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리가 사라진 시대, 우리는 무엇을 붙잡아야 하는가
우리는 지금, 인류가 한 번도 경험해본 적
없는 시대를 통과하고 있다.
신의 손에서 벗어나 과학의 품으로 들어왔지만,
이제는 과학조차 우리에게 확실한 답을 주지
못한다는 사실을 서서히 깨닫고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불안한 인간은 무엇을 붙잡아야 할까?
우리는 어디에서 왔고, 어디로 가야 하는가?
시리즈 마지막에 이 질문을 향해
걸어가 보고자 한다.
우리는 흔히 과학을 진리라고 믿지만,
사실 과학은 현상을 설명하기 위해
인간이 임시로 만들어놓은 이론일 뿐이다.
더 정확한 관측 기술이 나타나면
언제든 폐기될 수 있는 구조물.
수백 년 동안 신의 이름으로 설명되던 현상들이
하루아침에 과학이라는
이름으로 바뀌었던 것처럼 말이다.
그런데도 우리는 말한다.
“증명해보라.”
“원인을 밝혀라.”
“책임을 규명하라.”
인간은 본질적으로 불안한 존재다.
불안은 ‘결론’을 원하고, 결론은 ‘정답’을 요구한다.
그래서 인간은 과학에 신처럼 기대기 시작했다.
완전한 진리를 찾기 위해, 불안을 견디지 못해.
하지만 과학이 말하는 ‘정확함’은
얼핏 단단해 보이지만
사실 미세한 오류를 무시한 채
큰 틀의 패턴을 설명하기 위한
대략적 질서에 가깝다.
즉, 과학은 인간을 해방시켰지만
그 대가로 우리는 ‘확실함’을 잃었다.
세상은 더 많이 이해하게 되었지만,
역설적으로 우리는 더 쉽게 혼란에 빠진다.
자연의 질서는 평등을 추구하지 않는다.
풍요도, 자원도, 기회도 모두 우연의 산물이고
그 우연을 기반으로
문명은 계급과 구조를 만들었다.
그런데 인간은 이 구조를 변화시키려 할 때
“정의”라는 이름을 붙이기 시작했다.
평등이라는 이름으로
공평이라는 명분으로
모두를 위한 정책이라는 외침으로
하지만 그 이면을 깊숙이 들여다보면
많은 경우 이 말들은 ‘자신의 생존과 이익’을 정당화하기 위한 논리다.
억압받는 이들이 정의를 말하는 것도,
기득권이 정의를 말하는 것도
결국은 자신의 세계관을 확장시키기 위해
타인을 설득하는 방식일 뿐이다.
과거에는 그 논리가 성경이었고,
지금은 과학과 데이터가
그 자리를 대신하고 있을 뿐이다.
인간은 늘 같은 일을 반복한다.
“이것이 옳다.”
“이것이 정의다.”
그러나 그 기준은 시대에 따라 변했다.
절대적 정의란 원래부터 존재하지 않았다.
신이 인간에게 준 것은 절대적 명령이었고,
그 명령은 사람들의 불안을 잠재웠다.
그러나 신이 사라지고
우리가 자연의 질서를 파악하게 되었을 때
역설적인 일이 일어났다.
인간은 자유로워졌지만, 방향을 잃었다.
왜냐하면 자연의 질서는
옳고 그름을 말해주지 않고,
생존을 보장해주지도 않기 때문이다.
우리가 신을 버리고 과학을 선택했지만
인간은 다시 불안을 느끼기 시작했다.
그 불안을 채우기 위해 또다시 ‘확실함’을 찾고,
그 확실함을 대신해줄 무언가를 원한다.
그래서 국가는 신이 되고,
법은 정의가 되고,
데이터는 예언서가 되고,
과학은 새로운 종교가 된다.
그러나 우리는 알고 있다.
이 모든 것은 인간이 만든 것일 뿐,
완전할 수 없다는 사실을.
생존을 위해 필요한 최소한은 단순하다.
먹을 것, 안전, 잠.
하지만 인간은 문명을 만들면서
‘최소한’의 기준을 끊임없이 올려왔다.
그 결과 인간은 이렇게 말하기 시작했다.
“나는 충분하지 않다.”
“나는 뒤처졌다.”
“불평등하다.”
“불행하다.”
그러나 우주의 관점에서 인간의 삶은
하루살이보다도 짧은 찰나에 불과하다.
17년을 땅속에서 살다 일주일을 빛 속에서 사라지는 매미를 보며
우리는 안타까움을 느낀다.
그런데 별의 시간으로 보면
우리 인간의 100년도
매미의 일주일과 다를 것이 없다.
그렇다면 이렇게 묻고 싶어진다.
별들은 우리를 내려다보며
“저 짧은 생을 가진 인간들은
무슨 생각을 하다 죽어가는 것일까?”
라고 묻지 않을까?
우리는 너무 느리게 변화하는 자연의 질서를 보며
마치 영원한 진리가 존재하는 것처럼 착각한다.
그러나 영원한 것은 없다.
우리도, 우리의 문명도,
우리가 믿는 모든 것도
언젠가는 사라진다.
그러므로 절대적 진리를 찾기 위해
고통스럽게 흔들릴 필요는 없다.
우리는 본질적으로 불완전한 존재니까.
결국 변화할 수 있는 것은 ‘나’뿐이다
세상이 완전해질 수는 없다.
과학도, 법도, 국가도 본질적으로 결함이 있다.
타인을 설득하기 위한 정의도 절대적이지 않다.
그렇다면 인간이 붙잡을 수 있는 것은 무엇일까?
자기 자신을 의심하고,
고정관념을 깨고,
새로운 시야를 여는 것.
거대한 사회나 국가, 혹은 우주의 흐름은
개인의 의지로 바꿀 수 없다.
그러나 ‘내가 바라보는 방식’은
언제든 바꿀 수 있다.
때로는 그 변화가 고통스럽다.
익숙한 세계가 무너지고
내가 믿어온 가치가 흔들리기 때문이다.
하지만 시야가 달라지는 순간,
불안은 다른 의미가 되고,
고통은 새로운 시작이 되고,
혼돈은 탐험의 공간이 된다.
결국 우리가 진정으로 추구해야 하는 것은
“평등한 세상”이나 “완벽한 정의”가 아니라
스스로의 세계관을 확장하고 때로는 부수며,
혼돈 속에서 나만의 질서를 세울 수 있는 힘이다.
이것이야말로
신이 떠난 시대,
과학조차 절대적 지침이 되지 못하는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에게 남겨진 마지막 자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