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명과 철학 너머, 다시 ‘나’로 돌아오기까지의 이야기
우리는 태어날 때부터 정답을 듣는다.
어떤 학교에 가야 하고,
어떤 직장에 들어가야 하고,
어떤 삶이 ‘괜찮은 삶’인지.
세상이 말하는 질서에 맞추기 위해
나는 열심히 살았다.
조금이라도 더 나아지기 위해 몸부림쳤고,
직장을 얻고, 자격을 얻고, 시험을 통과하며
조금씩 안정에 가까워지는 길을 걸어왔다.
그 과정에서 나 역시 기대했다.
‘이제 행복해지겠지.’
하지만 이상하게도
나는 사람들이 말하는 “커다란 기쁨”을
단 한 번도 느끼지 못했다.
합격의 순간도, 작은 성공도
그저 “위험이 줄었다”는 안도감뿐이었다.
기쁨이 아니라 겨우 안정감.
그때부터 의문이 깊어졌다.
“행복은 어디에 있는 걸까?”
“혹시 나는 뭔가 잘못 살아온 걸까?”
나는 사회가 말하는 ‘작은 성공’을 얻었지만
그 이후의 삶에서 행복은 거의 느끼지 못했다.
생각해보면 당연한 일이었다.
사회가 말하는 성공은
각자의 생존을 위해 만들어진 질서였지,
개인의 행복을 위한 공식이 아니었다.
나는 내가 원하는 행복이 무엇인지도 모르고
‘정답처럼 보이는 것들’을 따라가기 바빴다.
그러다 보니
삶은 안정돼가는데
내 안의 허전함은 점점 커져갔다.
그리고 마침내 나는 깨달았다.
내가 찾지 못한 것은 성공이 아니라
행복의 방향이었다는 것을.
내가 행복의 방향을 잃어가던 그때,
아이라는 예상치 못한 존재가 찾아왔다.
책에서도, 강연에서도 들었던 말은
“아이를 키우는 일은 힘들다, 지옥이다”였다.
그래서 처음에는 두려움이 컸다.
내가 감당할 수 있을까?
나는 과연 좋은 아빠가 될 수 있을까?
그리고 육아는 정말 고통스러웠다.
밤낮없이 울고,
잠은 모자라고,
하루의 에너지는 다 소모되었다.
나는 흔들렸고,
스스로에게 실망하기도 했다.
하지만 이상하리만큼
그 시간은 내가 잃어버렸던 감정을
조금씩 되살리고 있었다.
어느 평범한 저녁,
퇴근 후 집 문을 열었을 때였다.
매트 위에 엎드려 있던 아기가
나를 보자마자 온몸을 흔들며 웃었다.
세상의 모든 빛이
그 한 순간에 모이는 것 같았다.
내 가슴이 뜨거워졌다.
눈이 시큰해졌다.
온몸이 따뜻해졌다.
나는 생애 처음으로
사람들이 말하던
그 큰 기쁨을 느꼈다.
시험 합격이나 승진에서는
단 한 번도 느껴지지 않던 감정이었다.
그 웃음 하나가,
내가 평생 찾아 헤매던 “행복이 무엇인지”
한순간에 알려주었다.
행복은 멀리 있지 않았다.
늘 내 삶의 작은 층위에 있었을 뿐.
세상적 기준으로 본다면
아이의 웃음 따위는
그저 일상의 작은 조각일 뿐이다.
하지만 내가 진정으로 느낀 행복은
사회가 정한 질서 바깥에서만 등장했다.
비교가 없는 순간
경쟁이 없는 순간
누구와도 겨루지 않는 순간
있는 그대로의 나를 받아주는 순간
바로 그때 행복이 모습을 드러냈다.
나는 그때서야 알았다.
행복은 과학도, 정의도, 질서도
설명할 수 없는 감정이라는 것을.
행복은 ‘정답을 찾는 과정’이 아니라
‘내가 사랑하는 사람들 사이에서 스스로
만들어가는 과정’이라는 것을.
과학도 완전하지 않고,
국가도 완전하지 않고,
정의도 완전하지 않다.
그렇다면 무엇이 남는가?
나만의 질서
그리고 내가 사랑하는 사람들.
행복은 주어지는 것이 아니라
내가 만들고 지키는 것이다.
아이가 내게 알려준 그 웃음의 순간처럼
삶은 언제든 작은 빛으로 나를 비춘다.
나는 이제 알았다.
내가 추구해야 할 행복은
결코 거대한 성취에 있지 않다는 것을.
행복은 작은 세계에서 시작된다.
그리고 그 작은 세계를 지키는 것이
내 삶의 새로운 질서가 되었다.
이 긴 여정을 함께 해준 독자들에게 감사드립니다.
우리는 모두 불완전하지만,
불완전하기 때문에 서로에게 기대고
서로의 세계를 조금씩 밝혀줄 수 있을 것이란 희망을 품고 있습니다.
어떤 순간 행복을 느끼시나요?
그리고 그 순간을 지키기 위해
어떤 질서를 구축하고 싶으신가요?
저는 이제 내 질서를 세우고,
아이의 웃음처럼
작지만 선명한 행복들을 지켜가려고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