질서와 인간 — 흔들리며 깨달은 것들

거창한 진리가 아닌, 한 사람의 삶에서 건져 올린 결론

by 공상가

나는 이 시리즈를 쓰는 내내

누군가의 인생을 계몽하거나,

문명을 정리하는 지식인의 목소리를 내고 싶지 않았다.


사실은 그 반대였다.

나는 누구보다 흔들리고,

불안했고,

삶 앞에서 답을 찾지 못해 헤맸다.


그리고 혹시 당신도 비슷한 혼란을 겪고 있다면,

그저 옆에서 조용히 건네는 이야기이길 바란다.


나는 평생 ‘정답’을 따라 살았다


어릴 적엔 부모가 정답을 말했다.

학교에 가니 교사가, 사회에 나오니 회사가,

뉴스와 인터넷, 주변 사람들이

내 삶의 결론을 대신 내려주었다.


착하게 살아라

남을 도와라

남만큼은 해야 한다

뒤처지면 안 된다


이런 나이가 되면 이런 삶을 살아야 한다


나는 그 말들이 옳다고 믿었다.

아무 의심도 없이 따라갔다.


하지만 성인이 되고 깨달았다.

그 ‘정답’이라는 것들은

누군가의 생존 방식이었지,

내 삶을 위한 정답은 아니었다.


착하게 살면 더 이용당했고,

양보하면 더 잃었고,

성실하면 더 부려먹혔다.


그러다 문득 이런 질문이 들었다.


“도대체 누가 이걸 정답이라고 한 걸까?”


고통이 시작되었고, 그때 나는 처음으로 ‘질서’를 보기 시작했다


내가 살면서 겪어야 했던 불편함, 상처, 모욕, 후회들.

그때는 이해하지 못했지만

지나고 보니 그 모든 게 하나의 흐름이었다.


누군가는 본인의 생존을 위해 나를 이용했고

누군가는 자기 불안 때문에 나를 공격했고

누군가는 나를 해치려던 게 아니라 자기 삶을 지키려 한 것이었다


그때 나는 선악이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을 이해했다.

누구도 ‘악’이어서 그런 행동을 한 것이 아니다.

모두가 자신의 삶을 버티기 위해 발버둥 치는 중이었다.


그 사실을 알게 되자

나는 처음으로 타인을 미워하는 감정에서 조금 벗어났다.


세상은 평등하지 않다. 그리고 그것은 거대한 불의가 아니라 자연의 질서다


이전 글에서 나는 ‘평등’이라는 말의 환상을 이야기했었다.

하지만 그것은 학술적 비판이 아니라

내 경험에서 나온 감정적 깨달음이었다.


나는 뛰려고 노력했지만

어떤 사람들은 내가 평생 닿을 수 없는 출발선에서 이미 달리고 있었다.


처음엔 분했다.

억울했다.

그 불평등이 ‘부당’하다고 느껴졌다.


하지만 자연을 보면 금방 알 수 있다.


동물은 태어난 순간부터 서로 다른 능력을 갖고 있다.

생명체는 원래 평등하지 않다.

평등은 자연의 질서가 아니다.


그러면 인간만 평등할 수 있을까?

기대할 수는 있지만,

그것을 절대적 진리, 혹은 정의라고 부르는 순간

누군가의 생존을 빼앗는 일이 시작된다.


잔인한 그 사실을 받아들이기에는 너무나도 오랜 시간이 걸렸다.


신은 사라졌고, 과학이 그 자리를 대신했다. 그런데 과학도 우리를 구원할 수 없다


과학은 인류가 만들어 낸 사상 중 가장 위대한 사상이다.

세상을 설명해 주고,

불안을 줄여주고,

우리를 무지에서 끌어내는 언어니까.


하지만 한계도 알게 되었다.


과학은 영원한 진리가 아니다.

언제든 뒤집힌다.

우리가 지금 ‘정확하다’고 믿는 것들도

미래 세대가 보면 틀렸다고 말할 것이다.


그런데도 사람들은

과학적 근거가 없으면 불안해하고,

모든 일에는 반드시 원인이 있다고 믿는다.


확실함을 원하는 마음이

과학을 새로운 신으로 만든 것이다.


그러나 신이 된 순간,

과학은 인간을 더 흔들기 시작했다.

왜냐하면 과학은 확실함을 줄 수 없는 학문이기 때문이다.


정답은 없다. 그러나 ‘나만의 질서’는 만들 수 있다


나 역시 불안했다.

잘 살아야 한다는 압박에 시달렸고

남들과 비교하며 초라해졌고

도덕과 선한 의무에 갇혀 스스로를 해치는 순간도 많았다.


그러나 지금은 조금 다르게 말할 수 있다.


세상은 정답이 없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고

인간은 모두 생존을 위해 움직인다는 것을 이해했고

평등의 환상도, 과학의 절대성도 내려놓을 수 있었고

‘착하게 살아라’라는 말 뒤의 진짜 목적도 보이기 시작했다


그 이후로 나는

남들이 말하는 정의가 아니라

나에게 맞는 정의를 찾기 시작했다.


법도, 신도, 과학도

완벽한 기준이 되어주지 못한다면

우리는 결국 “나만의 기준”을 세워야 한다.


그 기준이 미숙해도 괜찮고,

누군가에게 틀려 보여도 괜찮다.


우리가 살아가는 이유는

정답을 따라가기 위함이 아니라

나만의 질서를 구축하기 위함이니까.


나는 특별한 사람도 아니고,

똑똑한 철학자나 사회학자도 아니다.

그저 흔들렸고,

고통받았고,

버티려고 애쓰다 보니

이런 결론을 얻게 되었을 뿐이다.


그리고 이 결론이

당신의 결론이 될 필요도 없다.

그저 당신만의 질서를 찾는 과정에

작은 힌트가 되면 좋겠다.


세상에 정답은 없다.
하지만 당신의 질서는 존재할 수 있다.


그 질서를 만드는 일이야말로

우리가 살아가는 이유에 가장 가까운 것 아닐까.