이의 동선을 따라갑니다.
부모는 멀리서 모니터를 통해 그 모습을 지켜보지만,
어떤 순간에도 직접 개입하지 않습니다.
그 사이, 동네의 어른들이 살짝 도움의 손길을 건네기도 하고,
가게 주인은 천천히 말을 걸어 아이가 용기를 낼 시간을 만들어줍니다.
누구도 노골적으로 돕지 않지만, 모두가 은근히 돕습니다.
그런 조용한 연대 속에서 아이는 길을 잃기도 하고,
다시 길을 찾아내며 조금씩 앞으로 나아갑니다.

때로는 울음을 터뜨리고, 때로는 신나게 뛰어가기도 합니다.
결국 우당탕거리며 심부름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오면,
부모는 환하게 웃으며 아이를 맞이합니다.
그 순간, 세상에서 가장 작은 모험이 끝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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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의 내용에 관한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이 귀엽고 따뜻한 예능과 놀랍도록 흡사한 영화가 있습니다.

바로 아리에스터의 영화 <보 이즈 어프레이드> 입니다.

이 영화는 "보"라는 중년 남성이 어머니의 부탁으로 어머니의 집으로 가는 여정을 그립니다.

보에게 있어서 어머니는 심부름을 요청한 대상이자, 두려워하는 심부름거리입니다.

그저 비행기를 예약해서 타고 어머니의 집으로 가는 소박한 과정이지만

보에게는 부모님의 도움 없이는 비행기표를 예약하는 것 부터 결코 간단하지 않은 모험입니다.

거대한 자본가인 어머니에 의해 고용된 수많은 직원들이 곳곳에서 보의 동선을 따라갑니다.

어머니는 직원들의 눈과 귀를 통해 그의 여정을 지켜봅니다.

보가 수없이 핑계를 대며 머뭇거리자,

어머니는 끝내 스스로의 죽음을 연기하면서까지 개입합니다.

그러나 보는 그 사실을 집에 도착하기 전까지 알지 못합니다.

보의 여정에는 도와주는 사람들이 있지만,

그 도움은 언제나 늦거나, 뒤틀리거나, 불쾌하게 다정합니다.

그가 집으로 돌아갈 수 있도록 사람들은 차로 그를 치고,

칼로 위협하며 길을 알려주고, 총을 난사하며 그의 여정에 가속을 더합니다.

그 사람들이 보가 만들어낸 망상인지 어머니의 직원인지는 모호하지만,

보는 구분할 능력이 없기에 어쨋튼 그러한 일들을 겪습니다.

그런 모두의 염원 속에서 보는 길을 잃기도 하고, 첫사랑을 떠올리기도 하며 다시 앞으로 나아갑니다.

때로는 총에 맞아 피를 터트리고, 부리나케 뛰어가기도 합니다.

결국 우당탕거리며 어머니의 장례식을 마치러 집으로 돌아오면,

죽은 줄 알았던 어머니가 그를 차갑게 맞이합니다.

그 순간 보의 모험은 끝납니다.

아이가 아닌 어른이기 때문에 그의 여정 이후엔 평가받는 거대한 법정이 있습니다.

보는 피고인이 되어 어머니와 세상, 그리고 자기 자신에게 끝없는 변명을 늘어놓습니다.

보가 심부름을 스스로 할 수 없었던 이유를 죄의 고백처럼 상영되고, 그는 유죄 판결을 받습니다.

<나의 첫 심부름>의 끝과 마찬가지로 보 역시 결국 어머니의 품으로 돌아갑니다.

모성으로 표현되는 양수가 가득한 곳으로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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